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붉은 악몽 노리즈키 린타로 탐정 시리즈
노리즈키 린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포레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요리코를 위해>란 작품의 속편 격이란 말이 있어 살짝 주저했다. 작가의 비극 시리즈 3부작 중 이미 <1의 비극>을 읽었고, 그때 이 시리즈의 연속성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했다. 그런데 이것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틀린 것은 <요리코를 위해>의 영향력이 책 끝까지 미친다는 점이고, 맞는 것은 전작을 읽지 않았다 해도 이 소설의 재미를 누리는데 전혀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 두 사건이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전작에서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강한 자책감에 시달리던 린타로의 심리가 이어질 뿐이다.

 

하타나카 유리나를 증오하는 누군가의 편지가 먼저 나온다. 이 편지를 받은 누군가는 어떤 잘못을 저질렀고, 이 때문에 협박을 당한다. 어둠 속의 배후자는 아이돌 가수 유리나가 연예계에서 추방되길 강하게 바란다. 십칠 년 전 그녀의 어머니가 한 일을 강조하면서. 사실 이 간단한 편지가 이 소설의 핵심이다. 유리나를 파멸시키려는 누군가와 십칠 년 전 어머니가 자신의 가족들을 살해한 사건의 숨겨진 비밀 등이 함축적으로 담긴 편지이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 몇 가지 설정이 스쳐지나간다. 이전에 읽었던 작품들의 파편들이다.

 

유리나는 신곡을 발표한 후 라디오도쿄의 <새터데이 나이트 키즈>란 라디오 생방송에 출연한다. 방송은 잘 되었고, 그녀와 같이 방송한 DJ가 그녀의 잠재력을 높이면서 연기를 하면 잘 할 것이라고 말한다. 동시에 소속사의 뒷받침이 약한 것을 아쉬워한다. 매니저와 함께 돌아가려는데 방송사 직원이라며 한 남자가 다가온다. 매니저에게 기획사 대표가 전화가 왔다면서. 그리고 그 직원은 유리나에게 그녀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한다. 놀란다. 창고로 사용하는 방으로 끌고 들어간다. 칼을 꺼내 협박한다. 몸싸움이 일어난다. 어딘가 찔린 느낌이다. 정신을 잃는다. 머릿속으로 협박 편지가 지나간다.

 

유리나의 소속사인 마큐리기획은 대형 기획사가 아니다. 그녀의 잠재력이나 능력에 비해 회사의 역량이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소속사 대표 가사이의 열정과 눈은 정확하다. 이 날도 가사이의 이전 회사인 델타의 동료가 유리나와 함께 회사로 돌아오길 권유한다. 겉으로만 보면 좋은 스카우트 제의지만 속내는 다른 것이다. 델타의 혼다 부장이 가사이의 파멸을 바라고 있기에 때문이다. 가사이는 이것을 알고 있다. 이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니나는 영화계의 거장 모리야마 감독의 신작 영화의 여주인공으로 발탁되어 성공 가능성이 매우 높다. 대형 기획사의 혼다 부장은 이미 내부 정보를 얻어 이것도 방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유리나를 둘러싼 외적인 방해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1의 비극>과 달리 린타로의 출연이 많다. 유리나보다 먼저 등장하여 요리코 사건의 후유증으로 고뇌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의식은 엘러리 퀸의 소설 속 한 문장에 매달려 있다. “하느님은 한 분이시며 그밖에 다른 이가 없다.”란 퀸의 고뇌가 담긴 문장이다. 작가가 소위 말하는 퀸 매니아였던 것을 감안한다고 해도 이 소설 속에서 퀸의 작품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이 고뇌는 명탐정으로 불렸던 명성을 어느 순간 지나간 과거로 만들고, 본업인 요리코에 대한 소설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늦은 밤 아버지 노리즈키 경시를 찾는 한 통의 전화가 온다. 바로 유리나다. 이전 게쓰쇼쿠소 사건으로 인연을 맺은 것이다. 물론 린타로도 이 사건에 개입했고, 그녀를 알고 있다. 이제 반 년 동안 요리코 사건으로 충격을 받아 칩거하던 린타로가 다시 명탐정으로의 발걸음을 옮기게 된다.

 

유리나가 노리즈키 경시에게 전화를 한 것은 자신이 누군가를 죽였을 것 같다는 느낌 때문이다. 창고에서 벌어진 격투와 그 직원이 말한 살인자의 딸이란 말이 그녀를 뒤흔들었다. 린타로를 만나 어떤 예감 때문에 라디오도쿄로 돌아간다. 그런데 그곳에서 칼에 찔린 남자가 있다. 유리나는 공포에 휩싸인다. 그녀가 찌른 것이 아닐까 하고.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린타로와 노리즈키 경시가 집에서 만나 그녀에게 이야기를 듣고, 입고 있던 옷을 챙겨 검사한다. 칼에 찔린 남자의 혈액이 맞다. 단순한 증거들이 범인으로 그녀를 가리키고 있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고 엇나가는 뭔가가 있다. 린타로가 다시 명탐정 모드로 조금씩 돌아간다.

 

유리나의 파멸을 바라는 편지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는 상태에서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내적 외적 상황들이 빠르게 변한다. 자신의 어머니가 아버지와 쌍둥이 오빠를 죽였다는 사실에 늘 심리적 억압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던 유리나였기에 창고의 격투는 그녀의 심리 깊은 곳을 건드리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 노리즈키 부자가 명확하게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이기에 그녀의 심리 상태는 불안하다. 그리고 가사이를 파멸시키려는 델타의 작업은 점점 치밀해지고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유리나가 사라진 것이다. 그녀를 둘러싼 외적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한다. 작가는 이 작업을 상당히 자세하게 다룬다. 방송과 아이돌 관계에 대한 글도 길게 실을 정도다. 재미있고 반가운 이름도 많이 보인다.

 

작가는 유리나가 느끼는 살인자의 피에 대한 공포와 린타로의 자책감을 연결시킨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열쇠를 과거에서 찾는다. 유리나는 십칠 년 전 사건에서, 린타로는 퀸의 글에서. 단지 누군가가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연쇄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이 명탐정 린타로의 회색 뇌세포를 자극하여 활성화시킨다. 하지만 단지 그는 논리의 파탄과 관계자들의 사실적인 설명으로 추리할 수밖에 없다. 그 추리가 현실화되는 것은 범인의 자백도 있지만 실제로는 경찰들의 탐문수사와 과학수사 등이다. 처음 예상한 전개와 다른 반전이 펼쳐지고, 깔끔하고 명확한 탐정의 모습보다 고민하고 고뇌하는 모습이 더 많다. 지금의 린타로를 이해하기 위해 <요리코를 위해>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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