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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 미국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
조지 레이코프 지음, 유나영 옮김, 나익주 감수 / 와이즈베리 / 2015년 4월
평점 :
강신주의 글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 때에만 우리가 진리를 창조할 수 있다’고 한 말이다. 이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에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프레임에 갇힌 사람들은 진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고, 그 프레임 속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강신주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말을 뒤집으면서 그들의 사고가 얼마나 그 틀 속에 갇혀 있을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듯이 말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고, ‘정치에서 프레임은 사회 정책과 그 정책을 실행하기 위해 만드는 제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프레임의 변화가 곧 ‘사회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치 집단은 자신들의 주장에 맞는 프레임을 짜서 활성화시킨다. 이 프레임이 자주 활성화될수록 더 강해진다. 한국의 대표적인 프레임 중 하나가 ‘무상급식’이다. 공짜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국민에서 심어주는데 이 단어를 ‘공공급식’으로 바꾸면 의미가 뒤바뀐다. 우리의 언어인 ‘공공급식’이 되면 일반 대중들의 반감이 많이 사라질 것이다. 이미 이 책이 10년 전에 나왔다는 것을 감안하면 야당의 무능과 공부 부족은 아쉬울 따름이다.
이 책의 저자는 진보주의자인데 인지언어학의 창시자이자 프레임의 중요성을 이미 10년 전 이 책의 초판에서 말했다. 이번 책은 10주년 전면개정판이다. 프레임이란 단어를 자주 들었던 것은 <나는 꼼수다>라는 팟캐스트였다. 사실 이때는 방송을 들어도 잘 몰랐다. 어떤 의미인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자꾸 듣고, 관련 서적을 보면서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 깨닫게 되었다. “프레임을 짜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언어를 취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언어가 아닙니다. 본질은 바로 그 안에 있는 생각입니다. 언어는 그러한 생각을 실어나르고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 부분에서 야당은 여당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이번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새누리당의 반격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익에 비해 좌파의 전략적 사고의 부재는 늘 아쉬운 대목이다. 얼마 전 읽은 우석훈의 글에서 당직자에 대한 분석이 얼마나 크게 다가왔던가. 전략적 사고 부재는 쟁점별 사고로 이어지고, 최소한의 변화로 다른 쟁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지 않는다. 늘 기존의 쟁점은 새롭고 더 큰 쟁점에 의해 너무 쉽게 사라지지 않았던가. 이런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 생긴다. 이미 미국의 민주당이 공화당의 프레임에 어떻게 당했는지 예를 들어 보여줄 때 결코 남의 나라 사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미국의 양당을 엄격한 아버지와 자상한 부모님으로 나누었다. 엄격한 아버지는 당연히 보수주의자들이고, 자상한 부모님은 자유주의자들이다. 이 구분이 중요한 것은 ‘국가는 가정’이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쪽으로 쏠린 사람들에게 이 개념이 흔들리지 않겠지만 이중개념주의자들에게는 어떤 프레임으로 상황들을 설명하느냐에 따라 많은 변화가 생긴다. 실제 내용과 다른 용어로 프레임을 짜서 사람들을 현혹시키기도 하는데 제대로 된 반박도 프레임도 짜지 못하면서 그들에게 휘둘리는 상황이 빈번하다. 선거가 1%만 더 많으면 이기는 게임임을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사적인 것은 공적인 것에 의존한다.’ 우린 이 기본적인 생각을 늘 잊고 있다. SKT나 KT의 인터넷기본망을 누가 깔아두었으며 공공자산을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무상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말이다. 그들이 사용료로 내는 비용으로 과연 사회적 공공망을 개인적으로 설치하는 것이 가능한지 되물으면 그 답이 금방 나온다. 이것은 수서발 KTX 민영화에도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이런 공공재를 만들어내는 것이 세금인데 자본가들은 세금 폭탄이니 세금 구제라는 프레임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 집착하게 만드는 프레임 싸움에서 진보주의자들이 패배한 것이다. 아쉽고 안타깝고 분노하게 된다.
우리는 흔히 보수주의자들이 싸울 때 그들의 분쟁이 분열로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진보주의자의 착각이다. 그들의 분쟁 지점은 도덕적 이론이 아닌 관심 영역이다. 큰 전략에서는 같이 움직이고 있다. 이것이 물론 진보 진영에서도 가능하다. 쟁점을 프레임으로 재구성하기 위한 질문은 이 프레임의 핵심을 잘 드러내준다. “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은 단순히 말과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프레임을 다시 짜는 것은 ‘개념’에 관한 문제다. 방송 연설을 비롯한 언론에서 만들어낸 인상적인 어구가 조금이라도 의미 전달 효과를 내려면, 먼저 사람들의 뇌에 개념이 자리 잡아야 한다.” 아직 나 자신의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현실에서 이 책은 내가 보수주의자들을 상대할 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한국 현실 정치에서 답답함을 느끼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