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늘
임재희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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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에 대한 이야기다. 글을 쓴다는 단순한 일에 한정한다면 기자나 블로거들도 해당되겠지만 이 소설에서 다루는 것은 소위 말하는 등단작가에 한정해서 말한다. 신춘문예나 문예잡지에 소설가로 등단하기 위한 작가 지망생들의 이야기도 같이 다루어진다. 한 명의 독자로써 요즘 솔직히 등단 작가에 대한 관심이 없다. 이 부분만 놓고 보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물론 문단 내에서는 다를 것이다. 가끔 다른 작가의 글에서 이런 것을 두고 말이 오가는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소위 대우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굉장히 유명해진 김연수 작가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거나 번역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그 이전에 수많은 소설가와 시인들이 글만으로 먹고 산 적이 거의 없었던 사실에서도 여실히 증명된다. 잡지나 사보 등의 청탁이 없다면 알바라도 해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소설가가 되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더 힘든 일이다. 여기에 잘 팔리는 책을 써야 출판사에서 자주 의뢰를 한다. 단순히 대중의 기호에 영합한다고 잘 팔리는 것도 아니다. 어렵게 등단해 소설가가 된 재경이 영조의 결별 소식에 고민하고 여행을 떠난 것도 이 일의 연장선이다.

 

소설의 앞부분은 한 권의 소설이 어떻게 중고시장에서 취급되는지 잘 보여준다. 현실 그대로다. 2~3천 권의 중고책 가격은 불과 몇 백만 원이다. 물론 시간을 두고 한 권씩 팔고, 희귀본을 제대로 평가받는다면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큰 돈이 되지 않을 것이다. 어렵게 소설가가 되었지만 책은 잘 팔리지 않고, 연인은 결별을 선언한 상태에서 기억은 과거로 돌아간다. 소설가가 되고자 했던 열정의 시간들과 노력들. 그리고 뛰어난 한 명의 작가 선배, 한동수. 이 책의 제목도 그의 소설 제목에서 비롯되었다. 책을 팔고 손에 쥔 돈으로 한동수가 있는 하와이로 떠난다. 진짜 이야기는 바로 이곳에서 시작한다.

 

많은 작가들이 소설가라는 직업에 대해 썼다. 소설가의 소명에 대해 주절주절 널어놓은 작가도 있고, 비루한 현실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야만 했던 이야기도 있다. 이런 소설가들의 이야기는 새롭지 않다. 아니 진부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진부한 것을 읽는 이유가 무엇인지. 단순히 재미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속에서 우리 삶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일까? 아니면 이 작품 속 몇 명처럼 변주를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었기 때문일까? 현실에 압도되어 소설을 버린 소설가를 만난 소설가의 이야기로만 읽기에는 한동수가 보여주는 삶이 너무 아이러니하다. 밥벌이의 어려움 혹은 지겨움이랄까.

 

재경이 하와이에서 만난 노숙자 피터의 모습은 강박의 새로운 모습이다. 표절에 대한 걱정에 자신의 몸에 문신을 새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한국 문단에 있었던 표절 시비가 떠올랐다. 그리고 재경이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소설가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때 그 낯선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한동수뿐만 아니라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몇 명의 소설가가 자신의 과거를 소설로 녹여내었다. 하지만 과연 몇 명이나 그 극단까지 갔을까? 동수가 친구의 사연을 소설로 표현했을 때 주변 문인들은 욕을 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동수의 답변은 그것이 아니다였지만 진실은 그만 안다. 이것만 놓고 보면 정말 힘든 직업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속에 쌓인 온갖 감정, 기억, 추억 등을 글로 풀어내야 하는 직업이 소설가다. 물론 상상력으로 이것을 표현하는 분야도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소설가는 이런 직업이다. 앞에서 말한 끝까지 간다는 말은 어디까지 자신의 감정과 속내를 있는 그대로 파고들어 표현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구성과 문장도 좋아야 한다. 이것이 기본이다. 또 팔려야 한다. 팔리지 않는 작가의 작품을 어느 출판사에서 내주겠는가. 대형 출판사라면 독자의 관심이라도 끌겠지만 작은 출판사는 작가가 말했듯이 시선조차 끌지 못한다. 진부할 것 같은 소설가에 대한 소설이지만 현실과 잘 연결해서 풀어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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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당의 표정
정민 엮고 지음 / 열림원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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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에 초판이 나온 후 절판되었다가 이번에 개정판으로 나온 책이다. 최근에 절판된 책들이 한두 권씩 다시 나오고 있다. 절판으로 그 책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소식이겠지만 저자의 새로운 책을 기대한 독자에게는 조금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나의 경우는 후자다. 솔직히 말해 이 책을 선택했을 때 저자를 봤지 내용은 잘 보지 않았다. 인터넷서점으로 책 정보를 얻게 되면서 생긴 문제 중 하나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책 구성이 나의 예상과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와당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단순히 서점 탓만 하기에 문제가 있는 것도 책 소개를 제대로 읽지 않은 나의 잘못이다.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분야를 알게 되었다.

 

와당은 우리말로는 수막새고, 수키와의 끝을 막음하는 장식이다. 기와라는 단어를 많이 듣고 사용했지 수막새나 와당이란 단어를 들은 기억은 없다. 어딘가에서 들은 적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분명히 기억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와당은 자주 봤다. 기와가 있는 곳이라면 늘 이 와당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와의 끝을 막고 있으니 멀리서 봐야 한다. 아니면 수리를 위해 내려놓은 것들을 봐야 하는데 이런 것에 눈길이 오래 머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저자도 말했듯이 삼국시대 이래 참으로 아름다운 와당 예술을 꽃 피웠지만 다양성에서 아쉬움이 있다. 그래서 기와집을 보면 기와 위에 올려놓은 장식들에 더 눈길이 갔다. 와당은 늘 같은 것이라고 치부하거나 관심의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 책에 나오는 와당들은 대부분 전국시대와 한나라 때 물건이다. 저자는 와당의 탁본을 보고 스쳐간 단상들을 적어놓았는데 이것을 모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책의 구성도 4부분으로 나누었다. 반월형, 동물과 인간, 구름·꽃무늬, 길상문 등이다. 각 내용은 탁본을 왼쪽에 놓고 오른쪽에 와당을 보고 느낀 단상과 문양에 대한 설명을 같이 넣었다. 이 부분에 크게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낯설고 지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문양을 들여다보면 다양한 상상을 하게 된다. 15cm에서 21cm 내외 크기에 동물, 식물, 전설의 동물, 기원과 축원의 말 등을 넣었기 때문이다.

 

1부를 보면서 도철의 무늬에서 일본 만화에서 본 듯한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런 이미지는 뒤로 가면서도 여러 번 반복된다. 전설의 사신수와 동물들을 형상화했고, 기하학적 문양도 나오기 때문이다. 4부 길상문에 가면 작은 와당 속에 한자를 적게는 한 자, 많게는 아홉 자까지 담았다. 이 때문에 생략된 획이 나오기도 한다. 실수인지 의도적인지 알 수 없는 뒤바뀐 글자도 있다. 그 글자를 알아볼 수 있는 와당이 대부분이지만 가끔은 너무나도 장식적이라 한자를 대하는 외국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다. 2부에서 동물과 인간을 그려내었는데 나의 해석과 저자의 해석을 비교하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3부의 무늬는 장식적으로 다가오다가 저자의 말처럼 접시 속 문양과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재미난 경험이다.

 

이 책은 탁본도 중요하지만 발굴된 장소와 시대도 중요하다.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이나 바람 등이 이 와당 속에 녹아 있기 때문이다. 어느 문양에서는 주술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무늬나 글자의 모양 때문이다. 이것 또한 이전에 본 책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책을 읽을 때면 늘 느끼는 감상이지만 아는 것이 적어 더 많은 것을 배우지도 느끼지도 못한 것이다. 다행이라면 저자의 감상으로 깊이를 조금 더한 정도랄까. 책 구성의 아쉬움도 하나 남긴다면 서문을 제외하고 오로지 단상으로 구성되어 독자의 지식을 바탕으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 여백을 지식과 상상력을 채울 수 있는 장점이 있겠지만 초보자에게는 조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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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여행을 좋아해 - 30대 딸과 60대 아빠, 7년 차 여행 콤비의 청춘 일기
이슬기 지음, 이규선 사진 / 성안당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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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딸의 배낭여행기인 <댄싱 위드 파파>의 후속작이다. 전작에서도 이 부녀 사이가 부러웠는데 이번 여행기를 읽으면서 더 심해졌다. 이 둘은 오랜 여행 동반자다. 기본적으로 딸 이슬기가 전체 여행기를 끌고 나가고, 그 사이를 아빠의 여행일기로 채웠다. 이번 여행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와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시작해 북아프리카를 지나 동유럽을 거쳐 크로아티아에서 끝난다. 크로아티아에서는 엄마와 동생까지 동행한다. 물론 이때의 분량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30년 이상을 함께 산 부부를 보는 딸의 시선은 따뜻함과 사랑으로 가득하다.

 

아빠와 동행했다는 것을 제외하면 다른 여행기와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 정보도 충실하지 않다. 가이드북으로 쓴 책이 아니니 당연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전에 읽었던 여행기나 방송 등과 비교되는 부분이 많았다. 개인적으로 산티아고 순례길은 과장된 표현이 너무 많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아니면 나쁜 부분이 생략되었거나. 누군가의 말처럼 여행 당시보다 다녀온 후 그 여운이 더 강하다는 지적이 이 책에 그대로 적용되었을 수도 있다. 가보지 못한 사람의 부러움이 괜한 트집으로 변한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은 꼭 걸어보고 싶은 길이기에 더 그런지 모른다.

 

7년차 여행 동반자의 갈등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일정을 둘러싼 부분에서도 서로 조금씩 양보한다. 이들이 로마에서 만난 모녀의 모습은 아마도 그들의 첫 여행과 닮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겪는 작은 충돌 말이다. 이 부녀는 슬기롭게 이것을 넘어섰다. 그래서 함께 전 세계를 돌아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하는 동안 사소한 충돌은 늘 있다. 잔소리와 작은 배려는 이 부녀에게 늘 있는 일이다. 나쁜 일이 하루의 여행을 망쳐도 씻어내고 다음 일정을 시작한다. 장소의 차이를 생각하는 부분은 여행자의 작은 깨달음이다. 한 지역에서만 살면 그 깨달음이 늦게 오는 경우가 많다.

 

긴 여행을 떠나는 배낭여행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여행을 보면 부럽다. 힘들다는 것을 알지만 그 속에서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기에 더욱 떠나고 싶다. 현실은 언제나 하나의 핑계가 된다. 직장을 은퇴한 아빠가 한 행동을 직장인인 내가 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혼자가 아닌 내가 딸처럼 훌훌 떠날 수도 없다. 다음 선택은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긴 여행을 가는 것이다. 여행 이야기를 하면 늘 흥분하고, 읽고 듣고 본 것을 주절주절 떠든다. 이 여행기를 읽으면서도 혼자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자주 읽고 보고 듣고 한 장소들이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규선 씨가 직장인으로 살면서 딸에게 어떤 아빠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그의 모습은 알 수 있다. 아빠의 여행일기에 딸의 전 직장 전화번호를 가지고 있다는 부분을 보면서 이 즐겁고 행복한 여행 속에서도 또 다른 삶에 대한 아쉬움을 느낄 수 있었다. 안정적인 삶에 대한 부모의 마음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번 여행기에서 가장 즐거웠던 것은 이 부녀가 보여준 환한 웃음을 보는 것이다. 내 눈에는 둘이 닮아 보이는데 엄마를 닮았다고 한다. 천생연분은 비슷해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예쁜 사진도 있지만 초점이 맞지 않는 사진도 가끔 보인다. 단순한 편집의 실수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아직 이 부녀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은 어디로 갈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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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망명자 - 2017년 제4회 SF어워드 장편소설 부문 대상 수상작
김주영 지음 / 인디페이퍼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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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한국 SF스릴러다. SF 자체도 자주 나오지 않는데 스릴러까지 접목했다.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아직 한국의 SF도 스릴러도 완성도가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전체에 대한 평가다. 부분적으로는 아주 뛰어난 작품들이 나와 나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이 작품의 경우가 그렇다. 김주영이라고 하면 <객주>의 소설가가 먼저 떠오른다. 아직은 인지도가 그 정도다. 나중이라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르겠다. 이 소설을 읽은 후 작가의 이력을 다시 봤다. 집에 사 놓은 책들이 보인다. 우선순위가 올라갈 것 같다.

 

시간여행을 다룬다고 하지만 주인공이 여러 시간대를 옮겨다니면서 활약하는 내용이 아니다. 미래의 한 시점에서 과거의 한 시점인 1937년 상해로 와 주인공 강지한을 데리고 간다. 실패한 밀정이라는 설정을 그에게 부과했지만 조금씩 나오는 이력은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인물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가 죽인 수많은 사람들과 날카로운 직관력은 이런 생각을 더욱 두드러지게 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재미난 점 중 하나는 이런 강지한이 미래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을 직접 수행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나도 변한 미래의 과학기술을 이해하는데 그의 지식이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와 강지한의 이해를 돕기 위해 치엔이라는 시간 망명자를 두었다.

 

지한을 과거에서 데리고 온 인물은 제다. 미래 세계에서 그는 흔하지 않는 원주민이다. 지한을 데리고 오기 위해 두 번의 실패를 겪었는데 왜 그를 데리고 왔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는다. 지한이 사랑했던 수향의 요청이라고 하지만 세 번이나 시도할 정도는 아니다. 시간여행이란 점을 감안하면 이 부분에 대한 단서는 마지막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도 작가가 분명하게 알려주지는 않는다. 의도적인 설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분적으로 충분한 설명이 없는 곳이 꽤 있다. 읽으면서 생긴 의문을 해소하는 것은 읽은 후 나의 이해도와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아니면 내가 놓치고 있거나.

 

미래는 대학살의 참사를 겪은 후 인구가 급격하게 감소했다. 출산율도 현저히 떨어졌다. 이 부족한 인구를 채우기 위해 과거의 사람들을 데리고 온다. 이 인물들은 그 시대에 죽은 사람들이다. 하지만 시간 이민을 통해 미래 세계에 살게 된다. 치엔도 이렇게 미래로 온 인물이다. 이런 사람들과 원주민들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미래는 아르고스라는 시스템을 통해 거의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다. 인체슬롯이란 것을 이용해 통신망 등에 접속하여 정보를 주고 받는다. 이들이 본 것과 들은 것은 모두 저장이 된다. 생활의 편리함은 높아지지만 개인의 비밀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물론 이것을 보기 위해서는 보안등급이 있어야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완벽한 통제와 감시 도구가 된다. 이 소설의 소재 중 하나다.

 

시간이동을 했다고 하지만 출신 성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대립이 대표적인 모습이다. 미래 세계는 국가란 개념이 사라졌다. 그러니 이런 대립과 갈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지한이 처음 이 세계에 도착했을 때 이 장면이 등장한다. 제가 이들에게 몇 번 경고를 했지만 그들은 무시한다. 이들은 다시 시간이민시킨다. 그 결과는 죽음이다. 제의 이런 행동은 당사자나 관계자 입장에서 보면 아주 잔혹한 것이다. 치엔이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하는 것은 당연하다. 제의 성격 중 한 부분을 알 수 있는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원주민 출신인 제는 여자로도, 남자로도 살아본 적이 있다. 오랜 세월을 살면서 감정이 메마른 부분이 있다. 이 세계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작품이 있다. <공각기동대>다. 신체는 쉽게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뇌와 관련된 부분은 다르다. 신체를 포기하고 뇌만 보관할 수 있다. 물론 이때의 뇌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뇌가 아니다. 데이터다. 기억과 인격이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 속에 넣을 경우 같은 외모의 다른 사람이 된다. 인체해킹이다. 이 소설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나는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이다. 수백 년을 살았고, 자신의 선택에 따라 영원히 살 수 있는 별족들에게 하나의 즐거움이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작가는 참으로 많은 공을 들였다. 물론 약간의 아쉬움과 과도한 설정이 있기는 하다.

 

음모와 대학살과 연쇄살인 등이 서로 엮여 돌아간다. 미래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현실을 비판한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정책을 바꾸는 별족 같은 귀족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의 이익이 극대화될 때 대학살이 벌어진다. 이 소설의 설정 중 하나다. 단순한 연쇄살인처럼 보였던 것에 의미를 부여하고, 숨겨진 사실이 하나씩 드러날 때마다 그곳에는 강지한과 치엔이 있다. 생략된 부분과 몇 가지 의미 해석은 전체 이야기를 깔끔하게 풀어가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몇 가지 장면들은 끝까지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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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저널 - 제38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수상작
혼조 마사토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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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언론을 보면 과연 이들이 제대로 된 언론인인가? 하는 의문이 절로 생긴다. 기레기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기자에 대한 혐오감은 과히 그 극에 달했다. 이런 시대라고 언론인이 없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자신의 본분을 위해 권력과 싸우고, 진실을 파헤치고, 어떻게든 이 사실을 대중에게 알리려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통해 더 많은 진실과 사실을 알게 되고, 찌라시와 오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왜 언론이, 특히 제대로 된 언론이 필요한지 알게 된다. 이 작품도 언론인이 무엇인지,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주오 신문사 사회부 기자들이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사건의 시작은 7년 전에 있었던 여아 연쇄 납치 살인 사건이다. 이때 주오 신문은 특종에 대한 욕심에 그만 오보를 내고 만다. 그 오보의 내용은 유괴된 아이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 아이는 무사히 돌아왔다. 하지만 신문사는 다른 언론과 피해자 가족의 지탄을 받는다. 이 보도와 관련된 사람들은 좌천되고, 다른 곳으로 발령난다. 그 당시 팀장이었던 세키구치 고타로는 지국을 전전한다. 현재는 사이타마현 지국의 기자로 살아간다.

 

고타로는 7년 전 사건이 단독 범행이 아니라 공범이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사이타마현에서 발생한 미수 사건에서 2명이 함께 움직였다는 말에 기자의 촉이 발동한다. 이런 미수 사건이 한 건이 아니다. 또 한 건 발생한다. 둘 모두 소녀들의 기지와 운이 작용해 무사히 마수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고타로는 7년 전 사건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다. 혹시 그때 잡히지 않은 공범이 있었다면 다시 납치 살인 사건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이타마현 경찰을 찔러본다. 도쿄의 경시청도 움직이길 바란다. 그러나 7년 전 오보 사건의 주역이 현재 사회부 부장인 도야마다. 한때 사장 후보 중 한 명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좌천되었던 이력이 있다. 고타로에 대한 인상도 좋지 않다. 오보에 대한 공포증도 남아 있다. 신문사 내부의 갈등도 같이 다루어진다.

 

고타로를 축으로 7년 전 사회부 기자들이 중심인물로 번갈아 가면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고타로 밑에서 일했던 두 명의 기자 중 한 명은 정리부로 빠진다. 마쓰모토 히로후미다. 기자의 펜에 의해 피해자 가족이 충격을 받는 것을 보고 다른 부서로 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신문사 내부를 새롭게 보게 된 곳 중 한 곳이 이 정리부다. 신문사를 다룬 소설이 많이 나왔지만 활자의 크기나 조판에 관련된 부서가 나오는 거의 보지 못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한 부분에서 전문인력이 동원되고 있다. 단순히 편집부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다른 한 명은 후지세 유리다. 현재 특별 취재팀 소속이다. 그녀가 다시 고타로와 함께 일하게 된 대는 그를 싫어하는 다른 기자 때문이다. 그녀라면 고타로와 본사의 중간 연결책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실제로 유리는 이 일을 아주 잘 해낸다. 우리가 흔히 전형적으로 생각하는 기자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고타로가 가진 끈질김도, 여성의 섬세함도, 저돌적인 모습까지 말이다. 고타로에게 교육을 잘 받았다고 하지만 본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이런 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유리는 사이타마현 지국의 기자들과 함께 정보를 모으고 분석하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이들 외에도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주오 신문과 다른 신문 기자들이 등장한다. 특종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하나의 정보라도 더 얻기 위해 늦은 밤 경찰의 집을 찾아간다. 대부분 쫓겨나오지만 집안에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생긴다. 고타로가 주장한 공범설은 어느 순간 경찰 내부에서도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고, 사건을 다른 방향에서 접근하도록 한다. 예전에 자주 나왔던 기자가 탐정에 액션까지 보여주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현실적이다. 경찰과의 역할 분담이 무엇인지, 실제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신문사 내부의 갈등과 정보를 둘러싼 경찰과의 대립과 특종에 대한 열정은 점점 더 몰입도를 높여준다.

 

간단하게 결론을 말하면 재미있다. 기자들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가지만 긴장감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기자 출신인 작가라서 그런지 세부적인 부분에서 새로운 대목들이 나온다. 즐겁다. 범인에 대한 추측은 나오지만 그 범인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는다. 머리 써야하는 트릭이나 범인과의 심리전이나 반전도 없다. 있는 것은 범인을 찾고 정보를 하나라도 더 빨리 전달하려는 기자들의 열정이다. 독불장군 같은 고타로가 왜 필요한지 간접적으로 알려준다. 속보에서는 SNS에 밀릴지 모르지만 정확한 정보라면 아직은 언론사가 더 낫다. 언젠가 없어질 직업 중 하나로 꼽히는 기자지만 현재는 이런 기자들이 있어 우리는 사회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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