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olor of Water (Paperback, Reissue) - A Black Man's Tribute to His White Mother
James McBride 지음 / Riverhead Books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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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버지니아에 의붓 아버지 가까이 묻어 드릴께요.”
“오 아니야. 날 버지니아에 묻지 마. 난 버지니아에서 도망쳐 나왔어. 다시 그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구나.”
“노스캐롤라이나는 어때요? 아버지 계신 곳에 묻어 드릴께요.”
“아니야. 남부에서 도망치느라 평생을 다 보냈어. 도로 남부에 데려다 놓지 마.”
“알았어요. 그럼 뉴욕 어때요 거기서 40년을 사셨잖아요.”
“너무 복닥복닥해. 난 다른 사람 밑에 눌리고 싶진 않구나.”

죽어서 묻힐 곳도 없는 여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녀의 취미는 이사이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십 년 내내 이사 중인 유일한 사람이다. 말 그대로 이사는 곧 엄마의 생활양식이 되었다. 동네에 있는 부동산업자라면 누구하고라도 다 허물없이 지내는 것 같았다.”

묻힐 곳도 없고 정 붙이고 살 곳도 없는 그녀가 태어난 곳은 폴란드의 유대인 게토였다. 폴란드에서 두살까지 산 그녀는 아버지를 따라 뉴욕으로 갔다. 랍비였던 아버지는 어렵지 않게 일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집불통이고 기익적인 그는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했고 아버지를 따라 여기저기를 떠돌아야 했다. 그러다 버지니아의 가난한 촌구석에 가게를 내고 거기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은 그녀의 집이면서 집일 수 없는 곳이었다. 학교에선 예수를 죽인 유대인 계집이라며 따돌림을 당하며 외톨이로 지내야 했다.

당시 남부에선 인종차별이 심했다. 트럭을 타고 KKK단이 돌아다니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고 강에서 ‘니그로’ 시체가 떠올랐다는 말은 심심치 않게 들렸다.

100년전 조상까지 올라가도 노예소유주였던 사람은 드문 그들이 흑인을 깔보고 학대하는 것은 가난하고 별볼일 없는 자신의 상처받은 자존심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학교에서 그녀가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왕따를 당하는 것도 같은 심리였고 그녀는 단지 희생양으로 걸려든 것일 뿐이었다. 그러나 어린 그녀에겐 그런 집단폭력에 저항할 힘도 자존심도 없었다. 애초에 그녀의 환경은 그런 자존감을 키워주지 않았다.

얼마 안되는 유대인들에겐 흑인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집안이라며 무시당해야 했다. 가족조차 그녀에겐 의지할 대상이 아니었다. 자기 차는 매년 새것으로 사면서 아이들 옷은 헌옷이어야 하는 이기적인 아버지. 애초에 미국행 티켓으로서 (그녀의 외가친척들이 뉴욕에 살고 있었다) 결혼했을 뿐이며 소아마비 때문에 몸의 왼쪽 절반을 쓰지 못하는 아내에겐 아무런 애정도 없었고 그걸 비열하게 놀리고 폭력을 휘두르는 아버지, 친딸의 몸을 더듬으며 성적 학대를 하는 아버지.

그녀가 의지할 상대는 어머니와 형제들 뿐이었지만 어머니는 아무런 힘이 없었다. 오빠도 집을 나갔다. 여동생과는 가깝지만 속을 터놓을 정도의 사이는 아니다.

혼자인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인간적으로 다가온 것은 가게에 오는 흑인들이었다. 그녀는 차별받고 가난한,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인 그들이 더 인간답고 밝게 사는 모습을 본다.

그런 그녀가 숨을 돌릴 수 있는 것은 외가가 있는 뉴욕에 방학동안 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외가의 이모들은 (내논 자식으로 처분해버린) 불구인 동생의 딸인 그녀에게 무관심했다. 그저 머물게 해주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다고 여겼다.

그녀는 혼자였다. 혼자인 그녀에게 어느날 이모 공장에 일하는 흑인청년이 들어왔고 그녀는 그와 사랑에 빠진다. 교양이 넘치고 반듯하게 자란 그의 인품과 인간미에 반한 것이다.

흑인과 백인이 결혼하면 남부였으면 죽을 수 있던 시절에 그와 결혼한다는 것은 스캔들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에겐 잃을 것이 없었으니까.

그와의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흑인과 결혼하면서 유대인 사회에서도 절연당하고 백인들에게 외면당하고 흑인들에겐 백인이라고 외면당했지만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가 있을 곳을 같이 있어줄 사람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와 8명의 자식을 남겨둔 채 40대에 남편은 죽는다. “하느님을 먼저 생각해” “머리가 텅 비었는데 돈이 다 뭐냐” 그녀는 목사였던 남편의 방식대로 신앙과 배움을 기준으로 자신만의 성에서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분투한다.

다시 반듯하고 인간미 넘치는 흑인과 재혼해 4명의 자식을 더 얻지만 그녀의 세상은 어디까지나 그녀와 자식들이 머무는 ‘성채’에 머물렀다. 그녀가 있을 곳은 가족이 있는 집 이외에는 어디에도 없었던 것이다.

이후의 이야기는 이책의 저자이며 8째인 아들의 이야기로 전해진다. 자신은 흑인인데 엄마는 백인인 이상한 상황에서 흑인들 동네인 할렘에 살아야 했던 저자는 언제나 자신은 누구인가란 물음을 가지고 살았다. 그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저자가 10대를 보냈던 시절은 인권운동으로 시끄러웠던 시절이었고 흑인들의 저항의식과 정체성에 대한 의식이 강하던 시절이었다. 이책은 어릴 때부터 나는 어떤 사람인가란 질문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그들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서 어머니는 어떤 사람인가란 물음에 답을 하기 위해 쓰인 책이다.

이렇게 보면 이책은 혼혈가족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일 뿐으로 들릴 것이다. 그리고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자식 12명을 모두 대학원까지 보내고 교수, 의사, 교사, 기자, 전문직 공무원으로 만든 억척 어머니의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로 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책이 100주 연속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에 오르고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교재로 쓰인 이유는 그런 것에 있지 않다. 위에서 요약한 것과 같이 미국역사에서 어두운 부분인 인종차별을 대공황 시절 남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어머니의 이야기와 60년대 할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던 저자의 이야기에서 그 차별을 겪으며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상처를 가지고 살아야 햇는가를 평이하고 간결하게 보고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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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패트롤 - 타임 패트롤 시리즈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4
폴 앤더슨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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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체역사 장르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의 첫권에서 읽힌 것은 냉전의 먹구름이었다.

조지 오웰의 1984은 냉전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났던 1948년에 발표되었다. 그의 소설은 냉전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음울하게 예언한 것이었고 뉴욕 타임즈와 같은 유력지들의 극찬을 받았다. 당시 사람들이 느끼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문명에 대한 절망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발표된 이책 역시 당시의 불안감을 공유한다.

이책의 주인공은 2차대전 유럽전선에서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 그는 우연히 시간 순찰대로 해석할 수 있는 타임 패트롤로 채용되어 역사의 흐름에 장난질을 하는 악당들과 싸우게 된다.

그가 그런 직업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그가 첫임무로 빅토리아 시대로 갔을 때의 말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이 시대가 부자연그럽고 딱딱한 격식에 얽매이고, 문명의 탈에 가려진 야만적인 시대였는지, 아니면 몰락 직전의 서구 문명이 피운 마지막 꽃이었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어."

서구문명의 절정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인류의 진보를 믿었고 과학은 절대적인 신뢰를 받던 시절, 그러나 그 시대의 결론은 두번의 세계대전이었고 인류 최후의 전쟁이 될 지도 모를 냉전이었다.

주인공이 2차대전 유럽의 전쟁터와 냉전의 핵우산에서 배운 것은 인간에 대한 냉소였다.

첫 임무에서 그는 역사를 바꾸어 인간의 역사를 더 좋게 만들려는 확신범을 죽인다.

그러나 그가 임무를 맡으면서 배운 것은 더 깊어지는 인간에 대한 냉소일 뿐이다. 어느 시대를 돌아보나 인간은 절망적이었다.

타임패트롤이란 직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는 임무가 늘어갈 수록 회의에 빠진다.

몽골제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진출할 뻔한 사건을 상부의 지시로 없던 일로 만드는 임무에서 동행한 나바호 인디언 동료와의 대화이다.

"그건 다른 종류의 정복이 될 거야. 몽골인들은 그렇게 악랄한 민족이 아냐. 우리는 같은 시대의 유럽인들이 얼마나 잔학하고 고문과 학살을 즐겼는가를 잊고 있네.

사실 몽골인들은 고대 로마인들과 닮은 점이 많아. 저항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짓밝고, 굴복한 자들에겐 권리를 존중해 줬네. 둘다 무력에 의한 보호를 보장했고, 유능한 정부를 가지고 있었네. 상상력이 결여된, 비창조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참된 문화에 대해 막연한 외경심과 선망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도 같네.

잊지 말게 몽골인들이 유목민이었다는 사실을. 백인들이 인디언을 멸절시키는 이유가 되었던 수렵민족과 농경민족 간의 숙명적인 대결 따위는 존재하지 않네. 게다가 몽골인들은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아. 아마 인디언들은 약간의 충돌이 있은 뒤로는 기꺼이 그들에게 복종할 걸세. 그러면 왜 안되지? 그들은 그 대가로 말, 양, 소, 직물, 야금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네. 그리고 중국인들도 이곳에 올 거야. 문명을 가르칠 그들이..."

왜 몽골인들이 아메리카를 차지하게 놔두면 안되는가? 주인공은 묻는다. 망설인다. 그렇게 되면 역사의 라인이 뒤집혀 자신이 살던 세계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렇게 좋은 세계도 아니었어." 어차피 인류는 전쟁에서 재국, 붕괴 그리고 또다시 전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 적이 없다.

왜 놔두면 안되는가? 무엇을 위해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1권의 마지막에 나온다. 마지막 편은 한니발의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져 모든 역사가 뒤집힌 세상을 바로 잡는 이야기이다.

로마제국이 성립하지 않으면서 로마의 경쟁자인 켈트족이 득세하고 게르만족이 밀려난다. 이후의 세계는 켈트족이 유럽을 잡으면서 어떤 세상이 되는가이다.

바뀐 세계에선 1950년대에 겨우 증기기관이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마법을 믿으며 기술은 있지만 과학은 없었다.

"난 그들의 종교에 대해 물어 보았던 거야. 그것은 순수한 다신교였네. 유대교조차 와나전히 사라진 것같고 불교는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어. 화이트헤드가 지적했듯이, 전능한 신이라는 중세적 개념은 만물에는 법칙이 있다는 관념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음으로써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거야."

그리스의 과학과 수학, 철학을 계승하고 기독교를 낳은 로마제국이 사라지면서 이 세계에는 과학이 없었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왜 원래의 역사를 돌려놔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솔직하게 말해서 그는 이 시공 연속체가 자신이 소속된 곳보다 더 나쁘다거나 좋다고 판단할 수가 없었다. 단지 이질적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 역시 존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결국 그를 움직인 것은 추상적인 책임감 따위가 아니라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사소한 일들과 사소한 사람들의 기억인 것이다."

이책은 대중문학인 SF 장르에 속한다. 그에 걸맞게 이책은 모험담을 줄기로 하고 있고 그 위에 위에서 요약한 것과 같은 역사에 대한 저자의 사색을 덧붙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책은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위와 같은 사변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요소는 억제되고 있다.

다시 말해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50년대의 불안감이나 인간에 대한 냉소는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는 전제에서 억제되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게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사색을 따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책을 걸작으로 불리게 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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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드 모네 마로니에북스 Taschen 포트폴리오 13
마로니에북스 편집부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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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리뷰에서 썼듯이 이 시리즈는 대가들의 그림을 큰 판형으로 본다는 것 이외에는 다른 특색이 없다. 언제 어디서 그렸고 어디 소장되어 있으며 원판 크기가 얼마다 소재는 무엇이다는 설명에 2,3줄의 설명이 5개국어로 첨부되어 있는 것 이외에는 14점의 그림 밖에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그런 약점은 이책의 도판 크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책의 판형은 왠만한 달력만하다. 도판의 크기가 크면 여러가지 장점이 있지만 가장 큰 잇점은 원화의 느낌에 더욱 가까이 다가간다는 것이다.

가령 이책에 실린 ‘양산을 든 여인’이나 (영국) 의사당, 수련, 루앙 대성당, 건초더미와 같은 그림을 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 그림들이 인상파 이전 고전파나 낭만파의 그림과 달리 큰 붓 터치로 그려진 그 터치의 질감을 활용하고 있으며 그런 큰 붓질의 질감이 그 그림이 외부에 대한 모사라기보다 그림 자체로서의 존재감을 갖게 하는데 기여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는 우리가 보아온 작은 도판으로는 역부족이다.

그런 분석을 미술사에서 보았을 수도 있지만 미술사에 실린 작은 도판에서 그런 설명이 이해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거의 달력크기인 이 책의 도판은 그런 미술사의 설명이 아주 자연스럽게 이해되도록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책의 약점이, 14점 뿐이라는 약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가격에 이런 크기의 그림을, 우리가 익히 보아 알고 있는 그림들을 타쉔의 충실한 촬영과 제대로된 인쇄로 즐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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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 누구나 한번은 꼭 가봐야 할 대한민국 핵심 여행지, 개정증보판
이두영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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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책은 여행 가이드이다. 이책의 목적은 국내의 자연풍광이 좋은 여행지를 최대한 많이 소개하는데 있다. 그래서 이책의 편제도 바다 산 꽃 강과 같이 자연풍광을 위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책의 목차만 본다면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요즘 왠만한 여행서면 300페이지는 넘는데 250페이지 정도에 소개하는 장소는 왜 이렇게 많은거야? 별 내용이 없겠군.

그러나 이책의 샘플만 읽어도 그런 생각이 기우였다는 것을 아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물론 이책에서 장소 한 곳을 소개하는 분량은 큼직한 사진들까지 포함해 5-6 페이지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자는 적은 지면에 정보를 압축해넣는 요령이 있다.

저자는 각 장소에 대한 소개를 간지러운 문체로 시작한다. 가령 남해 파래밭을 소개하는 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경남 남해 바다는 늘 봄의 향기가 난다. 해산물이 넉넉하고 공장도 없어 공기가 보르네오 숲에서 뽑아온 것보다 더 깨끗하게 느껴진다.” 대단히 주관적인 감상문이다. 개인적으로 이런 문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정보의 기준이 불분명하고 정보량 자체가 그다지 없는, 영양가 없는 문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류의 글에서는 오히려 그런 문체가 정보를 압축하는데 더 효율적이다. 이책이 소개하는 장소를 왜 가는가? ‘느낌’ 때문에 가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런 느낌을 전달하는데 감상문 같은 문체는 더 효율적일 수 있다. 그리고 주관적인 편향을 수정하는 ‘사진’이란 수단이 풍부하게 제공되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책의 저자는 그런 감상적인 문체만으로 책을 채우는 것은 아니다. 그런 문체는 서두에 그친다. 나머지는 그 곳에서 보아야 할 것들이 무엇이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그 장소들을 찾아가는 저자의 동선을 따라 그곳에 대한 정보를 압축적으로 소개한다.

이책은 여행지를 돌아본 저자의 감상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런 장소가 무엇이 좋은가를 소개하는 가이드북이다. 저자는 그런 가이드북의 목적에 충실한 문체를 구사하고 있다. 요령있는 글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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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의 첩자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8
해리 터틀도브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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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대체역사 장르에선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대체역사 장르의 작품들은 보통 'What if'란 질문에 대한 한가지 가정에서 글을 시작한다. 이책은 이슬람이 역사에 없었다면 비잔틴 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란 질문에 대한 저자의 역사적 상상을 그리고 있다.

이책의 저자는 무하마드가 이슬람을 세우지 않고 기독교로 개종해 추기경이 되고 대주교로 삶을 마감한 다음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14세기 비잔틴 제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비잔틴 제국의 멸망원인은 모든 제국이 그러했듯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거대한 제국들과 달리 비잔틴 제국의 치명상은 잦은 외침이었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 등의 외침에 시달리며 힘을 소진하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이슬람의 팽창이었고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것도 이슬람이었다.

이책은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14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이슬람이 없었기에 비잔틴 제국은 멸망하지 않았고 프랑스 중부와 북부와 영국과 서독일 지역을 제외하면 로마제국 전성기 시절의 영토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제국이 그러했듯이 비잔틴 제국 역시 밖으로부터의 무너진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Byzantine을 소문자로 쓰면 영어에선 복잡하다, 권모술수에 능하다, 현학적이다, 등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이책은 그러한 부정적 의미가 의미가 왜 생겼는가를 잘 보여준다.

복잡하다는 뜻이 생긴 것은 현실보다는 파피루스(로마제국 시절부터 공문서는 파피루스를 사용했다) 더미를 처리하는 것을 더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제국의 관료들때문이었다. 2천년에 가까운 세월의 무게는 온갖 허식을 퇴적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위관료인 주인공의 업무들을 보여주면서 저자는 왜 그런 말이 생기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권모술수는 모든 궁정의 특징이다. 그러나  비잔틴의 권모술수는 다른 어떤 궁정보다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기도 한 제도 덕분에 정치는 세속관료와 교회관료까지 참여하는 미로와 같이 되었었다.

이책에서 저자는 우상파괴주의자들을 제지하기 위한 종교회의의 이야기를 다룬 장에서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현학적이란 의미는 비잔틴 제국인들의 종교성향 때문에 생긴 말이다. 로마제국의 특징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로마인들의 학문은 정치가의 연설을 위한 수사학, 행정을 위한 법률, 그리고 제국의 인프라를 위한 건축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중심이 철학과 수학 같은 관념적 학문을 낳은 그리스로 옮겨지고 지상의 양식이 아니라 하늘의 양식을 말하는 기독교가 제국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서 로마제국의 기풍은 사라진다.

이책의 저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선 무조건 악마의 짓이다 마법이다는 말을 해대는 제국인들을 묘사한다. 주인공은 망원경을 보고 악마의 마법이라 생각한다. 화약을 처음 사용한 폭탄을 보고 제국군은 악마와 싸울 수 없다며 지리멸렬한다.

물론 이책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대체소설은 보통 미국에선 SF의 하위장르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대체역사에 첩보물, 모험물, 로맨스물 등의 테크닉이 동원되어 있고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그렇기만 하다면 이책을 아시모프가 추천하고 자신이 주관하는 시리즈에 간행되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시모프가 그렇게 한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런 재미 아래에 깔린 비잔틴 제국의 일상들 덕분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책은 재미를 주는 대중소설이면서 역사책에선 느끼기 힘든 비잔틴 제국의 일상을 들여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소설로서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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