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돌아왔다
티무르 베르메스 지음, 송경은 옮김, 김태권 부록만화 / 마시멜로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표지의 가르마만 보아도 연상되는 인물이 있다. 독일과 그라는 단어가 겹쳐지면 더 분명해진다. 바로 20세기 최악의 독재자로 불리는 아돌프 히틀러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가 돌아왔다. 1945년 당시 히틀러의 생각과 모습을 그대로 가진 채로 말이다. 그런데 이 시기가 현대다. 많은 소설에서 다루어진 유전자 조작을 통한 재생이 아니라 죽었던 당시의 모습대로 현대에 나타난 것이다. 어떻게 그가 현대에 다시 나타나게 되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필요하지도 않다. 그의 등장이 만들어낼 이야기는 다른 소설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

 

현대에 나타난 히틀러는 최고의 지위에서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위치로 바뀌었다. 바뀐 환경과 문화 속에 내던져진 히틀러가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블랙코미디로 보여준다. 총통일 때 일상적인 모든 일을 대신해주던 부하들이 사라진 그는 그냥 평범하고 미숙한 한 명의 시민일 뿐이다. 과거의 기억은 오히려 현대를 살아가는데 방해만 될 뿐이다. 이 기억과 자신의 철학이 만들어내는 해프닝들이 코미디처럼 다가온다. 한때 유럽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수백만을 학살했던 그의 위압감이나 권위는 어느 순간 사라져버렸다. 그가 실제 아돌프 히틀러라고 외칠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웃을 뿐이다.

 

낯선 시대로 왔지만 히틀러의 의지는 조금도 굽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히틀러의 역사 속 장면과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1차 대전 이후 그가 어떤 과정을 통해 권력을 만들었는지 계속 알려주면서 현대의 히틀러가 보여주는 행동의 속내를 그대로 보여준다. 연설로 사람을 모으고, 이를 통해 권력을 잡으려는 그의 시도는 변한 것이 없다. 하지만 그 시대와 전혀 다른 경제, 문화, 통신 환경이다. 특히 인터넷과 유튜브는 빠른 정보 검색과 호응도를 알려주면서 그를 사로잡는다. 컴퓨터에 감탄하는 그의 모습이 늘 일상생활에서 누리고 있는 우리에게는 낯설게 다가오지만 불과 30년 전만 해도 영화 속 최첨단 장비였었다. 뭐 10년 전 스마트폰이 없던 때를 생각해도 된다.

 

이 소설의 재미난 점은 히틀러의 변신이 아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가 역사 속 히틀러와 똑같이 행동할수록 사람들은 그의 메소드 연기에 감탄할 뿐이다. 그가 이전과 같이 정치, 인종 문제를 그대로 표현해도 사람들은 이것을 하나의 풍자나 블랙코미디로 받아들일 뿐이다. 그를 프로그램에 내세워 광고하고 홍보하는 사람조차도 그의 선동과 표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작가는 이 부분을 미묘한 선상에 놓아둔다. 히틀러의 연설에 동조하는 사람과 단순히 풍자로 받아들일 뿐인 사람들로 나누었고, 역사 속에서 이런 동조자들이 어떤 거대한 물결을 만들어내었는지 히틀러의 생각 속에 계속 반복한다.

 

돌아온 독재자가 다시 TV속 인기인이 된다. 단지 히틀러와 닮았다는 이유로 캐스팅되었다가 점점 자신의 영향력을 늘여간다. 당연히 이것을 좋아하지 않는 매체가 등장한다. 하지만 조그만 실수가 오히려 히틀러를 도와주는 꼴이 된다. 그의 노골적이고 직설적인 연설과 선동은 최고의 코미디로 대중에게 다가간다. 그가 히틀러라는 사실과 생각을 알고 있는 독자가 보기에는 상당히 위험한 모습이다. 이 때문에 미묘한 선상에 놓여있다고 한 것이다. 자신만의 철학과 고집으로 똘똘뭉친 히틀러가 현대의 나치 동조자들을 질타하는 장면과 유대인 폭력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끈 그가 오히려 지금 나치 잔당에게 폭행당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백미다. 히틀러가 히틀러로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분명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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