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집 아티스트 백희성의 환상적 생각 2
백희성 지음 / 레드우드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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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장르 구분을 보면 에세이로 되어 있다. 읽을 때 단 한 번도 이 책이 에세이로 다가오지 않았다. 분명히 소설로 읽었는데 도서 분류는 에세이다. 저자 소개를 보면 ‘팩트에 약간의 허구를 덧붙여 팩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팩션이면 소설로 분류되는데 왜 출판사는 에세이로 분류했을까? 그리고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던 집에 대한 묘사와 설명이 실재한다고 했을 때 정말 그곳에 가보고 싶었다.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감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이란 것을 이렇게 환상적으로 풀어낸 경우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한다. 주인공 루미에르는 부동산중개인에게 어려운 요청을 한다. 시떼 섬에서 5만 유로짜리 집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현재 시세 기준으로 말도 되지 않게 싼 가격이다. 그런데 갑자기 중개인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거의 기대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다. 약속된 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해서 본 집은 먼지가 뽀얗게 쌓였지만 아주 큰 집이다. 결코 자신이 요청한 금액에 살 수 있는 집이 아니다. 원래 주인인 피터 씨의 대리인이 와서 그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집이란 게 뭔가요?” 사실 이 책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을 그려내었다.

 

싼 가격에 집을 사려는 루미에르는 건축가다. 집을 산 후 자신의 손으로 집을 수리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시떼 섬의 저택은 아주 매력적인 집이다. 그런데 이 집주인이 팔기 전에 하나의 질문을 먼저 던지고, 그 다음에는 자신을 찾아와서 만나야한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스위스 왈쳐요양병원에 있다. 기차표와 여행경비가 그에게 오고, 그는 급하게 그곳을 향해 떠난다. 기차역에 내렸지만 그곳으로 가는 차는 없다. 운 좋게 그곳에 빵을 제공하는 차를 타고 가게 된다.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는 길을 따라 요양병원에 도착한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 그의 예상을 빗나가는 모습에 놀란다. 이제 이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저자는 왈쳐요양병원에서 머물면서 이 병원의 설계와 구조에 놀란다. 건축가인 그의 상상을 뛰어넘는 구조에 감탄한다. 바람의 길과 빛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모습은 시각, 촉각, 후각 모두를 즐기게 만들었다. 피터 씨의 건강이 좋지 않아 바로 만나지 못하고 기다리는 동안 그는 이 병원의 구조를 하나씩 조사하고 그 의미를 상상하고 때로는 느낀다. 그리고 다시 그에게 두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왜 4월 15일인가? 그리고 왜 당신이어야 하는가?” 병원의 진짜 이름은 ‘4월 15일의 비밀’이다. 이제 주인공은 이 수수께끼를 풀어야 한다. 단서는 바로 이 집들이다. 한 편의 미스터리 소설을 읽는 기분이 든다. 집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이 살벌하지 않지만 긴장감을 불어넣고 감동을 가져온다.

 

책을 읽은 후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집을 생각해본다. 아파트나 다세대주택이 적지 않다. 주택도 있다. 그런데 기억은 언제나 주택이 먼저다. 넓지도 좋지도 않았던 그 주택의 방 한 칸이 더 강한 인상을 남긴다. 아마도 그곳에 더 많은 추억과 사연이 깃들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단순히 집을 내가 사는 곳이 아닌 나와 나 이전과 이후에 살 사람이 머물다 가는 곳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흔적이 추억으로 남아 집을 풍요롭게 아름답게 만든다. 늘 새로운 것만 찾고 자산 가치로만 생각하는 우리의 셈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시각이다. 그래서 저자가 풀어내는 비밀 하나 하나가 찐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곳에 산 가족들의 영혼을 담은 집이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자산 가치 이상이 그곳에 담겨 있다. 

 

기술적으로 책 속에서 다양한 시도를 한다. 표지부터 그렇다. 편지를 단순히 색만 달리한 것이 아니라 명도로 달리해서 약간 불편해도 집중하게 만든다. 예전에 <마천루>를 읽고 건축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더 감상적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4월 15일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세심한 배려와 장치들은 건축의 가장 기본을 생각하게 만든다. 찍어내는 듯이 만들어지는 집들에 익숙하고, 살기 보다는 팔 것을 더 신경쓰는 요즘 이 책 속의 집은 잊고 있던 집 본연의 모습과 기능을 잘 보여준다. 멋진 이야기에, 멋진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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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은 얘기나 좀 하자고 말했다 그리고 신은
한스 라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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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이 신이라고 말하면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대부분은 미친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요즘 종교계의 부패와 부조리한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신이 현실에 재림해도 그를 부정하거나 죽일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소설은 바로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신의 존재와 그 의미를 묻고 있다. 그런데 이 과정을 무겁게 다루지 않고 빠르고 경쾌하게 풀어내었다. 가독성이 좋아 단숨에 읽을 수 있다.

 

심리 치료사 야콥은 이혼한 후 지리멸렬한 삶을 살고 있다. 그의 전부인 엘렌은 유산으로 억만장자가 되었다. 그가 살고 는 집이나 치료소도 아내의 지원이 없으면 유지될 수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전처가 그를 방문한다. 현재 남편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왔다. 둘이 이야기를 하는데 벨이 울린다. 문을 연다. 권투선수였던 전처의 남편이 그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정신을 잃는다. 병원으로 이송된다. 그리고 병원에서 야콥은 자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아벨 바우만을 만난다. 아벨은 야콥이 심리 치료사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치료를 의뢰한다. 100유로를 현금으로 주고 카페에서 상담을 하려고 한다. 그때 다친 코를 웨이트리스가 살짝 치고 간다. 다시 정신을 잃는다.

 

다시 정신을 차린 그를 맞이한 것은 엄마와 동생이다. 동생은 성공한 금융가고, 엄마는 늘 동생과 형을 비교한다. 돌아가신 아버지는 유명한 심리 치료사였다. 하지만 그의 삶은 결코 성공적이지 않다. 그가 바라는 것은 쉬는 것이다. 이때 아벨이 그를 독실로 옮겨준다. 의사인 척하고. 이 시도는 간호사에게 들키고 야콥은 아벨의 과거 이력을 듣게 된다. 그가 사칭한 이력은 다양하다. 의사, 비행사, 판사, 건축가 등 필요에 따라 바뀐다. 스스로를 신이라고 말하는 그가 보여준 것이 너무 사기꾼 같다. 그렇지만 야곱은 아벨의 심리 치료사란 것을 내세우고 이때부터 둘은 연결된다.

 

아벨이 자신을 신이라고 부를 때 야콥은 신이라면 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길 바란다. 하지만 아벨이 보여준 것은 트릭 같은 것들이다. 신혼부부의 미래를 예측하거나 야콥의 빈 커피를 채워주는 정도다. 마술사들이면 손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술이다. 하지만 야콥은 신의 고민을 들어준다. 그 고민은 바로 현대 종교가 지닌 문제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점점 사람들의 믿음이 사라지면서 신의 힘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신의 존재를 다르게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신이 없더라도 우리는 신을 만들어 냈을 것이다’란 볼테르처럼 말할 수도 있다.

 

신의 존재를 묻기 위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유명인의 잠언을 많이 인용하다. 그 중 하나가 아인슈타인의 ‘신은 주사위 놀음을 하지 않는다.’ 같은 말이다. 하지만 소설 속 아벨은 카지노에서 도박으로 돈을 번다. 앞에 인용된 볼테르의 말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왜 당신이 신이라면 이 세상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가 다른 생명을 구하기 위해 다른 직업을 사칭했던 과거를 말하면서 말이다. 그 답은 간단하다. 자신에게 그런 힘이 없다고. 전지전능한 신이 사라진 자리에 인간보다 조금 더 뛰어난 신이 자리 잡는다. 그가 보여준 몇 가지 행동은 그를 믿는 사람에게는 큰 이적이겠지만 그를 의심하는 사람에게는 과학적으로 분석이 가능한 일이다. 작가는 이런 사례를 몇 번씩 다루면서 신과 삶에 대해 묻는다.

 

독일에서 나왔기 때문일까? “자신의 존재를 입증하기 위해 수백만 명을 희생시키는 신이 과연 인간에게 필요할까?”라는 물음을 던진다. 야콥이 바라는 바를 보여주기 위해 요청한 이적에는 이런 희생이 생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나치의 아우슈비츠 학살을 겪은 유대인 등이 과연 신이 존재하는가? 하고 의문을 품었던 것과 연결된다. 야콥이 요청한 신의 증명이 희생이라면 그 희생이 그 존재의 부정으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역설이 동시에 펼쳐진다. 그리고 이 소설의 백미는 영화 <멋진 인생>의 설정을 빌린 야콥이 없었더라면 일어났을 평행우주의 한 삶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설정은 소설 속 사람들의 현재 삶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유머와 철학적 질문을 적절하게 던지면서 재미까지 잡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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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콜렉터 30
아르노 슈트로벨 지음, 전은경 옮김 / 북로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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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사체험을 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로 ‘관’을 사용한다는 것을 읽을 적이 있다. 관의 뚜껑이 닫히기 전에는 오히려 편안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지가 아닌 타인에 의해 그곳에 갇힌다면 어떨까? 아마도 엄청난 공포가 몰려올 것이다. 폐쇄공포가 몰고 오는 심리적인 타격과 살고자 하는 욕망이 만들어내는 발버둥이 극한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끔 밀폐된 공간에 갇힌 사람들의 손가락이 어떤 상태인지 보여줄 때 이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이 소설의 첫 부분은 바로 이런 경험을 하는 에바의 꿈으로 시작한다. 읽으면서 그 절박함과 공포가 나의 뇌리 속에 파고들어 끔찍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초반부를 읽었을 때 이 소설이 판타지 호러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에바의 꿈이 현실의 희생자들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스티븐 킹을 존경한다고 했기에 더욱 그랬다. 현실적으로 관에 갇힌 채 죽은 희생자들과 에바가 비슷한 상처를 가지고 있고, 관에 갇힌 꿈을 꾼다는 설정이 그런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게 만들었다. 가끔 이것과 비슷한 설정으로 초현실적인 상황을 다루는 소설들을 읽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더 읽으면서 작가가 초현실적인 능력을 배제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제 생각은 다른 비슷한 소설을 찾는 것으로 바뀌었고, 과연 이 악몽의 정체가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소설을 이끌고 나가는 경찰은 베른트다. 내가 느끼기로 그는 명탐정의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않고 있다. 이 말은 평범한 경찰이란 말이다. 사건에 대한 열정이 있고, 상황에 따라 분노할 줄 아는 인간적인 경찰이다. 그에게는 좋은 부하 경찰이 있다. 유타다. 이 둘이 콤비가 되어 희생자들과 주변 인물들과의 연관 관계를 파악하고, 이 사건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더럽고 추악하고 끔찍한 사실들을 하나씩 밝혀낸다. 이 과정에 독자는 그들 중 누군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범행을 저질렀고, 범인이 누군지 추측한다. 중간에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여자와 살인자인 듯한 남자의 독백은 이것을 더 혼란스럽게 만든다.

 

범인이 계속해서 말하는 단어가 있다. 바로 공포다. 그가 희생자들을 관에 넣고 죽이는 것은 이것과 관계가 있다. 이 살인이 에바의 꿈과 연결되고, 그녀의 몸에 끔찍한 상처가 생길 때마다 이 공포는 점점 더 그녀의 영혼을 잠식한다. 에바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아버지가 남겨 놓은 유산으로 좋은 회사의 대주주가 되었지만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겨 둔 상태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친구도 단 한 명뿐이다. 이렇게 된 사연이 나올 때 죽은 그녀의 남동생과 첫 번째 희생자인 그녀의 여동생이 그녀의 과거를 하나씩 밝혀주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바로 관에 갇힌 에바의 행동과 심리 묘사에 있다.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공포가 중심을 잡아주고 있다. 이 때문에 어느 순간 범인을 쉽게 추리하게 된다. 이와 비슷한 책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영화였나? 혹시하고 다른 반전을 기대했는데 예상한 결말로 이어졌다. 뒤로 가면서 이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를 더 많이 보여준다. 하지만 몰랐던 것 하나는 ‘왜?’ 였다. 아직 여기까지 나의 경험이나 추리가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현실적인 베른트를 비롯한 형사들의 모습은 초현실로 이어질 것 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돌리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지금 보는 독일의 모습 뒤에 어떤 끔직하고 섬뜩한 과거가 있었는지도 같이 보여준다. 이런 종류의 추리를 읽지 않은 독자라면 굉장히 신선하고 충격적으로 다가올 내용이지만 지금 나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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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남자
칼요한 발그렌 지음, 최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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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1983년 10월을 시간적 배경으로 사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이 연도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연도일까? 이 의문은 소설을 끝까지 읽은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 나라의 복지정책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지. 가끔 소설을 읽을 때면 이런 시간들이 나에게 큰 의미가 지닌 채 다가온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열다섯 살 소녀 넬라다. 그녀의 아빠는 마약 등을 팔다가 감옥에 들어갔고, 엄마는 복지수당으로 겨우 살고 있다. 엄마가 해야 할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넬라에게는 로베르트라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눈을 다쳐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실보다 그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 때문에 오해를 한다. 넬라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 바로 동생 로베르트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엄마에게 문제가 생겨 이 남매가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가는 것이다.

 

스웨덴 팔켄베리 외곽에 있는 자그만 동네 스콕스토르프에 그들은 살고 있다. 이 동네는 최신 영화가 상영되는데 6개월이 걸릴 정도로 시대에 뒤쳐져 있다. 바닷가 마을에서 시선을 끄는 산업은 밍크 공장이다.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밍크코트의 원료가 되는 그 밍크 말이다. 소설 중간에 이 공장의 모습이 잠시 나오는데 끔찍하다. 빠르게 읽지 않고 한 장면 한 장면 이미지를 만든다면 참혹한 공간이 펼쳐질 정도다. 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 공장이 일자리를 제공하는 좋은 곳이다. 이런 일자리를 거부하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최소한의 수당으로 살아야한다. 넬라의 아버지가 잠시 이곳에서 일 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넬라는 학교 문제아들이 고양이를 불태우는 장면을 봤다. 그냥 지나갔는데 그 무리의 짱인 예라르드가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한 일 때문에 학교에서 문제가 되자 넬라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너가 그 사실을 선생에게 고자질한 것이 아니냐 하고. 그리고 동생 로베르트를 데리고 산으로 간다. 그녀가 뒤쫓는다. 에라르드 일당은 약자인 로베르트를 괴롭히고 넬라를 희롱한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나의 내면에서 폭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잔혹한 행동이 감정 한 곳을 건드리면서 나도 폭력으로 그를 응징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제3자이자 모든 것을 본 독자의 단순한 감정 이입일 뿐이다. 현실에서 이 일을 당하는 넬라 남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결국 예라르드에게 돈을 주기로 하고 둘은 풀려난다. 하지만 그 돈은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남매가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도둑질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라르드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사람들이 그 힘에 굴복하면서 쩔쩔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실제 그는 누가 그를 배신했는지 알고 있다. 알지만 이것을 숨긴 채 자신의 힘을 발휘한다. 덫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 크고 강한 덫이 쪼여온다. 그가 보여준 폭력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고 잔혹하다. 16살이 되지 않아 법적 처분도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많은 소년 범죄 소설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는데 과연 현실의 스웨덴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녀가 고통 받는 현실 속에 비현실적인 존재가 나타난다. 바로 인어 남자다. 동화나 판타지에 등장하는 인어의 남자 버전이다. 토뮈의 형들이 바다에 어업을 나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인어 남자를 낚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괴물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것을 바다에 바로 버리거나 아니면 언론에 노출하여 유명해지는 것인데 이들은 몰래 이 존재를 숨긴다. 그러다 동생에게 들키고 나중에는 넬라에게까지 들킨다. 이 존재는 토뮈 형들에게 당한 폭력으로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인어 남자가 느끼는 아픔에 넬라는 공감한다. 이것이 그와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낯선 세계와 낯선 존재들의 폭력 아래 있던 그에게 감정을 공유하고 자신을 치료해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인어 남자가 등장했다고 현실의 참혹함이 단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교차한다. 현실의 넬라와 인어 남자에게 공감하는 넬라로. 아직 예라르드와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아빠가 온 뒤 생긴 문제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먹을 것이 집에 하나도 없는 날도 생긴다. 배고픔은 동생이 그렇게 싫어하는 학교에 오게 만든다. 예전에 방학이 싫다고 했던 한 초등학생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즐거운 방학이 누군가에는 배고픈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 곳곳에 우리보다 엄청난 복지 정책을 펼치는 스웨덴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것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읽는 내내 불쾌한 기분과 분노에 사로 잡혔다. 사이코패스 같은 예라르드의 존재와 자신들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행동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도. 나약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넬라의 강인한 생명력과 용기는 잠깐이나마 그것을 잊게 만든다. 비록 그녀가 의도한 대로 현실이 흘러가지 않지만 말이다. 가독성은 좋지만 불편한 현실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인어 남자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인어 남자는 누굴까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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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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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글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때에만 우리가 진리를 창조할 수 있다’고 한 말이다. 이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에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그 프레임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강신주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말을 뒤집으면서 그들의 사고가 얼마나 그 틀 속에 갇혀 있을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말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고,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프레임의 변화가 곧 ‘사회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 집단은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프레임을 짜서 활성화시킨다. 이 프레임이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프레임 중 하나가 ‘무상급식’이다. 공짜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국민에서 심어주는데 이 단어를 ‘공공급식’으로 바꾸면 의미가 뒤바뀐다. 우리의 언어인 ‘공공급식’이 되면 일반 대중들의 반감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이미 이 책이 10년 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야당의 무능과 공부 부족은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진보주의자인데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자 프레임의 중요성을 이미 10년 전 이 책의 초판에서 말했다. 이번 책은 10주년 전면개정판이다. 프레임이란 단어를 자주 들었던 것은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였다. 사실 이때는 방송을 들어도 잘 몰랐다. 어떤 의미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꾸 듣고, 관련 서적을 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 깨닫게 되었다. “프레임을 짜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 부분에서 야당은 여당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익에 비해 좌파의 전략적 사고의 부재는 늘 아쉬운 대목이다. 얼마 전 읽은 우석훈의 글에서 당직자에 대한 분석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던가. 전략적 사고 부재는 쟁점별 사고로 이어지고, 최소한의 변화로 다른 쟁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다. 늘 기존의 쟁점은 새롭고 더 큰 쟁점에 의해 너무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가. 이런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미 미국의 민주당이 공화당의 프레임에 어떻게 당했는지 예를 들어 보여줄 때 결코 남의 나라 사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양당을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님으로 나누었다. 엄격한 아버지는 당연히 보수주의자들이고, 자상한 부모님은 자유주의자들이다. 이 구분이 중요한 것은 ‘국가는 가정’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쪽으로 쏠린 사람들에게 이 개념이 흔들리지 않겠지만 이중개념주의자들에게는 어떤 프레임으로 상황들을 설명하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긴다. 실제 내용과 다른 용어로 프레임을 짜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도 하는데 제대로 된 반박도 프레임도 짜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빈번하다. 선거가 1%만 더 많으면 이기는 게임임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에 의존한다.’ 우린 이 기본적인 생각을 늘 잊고 있다. SKT나 KT의 인터넷기본망을 누가 깔아두었으며 공공자산을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무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들이 사용료로 내는 비용으로 과연 사회적 공공망을 개인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가능한지 되물으면 그 답이 금방 나온다. 이것은 수서발 KTX 민영화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이런 공공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금인데 자본가들은 세금 폭탄이니 세금 구제라는 프레임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집착하게 만드는 프레임 싸움에서 진보주의자들이 패배한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고 분노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보수주의자들이 싸울 때 그들의 분쟁이 분열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보주의자의 착각이다. 그들의 분쟁 지점은 도덕적 이론이 아닌 관심 영역이다. 큰 전략에서는 같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물론 진보 진영에서도 가능하다. 쟁점을 프레임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질문은 이 프레임의 핵심을 잘 드러내준다. “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은 단순히 말과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은 ‘개념’에 관한 문제다. 방송 연설을 비롯한 언론에서 만들어낸 인상적인 어구가 조금이라도 의미 전달 효과를 내려면, 먼저 사람들의 뇌에 개념이 자리 잡아야 한다.” 아직 나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현실에서 이 책은 내가 보수주의자들을 상대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한국 현실 정치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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