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크백 마운틴 에프 모던 클래식
애니 프루 지음, 전하림 옮김 / F(에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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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이름의 영화 때문에 알게 된 책이다. 물론 이 책 속 단편을 원작으로 만들었다. 이안이란 거장이 만든 영화가 아니라면, 게이 서부극이 아니라면, 아카데미상을 받지 않았다면 그냥 묻혔을지도 모른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다. 아마 영화를 봤다면 이 소설집의 가장 마지막 작품이자 표제작인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미지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실제 소설을 읽을 때 배우의 이미지가 몇 번 겹쳐 보였다. 독서에 방해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이 양성애자들이 어떤 모습일까 하는 호기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영화로 인해 가장 대표적인 작품처럼 알려졌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가죽 벗긴 소>와 <진흙탕 인생>과 <경력>이다. <가죽 벗긴 소>는 존 업다이크의 대단한 칭찬 때문에 먼저 눈길이 갔다가 동생 장례식으로 향하는 노인의 여정과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푹 빠졌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궁금했다. 이야기 속 가죽 벗긴 소의 모습과 예언이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진흙탕 인생>은 개정 전에는 <진창>이란 제목이었다. 이번 개정판에서 몇 편의 제목이 바뀌었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로데오 선수들의 삶과 고생을 알게 되었고, 이 힘든 여정을 견디면서 살아가는 그들이 가진 열정이 어디에서 비롯한 것인지 궁금했다. 자식들이 안전하고 안정된 직장을 얻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어디나 똑같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경력>은 사실 이전 제목 <어느 가족의 이력서>가 더 좋다. 몇 쪽 되지 않은 분량인데 한 가족의 일생을 이렇게 간결하게 요약할 수 있다는 점이 신선했다. <다음 주유소까지 앞으로 90km>의 경우는 겨우 두 쪽인데 집중해서 읽어야 한다. 물론 다른 장편들도 마찬가지다. 중단편이 한 인물의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거의 없어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가면서 그 연관성을 잘 파악해야 한다. 몇 편의 단편에서 이것을 놓치고 그냥 활자만 따라간 경우가 있다. <지옥에선 모두 한 잔의 물을 구할 뿐>의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마지막 두 장을 그냥 봤다가 다시 돌아가 놓친 부분을 찾아야했다. 마지막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다. 한 가족과 한 인물의 비극적 만남과 그 결과는 시간의 흐름 속에 조용히 묻힌다.

 

표제작 <브로크백 마운틴>은 예상과 다른 이야기였다. 그들이 처음 몸을 섞는 장면은 가능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둘 다 동성애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들이 보여준 열정과 강렬한 갈구는 동성애자가 아닌 두 인간의 사랑으로 다가왔다. 시대가 이런 동성애자를 용납하지 않았기에 주변 사람들을 속인 채 만나야 했다. 물론 이들의 정체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 각자 여자와 결혼해서 아이도 낳았지만 운명과도 같은 사랑이 이들을 묶어놓았다. 꿈에 톰이 나왔다고 해서 좋아하는 문장을 이해하게 된 것도 이 사랑을 봤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이들의 정사를 과연 어떻게 표현했을지, 그 감정의 깊이를 어떻게 다루었을지 궁금했다.

 

11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재밌다고 감탄하기도 하고, 이야기 속에서 헤맨 후 뭐지? 하는 의문을 품은 순간도 있었다. 와이오밍 주의 위치와 몇 가지 풍경을 떠올리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가난과 고된 삶과 열정과 사랑과 욕망이 뒤섞인 그곳은 그냥 간단히 요약할 수 없다. 어느 이야기에서는 유머와 위트가 넘치고, 어떤 부분은 섬뜩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은 집중력이 흐트러진 몇 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제목이 바뀐 것들의 원래 제목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와이오밍 이야기 중 1권이 나왔으니 3권까지 모두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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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조예은 지음 / 마카롱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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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옮기는 능력자 이야기다. 자신의 몸을 통로로 사용하여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질병을 자신이나 또 다른 사람에게 옮길 수 있다. 이 전이능력이 누군가에게는 축복일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저주일 뿐이다. 축복은 그 고통과 질병을 넘겨준 사람들이고, 저주는 그것을 받는 사람이다. 실제 이런 능력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 능력자는 자신의 삶을 제대로 사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아마 이 소설처럼 악당들에게 끌려가 돈벌이로 이용되면서 사육당할 것이다.

 

소설은 두 인물의 시점으로 이어진다. 하나는 찬의 능력을 본 이창 형사고, 다른 하나는 찬의 능력을 전이받은 동생 란이다. 이창 형사는 조카를 살리기 위해 사이비종교 천령교 교주를 찾아다닌다. 자신의 누나가 교주에 의해 병이 완치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교주의 능력은 가짜지만 찬의 전이 능력이 이것을 기적으로 만든다. 이 사실은 모르는 형사는 열심히 교주만 찾을 뿐이다. 그러다 한 폐건물에서 시체 한 구가 발견된다. 그가 바로 사라진 천령교의 교주였던 한승목 목사다. 절망에 빠진 그에게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이야기가 들린다. 교주의 능력이 아니라 찬의 능력이란 정보다. 이제 좇는 대상이 바뀐다.

 

란의 이야기는 한승목 목사가 어떤 인물이고, 그가 저지른 악행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찬의 능력을 이용해 사이비종교를 만들고, 그 능력으로 기적을 일으킨다. 불치병으로 고생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싸들고 와 그에게 기적을 바란다. 교주는 열성적인 신도에게만 기적을 펼친다. 열성도는 헌금에 달렸다. 이창의 아버지가 전재산을 바쳐 한 번의 기적을 경험한 것이다. 하지만 교주의 아들로 포장된 것 때문에 교단은 파괴된다. 능력자가 없다면 지속될 수 없는 종교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 능력이 란에게 전달된 것은 아직 모른다. 한 목사의 변사체가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 목사의 죽음은 그의 비리와 악행을 세상에 드러나게 만든다. 아이들을 납치해 찬이에게 병을 옮기도록 했다. 이 저주 받은 능력은 질병과 고통을 받을 그릇으로 연약한 아이들을 납치하게 만든다. 한 목사 일행에게는 당연한 일일지 모르지만 찬에게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다. 자신만 죽으면 해결되는 문제였다면 그는 자신이 그 질병과 고통을 안고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쌍둥이 동생 란이 있었다. 동생에게 가해지는 고통 혹은 죽음이 두려워 누군가에서 받은 질병을 납치된 아이에게 옮긴다. 교주가 돈을 많이 벌수록 더 많은 아이가 납치되고, 죽어나간다. 정말 저주 받은 능력이다.

 

작가는 이렇게 능력에 한계를 둔 채 이야기를 만들었다. 특별히 이야기를 확장하지도 않고, 그 능력을 과도하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공간도 작은 지방 도시로 한정한 채 많지 않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빠르게 이야기를 진행한다. 덕분에 빠르게 읽을 수는 있지만 왠지 너무 가지를 쳐 앙상한 느낌이 든다. 란의 능력과 그 한계를 안 이창의 고민이 가슴 깊은 곳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은 마음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가 분석하고, 고민하고, 갈등하고, 결심하는 모습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그 결정이 너무 느렸거나.

 

손과 손의 직접적인 접촉만으로 그 능력이 발현된다는 설정은 또 얼마나 제한적인가. 이 능력을 사용해 정의로운 활동을 하고, 악당을 쳐부술 수도 없다. 누군가의 병을 고친다는 것은 누군가가 그 병을 안고 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악당들에게 이 병을 옮겨준다면 통쾌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다. 육체적 능력이 강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 능력의 예방법까지 알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흥미로운 설정과 전개이지만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시리즈로 만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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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불안에서 이불 안에서
김여진 지음 / 빌리버튼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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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아든 후 작고 아담한 크기가 마음에 들었다. 목차를 보니 참으로 많은 것들이 나와 있다. 그냥 한 번 휙~ 읽고 지나간다. 페이지를 넘기면서 대충 본 책은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의 오만이자 착각이다. 겨우 한 줄 뿐이 페이지도 그냥 대충 읽고 지나갈 수 없었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그의 생각이, 감상이 전체 흐름 속에서 훅하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잠시 머물다 저자의 다른 기록으로 넘어간다.

 

밝고 희망찬 글은 분명 아니다. 힘들어 보이고 실연으로 아파하는 마음들이 곳곳에 보인다. 20대를 지나 30대로 넘어오면서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자신의 감정에 얼마나 충실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살아온 길은 어느 20대와 다르지 않다. 만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고. 그리워하고, 잊고, 잊은 척하고, 다시 새로운 누군가를 만난다. 이 과정 속에서 친구와 나눈 대화가 정제된 글로 표현되기도 한다. 가끔 이 글을 읽으면서 내가 지나온 20대에도 이런 말을 했던가, 하고 의문을 품는다.

 

책 제목은 한 제목의 순서를 뒤바꾼 것이다. 원래는 ‘이불안에서 이 불안에서’가 제목이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 목차를 보니 느낌이 색다르다. 보통 이런 종류의 책은 단숨에 읽는데 왠지 모르게 흐름이 뚝뚝 끊기면서 천천히 읽었다. 집중을 하지 못한 것은 나의 경험과 다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저자가 말한 긴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마음이 글로 표현되었기 때문일까? 그가 읽은 책에서 인용한 문장들이 쉽게 이해되지도 다가오지도 않는 것은 나의 이해력이 떨어져서일까? 또 잠시 머물면서 그 문장을 노려본다.

 

글 속에서 스스로에게 화를 내는 것이 자주 보인다. 사랑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세상 어디에, 누가 사랑을 과거와 쉽게 단절시킬 수 있겠는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고, 이것이 미래로 이어진다. “혼자 있던 것과 혼자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달랐다.”고 했을 때 고독과 외로움이 다르다는 어느 글이 떠올랐다. 저자는 자신의 쓰는 글이 실은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인정하고 있지만 긍정적인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차이와 거리감이 읽을 때 힘겨웠는지도 모르겠다.

 

한밤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새벽 6시면 끝난다. 이 긴 밤으로 여행은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질 수밖에 없다. 이 기록이 한두 동안 쌓였던 것도 아니다. 2008년부터 무려 9년간 기록한 것을 묶었다. 이 긴 시간 동안 그에게 일어난 수많은 일들은 이불 안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견뎌내고, 흘러 보내고,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다. 불안도 외로움도 이별의 아픔도 그냥 이 시간 속에 흘러간다. 책을 묶는 순간 그는 평온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왠지 각 글을 쓴 날짜가 궁금하다. 알면 그의 삶이 어떻게 변했는지 조금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욕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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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된 시간
사쿠 다쓰키 지음, 이수미 옮김 / 몽실북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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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추정시각>의 개정판이다. 원제보다 바뀐 제목이 훨씬 좋다. 처음에는 이 조작된 시간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는데 소설을 읽다가 알게 되었다. 원제를 봤을 때 법의학적 공방이 나올 것이란 예상을 하게 되는데 실제 이 소설은 그런 내용이 아니다. 한 소녀의 유괴 살인이라는 범죄를 둘러싼 국가 권력의 비리와 공범 행위를 다룬다. 이 행위 속에서 무고한 한 청년은 자신의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범인으로 몰리고, 자백을 강요받고, 법정에 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가 의심을 품고, 문제를 한 번이라고 제기했다면 그런 지경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다. 읽으면서 분노하고, 또 분노했다. 이 장면들이 한국의 법정과 경찰로 옮겨지면 그대로 붙여넣기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적수공권으로 성공한 사업가 와타나베 쓰네조의 딸이 유괴된다. 범인이 원하는 금액은 1억 엔이다. 쓰네조는 이 돈을 주더라도 딸을 구하고 싶다. 하지만 경찰은 자신들의 위신이 우선이다. 범인의 잘 짠 계획은 경찰로 인해 무산된다. 그리고 쓰네조의 딸 미카는 죽은 채 돌아온다. 이 시체를 처음 발견한 인물은 마을 청년 고바야시 쇼지다. 용돈벌이용으로 산나물을 따러 왔다가 미카를 발견한다. 신고를 했다면 문제가 없을 텐데 시체를 만지고, 지갑에서 돈을 끄집어낸다. 놀아 돌아오다가 다른 차를 만나기도 한다. 그의 몇 가지 실수와 과거의 범죄 기록이 그의 삶을 바꾼다. 경찰이 그에게 오는 데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바뀐 제목 <조작된 시간>은 범인을 잡기 위한 사망추정시각이 아니다. 범인을 만들기 위해, 경찰 간부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시간을 조작한다. 심문을 하는 형사가 바뀐 사망추정시각에 의문을 크게 품지 않고 자신의 정의로 범인을 만들어간다. 쇼지는 공포심에 그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한다. 경찰의 굿캅, 배드캅 전략에 그냥 넘어간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자백하고, 납치 장소를 만들고, 누명을 뒤집어쓴다. 비극은 어머니가 변호사를 선입했지만 그 변호사가 제대로 된 변호사가 아니란 것이다. 국선보다 못한 변호사는 변론하려는 의지조차 없다. 법원도 아주 간결하게 처리한다.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망가진다.

 

쇼지가 사형을 받는 과정을 보면서 분노했다. 쓰네조의 협박에 겁에 질린 경찰 간부와 그 간부의 요청에 사망추정시각을 바꾼 검시관과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강요하는 형사 모두에게. 범인을 만든다는 의미를 이렇게 잘 보여주는 소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공권력이 지닌 힘은 약자에게 집중된다. 쓰네조의 협박이 두려워, 조직 비리와 자신의 앞날을 위해, 잘못된 정의감과 선입견으로 중첩되어 한 곳으로 집중된다. 좋은 변호사가 나타나 이 모든 비리의 연결고리 속에서 문제점을 지적해도 이들은 공모자가 되어 꼼짝도 하지 않는다. 법정도 마찬가지다. 이 거대한 절벽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통곡하고 절망했을까. 이것과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이란 점이 더 무섭다.

 

한줄기 희망은 변호사 가와이의 열정과 정의다. 자비를 들여 문제점을 파헤치고, 사식비를 넣어주고, 절망에 빠진 쇼지를 일으켜 세운다. 그가 보여준 정의와 열정은 남다르다. 그를 통해 우리는 사법절차 속 문제점을 알게 되고, 조직이란 거대한 괴물이 밖에서 볼 때와 어떻게 다른지 깨닫는다. 조직을 지킨다고 하지만 실제는 개인의 비리를 감추기 위한 것이다. 이 때문에 알면서도 무죄의 한 청년을 감옥으로 보냈다. 절망과 통곡의 벽은 정의로운 변호사 한 사람의 능력으로 무너트릴 수도 넘어갈 수도 없다. 진범을 알아도 그를 고소할 수도 없다. 복잡하게 엮인 관계들은 쉽게 풀리지 않는다.

 

사건 발생과 시체 발견과 사법 부검과 용의자 발견으로 빠르게 이어진다. 심문 과정을 자세히 보여주고, 조서 작성하는 과정이 나온다. 검찰에 넘어간 후 빠르게 재판에 회부되고 판결이 내려진다. 이 일련의 과정을 다루는 소설이 흔하지 않다. 각 부분이나 몇 가지 부분만 다룰 뿐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특이한 소설이다. 무고한 시민을 범죄자로 만들어가는 과정은 분노를 자아내게 하지만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역할도 한다. 조직이 비리를 만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낯설지도 않다. 다만 분노하고 답답할 뿐이다. 억울한 누명을 쓴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없지만 사법부는 이것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현재 한국에서 진행되는 것을 보면 아직 요원하다. 소설은 재미있지만 답답하다. 너무 현실적이라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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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별
엠마 캐럴 지음, 이나경 옮김 / 나무옆의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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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의 고전 공포소설 <프랑켄슈타인>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창작한 고딕 스릴러 소설이다. 실제 메리 셸리가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는 주인공은 어린 소녀 리지다. 리지는 동생을 찾으러 멀리 스위스까지 왔다. 처음 그녀가 문을 두드렸을 때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마침 유령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흑인 하인 펠릭스가 문을 열었을 때 사람들은 리지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셸리가 열심히 마사지를 했다. 자신의 죽은 아기를 생각하면서 정성을 다한 것이다. 이 정성 탓인지 리지는 깨어난다. 그리고 어떻게 자신이 이 먼 곳까지 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액자식 구성이다 보니 열네 살 소녀 리지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이 이야기가 <프랑켄슈타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것은 작가의 창작이자 전체 이야기를 꾸미기 위한 설정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성별과 인종은 이 작품을 다양하게 해석하게 만든다. 흑인 하인 펠릭스가 노예가 아닌 자유인이란 것과 미국을 벗어났다는 사실은 나중에 그에게 낙인된 S자가 의미하는 것과 이어진다. 아직 인종차별이나 노예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시대였기에 이 시대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논의할 거리가 많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리지의 이야기는 미신과 과학이란 두 분야를 엮고 비틀었다. 미신이 비이성적이고, 과학이 이성적이란 이분법이 이 소설 속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혜성이 불길하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비이성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과학자로 나온 인물들이 보여준 행동 역시 이성적이지 않다. 소설 속 과학자인 스타인박사는 천둥의 전기 에너지를 이용해 죽은 자를 살리는 실험을 시도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아는 것과 같다. 동물의 경련을 착각한 과학자들이 이 당시는 적지 않았다. 고집 센 과학자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하려고 한다. 이 실험이 성공일 때는 엄청난 호응을 얻지만 비윤리적이고 실패하면 엄청난 비난을 마주한다. 물론 이 과학 실험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나온다.

 

리지의 이야기는 그녀가 왜 이 먼 스위스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려준다. 동생 펙을 찾기 위해서다. 펙은 동물을 사랑하는 아이다. 이 아이가 셸리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좇아온 것이다. 그리고 리지의 가족사에서 시작하여 이 모험을 시작하게 된 데까지 그 과정을 들려준다. 엄마가 들려준 혜성의 불길함과 마을 축제의 연인 전설 등이 섞여 흘러간다. 그러다 친구 머시가 본 환상이 불길함을 더한다. 엄마의 고집이 부른 불상사다. 번개를 맞은 두 모녀 중 엄마는 죽고 딸은 실명했다. 눈 먼 리지의 삶은 그래도 지속된다. 불편함이 있지만 불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을에 과학자가 이사 오면서 불행은 시작되었다. 아빠가 이사 오는 사람 때문에 나가지 않았다면 엄마가 번개를 맞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이런 비난이나 변명을 다루지 않는다. 엄마의 고집이라고 말하면서 원인을 정확하게 지적한다. 비난의 고리를 만들지 않으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눈이 보이지 않으니 촉감과 소리에 민감해진다. 동물들이 죽었다는 소문이 귀에 들린 것은 그것이 아주 특별했기 때문이다. 한두 마리가 죽은 것이 아니라 모두 죽었다. 마을에 살짝 공포가 깃든다. 이 공포를 일부러 강하게 만들기보다는 몇 가지 상황으로 그 어떤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독자도 그 어떤 것이 무엇일까 추리한다. 나중에 드러난 정체는 완전히 예상을 벗어났다.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다. 알 수 없을 때 더 강하게 다가온다. 어릴 때 본 공포영화를 지금 보면 너무 허술해서 무섭기보다는 웃음이 나온다. 고전 공포영화도 비슷하다. 최근에 본 공포영화는 영상과 음악의 조화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예상하지 못한 장면 전환으로 관객을 놀래킨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이 소설은 아주 약한 공포를 전달한다. 대신에 다른 것으로 그 빈 곳을 채웠다. 리지의 모험과 비워져 있던 역사적 사실의 채울 상상력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은 리지의 동생을 입양하려고 한 메리 셸리의 나이다. 스물한 살에 걸작을 썼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과연 펙의 나이가 입양할만한 나이였을까 하는 것이다. 읽으면서 느끼고 생각한 것이 예상보다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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