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남자
칼요한 발그렌 지음, 최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왜 1983년 10월을 시간적 배경으로 사용했을까? 하는 것이다. 스웨덴에서 이 연도가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작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연도일까? 이 의문은 소설을 끝까지 읽은 후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한 나라의 복지정책과 관련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가가 있는 것인지. 가끔 소설을 읽을 때면 이런 시간들이 나에게 큰 의미가 지닌 채 다가온다.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열다섯 살 소녀 넬라다. 그녀의 아빠는 마약 등을 팔다가 감옥에 들어갔고, 엄마는 복지수당으로 겨우 살고 있다. 엄마가 해야 할 어떤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넬라에게는 로베르트라는 남동생이 한 명 있다. 눈을 다쳐 안경을 쓰지 않으면 앞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런 사실보다 그 아이가 보여주는 행동 때문에 오해를 한다. 넬라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인물이 바로 동생 로베르트다.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엄마에게 문제가 생겨 이 남매가 각각 다른 가정으로 입양되어 가는 것이다.

 

스웨덴 팔켄베리 외곽에 있는 자그만 동네 스콕스토르프에 그들은 살고 있다. 이 동네는 최신 영화가 상영되는데 6개월이 걸릴 정도로 시대에 뒤쳐져 있다. 바닷가 마을에서 시선을 끄는 산업은 밍크 공장이다.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밍크코트의 원료가 되는 그 밍크 말이다. 소설 중간에 이 공장의 모습이 잠시 나오는데 끔찍하다. 빠르게 읽지 않고 한 장면 한 장면 이미지를 만든다면 참혹한 공간이 펼쳐질 정도다. 하지만 그 마을 사람들에게는 이 공장이 일자리를 제공하는 좋은 곳이다. 이런 일자리를 거부하면 정부에서 제공하는 최소한의 수당으로 살아야한다. 넬라의 아버지가 잠시 이곳에서 일 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넬라는 학교 문제아들이 고양이를 불태우는 장면을 봤다. 그냥 지나갔는데 그 무리의 짱인 예라르드가 시간이 지난 후 자신이 한 일 때문에 학교에서 문제가 되자 넬라를 협박하기 시작한다. 너가 그 사실을 선생에게 고자질한 것이 아니냐 하고. 그리고 동생 로베르트를 데리고 산으로 간다. 그녀가 뒤쫓는다. 에라르드 일당은 약자인 로베르트를 괴롭히고 넬라를 희롱한다. 그 장면을 읽으면서 나의 내면에서 폭력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그의 잔혹한 행동이 감정 한 곳을 건드리면서 나도 폭력으로 그를 응징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은 제3자이자 모든 것을 본 독자의 단순한 감정 이입일 뿐이다. 현실에서 이 일을 당하는 넬라 남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다. 결국 예라르드에게 돈을 주기로 하고 둘은 풀려난다. 하지만 그 돈은 쉽게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 아니다.

 

궁지에 몰린 남매가 돈을 마련할 수 있는 방법은 도둑질 밖에 없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돈을 모으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라르드가 원하는 것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사람들이 그 힘에 굴복하면서 쩔쩔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실제 그는 누가 그를 배신했는지 알고 있다. 알지만 이것을 숨긴 채 자신의 힘을 발휘한다. 덫을 벗어나려고 하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더 크고 강한 덫이 쪼여온다. 그가 보여준 폭력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고 잔혹하다. 16살이 되지 않아 법적 처분도 빠르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법의 맹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많은 소년 범죄 소설에서 이 문제를 지적했는데 과연 현실의 스웨덴은 어떨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그녀가 고통 받는 현실 속에 비현실적인 존재가 나타난다. 바로 인어 남자다. 동화나 판타지에 등장하는 인어의 남자 버전이다. 토뮈의 형들이 바다에 어업을 나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 인어 남자를 낚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이것은 괴물이다. 쉽게 생각하면 이것을 바다에 바로 버리거나 아니면 언론에 노출하여 유명해지는 것인데 이들은 몰래 이 존재를 숨긴다. 그러다 동생에게 들키고 나중에는 넬라에게까지 들킨다. 이 존재는 토뮈 형들에게 당한 폭력으로 온몸에 상처투성이다. 인어 남자가 느끼는 아픔에 넬라는 공감한다. 이것이 그와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낯선 세계와 낯선 존재들의 폭력 아래 있던 그에게 감정을 공유하고 자신을 치료해주는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인어 남자가 등장했다고 현실의 참혹함이 단숨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때부터 이야기는 교차한다. 현실의 넬라와 인어 남자에게 공감하는 넬라로. 아직 예라르드와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고, 아빠가 온 뒤 생긴 문제로 힘든 하루하루를 보낼 뿐이다. 먹을 것이 집에 하나도 없는 날도 생긴다. 배고픔은 동생이 그렇게 싫어하는 학교에 오게 만든다. 예전에 방학이 싫다고 했던 한 초등학생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즐거운 방학이 누군가에는 배고픈 시간이 되기도 한다. 이 소설 곳곳에 우리보다 엄청난 복지 정책을 펼치는 스웨덴의 문제점들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것은 정책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읽는 내내 불쾌한 기분과 분노에 사로 잡혔다. 사이코패스 같은 예라르드의 존재와 자신들만 생각하는 어른들의 행동 때문이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도. 나약한 모습 뒤에 감추어진 넬라의 강인한 생명력과 용기는 잠깐이나마 그것을 잊게 만든다. 비록 그녀가 의도한 대로 현실이 흘러가지 않지만 말이다. 가독성은 좋지만 불편한 현실이 마음을 아리게 한다. 인어 남자를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인어 남자는 누굴까 잠시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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