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붉은 악몽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포레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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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코를 위해>란 작품의 속편 격이란 말이 있어 살짝 주저했다. 작가의 비극 시리즈 3부작 중 이미 <1의 비극>을 읽었고, 그때 이 시리즈의 연속성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했다. 그런데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틀린 것은 <요리코를 위해>의 영향력이 책 끝까지 미친다는 점이고, 맞는 것은 전작을 읽지 않았다 해도 이 소설의 재미를 누리는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두 사건이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전작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강한 자책감에 시달리던 린타로의 심리가 이어질 뿐이다.

 

하타나카 유리나를 증오하는 누군가의 편지가 먼저 나온다. 이 편지를 받은 누군가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협박을 당한다. 어둠 속의 배후자는 아이돌 가수 유리나가 연예계에서 추방되길 강하게 바란다. 십칠 년 전 그녀의 어머니가 한 일을 강조하면서. 사실 이 간단한 편지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유리나를 파멸시키려는 누군가와 십칠 년 전 어머니가 자신의 가족들을 살해한 사건의 숨겨진 비밀 등이 함축적으로 담긴 편지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설정이 스쳐지나간다.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의 파편들이다.

 

유리나는 신곡을 발표한 후 라디오도쿄의 <새터데이 나이트 키즈>란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한다. 방송은 잘 되었고, 그녀와 같이 방송한 DJ가 그녀의 잠재력을 높이면서 연기를 하면 잘 할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소속사의 뒷받침이 약한 것을 아쉬워한다. 매니저와 함께 돌아가려는데 방송사 직원이라며 한 남자가 다가온다. 매니저에게 기획사 대표가 전화가 왔다면서. 그리고 그 직원은 유리나에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놀란다. 창고로 사용하는 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칼을 꺼내 협박한다. 몸싸움이 일어난다. 어딘가 찔린 느낌이다. 정신을 잃는다. 머릿속으로 협박 편지가 지나간다.

 

유리나의 소속사인 마큐리기획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다. 그녀의 잠재력이나 능력에 비해 회사의 역량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소속사 대표 가사이의 열정과 눈은 정확하다. 이 날도 가사이의 이전 회사인 델타의 동료가 유리나와 함께 회사로 돌아오길 권유한다. 겉으로만 보면 좋은 스카우트 제의지만 속내는 다른 것이다. 델타의 혼다 부장이 가사이의 파멸을 바라고 있기에 때문이다. 가사이는 이것을 알고 있다. 이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니나는 영화계의 거장 모리야마 감독의 신작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형 기획사의 혼다 부장은 이미 내부 정보를 얻어 이것도 방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리나를 둘러싼 외적인 방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의 비극>과 달리 린타로의 출연이 많다. 유리나보다 먼저 등장하여 요리코 사건의 후유증으로 고뇌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의식은 엘러리 퀸의 소설 속 한 문장에 매달려 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밖에 다른 이가 없다.”란 퀸의 고뇌가 담긴 문장이다. 작가가 소위 말하는 퀸 매니아였던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소설 속에서 퀸의 작품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고뇌는 명탐정으로 불렸던 명성을 어느 순간 지나간 과거로 만들고, 본업인 요리코에 대한 소설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늦은 밤 아버지 노리즈키 경시를 찾는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바로 유리나다. 이전 게쓰쇼쿠소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것이다. 물론 린타로도 이 사건에 개입했고, 그녀를 알고 있다. 이제 반 년 동안 요리코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칩거하던 린타로가 다시 명탐정으로의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유리나가 노리즈키 경시에게 전화를 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창고에서 벌어진 격투와 그 직원이 말한 살인자의 딸이란 말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린타로를 만나 어떤 예감 때문에 라디오도쿄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칼에 찔린 남자가 있다. 유리나는 공포에 휩싸인다. 그녀가 찌른 것이 아닐까 하고.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린타로와 노리즈키 경시가 집에서 만나 그녀에게 이야기를 듣고, 입고 있던 옷을 챙겨 검사한다. 칼에 찔린 남자의 혈액이 맞다. 단순한 증거들이 범인으로 그녀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고 엇나가는 뭔가가 있다. 린타로가 다시 명탐정 모드로 조금씩 돌아간다.

 

유리나의 파멸을 바라는 편지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내적 외적 상황들이 빠르게 변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쌍둥이 오빠를 죽였다는 사실에 늘 심리적 억압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유리나였기에 창고의 격투는 그녀의 심리 깊은 곳을 건드리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노리즈키 부자가 명확하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그녀의 심리 상태는 불안하다. 그리고 가사이를 파멸시키려는 델타의 작업은 점점 치밀해지고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유리나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를 둘러싼 외적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 작업을 상당히 자세하게 다룬다. 방송과 아이돌 관계에 대한 글도 길게 실을 정도다. 재미있고 반가운 이름도 많이 보인다.

 

작가는 유리나가 느끼는 살인자의 피에 대한 공포와 린타로의 자책감을 연결시킨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과거에서 찾는다. 유리나는 십칠 년 전 사건에서, 린타로는 퀸의 글에서. 단지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명탐정 린타로의 회색 뇌세포를 자극하여 활성화시킨다. 하지만 단지 그는 논리의 파탄과 관계자들의 사실적인 설명으로 추리할 수밖에 없다. 그 추리가 현실화되는 것은 범인의 자백도 있지만 실제로는 경찰들의 탐문수사와 과학수사 등이다. 처음 예상한 전개와 다른 반전이 펼쳐지고, 깔끔하고 명확한 탐정의 모습보다 고민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더 많다. 지금의 린타로를 이해하기 위해 <요리코를 위해>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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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패밀리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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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비정규직의 삶이 그대로 보인다.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가족. 주변에 이런 사람이 거의 없지만 조금만 더 눈을 돌리면 생각보다 비정규직으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전에는 대학생에게 아르바이트가 용돈을 벌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지만 이제는 생존을 위한 수단으로 바뀌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양극화가 심화되고, 정년퇴직이 점점 빨라지면서 가족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나가야만 하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사회는 이것을 모두 개인의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예전에는 맞는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최근에는 거의 아니다. 사회 경제적인 환경이 노력만으로 생활하는 것을 더 힘들게 만들고 있다.

 

다섯 꼭지로 나누었는데 각 꼭지마다 화자가 바뀐다. 로민과 로라가 번갈아 가면서 화자로 등장한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인터넷이나 홈쇼핑으로 물건을 산 후 다시 반품하는 사람에 대한 것이다. 두 번째 화자인 로라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세일즈프로모션이란 사이트에 자신의 사용 후기를 올린 후 많은 사람들의 추천을 받고, 상품들을 받는 것이 그녀의 취미이자 부업이다. 그런데 정도가 심하다. 단순히 후기 작성을 한 후 반품시켜 버린다. 400건이 넘어가면서 그녀의 이런 일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 고객의 요구도, 소비자보호원의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상태까지 진행된 것이다. 이제 로라의 삶은 그녀가 올린 수많은 후기 영상이 인터넷 어딘가를 떠도는 것처럼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흘러간다.

 

첫 이야기에서 아내와 딸이 단순 변심 혹은 다른 목적을 채운 후 반품을 시킨 것처럼 아버지의 가구도 반품으로 인해 큰 홍역을 앓는다. 좋은 제품보다 이벤트성 판매에 밀려 제작된 책장이 반품된 것이다. 호두가구. 단단한 가구를 만들려는 아버지의 노력은 딸 같은 사람들의 반품으로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대조적인 이야기가 한 편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추락과 몰락은 이 가족을 고객에서 직원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자신들이 아무 생각 없이 누렸던 지위에 의해 자신들의 삶이, 자존심이 상처를 입는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삶이 이어지고, 바닥은 아직도 도달하지 못했다. 그래도 아직 아파트에 살고 있으니 다행이다. 비록 언제 이들의 집에 물이 끊기고, 쫓겨날지 알 수 없지만.

 

로민이 관찰자 역할을 한다면 로라는 이야기 속에 자신의 감정을 많이 표출한다. 파워블로거였던 시절 44사이즈의 몸매는 어느 순간 20킬로 이상 쪘고, 뚱보로 불린다. 자신도 알지만 삶의 힘겨움과 스트레스는 이전의 몸매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다. 시간 여유가 있고, 마음도 편해야 살을 빼지 하루하루 힘들게 알바를 하면서 살아야 하는 그녀에게 이런 것들은 어쩌면 사치일지 모른다. 엄마에게 부모 탓을 하면 엄마가 먼저 아빠를 만난 것을 한탄하니 싸움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가장은 사업이 실패했고, 엄마는 남들 다하는 마트 일도 정확하게 못해 쫓겨난다. 아들과 딸은 알바로 자신들의 생활비뿐만 아니라 아파트 관리비까지 벌어야 한다.

 

이 소설의 가장 씁쓸한 장면은 역시 마지막에 있다. 자신들이 뽑은 시장이 대기업 편에 서서 정치를 펼치고, 자신들의 생활터전이 점점 무너지는 상황에서 벌인 조그만 이벤트가 너무나도 무력하게 끝날 때다. 그리고 아버지가 큰 희망을 품고 다시 일어서려고 할 때 그 뒤에 감추어진 사실은 그들이 그렇게 미워하고 탓했던 그 기업의 테두리 안에서 벌어진 작은 해프닝일 뿐이라는 것이다. 마치 부처님 손바닥 위의 손오공처럼. 아들이 그것을 알지만 잠깐 동안의 행복을 깨트리지 않으려고 하는 부분에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의 씁쓸함을 그대로 느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그 자리, 아니 더 밀려날 뿐인 현실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오늘만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라는 로민의 바람이 내일이면 산산조각날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아리다. 어쩌면 이 모습이 나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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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초상 - 수난과 방랑이 그들을 인도할 것이다
함규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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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선택했을 때 기대한 것과 많이 다른 내용이다. 유대인에 대한 역사, 정치, 사회, 문화적 분석을 기대했는데 실제 내용은 20세기 각 분야에서 세계를 뒤흔든 21명의 유대인들의 삶과 업적을 간결하게 요약하고 있다. 책머리에서 우리가 가진 유대인에 대한 환상이나 왜곡된 시선을 잠시 말하기에 그런 내용이 아닐까하고 너무 쉽게 판단했던 것이다. 유대인식 교육과 유대인 모두가 천재라는 신화 등이 대표적이다. 한때 한국인들이 미국에서 수학을 잘하고, 사업에서 성공하는 것을 보고 세계에서 유대인 다음으로 똑똑한 민족이라는 말까지 있었다. 그런 미신과 신화 등을 산산조각 내는 글을 기대한 것인데 간접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바로 여기서 다룬 21명의 유대인들의 삶이다. 그들이 모두 유대인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면서 어디에서 시작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신화를 깨트린다. 하지만 이 속에는 저자도 말했듯이 20세기는 유대인의 세기라는 표현으로 다시 유대인에 대한 경외감을 살짝 드러낸다.

 

21명의 유대인 중 내가 잘 모르는 사람이 몇 명 있다. 한두 번 정도 다른 책에서 봤을 테지만 대중적인 인지도는 떨어지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과 업적을 읽고 있으면 왜 저자가 이 유대인을 이 목록에 넣고 설명하게 되었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몰랐지만 인상적이었던 인물은 칼 폴라니다. 그의 이론을 간략하게 소개한 글에서 신자유주의 문제점을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한 부분을 읽었기 때문이다. “국가는 그런 시장 지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호위병으로 호출되었다. 이런 체제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소외시키고, 사회를 붕괴시킨다.”(264쪽) 자본가들이 자신들의 부를 지키기 위해 국가와 법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또는 하고 있는지 요즘처럼 잘 보여주는 시절에 이 문장이 강하게 마음에 와 닿은 것이다.

 

저자는 21명의 유대인을 여덟 분야로 나눠 적게는 2명, 많게는 다섯 명씩 설명하고 있다. 혁명가들, 정신분석가들, 사상가들, 과학자들, 정치학자들, 경제·경영학자들, 예술가들, 현대의 예언자들 등이다. 첫 장인 저항의 초상에 들려준 트로츠키의 삶과 철학은 이제까지 알고 있던 것을 넘어선 것이자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러시아 혁명의 실체를 조금은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주었다. 옘마 골드만은 20세기 초 사회에서 한 유대여성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녀의 통찰력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잘 보여준다. 이렇게 기존에 알고 있던 위인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전해주었고, 예전에 몰랐던 인물들은 나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었다. 덕분에 공부할 것이 더 늘어났다.

 

한 인물을 이렇게 짧은 글 속에서 제대로 평가한다는 것은 사실 무리다. 상대적인 균형감을 가지고 반론도 같이 다룬다고 하지만 서술에서 한 시각이 뼈대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인물의 철학과 업적을 요약하고, 그가 왜 그런 삶을 살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것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 하지만 이런 작업이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을 때는 조금 달라진다. 바로 여기서 이 책의 기획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다. 20세기와 유대인이라는 공통점 속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신화가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물론 이것을 좀더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공통점을 수난과 방황이란 부분에 초점을 두고 풀어낸다. 더불어 각 분야에서 엄청난 성공을 한 유대인들을 뽑아냄으로써 20세기는 유대인의 세기라는 부분을 좀더 강하게 부각시킨다.

 

20세기는 기존의 시대와 분명히 다른 세기다.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로운 경제체제가 실험되어지고, 과학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한 시대가 바로 20세기다. 이 속에서 유대인들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통계적으로 분석한 자료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실 이것이 분석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이 인물들은 유대인에 대한 강한 환상을 심어주기 충분한 업적을 쌓았다. 교묘하게 왜곡된 정보를, 혹은 생략된 정보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환상을 쌓기에 충분하다. 단순 나열과 연결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그래서 저자는 한 인물을 설명할 때 그(녀)가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 꼭 설명하고 지나간다. 유대인의 정체성도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과 업적을 잘 요약해서 상식을 쌓기 좋게 만든다. 더 공부하려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도전과제를 던져준다. 기대와 다르지만 다른 내용으로 나를 만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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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오다 마사쿠니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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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제목이다. 책에도 성별이 있다니 말이다. 수컷과 암컷이 있으니 당연히 새끼도 친다. 이때 태어난 책들이 바로 환서다. 혹은 그것이라 불린다. 이 소설은 바로 이 환서를 바탕으로 한 애서가의 삶을 환상적으로 그려내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문장이 상당히 고답적이고 파편적이라 조금 어렵다. 적응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 적응하면 이 황당하고 몽상적인 이야기를 조금씩 즐기게 된다. 이야기 구조도 시간의 흐름을 따르거나 인물 위주가 아니라 조금만 방심하면 엉뚱한 생각으로 이어진다.

 

도이 히로시가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외조부 후카이 요지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이다. 처음에는 이 도입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뭐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엄청난 서책 수집가였다는 사실이 먼저 눈길을 끌었는데 읽다 보니 그 엄청난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어 새끼를 친다고 했을 때 이 소설의 장르가 뭘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힘들게 한 것은 문장이다.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쉼표를 남발하고, 이름을 끊어서 표현하고, 작품 이름을 패러디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하여 강한 집중력을 요구했다. 이 문턱에서 좌절하면 이 요상한 책의 재미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된다.

 

이 소설을 끌고 나가는 인물은 후카이 요지로다. 그리고 그의 아내 미키와 동창생 샷쿠리다. 샷쿠리는 멈추지 않는 딸꾹질로 인해 생긴 별명이다. 본명은 가메야마 긴고지만 미키를 처음 만난 날부터 거의 백세에 달할 때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미키의 저주라고도 하지만 이 딸꾹질의 좋은 점도 발견하는데 이것도 하나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다. 이 소설의 장점 중 하나가 소소하지만 재밌는 에피소드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가끔 나오는 언어유희는 사실 일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 재미를 잘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반면에 애서가의 모습을 보여줄 때는 나도 모르게 공감대가 형성된다. “책이란 말이지, 읽으면 읽을수록 모르는 게 늘어나는 거야.”라고 할 때 경험적으로 고개를 자동적으로 끄덕였다.

 

요지로의 일생을 자신의 자식에게 들려주는 방식이지만 그 속에는 말하는 화자의 삶도 잠시 나온다. 하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요지로다. 그가 어떻게 아내 미키를 만났는지, 2차 대전 당시 군에 끌려갔다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들려줄 때 나의 상상력은 다른 곳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특히 2차 대전 당시 일본군의 모습을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는데 개인의 환상적 체험으로 끝나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지만 이곳에서 요지로가 경험한 것은 이 책의 뼈대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다. 환서들을 비롯해 전 세계 책들이 날아가서 모이는 라디나헤라 환상 도서관과 사람이 죽은 후 한 권의 책으로 변해 날아간다는 설정은 아주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공식 집계 22만권을 모은 요지로가 과연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을까 하는 의문이 살짝 들었다. 내 경우 쌓아두고 읽지 못한 책이 더 많기 때문이다. 단순히 읽기만 하고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책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이런 장서가 이야기가 나오면 그냥 눈길이 간다. 여기에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능청스럽게 풀어낼 때는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 있지 하고. 나의 바람과 부러움이 곁들여 생긴 부작용이다. 만약 이 소설처럼 책과 책의 방사를 통해 새로운 책이 태어난다면 현재 집에서 그 책을 보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요지로처럼 400평의 거대한 공간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있으면 가능할까? 아마도 마눌님의 눈총에......

 

후카이의 비밀이 드러나는 것도 사실은 바로 환서에 의해서다. 그는 매년 일기를 썼는데 이 기록이 단절된 적 있다. 바로 군 징집 당시다. 이때의 일기가 환서로 태어난 것이다. 환상 도서관이나 하늘을 나는 날개가 달린 다리 여섯의 코끼리가 등장하는 것도 여기다. 물론 소설 속 현실에서 미키가 죽을 때 한 번 더 이런 환상적인 일이 벌어진다.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보는 앞에서 말이다. 사실 미키는 요지로 생전에는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뇌졸중 후 갑자기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요지로가 남긴 유서의 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는 순간이다.

 

책을 읽으면서 먼저 연상된 작가가 있다. 모리미 도미히코다. 그의 소설을 읽을 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복잡한 듯한 이야기를 하나씩 읽으면서 그 재미에 빠졌듯이 이번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애서가에 대한 환상을 기상천외하게 다루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이 책 자체가 하나의 기서다. 환서까지는 아니겠지만 기이한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그리고 읽으면서 꾸준히 느낀 것이지만 이 책 번역 참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와 쉼표를 어떤 식으로 표현할 것인지 하는 것과 엄청나게 많은 주석을 어떻게 나타낼 것인가 하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역자가 주석본을 쓰라면 쓸 수 있을 정도란다. 주석이 더 많았다면 아마도 훨씬 힘들게 읽었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편집자와 역자의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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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로 보고 눈으로 듣는 영화 이야기 딴지영진공 - 촌철살인한 영화.시사 코드와 전문 OST 분석
차양현 외 지음, 서용남 그림 / 성안북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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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관련 책을 보는 것이 참 오랜만이다. 한때는 영화가 좋아서 명작, 걸작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어떻게든 구해서 보려고 한 적도 있다. 일본 영화 수입이 되지 않을 때는 복사한 저화질의 영화를 구해서 열심히 본 적도 있다. 그러다 인터넷으로 쉽게 영화를 다운받을 수 있게 되면서 컴퓨터의 하드와 CD는 영화로 가득 찼다. 이 많은 영화들 중 실제로 본 것은 얼마 없다. 양이 너무 많아지고, 쉽게 구해지고, 다른 분야로 관심이 옮겨가면서 이제 영화는 아주 가끔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하면 주말에 조조영화를 홀로 보러가던 그 정성과 열정이 정말 대단했다. 백수였을 때는 하루에 극장에서 영화 2편 이상 본 적도 많았다. 이제 이 모든 것은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은 있다. 바로 영화에 대한 관심과 기억들이다.

 

이 책의 목록을 보면서 보지 않은 영화가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다. 예전 같으면 몇 편만 있어도 당장 구해서 봤을 텐데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들이 말한 것을 주변 친구들에게 열변을 토했을 것이다. 아는 척하느라고. 그런데 이제는 그 열정이 조금 사그라들었다. 본 영화도 적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약간의 호기심과 시간나면 봐야지 하는 정도의 열정만 살짝 생겼다. 실제 이 열정이 한두 편의 영화를 보게 만들기는 했다. 이전에 보다가 잠든 영화를 다시 봐야 하는데 쉽게 손이 가지 않는다. 2시간을 진득하게 앉아서 볼 마음의 여유가 많이 사라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도 바로 나의 조금씩 사라져가는 영화 보기에 대한 열정이다.

 

팟캐스트 내용을 책으로 낸 것이다. 한 번도 들은 적은 없는 팟캐스트다. 저자들도 낯설다. 뭐 몇 년 동안 영화관련 잡지도 책도 본 적이 없으니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실제 들은 적이 없는 방송이다 보니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 가는지 모르겠다. 아마 조만간 시간이 나면 이 방송을 다운 받아서 듣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에서 저자들이 보여준 시각과 이야기들이 상당히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보지 않은 영화는 보고 싶어졌고, 본 영화는 아련한 기억을 되살려주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방송을 듣는다는 것은 그만큼 매력이 있다는 말이다. 실제 이 책에서 보여준 분석과 해석과 지식들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영화 DNA를 일깨워 줄 정도였다. 특히 영화음악에 대한 부분은 이전에 잘 생각하지 못했고, 자주 다루어진 부분이 아니라서 더 신선하고 재미있게 다가왔다.

 

총 여덟 편으로 나누었다. 각 편은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고, 그 주제에 맞는 영화들을 묶고 분류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낸다. 슈퍼히어로, 거장, SF, 애니메이션, 방화, 로코, 호로, 번외 편 등이다. 이중에서 가장 재밌게 읽은 것은 거장 편이다. 반어법을 통해 세계적인 거장들을 낱낱이 파헤치고 비틀고 쿡쿡 찌르는 내용이 아주 재미있었다. 언론 플레이를 통해 자금을 모으고, 애국심에 호소하여 관객을 끌어모으려는 거장들의 놀라운 마케팅 전략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감탄사가 절로 터져나오게 만들었다. 최근 거장 한 분은 아내와 소송이 붙었고, 다른 한 분은 새롭게 방송에 나와 추억 팔기를 하고 있다. 이전에 이 두 거장의 코미디를 좋아했던 한 명의 팬으로써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 즐겨보는 장르는 역시 슈퍼히어로와 SF와 애니메이션 등이다. 이 책에서 다루는 최근 몇 편 중 일부는 보지 않았지만 대부분은 본 영화다. 재미있게 본 것도 있고, 뭐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 영화들이다. 이 영화들의 기억이 약간 희미한 부분이 있는데 이렇게 신랄하게 비판을 가해주니 갑자기 반감으로 인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괜히 보고 싶어진다. SF의 경우는 최근에 본 영화보다 보지 않은 영화를 더 많이 다루어 옛 영화의 기억을 더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서 특히 <혹성탈출>의 그 장면은 지금도 그 충격이 기억 속에 아련하게 남아 있다. 애니메이션에서 예전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봤을 미야자키 하야오의 최신작을 보지 않았다는 부분에서 살짝 놀란다. 그에 대한 저자의 변명을 읽고 그 영화가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방화는 생각보다 많이 보았고, 로코는 이전 작품들은 거의 본 것 같다. 호로 쪽으로 가면 걸작 이상만 봤는데 어느 순간 재밌게 보다가 다시 그 장르에서 눈길을 뗐다. 음악과 심장이 너무 싱크를 맞춰 보는 것이 불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피가 튀고, 잘린 팔다리와 목 등이 날아다니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믹서기에 갈리는 것은 더욱더. 오히려 아내와 같이 로코를 보면서 왜 프로포즈를 하지 않았나 하는 원망을 듣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하다. 이 마음이 언제 다시 바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그리고 영화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현실과 과거를 엮어서 풀어냈을 때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영화배우나 다른 관련된 분야나 감독 등에 대한 수많은 에피소드와 가십이 많았던 것도 역시 재미있었다. 빈말이 섞여 있지만 언젠가 이 책에 나온 분류에 따라 보지 않은 영화 몇 편을 본 후 책 내용과 비교하는 즐거움도 누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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