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시간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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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망추정시각>의 개정판이다. 원제보다 바뀐 제목이 훨씬 좋다. 처음에는 이 조작된 시간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는데 소설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원제를 봤을 때 법의학적 공방이 나올 것이란 예상을 하게 되는데 실제 이 소설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한 소녀의 유괴 살인이라는 범죄를 둘러싼 국가 권력의 비리와 공범 행위를 다룬다. 이 행위 속에서 무고한 한 청년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범인으로 몰리고, 자백을 강요받고, 법정에 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의심을 품고, 문제를 한 번이라고 제기했다면 그런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읽으면서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이 장면들이 한국의 법정과 경찰로 옮겨지면 그대로 붙여넣기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수공권으로 성공한 사업가 와타나베 쓰네조의 딸이 유괴된다. 범인이 원하는 금액은 1억 엔이다. 쓰네조는 이 돈을 주더라도 딸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경찰은 자신들의 위신이 우선이다. 범인의 잘 짠 계획은 경찰로 인해 무산된다. 그리고 쓰네조의 딸 미카는 죽은 채 돌아온다. 이 시체를 처음 발견한 인물은 마을 청년 고바야시 쇼지다. 용돈벌이용으로 산나물을 따러 왔다가 미카를 발견한다. 신고를 했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시체를 만지고, 지갑에서 돈을 끄집어낸다. 놀아 돌아오다가 다른 차를 만나기도 한다. 그의 몇 가지 실수와 과거의 범죄 기록이 그의 삶을 바꾼다. 경찰이 그에게 오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바뀐 제목 <조작된 시간>은 범인을 잡기 위한 사망추정시각이 아니다. 범인을 만들기 위해, 경찰 간부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시간을 조작한다. 심문을 하는 형사가 바뀐 사망추정시각에 의문을 크게 품지 않고 자신의 정의로 범인을 만들어간다. 쇼지는 공포심에 그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한다. 경찰의 굿캅, 배드캅 전략에 그냥 넘어간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백하고, 납치 장소를 만들고, 누명을 뒤집어쓴다. 비극은 어머니가 변호사를 선입했지만 그 변호사가 제대로 된 변호사가 아니란 것이다. 국선보다 못한 변호사는 변론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법원도 아주 간결하게 처리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진다.

 

쇼지가 사형을 받는 과정을 보면서 분노했다. 쓰네조의 협박에 겁에 질린 경찰 간부와 그 간부의 요청에 사망추정시각을 바꾼 검시관과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강요하는 형사 모두에게. 범인을 만든다는 의미를 이렇게 잘 보여주는 소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공권력이 지닌 힘은 약자에게 집중된다. 쓰네조의 협박이 두려워, 조직 비리와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잘못된 정의감과 선입견으로 중첩되어 한 곳으로 집중된다. 좋은 변호사가 나타나 이 모든 비리의 연결고리 속에서 문제점을 지적해도 이들은 공모자가 되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법정도 마찬가지다. 이 거대한 절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고 절망했을까. 이것과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란 점이 더 무섭다.

 

한줄기 희망은 변호사 가와이의 열정과 정의다. 자비를 들여 문제점을 파헤치고, 사식비를 넣어주고, 절망에 빠진 쇼지를 일으켜 세운다. 그가 보여준 정의와 열정은 남다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사법절차 속 문제점을 알게 되고, 조직이란 거대한 괴물이 밖에서 볼 때와 어떻게 다른지 깨닫는다. 조직을 지킨다고 하지만 실제는 개인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알면서도 무죄의 한 청년을 감옥으로 보냈다. 절망과 통곡의 벽은 정의로운 변호사 한 사람의 능력으로 무너트릴 수도 넘어갈 수도 없다. 진범을 알아도 그를 고소할 수도 없다. 복잡하게 엮인 관계들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사건 발생과 시체 발견과 사법 부검과 용의자 발견으로 빠르게 이어진다. 심문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고, 조서 작성하는 과정이 나온다. 검찰에 넘어간 후 빠르게 재판에 회부되고 판결이 내려진다. 이 일련의 과정을 다루는 소설이 흔하지 않다. 각 부분이나 몇 가지 부분만 다룰 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소설이다.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분노를 자아내게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조직이 비리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낯설지도 않다. 다만 분노하고 답답할 뿐이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지만 사법부는 이것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것을 보면 아직 요원하다. 소설은 재미있지만 답답하다. 너무 현실적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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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별
엠마 캐럴 지음, 이나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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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고전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창작한 고딕 스릴러 소설이다. 실제 메리 셸리가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어린 소녀 리지다. 리지는 동생을 찾으러 멀리 스위스까지 왔다. 처음 그녀가 문을 두드렸을 때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마침 유령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 하인 펠릭스가 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리지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셸리가 열심히 마사지를 했다. 자신의 죽은 아기를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한 것이다. 이 정성 탓인지 리지는 깨어난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액자식 구성이다 보니 열네 살 소녀 리지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이 이야기가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의 창작이자 전체 이야기를 꾸미기 위한 설정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성별과 인종은 이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하게 만든다. 흑인 하인 펠릭스가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란 것과 미국을 벗어났다는 사실은 나중에 그에게 낙인된 S자가 의미하는 것과 이어진다. 아직 인종차별이나 노예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논의할 거리가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리지의 이야기는 미신과 과학이란 두 분야를 엮고 비틀었다. 미신이 비이성적이고, 과학이 이성적이란 이분법이 이 소설 속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혜성이 불길하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학자로 나온 인물들이 보여준 행동 역시 이성적이지 않다. 소설 속 과학자인 스타인박사는 천둥의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죽은 자를 살리는 실험을 시도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것과 같다. 동물의 경련을 착각한 과학자들이 이 당시는 적지 않았다. 고집 센 과학자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이 실험이 성공일 때는 엄청난 호응을 얻지만 비윤리적이고 실패하면 엄청난 비난을 마주한다. 물론 이 과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나온다.

 

리지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이 먼 스위스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동생 펙을 찾기 위해서다. 펙은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다. 이 아이가 셸리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좇아온 것이다. 그리고 리지의 가족사에서 시작하여 이 모험을 시작하게 된 데까지 그 과정을 들려준다. 엄마가 들려준 혜성의 불길함과 마을 축제의 연인 전설 등이 섞여 흘러간다. 그러다 친구 머시가 본 환상이 불길함을 더한다. 엄마의 고집이 부른 불상사다. 번개를 맞은 두 모녀 중 엄마는 죽고 딸은 실명했다. 눈 먼 리지의 삶은 그래도 지속된다. 불편함이 있지만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을에 과학자가 이사 오면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아빠가 이사 오는 사람 때문에 나가지 않았다면 엄마가 번개를 맞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비난이나 변명을 다루지 않는다. 엄마의 고집이라고 말하면서 원인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비난의 고리를 만들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촉감과 소리에 민감해진다. 동물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귀에 들린 것은 그것이 아주 특별했기 때문이다. 한두 마리가 죽은 것이 아니라 모두 죽었다. 마을에 살짝 공포가 깃든다. 이 공포를 일부러 강하게 만들기보다는 몇 가지 상황으로 그 어떤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독자도 그 어떤 것이 무엇일까 추리한다. 나중에 드러난 정체는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알 수 없을 때 더 강하게 다가온다. 어릴 때 본 공포영화를 지금 보면 너무 허술해서 무섭기보다는 웃음이 나온다. 고전 공포영화도 비슷하다. 최근에 본 공포영화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 전환으로 관객을 놀래킨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소설은 아주 약한 공포를 전달한다. 대신에 다른 것으로 그 빈 곳을 채웠다. 리지의 모험과 비워져 있던 역사적 사실의 채울 상상력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리지의 동생을 입양하려고 한 메리 셸리의 나이다. 스물한 살에 걸작을 썼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연 펙의 나이가 입양할만한 나이였을까 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이 예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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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다 - 우리가 배운 모든 악에 대하여
박민영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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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지만 책 제목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제목을 보았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에서 선생을 하는 친구와 대화를 할 때 그가 나쁘지 않은 선생임에도 불구하고 결코 깰 수 없는 벽을 마주한다. 학생과 선생이라는 거대한 벽은 인권이 왜 교육 현장에서 사라졌는지 알 수 있었다. 실제 학창 시절 학교를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이 단어를 나만 사용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학생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느낀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내가 학교 다닐 때 선생들은 학생의 인권 따위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학교에 식민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교복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냥 비싼 교복이 있다는 것 정도만 생각한 나에게 교복이 지닌 숨겨진 의미를 알려줄 때 놀랐다. 평등해 보이지 않기 위해 단을 조정하는 등의 수선을 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것이 교복의 판매와 서열화 등으로 이어지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작은 차이에 민감한 아이들이 이 교복을 통해 차별의 명분으로 삼는 것에 익숙해졌고, 이것이 대학에서 서열화와 차별화로 이어졌다는 논리는 생각해볼 거리다. 너무 당연하게 생각한 것들이 점점 더 큰 차이를 만들고, 이것을 고착화시키는 현실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우리 때도 욕을 많이 했는데 “아이들의 욕은 기본적으로 비인간적이고 폭압적인 입시교육 시스템을 향한 비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교사와 부모를 간수라고 부른다. 동의한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몽둥이를 들고 다니면서 누가 딴짓하는지 돌아보는 선생의 모습은 영화 속 간수와 닮았다. 청소년들의 쿨을 분석한 부분도 낯설었다. 세월호 학생들의 동영상을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충격이었다. 문화산업이 이 쿨을 조장한다고 했을 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쿨함이 최소한 내가 자랄 때는 없었다.

 

유학으로 인한 문제는 너무 많이 다루어진 주제지만 오바마가 한국의 교육열을 칭찬한 이유를 이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재미있었다. 유학생이 제국주의의 첨병이란 것은 이미 알고 있던 것이지만 한 집안이 모두 같은 대학을 나왔다는 사실을 둘러싼 불편한 현실은 낯설었다. 군대와 학교를 같이 놓고 해석한 부분은 사실 특별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학교 교육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그 기원을 찾아가 풀어낸 사실은 학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아주 잘 보여준다. 국가가 바라는 자원을 길러내는 장소일 뿐이다. 그리고 이 두 곳은 폭력이 일상화되어 있고, 폐쇄적이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기보다는 숨긴다. 이런 공간에서 민주주의가 자란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학교 폭력 대신 폭력 학교란 용어로 2부를 연다. 사학 비리로 시작하는데 낯설지 않다. 비리 사학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사실은 놀랍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이런 학교를 계속 그래도 둔다는 것이다. 재단 이사장을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맡아 순간적으로 태풍을 피한다. 특수학교, 종교사학으로 넘어가면 이 비리는 상상을 초월한다. 특수학교의 실태를 조금 보고 난 후 느낀 것은 저자의 말대로 ‘격리’였다. 학교가 학생을 보호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지배하는 것처럼. 사학 비리에 꽤 많은 분량은 둔 것은 그만큼 그 비리의 정도가 크고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여교사가 학생들에게 피해 입었을 때 교권을 해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이런 주장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교육(행정)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남자관료들이라고 한다. 힘없는 여교사를 억압당하는 학생들 앞에 총알받이로 세워 자신들의 이득을 추구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내가 늘 교권보다 인권이라고 외쳤던 것과 어느 정도 연결된다. 인권이 무시되는 학교에서 교권만 부각시키는 이런 주장은 현실을 심하게 왜곡시킨다. 학생들의 여교사 성희롱이나 성추행보다 더 심한 것은 교사들의 성희롱, 성추행이다. 여교사와 학생을 향한 이 행동들이 모두 근절되어야 하는데 이 둘을 별개의 사항으로 보는 것을 저자는 거부한다.

 

학교를 성범죄의 온상이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맞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식은 언제나 보여주기식이고 일시적이다. 저자는 청소년 성범죄의 특징 중 하나가 집단화라고 말한다. “집단 성폭력의 강한 유인으로 작용하는 것은 청소년의 서열 문화와 그 서열 문화가 갖는 폭력성”이고, “학교에서 서열 관계에 따른 하향 폭력을 일상적으로 배우고,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인다”고 말한다. 우리 삶속에 내재 되어 있는 폭력과 서열화가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학교 폭력을 양산하는 조건을 만든 것이 교육부와 국가권력이고, 이 폭력이 사건화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폭력 사건을 은폐, 축소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가 구제되지 않고 버려지고 처벌된다. 피해자를 가해자와 같은 부류로 물거나 면학 분위기를 해친 놈으로 취급하고 도덕적 비난을 강화한다. 현실에서 자주 보는 장면들이다. “교육부와 국가권력은 학교를 앞잡이로 세우고, 피해자를 제물로 삼아 스스로를 구제한다. 학교 폭력이 처리되는 과정은 이처럼 정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가 자살을 선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저자가 학교를 그만둘 수 있다고 생각하라고 한 부분은 피해자와 그 부모들이 깊이 새겨둘 필요가 있다. 학교는 우리 사회의 폭력성을 설명해준다. “학교는 폭력의 기원이다.”란 표현에 깊이 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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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언어의 온도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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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다. 잘 모르는 작가인데 출간된 지 좀 된 상태에서 인기가 점점 올라갔다. 최근에 더 인기를 얻은 것 같다. 호기심은 있지만 밀린 책들이 많아 그냥 지나가려고 했는데 우연히 무료 전자책으로 다운받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도 공짜 전자책을 잔뜩 받아놓고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적이 있어 살짝 걱정했다. 하지만 책 내용이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고, 긴 이야기를 풀어낸 것도 아니라 시간 날 때 조금씩 읽으면 되었다. 목차를 본 후 자신감을 얻었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간단한 에세이다. 다양한 분량으로 말(言), 글(文), 행(行) 3부로 나누었다. 일상에서 자신이 본 것, 읽은 것, 들은 것, 행동한 것들을 아주 세심하게 다루었다. 하나의 소재나 주제를 아주 잘 다듬어 내 놓았는데 읽는 동안 아주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글을 읽으면서 이런 느낌을 오랫동안 받은 것이 참 오랜만이다. 말의 어원을 찾아 풀어낸 것은 사실 별 다른 인상을 받지 않았지만 각각의 이야기 속에 담긴 감정은 조용히 가슴 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만약 책으로 단숨에 읽었다면 기분이 많이 처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정제된 문장으로 감정을 상당히 가렸다. 읽기에 불편함은 없지만 왠지 심심한 기분도 들었다. 에피소드들이 잔잔한 순간만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떻게 보면 모범생의 잘 정리된 글 같다고 해야 하나. 좋은 글이라는 것은 알겠는데 깊이 빠지게 만들지 못한다. 다 읽고 난 지금도 몇 개의 에피소드만 겨우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이다. 자신의 생각들을 풀어내었는데 이 생각에 감정이 열정적으로 실리지 않아 너무나도 이성적으로 보는 순간이 많았다. 감정이입보다 관찰자의 시선으로 보았다고 해야 하나.

 

책이나 영화를 본 후 자신의 감상을 풀어낸 부분은 서평을 쓰는 나에게 참고 자료가 될 만하다. 너무 하나의 형식으로 흘러가는 듯한 요즘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 작품들에 대한 해석은 나와 갈리는 경우가 꽤 있다. 다른 경험과 환경 탓일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상당히 교훈적인 글도 보인다.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글을 쓰다 그렇게 흘러갔는지 알 수 없지만 조금 아쉬운 대목이다. 인터넷에서 본 게시글이 정리된 채로 나온 경우도 있다. 먼저가 어떤 것인지 잘 알 수 없지만. 가볍게 읽기에도 좋고, 이야기 속에서 뭔가를 찾기도 좋다. 각자의 경험에 달렸다. 작가가 적당한 온기란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글 속에는 너무 적당한 온기가 많아 내가 조금 풀어진 느낌이다. 아직 이런 글이 나에게는 맞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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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심령학자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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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장르문학 작가 중 가장 인지도가 높은 작가가 아마도 배명훈일 것이다. 이 인지도는 그가 꾸준히 책을 내는 것과 그 작품들이 어느 수준 이상이란 점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그의 작품과 읽는 작품의 괴리감은 언제나 존재한다. 초기 작품에서 받은 인상이 너무 강해 최근에 읽은 작품들은 과연 SF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냥 분야가 다양하다고 하기에는 그가 꾸준히 발표한 작품들의 유사성이 살짝 보인다. 고고심령학자란 단어가 처음 나온 것도 단편 <누군가를 만났어>였지 않은가.

 

고고심령학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다. ‘심령학적인 관찰을 통해 고고학적인 질문에 대한 찾고자 하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이 정의를 간단히 설명하면 천 년 전에 죽은 혼령이 하는 말을 직접 들어 그 당시 언어를 재구성한다는 것이다. 설명은 쉽지만 현실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물음이 따라온다. 속된 말로 혼령을 계속해서 봐야 한다는 말이다. 김은경이 고고심령학을 사람들이 그만 두는 이유 중 가장 먼저 꼽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무서워서 그만 둔다. 그리고 이 혼령을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은경의 경우 이것을 보지 못한다. 보는 사람의 시선과 행동으로 파악할 뿐이다.

 

천문대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서울 도심에 나타난 벽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 벽은 실체가 눈으로 보이는 벽이 아니다.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높이가 30미터가 넘는 거대한 벽이다. 촬영도 되지 않고 카메라에도 찍히지 않는다. 이 현상은 심령현상으로 생각하고, 요새빙의라는 용어가 떠오른다. 이때 이 용어를 만든 한나 파키노티가 등장한다. 한국에서 스위스로 입양된 그녀는 전 세계를 돌면서 체스의 원형 게임인 차투랑가의 변종을 수집한다. 한나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고고심령학보다 체스의 문화사가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그녀의 이 작업은 요새빙의 현상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 고고심령학계의 거장 문인지 박사의 제자인 조은수는 박사의 사후 그의 기록을 정리, 기록하는 일을 한다. 단순해 보이는 이 작업이 한국에서 발생한 요새빙의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실제 은수가 서울과 천문대를 오가며 하는 일은 현상을 보고, 경험하고, 자료를 정리하는 것이다. 은거 고수와 같은 그의 능력은 현장에서 그 빛을 발한다. 이 과정에서 은경이 은수 옆에 있다. 은경의 자발적인 조사는 관련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을 하나의 현상으로 이어준다. 고고심령학이 얼마나 많은 학문을 통해 발전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서울의 특정 지역에 성벽이 나타난다는 설정은 비현실적이다. 이 비현실을 논리로 풀어내는 것이 소설가의 역할이다. 이것을 위해 작가는 고고심령학의 정의를 내리고, 혼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것을 연구하는 고고심령학자들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이것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학자도 나온다. 한국고고심령학연구소 이한철 대표가 대표적이다. 현대의 과학 기기를 통해 확인하고 증명하고 조사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실제 고고심령학 분야에서 전문성을 드러내기에는 조금 부족하다. 그의 연구소 직원들이 더 많이 등장한다.

 

성벽의 존재는 종말의 징후와 연결된다. 종말징후론은 현실로 나타났을 때 그 징후를 알 수 있다. 징후들이라고 했던 것이 사실이 아니었던 역사는 사후적인 연구와 연결된다. 파편적으로 등장했던 성벽이 하나로 이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작가는 이 과정을 파편적인 이야기로 나열한 후 하나로 통합한다. 처음 읽을 때는 뭔 딴소리인가? 하지만 그 조사와 연구가 맞물리고,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만약 예상한 대로 이어지지 않으면 징후들은 사실이 된다. 작가의 이런 전개 방식과 구성들이 놀라움과 기발함을 던져주지만 가끔은 모호함으로 남기도 한다. 가끔은 이 모호함이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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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9-01 14: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명훈 작가 이번 책을 통해 여러 가지 배운게
많습니다.

이러다가 정말 팬이 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