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의 임무
할 클레멘트 지음, 안정희 옮김 / 아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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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유명한 SF소설의 재간이다. 이제는 전설이 된 시공사 그리폰북스 시리즈 중 한 권인데 나도 몇 권 가지고 있다. 이 시리즈 중 꽤 많은 수가 재간되었다. 반가운 일이다. 다른 서평가들의 먼저 읽은 감상을 보면 결코 쉬운 책이 아니다. 실제 이 책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나 자신도 어려움을 느꼈다. 중력과 행성의 자전속도와 그곳에 사는 생물의 크기 등이 머릿속에 쉽게 입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을 꼽으라고 한다면 저자의 후기다. 물리학과 천문학 지식이 없다면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물론 이런 지식이 부족하다고 해도 이 책을 읽는 데는 전혀 지장없다.

 

중력과 시간에 대해서는 이미 우리는 영화 <인터스텔라>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이 소설에서는 중력과 시간의 연관성은 다루지 않는다. 이것까지 함께 다루었다면 더 어려운 소설이 되었을지 모르겠다. 이 행성의 중력은 인간의 상상력을 초월한다. 가장 적은 적도 부분이 3G이고, 가장 높은 곳은 700G이다. 1G는 지구의 중력을 의미하는데 실제 인간이 3G만 되어도 생활하는데 아주 큰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데 700G라니... 이 행성에 사는 생물체는 크기가 크지 않다. 인간이 도움을 요청한 무역선의 선장 크기가 40cm이다. 애벌레라는 표현이 나왔을 때 약간 당황한 것은 인류와 다른 생명체가 주인공일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메스클린인 발리넌의 무역선은 이 놀라운 행성을 돌아다니며 무역한다. 이 발리넌이 지구의 찰스를 만나 거래한다. 지구가 중력 700G에서 잃어버린 관측 로켓을 찾아달라는 것이다. 이 무역선은 수만 킬로미터를 오가는데 사실 겨우 40cm 생명체가 어떻게 이런 항해를 할 수 있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3G와 700G의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는지도. 다족류 생명체이고, 결코 높은 곳을 올라가지 않는 이 발리넌이 자신의 승무원을 데리고 어떻게 그 먼 항해를 할지 들여다보는 것은 아주 낯설지만 익숙한 경험이다. 낯선 것은 다른 생명체라 다른 움직임과 생각을 하는 것 때문이고, 익숙한 것은 이들의 모험이 기존 모험 소설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 별의 가장자리로 가는 항해는 결코 쉽지 않다. 거리도, 자연환경도 낯설고 처음이다. 바다로 불리는 곳의 액체는 물이 아니라 메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물질을 찾기 위한 작가의 노력이 후기에 나오니 참고하길. 자전과 중력 등으로 바다는 태풍이 불고, 가끔 심해에서 아주 큰 생명체가 바다 밖으로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생명체의 두께는 일반 도구로 자를 수 없다. 반면에 메스클린인들의 도구는 비교적 쉽게 자른다. 이것은 인간이 입은 우주복을 그들이 쉽게 구멍 낼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직 중력 700G를 견딜 우주복이나 비행선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로 설정했다. 후기에서 말했듯이 이런 우주복이나 기술을 간단하게 설정할 수 있지만 그랬다면 이 소설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발리넌의 엄청난 모험은 결코 혼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지구인이 준 무전기를 통해 진로를 설정하고, 동료들과 함께 이 모험을 진행한다. 이 모험 속에서 발리넌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경험을 하게 된다. 다른 종족이나 비슷한 종족의 카누나 글라이드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자신의 크기의 반 높이에서 떨어져도 큰 충격을 받는 이 매스클린인들은 투척 무기나 하늘을 난다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었다. 찰스를 만나면서 하늘을 나는 것을 처음 보았고, 그들의 과학이 전하는 놀라운 모습에 경이감을 가진다. 물론 그 자신들이 이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아직 그 단계까지 과학이 발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다른 SF소설에서 지구의 과학이 외계의 발전된 과학기술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는 것과도 관계가 있다.

 

앞부분의 중력이나 행성이나 메스클린인에 대한 이해를 넘어가면 한 편의 모험소설처럼 진행된다. 하드SF의 외피 속에 모험소설이 담긴 것이다. 하지만 이 모험 속 곳곳에 과학은 똬리를 털고 앉아 있다. 100미터 높이에서 돌이 떨어지는 시간이 0.5초라는 것과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는 등의 실험이 대표적이다. 이것은 왜 메스클린인들이 높은 곳을 두려워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부력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는 발리넌 등과 그곳에서 관측 로켓을 찾아 중력의 비밀을 파헤치려는 둘은 서로 다른 생각을 한다. 이것이 마지막에 생기는 갈등이지만 한 행성에서는 위대한 도약의 시발점이다. 그리고 계속 꼬리를 무는 생각들 중 하나는 무전기를 통해 교신하는데 중력은 어떤 방해도 되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인터스텔라>를 생각하면 시간도 상당히 다르게 작용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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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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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마션>으로 엄청난 인기를 얻은 앤디 위어의 신작이다. <마션>을 구해놓고 묵혀둔 것이 꽤 되었다. 뭐 이런 일이 빈번하다보니 점점 감각이 무뎌진다. 이 작품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인데 참 재밌게 풀어낸다. 영화의 일부만 본 <마션>도 구성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화성에서 로빈슨 크루소처럼 생존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이다. 과학 지식들이 결코 적지 않은 분량으로 담긴 이 책은 실제 지식이 없다고 해도 보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다. 아는 부분이 많다면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달에 인류가 살고 있는 시대를 다룬다. 그곳의 이름이 아르테미스다. 몇 개의 돔으로 구성된 이 달 도시는 인구가 그렇게 많지 않다. 8천 명 정도다. 하지만 매번 지구에서 달 관광을 오고, 아르테미스는 하나의 작은 도시로 자생한다. 지구 밖에서 인간이 생존하는데 가장 필요한 산소는 예상보다 훨씬 쉽게 구해진다. 알루미늄 생산 과정에 발생하는데 이 용량이 아르테미스 전체 필요량을 초과할 정도다. 각 돔의 벽은 두껍게 쌓여 있고, 시스템으로 도시는 관리된다. 하지만 높은 건설비용은 공간에 대한 비용을 높일 수밖에 없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부자들만으로도 살 수 없다. 부자들이 하기 싫은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소설 속 주인공 재즈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재즈의 직업은 포터다. 물건을 옮겨주는 일을 한다. 단순히 물건만 옮기는 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밀수도 같이 한다. 이 소설의 초반부는 이 달의 도시 아르테미스와 재즈에 대한 설명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 트론 란비크를 만나고, 그의 놀라운 의뢰를 들으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무려 백만 슬러그짜리 의뢰다. 밀수 같은 작은 불법을 저지르지만 이런 놀라운 액수를 주는 불법은 처음이다. 그 일은 도시에 산소를 공급하는 산체스 알루미늄 공장의 수확기계를 파괴하는 것이다. 지구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도 쉽지 않은데 폐쇄도시 아르테미스라면 더욱 어렵다. 하지만 이런 일일수록 천재성은 빛을 발하기 마련이다.

 

재즈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다. 아버지의 직업은 용접공이다. 여섯 살에 달로 이민을 왔다. 그녀의 몸은 달에 최적화되어 있지만 경제력은 아니다. 아버지와 싸워 밖으로 나온 후 혼자 힘들게 벌어 생활한다. EVA길드 시험에서 장비의 노후로 떨어진 후 그녀의 미래는 암담하기만 하다. 이런 그녀에게 트론의 제안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진 그녀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모든 준비를 갖춘 후 실행에 옮긴다. 언제나 그렇지만 모든 계획이 완벽하게 실행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체스의 수확기에게 발견되고, EVA마스터들에게 쫓긴다. 트론의 요청대로 진행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성공했다. 트론을 찾아간 그녀가 그 집에서 발견한 것은 그와 그의 보디가드의 시체다. 이제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달려간다.

 

이 소설에서 누가 살인자인가 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왜 이런 사건이 일어났는지도 그렇게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복잡하게 이야기를 꼬아서 독자의 머리를 아프게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수많은 과학 지식들이 나와 그 상황을 설명하고, 이런 행동을 왜 해야 하는지 알려줄 뿐이다. 트론이 죽은 이유도 너무 빨리 나온다. 재즈의 목숨도 위험하다. 보통의 여자라면 달아나려고만 하겠지만 재즈는 보통의 여자가 아니다. 누가 범인인지,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 상황을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생각한다. 그리고 산체스 알루미늄이 어떤 곳인지도 알게 된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반격이 시작된다.

 

비교적 쉬운 이야기 구조다. 이 구조 속에 살은 채워나가는 것은 달의 도시 아르테미스와 그 속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물들이다. 재즈와 데일, 스보보다, 루디 등의 다양한 인물들과 다양한 직업들이다. 여기에 중간중간 재즈가 지구인 친구 캘빈과 나누는 이메일 통신이 있다. 처음에는 이 통신이 의미하는 바를 몰랐는데 이 이메일이 재즈의 성장과 현재 삶에 비워진 부분을 채워준다. 여기에 작가의 유머 있는 문장과 탁월한 과학 지식을 부드럽게 풀어낸 장면들이 있다.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도시는 완벽하게 작동하고, 그 속에서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읽으면서 가장 먼 든 생각은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것이다. 아니 영화에 최적화된 소설이다. 그의 출세작 <마션>을 빨리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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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리 종활 사진관
아시자와 요 지음, 이영미 옮김 / 엘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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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활이란 인생을 마무리 짓지 위한 활동의 줄임말이다. 이것은 쉽게 말해 영정사진을 말한다. 이 소설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바로 영정사진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미스터리들이다. 모두 네 편이고, 가벼운 미스터리에 가슴 따뜻한 이야기들이다. 각각의 이야기는 특별히 꾸미지 않고 소소한 미스터리 구성되어 있다. 어떤 이야기의 트릭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것이라 쉽게 알 수 있었고, 다른 이야기들도 진실이 밝혀지려는 순간 바로 전에는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만약 이 책을 미스터리 소설이라고 했다면 아쉬움이 더 컸겠지만 이 미스터리들이 한 가족의 사연을 재밌게 풀어내기 위한 설정이다 보니 그 아쉬움은 그렇게 커지 않았다.

 

하나가 외할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아마리 종활 사진관을 찾으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마작의 중을 들고 영정사진을 찍었다는 것도 재밌지만 그보다 할머니의 유산 상속에 대한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마음이 더 컸다. 아마리 종활 사진관의 코디네이터 유메코를 만나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쉽게 단서가 풀리지 않는 와중에 그녀의 연애사와 가정사가 조금씩 풀린다. 제목과 사진관 이름을 생각하면 아마리가 아주 큰 역할을 할 것 같지만 그는 사진사로 있으면서 가끔 그 존재감을 보여줄 뿐이다. 실재 중요한 역할은 유메코와 카메라와 상담 보조인 도톤보리가 다 한다.

 

하나가 이 영정사진을 들고 찾아온 이유는 엄마가 유산 상속에 빠졌기 때문이다. 단지 돈 때문이라면 소송으로 자신의 지분을 찾을 수 있지만 엄마에게 버림받았다는 충격이 더 강하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문을 품은 하나가 아마리 종활 사진관을 찾아와서 상담 내용을 뒤돌아보고, 자료를 내놓고, 추억을 더듬다가 숨겨져 있던 미스터리를 해결한다. 이 미스터리는 너무 유명한 것이라 쉬웠지만 특이한 이력을 가진 할머니의 삶과 하나의 최근 연애사가 엮이면서 재밌게 풀려나왔다. 매년 손자들을 위해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던 할머니다운 삶이라고 해야 하나. 하나가 이 사진관의 일원이 되는 계기이기도 하다.

 

두 번째 이야기는 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영정사진을 아들과 손자와 함께 찍고 싶다고 하면서 생긴다. 어린 손자가 그린 그림과 불행했던 과거사가 풀려나온다. 손자보다 자신의 명성에 더 신경을 쓴 과거가 나오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도 엿보인다. 이 이야기부터 도톤보리의 공감 능력과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매력이 폭발한다. 오해와 이해 부족과 뒤틀린 가족 관계가 엮이고 꼬이면서 만든 현실이 단 하나의 단서로 너무 쉽게 풀린다는 느낌은 있지만 짧은 단편 속에 잘 버무려진 상태다. 영정사진이 꼭 한 사람만 찍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재밌고 신선한 발상이다.

 

방송국 감독이 화제성으로 종활 사진관을 다루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한다. 경영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메코는 반전을 노리지만 감독의 마음을 끄는 사진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 임신한 여자와 남자가 찍은 사진이 발견된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엄마나 아빠의 시한부 삶이지만 그렇게 쉬운 미스터리가 아니다. 방송 출연을 목적으로 과거 연락처로 전화를 하면서 설정이 하나씩 깔린다. 연락이 닿아 풀린 이야기는 기대와 다르다. 하지만 더 깊숙이 들어가고, 조사가 진행되면서 그 영정사진의 비밀이 밝혀진다.

 

한 남자와 두 번 영정사진을 찍었다. 한 번은 미인과 함께 왔고, 다음은 아내가 있는 집으로 불러서 찍었다. 뭔가 이상하다. 영정사진임을 감안하면 한 번으로 충분할 텐데. 물론 이런 생각으로 이어진 것이 모두 읽고 난 후다. 하나의 과거사가 또 하나 흘러나오면서 두 번의 영정사진을 둘러싼 하나의 감정이 섞인다. 일과 개인사의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이 미스터리는 그 대상이 다가오는 순간 풀린다. 생각도 못한 반전이다. 다른 작품에서 본 적이 있지만 이 이야기 속에서 너무 잘 녹아 있다. 물론 결국 다른 이야기처럼 가족 이야기이지만 말이다. 하나의 결심이 만든 결과를 생각하면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진다. 아마리가 어떤 모습을 계속 보여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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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 종교개혁 - 루터의 고요한 개혁은 어떻게 세상을 바꿨는가 지성인의 거울 슈피겔 시리즈
디트마르 피이퍼 외 지음, 박지희 옮김, 박흥식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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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유럽에서는 아주 큰 변화가 시작되었다. 이른바 종교개혁이다. 기독교의 강한 벽에 작은 틈이 생긴 것이다. 이 틈은 중세 유럽을 송두리째 바꾼 변화의 시발점이 된다. 하지만 그 시작은 아주 작은 일에서 비롯했다. 루터가 면벌부 판매에 반대하는 95개조 논제를 대주교에게 보냈고, 이것을 쉬운 독일어로 번역해 공표한 일이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아는 루터의 성경 번역 이전에 있었다. 단순히 루터와 종교개혁으로 알고 있던 역사를 이 책을 입체적으로 그 시대를 다룬다. 루터에 한정하지 않고 이 개혁에 공헌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같이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중세 유럽을 뒤흔든 이 사건을 너무나도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배운 종교개혁은 너무 단순했다. 물론 이 책도 모든 것을 다루기에는 분량이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 당시 루터가 어떤 역할을 했고, 루터의 이 주장이 제후 등과 어떻게 결합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분량과 500주년이란 한계 속에서 더 깊고 은밀한 부분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다는 느낌이 있지만 말이다. 종교개혁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은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롭게 다듬어졌다.

 

다양한 저자가 나와 짧은 글로 종교개혁을 다룬다. 루터만 다루는 경우는 거의 없다. 아니 루터가 잠시 스치듯 나온 적도 적지 않다. 한 수도사가 던진 새롭게 번역된 성경과 만인사제설이란 놀라운 변화는 그 시대의 힘의 역학관계와도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다. 좀 더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중세의 역사 지식도 어느 정도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이 부분의 지식이 많이 부족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다. 단순히 기독교의 부정부패만 가지고 이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보여준다.

 

종교개혁의 성공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은 많은 역사학자들이 말했듯이 인쇄술의 발달이다. 그 시대의 문맹률을 감안할 때 루터의 책들은 엄청난 베스트셀러다. 그리고 루터도 적지 않은 책을 내었다. 이런 출판과 기독교 종교개혁을 둘러싼 교황과 카알 황제와 독일 제후들의 이해관계는 개혁의 속도와 범위를 넓히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의 주장을 따르는 사람들이 등장하고, 새로운 논쟁이 만들어지는 과정 속에 신교의 교세는 점점 불어났다. 오스만 제국의 외부 위협이 더해지는 상황까지 생기면서 내부의 반발을 억누를 수 없게 된 것이다.

 

역사는 처음 의도한 것과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는 경우가 많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마찬가지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중세 시대만 겨냥했고, 그중에서도 특히 중세 교회의 특정한 성사 관행을 겨냥한 것이다. 하지만 16세기의 변화된 환경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처음 의도와 달리. 이 변화는 유명무실했던 사제의 결혼을 인정하는 방향과 새로운 성경 해석으로 다양한 종파로 분화하는 과정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이 과정 속에서 새로운 계급과 권력이 생겼다.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교리 해석과 권력관계를 자세히 풀어야 할 것이다. 이 부분은 많은 충동이 생길 수 있는 부분이다. 칼뱅주의자를 둘러싼 대립 등에서 이미 나왔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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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시즌 모중석 스릴러 클럽 44
C. J. 박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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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피킷 시리즈 첫 권이다. 미국에서는 열일곱 권이 나왔다고 한다. 거의 일 년에 한 권씩이다. 그런데 이제 첫 권이 번역되어 나왔다. 일단 나와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올지 모르지만(개인적으로 모두 나왔으면 좋겠다) 조 피킷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에코 스릴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이것은 피킷의 직업이 수렵감시관이고, 로키산맥과 옐로스톤 공원을 아우르는 와이오밍 주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다. 즉 자연을 소재로 삼았다는 말이다. 이번 작품도 멸종위기종을 둘러싼 갈등 때문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룬다.

 

신참 수렵감시관은 정직하고 바른 인물이다. 이전 수렵감시관 번 더네건은 전설적인 경력을 보유했었다. 조는 웨이시와 함께 번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그는 한 번 큰 실수를 했다. 밀렵하던 오티 킬러에게 총을 뺏긴 것이다. 깊은 산 속에서 순간의 실수로 죽을 수도 있는 순간이다. 다행히 조용히 마무리된다. 하지만 서로 입을 다물기로 한 것이 오티 킬러의 술 때문에 온 동네에 퍼진다. 경력을 시작하는 시점에 작은 흠집을 낸다. 그리고 얼마 후 오티 킬러가 조의 집 뒷간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조는 아주 가정적인 남자다. 대학 시절 만난 아내와 두 딸을 두고 있다. 셋째도 아내의 뱃속에 있다. 적은 연봉이지만 어릴 때부터 원했던 직업을 얻었다. 그의 삶은 행복하지만 아내는 가끔 친구들과 전화를 하면 오랫동안 우울해진다. 자신이 누리지 못하는 삶 때문이다. 하지만 가정은 평온하고 화목하다. 오티의 시체를 발견한 것도 딸 셰리든이 밤에 본 괴물 이야기 때문이다. 경찰에 신고하기 전 오티의 시신에서 아이스박스를 발견한다. 그가 왜 조의 집까지 와서 죽은 것일까? 이전 사건의 앙갚음 때문일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일까?

 

이 시체의 발견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한다. 이 지역을 잘 아는 수렴감시관 웨이시의 도움이 필요하다. 보안관 대리와 함께 셋은 중무장하고 산으로 들어간다. 밀렵꾼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셋은 힘들게 오티가 텐트를 친 곳까지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총격전이 벌어진다. 조는 얼굴에 작은 상처를 입고, 상대방은 죽는다. 그곳에서 여러 군데 총상을 입은 인물은 범인으로 추정된다. 오티의 동료들이 그곳에 죽은 채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왠지 이상하다. 뒤끝이 남는다. 이것을 더 파헤쳐 보려고 조가 노력한다.

 

은퇴한 번은 조를 만나 자신이 일하는 직장을 소개하고, 그를 스카웃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현재 연봉의 3배를 주겠다고 한다. 산을 가로지르는 가스 파이프가 설치되면 퇴락한 마을이 부흥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지역 사람들이 멸종위기종을 발견했을 때, 죽였을 때 어떻게 하는지 자신의 경험담을 말한다. 조는 낮은 연봉 때문에 걱정하고 있는 아내에게 이 소식을 전한다. 삶의 질이 바뀔 수도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물론 이것을 위해서는 자신의 꿈을 접어야 하는 문제가 있지만 너무나도 평범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불만인 장모를 안심시키기는 충분하다.

 

조가 한 축을 담당한다면 큰딸 셰리든도 한몫한다. 그 아이의 역할은 오티가 죽은 곳에서 발견한 동물들이다. 아이는 이 동물이 어떤 종류인지 모르지만 애완동물을 키운다는 느낌으로 먹을 것을 주고 애정을 뿌린다. 조금만 생각하면 이 동물이 모든 사건의 열쇠다. 원인이다. 셰리든은 동물에게 먹이를 주러 갔다가 한 인물에게 그 동물이 어디에 있는지 말하라는 협박을 당한다. 만약 이 사실을 알리면 가족을 죽이겠다고 겁을 준다. 어린 소녀가 이 모든 상황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조의 다른 문제까지 곁들여지면서 상황은 빠르게 변한다.

 

사실 이 소설은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다.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범인이 누군지 알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그렇다고 조가 탁월한 추리력으로 이 모든 상황을 깨닫는 것도 아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 툭툭 튀어나오는 사건들과 조의 열정이 엮이면서 매력적인 장면들로 이어진다. 작위적으로 상황을 어렵고 힘들게 꾸미지도 않는다. 빠르게 읽히는 와중에 캐릭터의 힘과 모든 상황을 감수하겠다는 조의 열정과 폭력이 뒤섞이면서 통쾌함을 선사한다. 앞에서 풀어낸 모습과 다른 모습이다. 이것을 보면서 다음엔 또 어떤 상황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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