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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 우리가 배운 모든 악에 대하여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8월
평점 :
불편하지만 책 제목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제목을 보았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선생을 하는 친구와 대화를 할 때 그가 나쁘지 않은 선생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깰 수 없는 벽을 마주한다. 학생과 선생이라는 거대한 벽은 인권이 왜 교육 현장에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 학창 시절 학교를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단어를 나만 사용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느낀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학교 다닐 때 선생들은 학생의 인권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학교에 식민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교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냥 비싼 교복이 있다는 것 정도만 생각한 나에게 교복이 지닌 숨겨진 의미를 알려줄 때 놀랐다. 평등해 보이지 않기 위해 단을 조정하는 등의 수선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교복의 판매와 서열화 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작은 차이에 민감한 아이들이 이 교복을 통해 차별의 명분으로 삼는 것에 익숙해졌고, 이것이 대학에서 서열화와 차별화로 이어졌다는 논리는 생각해볼 거리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점점 더 큰 차이를 만들고, 이것을 고착화시키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 때도 욕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의 욕은 기본적으로 비인간적이고 폭압적인 입시교육 시스템을 향한 비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사와 부모를 간수라고 부른다. 동의한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누가 딴짓하는지 돌아보는 선생의 모습은 영화 속 간수와 닮았다. 청소년들의 쿨을 분석한 부분도 낯설었다. 세월호 학생들의 동영상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문화산업이 이 쿨을 조장한다고 했을 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쿨함이 최소한 내가 자랄 때는 없었다.
유학으로 인한 문제는 너무 많이 다루어진 주제지만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한 이유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유학생이 제국주의의 첨병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이지만 한 집안이 모두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둘러싼 불편한 현실은 낯설었다. 군대와 학교를 같이 놓고 해석한 부분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 교육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그 기원을 찾아가 풀어낸 사실은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국가가 바라는 자원을 길러내는 장소일 뿐이다. 그리고 이 두 곳은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고, 폐쇄적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보다는 숨긴다. 이런 공간에서 민주주의가 자란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학교 폭력 대신 폭력 학교란 용어로 2부를 연다. 사학 비리로 시작하는데 낯설지 않다. 비리 사학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학교를 계속 그래도 둔다는 것이다. 재단 이사장을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맡아 순간적으로 태풍을 피한다. 특수학교, 종교사학으로 넘어가면 이 비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수학교의 실태를 조금 보고 난 후 느낀 것은 저자의 말대로 ‘격리’였다. 학교가 학생을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지배하는 것처럼. 사학 비리에 꽤 많은 분량은 둔 것은 그만큼 그 비리의 정도가 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피해 입었을 때 교권을 해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런 주장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교육(행정)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남자관료들이라고 한다. 힘없는 여교사를 억압당하는 학생들 앞에 총알받이로 세워 자신들의 이득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내가 늘 교권보다 인권이라고 외쳤던 것과 어느 정도 연결된다. 인권이 무시되는 학교에서 교권만 부각시키는 이런 주장은 현실을 심하게 왜곡시킨다. 학생들의 여교사 성희롱이나 성추행보다 더 심한 것은 교사들의 성희롱, 성추행이다. 여교사와 학생을 향한 이 행동들이 모두 근절되어야 하는데 이 둘을 별개의 사항으로 보는 것을 저자는 거부한다.
학교를 성범죄의 온상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맞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은 언제나 보여주기식이고 일시적이다. 저자는 청소년 성범죄의 특징 중 하나가 집단화라고 말한다. “집단 성폭력의 강한 유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청소년의 서열 문화와 그 서열 문화가 갖는 폭력성”이고, “학교에서 서열 관계에 따른 하향 폭력을 일상적으로 배우고,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우리 삶속에 내재 되어 있는 폭력과 서열화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학교 폭력을 양산하는 조건을 만든 것이 교육부와 국가권력이고, 이 폭력이 사건화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력 사건을 은폐, 축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구제되지 않고 버려지고 처벌된다. 피해자를 가해자와 같은 부류로 물거나 면학 분위기를 해친 놈으로 취급하고 도덕적 비난을 강화한다. 현실에서 자주 보는 장면들이다. “교육부와 국가권력은 학교를 앞잡이로 세우고, 피해자를 제물로 삼아 스스로를 구제한다. 학교 폭력이 처리되는 과정은 이처럼 정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저자가 학교를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한 부분은 피해자와 그 부모들이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학교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설명해준다. “학교는 폭력의 기원이다.”란 표현에 깊이 공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