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일, 스미레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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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고 경쾌하다. 스미레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인디 레코드 회사 스마일 뮤직의 사장이 바로 스미레다. 스미레란 이름은 smile을 일본식으로 읽은 것이다. 아버지가 지었다. 영화로 표기하면 같은 글자다. ‘DEEP SEA'라는 인디밴드에 빠져 거대 음반사를 그만두고 회사를 만들었다. 직원이라고는 DEEP SEA의 멤버 3명이 전부다. 혼자서 이 밴드를 성공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노력한다. 이 소설의 시작도 바로 이런 피로가 쌓인 그녀가 쓰러져 있다가 깨는 장면부터다. 그것도 연인인 료를 만나러 가는 길에.

 

길에 쓰러진 그녀의 외양이 결코 좋을 리 없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미소가 있다. 스마일. 이것은 그녀 최고의 무기다. 남자 친구를 만나서 오랜만에 데이트를 하는데 한 통의 전화가 온다. 소속 가수 후유미가 도움을 애절하게 요청한다. 택시를 타고 빨리 달려간다. 그런데 늘 있는 듯한 연인들의 다툼이라고 한다. 같은 밴드이자 남자 친구의 폭력이 원인이지만 그냥 덮어둔다. 왠지 불안하다. 이 불안은 예상한 것으로 이어지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 바로 그녀가 키운 DEEP SEA가 그녀의 이전 회사로 소속사를 바꾼 것이다. 마지막 라이브를 엉망으로 한 후 바로 통보를 받았다. 계약 연장을 하지 않은 탓에 그녀가 처음으로 키운 밴드가 떠나간 것이다.

 

바쁜 일은 이어진다고 했던가. 료가 보낸 문자 메시지가 이별을 통보하는 것 같다. 그녀 자신만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문자를 본 친구마저 동의할 정도다. 두 번의 이별이 그녀를 지치게 한다. 이것을 조금 덜어내기 위해 부모님 집으로 돌아간다. 며칠간의 짧은 여행이지만 가족의 따스함과 부모님의 사랑과 풋풋한 이야기들이 그녀를 치유한다. 그리고 연락이 하나 온다. 하루토다. 그는 이전에 아이돌밴드로 데뷔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이력이 있다. 이혼을 한 후 밋치라는 딸과 함께 산다. 그의 공연을 아주 인상적으로 본 그녀가 그를 두 번째 소속 가수를 받아들인다. 여기부터 스미레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미레의 모토는 자신이 웃으면 남이 즐겁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실제 그녀의 아버지가 이름을 지을 때는 다른 사람이 웃게 하자는 의미가 더 강했다. 이제 그녀가 바라는 것은 그녀 레코드 회사 음악을 들은 사람들이 웃게 만들자는 것이다. 그 첫 걸음으로 하루토를 성공시켜야 한다. 그녀는 잘 모르지만 그녀의 프로듀싱 실력은 이미 이쪽 업계에 소문이 짝 퍼져있다. DEEP SEA도 그렇게 성공했고, 이전에도 몇몇 가수가 오리콘 차트에 이름을 올렸다. 하루토도 이런 그녀의 실력을 알기에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물론 실력이 없다면 아무 소용없다.

 

스미레의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경쾌하고 빠르게 풀어내었다. 속도감 있게 읽힌다. 내면의 고민을 파고들어 어둡게 만들기보다 스마일을 내세워 무거움을 걷어냈다. 각각의 사연을 길게 표현하지 않고 간략하게 알려주면서 성공과 행복으로 한발씩 나아간다. 자기 소속 가수의 성공을 위해 어떤 때는 무릎까지 꿇고 빈다. 현실은 쉽지 않다. 하루토가 무너졌을 때 다시 일으켜 세우고, 최고의 공연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한다. 확신과 열정과 사랑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읽는 동안 감정이입이 쉽게 된다. 처음 읽은 작가인데 무거운 소설들에 짓눌렸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점점 미소가 사라지는 나 자신을 돌아보면 살짝 부끄러워진다. 더 열심히 웃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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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돌아왔다
티무르 베르메스 지음, 송경은 옮김, 김태권 부록만화 / 마시멜로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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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가르마만 보아도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독일과 그라는 단어가 겹쳐지면 더 분명해진다. 바로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로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돌아왔다. 1945년 당시 히틀러의 생각과 모습을 그대로 가진 채로 말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현대다. 많은 소설에서 다루어진 유전자 조작을 통한 재생이 아니라 죽었던 당시의 모습대로 현대에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그가 현대에 다시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필요하지도 않다. 그의 등장이 만들어낼 이야기는 다른 소설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현대에 나타난 히틀러는 최고의 지위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위치로 바뀌었다. 바뀐 환경과 문화 속에 내던져진 히틀러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블랙코미디로 보여준다. 총통일 때 일상적인 모든 일을 대신해주던 부하들이 사라진 그는 그냥 평범하고 미숙한 한 명의 시민일 뿐이다. 과거의 기억은 오히려 현대를 살아가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이 기억과 자신의 철학이 만들어내는 해프닝들이 코미디처럼 다가온다. 한때 유럽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수백만을 학살했던 그의 위압감이나 권위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그가 실제 아돌프 히틀러라고 외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웃을 뿐이다.

 

낯선 시대로 왔지만 히틀러의 의지는 조금도 굽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히틀러의 역사 속 장면과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이후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권력을 만들었는지 계속 알려주면서 현대의 히틀러가 보여주는 행동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다. 연설로 사람을 모으고, 이를 통해 권력을 잡으려는 그의 시도는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시대와 전혀 다른 경제, 문화, 통신 환경이다. 특히 인터넷과 유튜브는 빠른 정보 검색과 호응도를 알려주면서 그를 사로잡는다. 컴퓨터에 감탄하는 그의 모습이 늘 일상생활에서 누리고 있는 우리에게는 낯설게 다가오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영화 속 최첨단 장비였었다. 뭐 10년 전 스마트폰이 없던 때를 생각해도 된다.

 

이 소설의 재미난 점은 히틀러의 변신이 아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가 역사 속 히틀러와 똑같이 행동할수록 사람들은 그의 메소드 연기에 감탄할 뿐이다. 그가 이전과 같이 정치, 인종 문제를 그대로 표현해도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풍자나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를 프로그램에 내세워 광고하고 홍보하는 사람조차도 그의 선동과 표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가는 이 부분을 미묘한 선상에 놓아둔다. 히틀러의 연설에 동조하는 사람과 단순히 풍자로 받아들일 뿐인 사람들로 나누었고, 역사 속에서 이런 동조자들이 어떤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었는지 히틀러의 생각 속에 계속 반복한다.

 

돌아온 독재자가 다시 TV속 인기인이 된다. 단지 히틀러와 닮았다는 이유로 캐스팅되었다가 점점 자신의 영향력을 늘여간다. 당연히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 매체가 등장한다. 하지만 조그만 실수가 오히려 히틀러를 도와주는 꼴이 된다. 그의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연설과 선동은 최고의 코미디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그가 히틀러라는 사실과 생각을 알고 있는 독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미묘한 선상에 놓여있다고 한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과 고집으로 똘똘뭉친 히틀러가 현대의 나치 동조자들을 질타하는 장면과 유대인 폭력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끈 그가 오히려 지금 나치 잔당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히틀러가 히틀러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분명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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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인
미치오 슈스케 지음, 유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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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은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은 미스터리였고, 그 후에 주로 읽은 책들도 미스터리물이었다. 그래서 작가가 쓴 다른 장르의 소설을 읽을 때 많이 낯설었다. 기대했던 설정과 전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기분을 지워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만약 예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어디에 트릭이 있을 것이란 생각에 이 세 명의 주인공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작가의 후기를 보면 소설을 먼저 쓴 것이 아니다. 소설가가 줄거리를 짜고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TV 드라마를 제작하고 동시에 책을 출간하는 방식이다. 방송국 쪽의 여러 희망사항과 제약이 보통의 그의 소설과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드라마도 있으니 한 번 보고 싶다.

 

세 남녀는 각각 다른 환경 속에서 자라고 살아간다. 이 세 명이 함께 모이는 일은 거의 없다. 상해나 도쿄나 둘만 대부분 등장한다. 일본인 두 명, 야오이와 렌스케와 대만 출신 중국인 슈메이가 주인공이다. 야오이는 파견으로 일하다가 정규직의 실수를 뒤집어쓰고 오랫동안 사귄 남자 친구의 거짓말에 질려 화려한 여행을 꿈꾸며 떠난다. 하지만 평소 습관이 단숨에 고쳐질 리가 없다. 민박에 머물면서 상해를 여기저기 다닐 뿐이다. 그러다가 케이크 가게에서 렌스케를 만난다. 다시 만났을 때는 렌스케의 수수께끼를 푸는데 도와준다. 이 도움으로 케이크 먹는 초대를 받지만 자신의 착각과 남자의 무신경함이 문제를 만든다.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다.

 

렌스케는 가구 회사 레골리스를 창업한 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중국에서 지점을 낼 정도다. 정당하게 인수한 중국 회사의 직원들이 재고용도 뿌리치고 대부분 나간다. 그 직원 중 한 명을 회사 모델로 고용하고 싶어 한다. 광고에 탁월한 눈이 있는 후배이자 직원인 가자미가 추천한 사람이다. 바로 슈메이다. 그녀는 빛나는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가구 회사에 일하고 있다. 가자미와 렌스케는 그녀를 모델로 쓰고 싶다. 하지만 그녀가 거부한다. 그리고 렌스케의 성격을 보여주는 몇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장의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야오이와의 충돌도 그 때문에 생겼다.

 

슈메이는 재고용을 거부한 후 일자리가 없어 힘들게 산다. 친한 친구 밍은 그녀의 호의를 걷어차고 돈까지 훔쳐 달아난다. 미안하다는 쪽지만 남기고. 레골리스의 모델 제의를 거부했는데 밍의 사건은 중국에서의 그녀 삶을 무너트린다. 일본에 살고 있는 아빠 한양을 찾아간다. 27년 전 일본에서 성공을 꿈꾸며 살다 힘든 것을 버티지 못한 엄마와 슈메이는 돌아왔지만 아빠는 그곳에서 승승장구했다고 한다. 희망이 무너진 곳에서 아빠의 도움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다. 그녀보다 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레골리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세 남녀는 일로, 의문으로, 인연 등으로 연결된다. 야오이는 파견직인 것을 숨기고 좋은 직장 여성처럼 술을 마셨다. 야오이를 찾아 상해의 사진을 전달하려는 렌스케는 자신이 사장인 것을 숨긴 채 보통 사람들 옆에 머문다. 단골집 온짱은 이 둘이 만나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이 둘이 순간적으로 불타기에는 너무 다른 삶을 살았다. 슈메이의 광고는 성공했다. 그녀는 신비한 수수께끼의 여인으로 산다. 모델료는 아버지의 빚을 갚는데 사용된다. 렌스케와는 일로 만나고 이야기하는 정도다. 이 둘은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읽는 내내 궁금했다. 그녀의 미모와 냉철한 렌스케가 왠지 일을 벌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오이의 직장에서 만든 선향불꽃이 이 셋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간다.

 

가독성이 좋아 단번에 읽었다. 세 남녀의 삶과 관계를 약간은 건조하게 풀어낸다. 감정에 끌려가는 모양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 엮여간다. 어느 순간은 보호본능에 이끌려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삶이 지쳐 있을 때 그 만남이 가장 편안한 여유를 전해준다. 팽팽한 긴장감에 시달리는 렌스케의 꿈이 외롭고 힘든 그의 삶을 보여준다. 변한 자신의 모습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 두 남녀는 힘들어한다. 가장 빛나는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평범한 삶을 사는 사람이 더 여유롭다. 편안하다. 오해가 펼쳐지고, 마음이 가는 길을 따라가다 해결되는 그 과정이 결코 통속적인 모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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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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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수없이 풀어놓은 책이다. 글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밑줄을 그은 후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든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혼란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혼란은 모르는 책이 너무 많거나 나와 너무 다른 생각 때문이고, 즐거움은 재밌게 읽은 책이 걸작의 목록에 올라있거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 책들이 모두 걸작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책들도 곳곳에 보였기 때문이다.

 

목차를 읽으면 제목에 걸작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이 적지 않다. 어떤 것은 정의를 나타내주고, 어떤 것은 분류 작업처럼 다가온다. 실제 글을 읽으면 걸작이라고 불리는 책들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감상을 짧게 혹은 조금 길게 늘어놓은 것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 한 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될 것이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자 언젠가 꼭 읽고 싶은 이 책에 대한 저자의 찬사와 찬탄 등은 책 좀 읽었다는 사람이 이 책도 아직 읽지 않았냐 하고 질타하는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이 책이 뒤로 가면서 더 좋아진다고 할 때는 정말 당장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실제 눈앞에 책이 있다면 딴 짓을 하겠지만.

 

걸작을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렵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책 속에서 말한 책 목록이 책 뒤에 나와 있다. 그런데 본문을 읽기 전 이 목록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각 장의 내용과 책을 직접 연결해야 할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제목을 모르는 책(읽은 책이 아니다)이 너무 많아 한수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취향 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걸작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 너무 분명하고,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주제만을 앞세운 책에 대한 저자의 반감이 나올 때는 다시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책들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걸작에 대한 많은 정의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다. “걸작은 우연과 비논리, 무형식이 지배하는 세계에 형식을 더한다.”(86쪽) 이 형식은 저자가 걸작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새로운 형식은 사람들의 인식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 모두가 제임스 조이스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율리시스>보다 <피네건의 경야>가 더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린다. 읽을 수 없는 걸작이란 제목 속에 이 책들이 들어 있으니 정말 큰맘을 먹기 전에는 쉽지 않다. 다행히 <율리시스>는 학창시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힐끗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 있지만 실제는 모르겠다.

 

걸작은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주제를 찾고 인생의 교훈을 배우려는 책 중 과연 몇 권이나 걸작이라고 불릴까? 걸작을 쓴 작가조차 인생을 모른다고 했을 때 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점에서 권장도서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듣고 싶다. 누군가는 자신도 읽지 않았기에 넣은 책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괜히 궁금하다. 빤한 말이지만 걸작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걸작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쓸려고 한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간된 후 독자와 비평가와 학자 등에 의해 걸작이 평가되지만 역시 가장 잘 아는 것은 작가다. 그런데 문제는 책 내용에 대해 잘 아는 것과 걸작을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솔직히 한 번 읽은 것으로는 저자가 말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다시 읽으면 어느 정도 흐름이 잡힐까? 나에게도 걸작이 보일까? 가끔 펼쳐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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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사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9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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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훌륭한 데뷔작을 쓴 작가라 항상 첫 작품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녀의 새로운 작품이 나올 때 자주 보게 되는 문구 중 하나가 <고백>이 아닌 새 작품으로 기억되는 작가이고 싶다는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고백>의 벽을 넘지 못했다. 솔직히 이 작품도 마찬가지다. 다른 소설들도 재미있고 잘 쓴 소설들이지만 그 강렬함을 넘기는 정말 어렵다. 어쩌면 이것은 모든 작가의 숙명인지 모른다. 우리가 기억하는 수많은 거장들도 대부분 한 편의 작품으로 묶여 기억하는 경우가 태반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평생 대표작이 하나 없는 작가에 비하면 엄청난 축복인데도 말이다.

 

모두 여섯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은 세 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이 세 명은 꽃, 눈, 달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꽃은 리카(梨花), 눈은 미유키(美雪), 달은 사쓰키(紗月)가 주인공이다. 이들은 각 장에서 하나씩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각각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지만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매향당이다. 그곳의 별미인 긴쓰바와 가사이 미치오의 그림이 맛과 기억을 함께 공유한다. 이 설정이 이 소설의 뼈대를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뭐 조금 읽다 보면 어느 정도 예상이 되지만.

 

리카는 영어학원 강사였는데 학원이 갑자기 문을 닫으면서 실업자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까지 병에 걸렸다. 수술비 등이 필요하다. 자신의 부모들이 죽었을 때 매년 집으로 꽃을 보내주던 K라는 사람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는데 이제 K에게 금전적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다. 문제는 K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이다. 리카는 K의 정체를 밝히고, 왜 매년 집에 꽃을 보냈는지 알려고 한다. 이 의문은 이 소설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만능열쇠다. 그 이유를 밝혀주는 이야기가 하나씩 이어서 나온다.

 

미유키는 외삼촌 회사에서 일하다 자신이 좋아한 남자와 선을 본 후 결혼한다. 남자의 이름은 가즈야다. 그의 꿈은 건축설계다. 영업에 재능을 보여 외삼촌 회사에서 영업을 했는데 외사촌 오빠 요스케가 회사를 차리면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사람 좋은 그는 독립한 회사에서도 좋은 역할을 한다. 요스케는 귀하게 자란 탓인지 남과 잘 어울리는 인물이 아니다. 그러다 가사이 미치오 미술관 설계 공모전이 열리고 여기에 가즈야가 공모하려고 한다. 재능과 열정과 사랑이 어울려 멋진 설계도가 나온다. 하지만 이것은 또 다른 사건을 불러오는 원인이 된다.

 

사쓰키는 아버지 없이 자랐다. 대학 등산 동호회에 친구의 요청 때문에 가입했다. 이 동호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구라타 선배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이때부터 아빠와 딸 사이로 낙인찍히고 이 둘은 친해진다. 고이치 선배와도 역시. 친구 기미코는 이것을 질투한다. 둘 중 한 명을 선택하라고 한다. 그러다 구라타 선배가 백혈병으로 죽는다. 어느 날 고이치 선배도 같은 병에 걸린다. 그런데 고이치와 사쓰키의 백혈구 형태가 일치한다. 몇 년이 지난 후 기미코가 그녀를 찾아온 이유도 바로 같은 백혈구 형태 때문이다. 그냥 골수 이식을 해주면 될 텐데 이 속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리카, 미유키, 사쓰키로 이어지는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되어 있다. 하지만 읽다보면 앞에서 말한 매향당과 긴쓰바와 코스모스 꽃과 가사이 미치오의 그림 등이 끝임없이 등장한다. 개별적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슬로 이어진 것 같다. 조그만 서술 트릭을 사용했는데 생각보다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마지막 장에서 드러낼 이야기가 강한 충격으로 다가와야 하는데 사실 조금 약하다. 예상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제외하고 각각 다른 세 명의 여자 이야기로 읽는다면 결코 나쁘지 않다. 원인과 과정과 결과를 의도적으로 뒤섞어 놓아 중간에 그 순서가 어떤 것일까 궁금했는데 이것도 마지막에 오면 쉽게 추정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글을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대표작은 분명히 <고백>이지만 다른 작품처럼 이 작품도 역시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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