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에 관하여 - 숭고하고 위대한 문학작품에 대한 단상들
샤를 단치 지음, 임명주 옮김 / 미디어윌 / 2015년 1월
평점 :
절판


걸작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수없이 풀어놓은 책이다. 글을 읽으면서 이 부분은 밑줄을 그은 후 다시 읽어야지 하는 마음이 든 부분도 상당히 많았다. 그리고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책들은 혼란과 즐거움을 가져다주었다. 혼란은 모르는 책이 너무 많거나 나와 너무 다른 생각 때문이고, 즐거움은 재밌게 읽은 책이 걸작의 목록에 올라있거나 읽고 싶은 책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 책들이 모두 걸작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의문이다. 쉽게 동의할 수 없는 책들도 곳곳에 보였기 때문이다.

 

목차를 읽으면 제목에 걸작이란 단어가 들어간 것이 적지 않다. 어떤 것은 정의를 나타내주고, 어떤 것은 분류 작업처럼 다가온다. 실제 글을 읽으면 걸작이라고 불리는 책들에 대한 자신의 분석과 감상을 짧게 혹은 조금 길게 늘어놓은 것들이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걸작 한 편을 꼽으라고 한다면 단연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될 것이다. 아직 읽지 못한 책이자 언젠가 꼭 읽고 싶은 이 책에 대한 저자의 찬사와 찬탄 등은 책 좀 읽었다는 사람이 이 책도 아직 읽지 않았냐 하고 질타하는 듯한 느낌을 줄 때도 있다. 이 책이 뒤로 가면서 더 좋아진다고 할 때는 정말 당장 사서 읽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실제 눈앞에 책이 있다면 딴 짓을 하겠지만.

 

걸작을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렵다. 저자도 마찬가지다. 그가 책 속에서 말한 책 목록이 책 뒤에 나와 있다. 그런데 본문을 읽기 전 이 목록을 읽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각 장의 내용과 책을 직접 연결해야 할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그리고 제목을 모르는 책(읽은 책이 아니다)이 너무 많아 한수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취향 차이라고 단정하기에는 걸작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 너무 분명하고,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주제만을 앞세운 책에 대한 저자의 반감이 나올 때는 다시 한 번 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책들일까 하는 의문 때문이다.

 

걸작에 대한 많은 정의 중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 있다. “걸작은 우연과 비논리, 무형식이 지배하는 세계에 형식을 더한다.”(86쪽) 이 형식은 저자가 걸작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새로운 형식은 사람들의 인식의 틀을 부수고, 새로운 언어를 만든다. 모두가 제임스 조이스의 최고 걸작이라고 하는 <율리시스>보다 <피네건의 경야>가 더 성공적이란 평가를 내린다. 읽을 수 없는 걸작이란 제목 속에 이 책들이 들어 있으니 정말 큰맘을 먹기 전에는 쉽지 않다. 다행히 <율리시스>는 학창시절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힐끗 한 번 읽은 적이 있다. 다시 읽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 있지만 실제는 모르겠다.

 

걸작은 우리에게 인생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주제를 찾고 인생의 교훈을 배우려는 책 중 과연 몇 권이나 걸작이라고 불릴까? 걸작을 쓴 작가조차 인생을 모른다고 했을 때 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 점에서 권장도서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듣고 싶다. 누군가는 자신도 읽지 않았기에 넣은 책들도 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괜히 궁금하다. 빤한 말이지만 걸작을 쓰는 방법을 알고 있다고 해서 걸작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쓸려고 한다고 해서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출간된 후 독자와 비평가와 학자 등에 의해 걸작이 평가되지만 역시 가장 잘 아는 것은 작가다. 그런데 문제는 책 내용에 대해 잘 아는 것과 걸작을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솔직히 한 번 읽은 것으로는 저자가 말하는 바를 잘 모르겠다. 다시 읽으면 어느 정도 흐름이 잡힐까? 나에게도 걸작이 보일까? 가끔 펼쳐 읽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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