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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신부 진이
앨랜 브렌너트 지음, 이지혜 옮김 / 문학수첩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뒤적였던 것은 바로 작가의 이력이다. 읽기 전에 작가가 한국계 미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읽으면서 혹시 하는 마음이 계속 생겼다. 그것은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작가의 이해와 표현이 한국 작가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오히려 더 한국적이었다. 19세기 말 경상도 보조개골에서 태어난 한 여자 아이의 일생을 함축적이면서 파란만장하게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또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을 붉혔고, 그 시대의 한계에 분노했다.
이 소설을 읽기 전 멕시코 등 이주 노동자를 다룬 작품을 읽은 적이 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분노와 애절함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사랑도 넘쳐난다. 하지만 이 작품 이전에는 하와이 이주와 사진신부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미국 본토와 다른 곳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그리고 사진신부로 중매가 이루어지고, 이 결혼으로 먼 타국으로 홀로 간 여성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이 사신신부가 한국만의 문화적 현상이 아니라는 것은 일본 사진신부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지만 그 시대의 풍경과 문화를 아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사진신부 진이의 본명은 섭섭이다. 흔한 한국 이름처럼 아들이 아니라 섭섭하다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이 이름을 평민이 지었다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생각했겠지만 양반 가문에서 이렇게 지었다. 이 부분에 대한 고증은 좀더 필요하지만 조선 시대 이후 자주 보아왔던 이름이라 크게 거부감은 없다. 그리고 당연하게 아버지는 여자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는다. 출가외인이란 인식 때문에 일곱 살이 되면 밖에 놀게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날 신문 조각을 줍고 이것을 오빠에게 읽어달라고 요청한다. 이것을 듣고 바깥 세상에 대한 동경과 갈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낯가림이 심하던 한 소녀에게 변화의 바람이 분다.
그녀가 글을 배우게 되는 곳은 집이 아니라 병든 이모 댁에 갔다가 만난 기생 석란이다. 석란 선생을 통해 한글을 배우고 읽게 된다. 글을 한 번 배우게 되면서 배움에 대한 갈증은 더 커진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말할 수는 없다. 그러다가 친구 선이가 하와이 사진신부를 말한다. 공부를 더 하고 싶은 섭섭이는 아버지에게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가 맞게 된다. 이 날 이후 선이를 통해 사진신부를 구하는 매파가 다가온다. 매파가 부채질하는 환상과 공부에 대한 열정 때문에 예쁘게 화장한 후 사진을 찍는다. 여성 억압적인 현실을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에서 아주 큰 결심을 한 것이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생각한 그녀를 선택한 남자가 있다. 노 씨다. 사진을 보면 나쁘지 않다. 그녀의 사진처럼 그의 사진도 윤색되어 있다. 진실을 알게 되는 것은 하와이에 도착해서 그를 보았을 때다. 그와 함께 하룻밤을 보내고 농장에서 본격적인 부부생활을 하면서 그녀의 삶은 새로운 억압 속으로 굴러떨어진다. 남편의 주사와 폭력과 도박이 이어지고, 아내가 돈 벌어오는 것을 자기 위신 깍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때린다. 임신한 아이가 유산된다. 이민 온 한국 남자들의 가정은 한국의 그것과 별 다른 차이가 없다. 그녀는 공포를 벗어던지고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농장을 떠난다. 그녀의 진실된 삶이 펼쳐지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섭섭이란 이름 대신 진이라고 불러준 것은 기생 석란이다. 이때의 기억이 그녀가 창녀촌에서 일하는 거부감을 덜어주었는지 모른다. 어머니에게 배운 바느질로 돈을 번다. 그녀의 가슴 한 곳엔 민며느리로 들어온 송이가 있다. 돈을 벌어 그녀를 데리고 오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바람을 그대로 이어주지 않는다. 파란만장한 그녀의 삶이 하나씩 펼쳐진다. 하와이 행 배를 같이 탄 여자 친구들과의 인연과 새롭게 하와이에서 사귄 친구들의 이야기가 다양하게 풀려나온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연들은 그 시대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역사를 생각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아픔들이다. 그렇지만 사랑과 우정도 같이 이어진다.
짧은 시간이 아닌 한 여성의 일생을 다루다보니 분량과 상관없이 가슴 한 곳에 무게감이 생긴다. 그녀가 경험했던 사건들이 시대의 한계를 드러낼 때는 같이 분노하고 가슴 아파한다. 인종차별이 아직 만연했던 시대다. 한인 이주 1세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한인들의 삶이 어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현재에 이르렀는지 알게 된다. 단순히 성공담이 아니라 삶이 오롯이 녹아있다. 이 소설의 가치는 바로 이 부분에 있다.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으로 글을 쓴 것보다 더 중요한 부분이다. 홀로 잘되겠다고 하지 않고 서로 연대하면서 같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지금 한국의 모습이 대비된다. 한국 작가가 아닌 미국 작가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부끄러움과 부러움을 느낀다. 우리의 역사가 점점 잊혀지는 것 같다. 오랜만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