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스파이 앙상블
이사카 고타로 지음, 강영혜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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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이력을 가진 연작 소설집이다.

2015~2021년까지 7년 동안 매년 1편씩 음악 페스티벌 ‘오하라☆브레이크’를 위해 썼다.

처음에는 행사장을 찾은 사람만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횟수가 늘어나면서 책 한 권이 되었다.

그리고 후일담인 ‘이나와시로 호수에서 다시 만나는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이 후일담은 일본의 경우 전자책에만 실려 있다고 한다. 늦은 번역 덕을 봤다.

페스티벌을 위해 쓴 소설답게 각 단편 속에 인디 뮤지션의 음악이 들어 있다.

당연히 이 ‘더 피즈’나 ‘토모프스키’ 같은 일본 음악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음악가를 모른다고 해도 이 소설을 즐기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처음 1년차를 볼 때 혼란스러웠다.

마쓰시마란 실연자와 도망치는 소년 등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지막 장면을 본 후 겨우 이 세계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었다.

2년차로 넘어가면 서로 다른 두 세계에 대한 이해가 조금씩 깊어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마이크로인들의 세계로 말이다.

개인적으로 재밌게 읽은 이야기는 현실의 이야기이지만 마이크로스파이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어쩌면 우리가 마주하는 세상의 불가사의 몇 개는 이런 식의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닐까?

도망치는 소년이 에이전트 하루토를 만나 경험하는 기이한 일들 말이다.


소설의 무대는 이나와시로 호수다.

에이전트 하루토 등이 적국과 대결하는 공간도 이 호수를 배경으로 한다.

현실의 사람들이 만나고, 이야기를 엮어가는 곳도 바로 이 호수다.

신입사원이 된 마쓰시마가 큰 말 실수를 한 후 그 여성에게 사과하는 공간이다.

과장과 3년 동안 불륜 관계였던 여선배와 함께 일로 와서 연인이 된 곳이 이곳이다.

둘이 사귄 후 이 호숫가에서 이상한 문을 본다.

금방 사라진 그 문에서 나온 두 사람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에이전트 하루토 등이 현실 세계로 와서 경험하는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을 잘 보여준다.

늘 적국과 긴장하면서 살아야했던 두 사람이 평화로운 일상을 누리는 불편함이 눈길을 끈다.


이 소설 속에서 가장 매력적인 인물은 개인적으로 가도쿠라 과장이다.

별명이 굽신굽신 가도쿠라다.

온화하여 부하에게 화내지 않고, 거친 말투로 의욕을 북돋는 일도 없다.

아이디어가 풍부하지도 않고, 대화 기술이 좋은 것도 아니다.

이런 그가 과장의 직위까지 오른 이유로 사죄하는 일을 꺼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 회사의 상무가 저지른 실수를 사죄하기 위해 나타나는 경우도 있다.

단순히 이런 일로 그가 매력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가 보여준 놀라운 기부 행위와 담담한 대응 때문이다.

아픈 아이를 위해 1억엔을 기부하고, 전혀 이것을 티내지 않는다.

이 사실을 밝혀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의 가능성을 말한다.

의외의 반전을 아주 멋지게 보여주는 인물이다.


읽다보면 마이크로인들의 세계에서도 미국이란 나라가 나온다.

이 두 공간에서 공유하는 미국이란 나라는 서로 다른 나라인 걸까?

아니면 단순히 내가 잘못 읽은 것일까?

그리고 매년 다른 사람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그 인연은 그대로 유지한다.

7년째와 후일담에서 이 과거의 인연이 잠깐 등장해 잠시 과거로 돌아간다.

후일담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딱 맞은 이야기다.

여기에 후일담 속에 풀어놓은 마지막 장면은 읽고 난 후 팡! 하고 터졌다.

이런 오해와 헛다리가 있나!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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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없는 사진가
이용순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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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미국 시카고의 콜롬비아 칼리지와 뉴욕대학원에서 사진을 전공한 정통 포토그래퍼이다.

개인전도 적지 않은 횟수로 연 적이 있는 중견 작가다.

그는 개인적으로 알던 이의 부탁을 받고 심부름을 해주었다.

이것이 빌미가 되어 2년여의 수감생활을 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없다.

이 책은 그 수감생활 동안 느끼고 경험한 것을 카메라 대신 기록한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할 때 눈길을 끈 부분도 영상을 문자로 풀어냈다는 글이었다.

감옥에서 수감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려주는 글들을 가끔 읽었지만 이 책은 또 다른 느낌이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 대부분은 정치범들이었다.


교도 행정 시설이나 수감 생활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가끔 방송 등을 통해 그 공간을 살짝 엿볼 뿐이다.

미국의 경우는 아주 자극적으로 표현되고, 한국은 감성적으로 다루어진 적이 많다.

이런 기억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물론 저자가 수감된 시절과 지금은 또 다를 것이다.

분명한 수감 기간을 보지 못했는데 그가 본 방송이나 기록 등을 통해 유추는 가능하다.

그리고 이 기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수감생활을 했던 교도소들이다.

성동구치소와 천안교도소는 글을 통해 보면 다른 분위기다.

구치소와 교도소의 차이 이상인 것 같은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


많은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잘 몰랐던 사실 하나가 있다.

교도소 등에 나오는 TV 방송들이 우리가 보는 방송과 다르다는 것이다.

방송국에서 송출하는 영상이 아닌 가위질 된 영상을 교도소 등으로 송출한다.

최근에 바뀌었다고 하는데 어떤 식인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흔한 감옥 안에서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윷을 쌀밥으로 만든다고 할 때 그 놀라운 아이디어에 놀라고, 강도가 궁금해졌다.

하루 노역을 가서 받는 돈이 너무나도 적어 황제 노역의 일당이 동시에 떠올랐다.

자본주의는 감옥 안에서조차 부자와 빈자를 나눈다.


저자가 감옥 안에서 만나 사람들의 정확한 실명은 나오지 않는다.

어떤 인물에 대해 궁금하면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경우도 보인다. 찾고 싶지는 않았다.

징벌동 단골 이야기는 쉽게 납득할 수 없지만 현실은 어디나 다양하게 작용한다.

이제는 추억의 단어가 되어버린 펜팔, 높은 가격의 담배, 특별한 라면 등

‘담장 안의 지식’ 이야기는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게 한다.

별거 아닌 것이지만 목소리 높이면 이기는 줄 아는 사람들(나도 포함)이 기억났다.

닫히고 갇힌 공간 속에서 그들은 우물 안 개구리처럼 생각하고 움직인다.

항상 켜져 있는 형광등에 퇴화하는 눈, 그 눈을 개선하는 약을 파는 교도소.

저자의 묵직한 문장은 이 사실들을, 감정들을 조금씩 풀어낸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범죄 이력, 각각 다른 수감 기간.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고, 어떤 이의 면회는 거절하기도 한다.

밖에서는 먹지도 않을 음식이 특식으로 나오면 그들은 좋아한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그의 글솜씨는 글짓기 대회 수상으로 나타난다.

이때 받은 상품은 누구나 탐내는 물건이다. 저자는 특별히 탐내지 않는다.

그가 구치소와 교도소에 머문 동안 쓴 글은 이것보다 많을 것이다.

그 속에는 자신의 실수에 대한 단상, 원망, 아쉬움, 두려움 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솔직히 내가 더 궁금한 것은 이런 심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 어떻게 변하는지 보는 것이다.

하지만 사진가의 관찰로 잠깐 들여다본 감옥의 일상과 풍경도 흥미로운 대목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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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 씨, 오늘은 뭘 쓰세요?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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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첫 자전적 에세이다.

일기와 창작 노트가 결합한 느낌이다.

이 에세이는 시간 순으로 진행된다. 나중에 그의 나이를 보고 잠깐 놀란다.

첫 소설 <개미>가 출간되기 전까지 그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잘 드러난다.

정말 한국에서 대박 난 그 소설은 수많은 개작을 거친 결과다.

어떤 과정을 거쳐 그 소설이 나오게 되었는지 보여주는데 대단한 열정이다.

그리고 아직도 이 소설에 대해 칭찬하고 추천했던 친구의 모습이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그의 소설들을 모두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20대에 읽었던 소설 중 몇 권은 나의 취향과 너무 달랐다.

<개미>에서 느낀 재미가 천사 등으로 넘어가면서 사라진 것이다.

실제 그의 소설 중 일부는 프랑스에서 판매가 부진했다.

이 에세이에 한국에 대한 인용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엄청난 판매고 덕분이다.

그의 소설 중 최고 판매부수가 35만 부 정도인데 한국에서는 백만 부 넘은 소설들이 있다.

특히 단편집 <나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이런 단편집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대목도 상당히 재밌다.


병을 앓고 있는 한 소년이 어떻게 성공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는지 보여준다.

꾸준한 노력과 열정이 결합한 결과다. 물론 우연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우연도 그의 꾸준함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언론사에서 정규직 직전에 잘린 것이 전화위복으로 작용했다.

자신의 열정과 도전과 모험심은 그가 앞으로 새로운 작품을 구성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

마냥개미 이야기는 그의 도전 정신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잘 보여준다.

아주 위험한 행동이지만 열정과 호기심은 다른 사람이 제어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작가가 되기 전 그의 이런 수많은 경험은 작품 속에 다양하게 녹아든다.


한 권의 성공이 다음 이야기의 성공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성공을 더 이어가기 위해 그는 자신만의 글쓰기 루틴을 만든다.

수많은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이런 루틴으로 작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것이 일상 생활 속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자신이 만난 사람들을 필요에 의해 각색하고, 작품 속 등장인물로 집어넣는다.

흔히 말하는 소설가 친구를 두면 생기는 일들을 그도 그대로 진행했다.

그를 처음 영성의 세계로 인도한 친구 자크와 그의 스승 이야기는 아주 현실적이다.

그의 강렬한 경험과 기억과 달리 그 스승은 그 소년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가 궁금한 것은 그 스승보다 그 친구 자크인데 둘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는 두 번 결혼했고, 한 번 동거하는 중이다.

각각의 연인에게 아이 세 명을 얻었다.

그런데 이 아이들 나이 차가 상당히 많이 난다.

그 중 첫째는 얼마 전 재밌게 읽었던 소설의 작가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영매를 작품 속에 자주 다룬 것을 생각하면 왠지 우연이 아닌 것 같다.

그의 일상들이 소재가 되어 소설로 바뀌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작가들 이름이 나온다.

SF 소설의 거장들이다. 이 글을 보고 다시 그들의 소설을 읽고 싶어졌다.


작가는 각 장마다 타로 카드를 배치했다.

이 카드를 해석하고, 그 카드의 해석과 이야기를 연결한다.

보통 이런 카드는 그냥 간단하게 보고 지나가는데 그의 설명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차분하게 들여다본 그 카드는 그 단어와 더불어 머릿속에 조금씩 각인되었다.

그의 소설이 가장 흥행한 한국에 대한 애정은 그가 2년마다 방문한다는 글에서 잘 나타난다.

새로운 번역본 <꿀벌의 예언>이 얼마 전에 나왔는데 프랑스에서 21년에 출간된 소설이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보는 꿀벌이 얼마나 생태계에 중요한지 이제는 조금 안다.

이 소설에는 어떤 내용이 더 들어가 있을지 궁금하다. 살짝 내용에 대한 설명이 나오지만.

베르나르 베르베르를 좋아한다면 이 에세이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의 작품 세계를 한 번에 훑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도 이 책은 좋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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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 트리플 10
심너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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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 트리플 시리즈 10권이다.

SF 작가가 이 시리즈에 올라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3편의 SF 단편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에는 경장편 정도로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단편집이었다.


첫 단편 <대리자들>은 과학의 발달이 배우의 연기에 미치는 영향을 잘 보여준다.

순수한 인간의 몸으로 연기를 하는 시대가 끝났음을 알려준다.

현실의 AI가 이미 사진 같은 사람을 그려내는 시대가 되었기에 공감하는 바가 크다.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전직 아이 배우가 컴퓨터 그래픽에 이미지를 빌려주는 것에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이 연기할 필요도 없이 얼굴과 목소리와 몸매만 빌려주면 된다.

현지 로케도 사라지고, 낭비되는 필름도 없다. 가까운 미래의 현실이다.

여기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여친을 등장시켜 주인공의 혼란을 더 부각시킨다.

마지막 장면은 자신의 철학이 없는 사람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꿈만 꾸는 게 더 나았어요>은 표제작이자 흔한 방식의 SF소설이다.

반전처럼 꾸며진 마지막 상황까지 오는 과정은 한 편의 좋은 이야기다.

좋은 선배, 높은 급여, 쉬운 일, 하지만 다른 동료들의 낯선 모습들은 호기심을 자아낸다.

재밌는 이야기 중 하나는 아무리 좋은 보안 프로그램을 깔아 놓아도 운영하는 것은 사람이란 것이다.

특히 비밀번호 이야기를 할 때는 순간 뜨끔했다.

소설 속에 나오는 몇 광년이란 거리는 다른 여타의 SF소설처럼 낯선 거리다.


<문명의 사도>은 로마를 연상시키는 이름으로 꾸며져 있다.

인류가 우주로 나가고, 새로운 문명을 만난다.

인류를 위해 광산 행성, 농업 행성 등을 만들어내는데 주인공은 농업 행성의 집정관이 된다.

그가 웜홀을 통해 도착한 곳을 지구와 닮은 농업 행성으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여기서 만난 실피움은 그의 의도를 무너트린다.

실피움의 실체를 알게 된 이후 그와 제국의 황제 사이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이 황제는 인공지능인데 인간의 감성보다 논리가 우선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에세이 세 편의 글로 자기를 소개하기>는 작가 3년 차의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간단한 창작 노트라고 할 수도 있다.

그의 소설들은 언제나 가볍게,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당연히 이번 소설집도 그렇다.

장편은 아직인데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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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E - 이 시대를 대표하는 22명의 작가가 쓴 외로움에 관한 고백
줌파 라히리 외 21명 지음, 나탈리 이브 개럿 엮음, 정윤희 옮김 / 혜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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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다는 것은 지극히 사적인 시간이다.

이런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이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 자신도 늘 이런 시간으로 가득하다면 아마 견디기 힘들어 할 것이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이라면 ‘나 혼자’ 있는 시간은 아주 소중하고 의미 있다.

늦은 밤이나 아주 이른 새벽에 잠에서 깨어 잠깐 이런 순간을 즐긴다.

일상 여유보다는 시간을 짜낸 부분이라 이 즐거움은 곧 피곤함으로 돌아온다.

그럼에도 이 순간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오롯이 나만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홀로 오랜 시간을 보낼 때는 이 시간들이 너무나도 외롭고 힘들게 다가왔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이 책 속 22명의 작가들은 각자의 현재와 과거 속에서 이런 시간들을 찾아낸다.

읽다 보면 코로나 19 상황에서 벌어진 일들도 몇 편 나오는데 몇몇은 아주 놀랍다.

정부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빈집들은 하나씩 늘어난다.

이런 공포와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삶을 이어나간다.

어느 순간 이 공포의 시간을 잊은 듯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로만 가득했다면 코로나 19 에세이가 되었을 것이다.

실제 많은 이야기들은 각자의 인종과 성별과 과거와 현재의 순간들에 대한 기록이다.

당연히 공감할 부분도 많고, 밑줄 끝기하는 문장들도 계속 나온다.

물론 나의 삶과 너무 달라, 현실적 괴리 때문에 공감하지 못한 이야기들도 있다.


22명의 작가들 중에서 솔직히 이름을 알고 있는 작가는 줌파 라히리가 유일하다.

이름을 아는 유일한 작가이지만 단 한 권도 소설을 읽은 적은 없다. 사 놓기만 했다.

작품으로 넘어가면 이전에 읽었거나 집에 고이 모셔 둔 책들이 있다.

내 취향과 다른 작품을 쓰는 작가들이거나 번역이 되지 않은 작가들이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를 읽으면서 아주 재밌게 읽은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에이미 션의 <홀로 걷는 여자>는 대단히 재밌고 흥미로웠다.

멜리사 페보스의 <금욕 서약>은 돌아보니 왠지 단편 소설처럼 다가온다.


한 편 한 편 이야기하는 것은 쉽지 않고, 내 능력 밖이다.

읽다 보면 아시아계나 흑인 여성 등의 글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한국에 살다 보면 결코 느낄 수 없는 인종 차별 등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물론 성 차별의 문제로 넘어가면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그렇게 크게 와 닿지는 않는다.

여성과 외로움에 대한 글 중 일부는 그냥 넘어가기엔 너무 강한 인상을 준다.

외로움이 지닌 가장 억압적인 특징으로 “상상력을 제한하고, 삶은 결코 더 나아가지 않을 거라 속삭이며,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꿈꾸지 못하게 스스로를 얽매는 것.”이라고 말한다.

나의 기준으로 과연 외로움이 이런 작용을 했던가? 일부는 맞다.

작가의 상황이나 경험이 이런 글로 이어졌다는 부분은 안타깝다.


인종 차별에 대한 가장 무시무시한 현실적 표현도 나온다.

“미국에서 흑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건, 침대에서 자고 있다 살해를 당해도 그 이유를 당신한테서 찾으며 비난하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니까 말이다.”

인종 차별만 아니라 무수히 많은 사건에서 우린 이런 상황을 마주한다.

가해자보다 피해자를 먼저 탓하는 사람들 말이다. 물론 이것은 의도적인 일이다.

이런 차별 문제가 곳곳에 드러나지만 영화 같은 차별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도 있다.

이런 다양한 경험들이 이 한 권의 에세이 속에 담겨 있다. 멋진 일이다.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처럼 ‘여자 혼자 영화 보기’를 권하는 글도 있다.

영화관에서 혼자 영화 보는 여성을 많이 봤기에 나에겐 특별한 일이 아닌데 미국은 다른 모양이다.


여성 작가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백인이 아닌 인종도 적지 않다.

사실 이런 비율은 이 책이 의도한 바를 잘 보여준다.

여성과 비백인이 혼자 있게 되면서 경험한, 경험하는 일들은 백인 남성과는 다른 모습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 남성 작가들의 글에서는 여성과 비백인의 글과 다른 이야기가 많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나에게 백인 여부는 이야기 속에서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갑자기 인종을 고백할 때 앞에 나온 글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많은 작가의 에세이라 단숨에 읽기엔 쉽지 않지만 쉬엄쉬엄 읽는다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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