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별
엠마 캐럴 지음, 이나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평점 :
절판


메리 셸리의 고전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창작한 고딕 스릴러 소설이다. 실제 메리 셸리가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어린 소녀 리지다. 리지는 동생을 찾으러 멀리 스위스까지 왔다. 처음 그녀가 문을 두드렸을 때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마침 유령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 하인 펠릭스가 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리지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셸리가 열심히 마사지를 했다. 자신의 죽은 아기를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한 것이다. 이 정성 탓인지 리지는 깨어난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액자식 구성이다 보니 열네 살 소녀 리지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이 이야기가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의 창작이자 전체 이야기를 꾸미기 위한 설정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성별과 인종은 이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하게 만든다. 흑인 하인 펠릭스가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란 것과 미국을 벗어났다는 사실은 나중에 그에게 낙인된 S자가 의미하는 것과 이어진다. 아직 인종차별이나 노예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논의할 거리가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리지의 이야기는 미신과 과학이란 두 분야를 엮고 비틀었다. 미신이 비이성적이고, 과학이 이성적이란 이분법이 이 소설 속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혜성이 불길하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학자로 나온 인물들이 보여준 행동 역시 이성적이지 않다. 소설 속 과학자인 스타인박사는 천둥의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죽은 자를 살리는 실험을 시도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것과 같다. 동물의 경련을 착각한 과학자들이 이 당시는 적지 않았다. 고집 센 과학자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이 실험이 성공일 때는 엄청난 호응을 얻지만 비윤리적이고 실패하면 엄청난 비난을 마주한다. 물론 이 과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나온다.

 

리지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이 먼 스위스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동생 펙을 찾기 위해서다. 펙은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다. 이 아이가 셸리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좇아온 것이다. 그리고 리지의 가족사에서 시작하여 이 모험을 시작하게 된 데까지 그 과정을 들려준다. 엄마가 들려준 혜성의 불길함과 마을 축제의 연인 전설 등이 섞여 흘러간다. 그러다 친구 머시가 본 환상이 불길함을 더한다. 엄마의 고집이 부른 불상사다. 번개를 맞은 두 모녀 중 엄마는 죽고 딸은 실명했다. 눈 먼 리지의 삶은 그래도 지속된다. 불편함이 있지만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을에 과학자가 이사 오면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아빠가 이사 오는 사람 때문에 나가지 않았다면 엄마가 번개를 맞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비난이나 변명을 다루지 않는다. 엄마의 고집이라고 말하면서 원인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비난의 고리를 만들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촉감과 소리에 민감해진다. 동물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귀에 들린 것은 그것이 아주 특별했기 때문이다. 한두 마리가 죽은 것이 아니라 모두 죽었다. 마을에 살짝 공포가 깃든다. 이 공포를 일부러 강하게 만들기보다는 몇 가지 상황으로 그 어떤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독자도 그 어떤 것이 무엇일까 추리한다. 나중에 드러난 정체는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알 수 없을 때 더 강하게 다가온다. 어릴 때 본 공포영화를 지금 보면 너무 허술해서 무섭기보다는 웃음이 나온다. 고전 공포영화도 비슷하다. 최근에 본 공포영화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 전환으로 관객을 놀래킨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소설은 아주 약한 공포를 전달한다. 대신에 다른 것으로 그 빈 곳을 채웠다. 리지의 모험과 비워져 있던 역사적 사실의 채울 상상력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리지의 동생을 입양하려고 한 메리 셸리의 나이다. 스물한 살에 걸작을 썼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연 펙의 나이가 입양할만한 나이였을까 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이 예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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