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패트롤 - 타임 패트롤 시리즈 1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14
폴 앤더슨 지음, 강수백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대체역사 장르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 시리즈의 첫권에서 읽힌 것은 냉전의 먹구름이었다.

조지 오웰의 1984은 냉전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로 나타났던 1948년에 발표되었다. 그의 소설은 냉전으로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음울하게 예언한 것이었고 뉴욕 타임즈와 같은 유력지들의 극찬을 받았다. 당시 사람들이 느끼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문명에 대한 절망을 대변했기 때문이다. 1950년대에 발표된 이책 역시 당시의 불안감을 공유한다.

이책의 주인공은 2차대전 유럽전선에서 장교로 복무한 경험이 있다. 그는 우연히 시간 순찰대로 해석할 수 있는 타임 패트롤로 채용되어 역사의 흐름에 장난질을 하는 악당들과 싸우게 된다.

그가 그런 직업을 받아들이게 된 이유는 그가 첫임무로 빅토리아 시대로 갔을 때의 말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이 시대가 부자연그럽고 딱딱한 격식에 얽매이고, 문명의 탈에 가려진 야만적인 시대였는지, 아니면 몰락 직전의 서구 문명이 피운 마지막 꽃이었는지 결론을 내리지 못했어."

서구문명의 절정이었던 빅토리아 시대, 인류의 진보를 믿었고 과학은 절대적인 신뢰를 받던 시절, 그러나 그 시대의 결론은 두번의 세계대전이었고 인류 최후의 전쟁이 될 지도 모를 냉전이었다.

주인공이 2차대전 유럽의 전쟁터와 냉전의 핵우산에서 배운 것은 인간에 대한 냉소였다.

첫 임무에서 그는 역사를 바꾸어 인간의 역사를 더 좋게 만들려는 확신범을 죽인다.

그러나 그가 임무를 맡으면서 배운 것은 더 깊어지는 인간에 대한 냉소일 뿐이다. 어느 시대를 돌아보나 인간은 절망적이었다.

타임패트롤이란 직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그는 임무가 늘어갈 수록 회의에 빠진다.

몽골제국이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진출할 뻔한 사건을 상부의 지시로 없던 일로 만드는 임무에서 동행한 나바호 인디언 동료와의 대화이다.

"그건 다른 종류의 정복이 될 거야. 몽골인들은 그렇게 악랄한 민족이 아냐. 우리는 같은 시대의 유럽인들이 얼마나 잔학하고 고문과 학살을 즐겼는가를 잊고 있네.

사실 몽골인들은 고대 로마인들과 닮은 점이 많아. 저항하는 지역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짓밝고, 굴복한 자들에겐 권리를 존중해 줬네. 둘다 무력에 의한 보호를 보장했고, 유능한 정부를 가지고 있었네. 상상력이 결여된, 비창조적인 국민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참된 문화에 대해 막연한 외경심과 선망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도 같네.

잊지 말게 몽골인들이 유목민이었다는 사실을. 백인들이 인디언을 멸절시키는 이유가 되었던 수렵민족과 농경민족 간의 숙명적인 대결 따위는 존재하지 않네. 게다가 몽골인들은 인종적 편견을 가지고 있지 않아. 아마 인디언들은 약간의 충돌이 있은 뒤로는 기꺼이 그들에게 복종할 걸세. 그러면 왜 안되지? 그들은 그 대가로 말, 양, 소, 직물, 야금 기술을 손에 넣을 수 있네. 그리고 중국인들도 이곳에 올 거야. 문명을 가르칠 그들이..."

왜 몽골인들이 아메리카를 차지하게 놔두면 안되는가? 주인공은 묻는다. 망설인다. 그렇게 되면 역사의 라인이 뒤집혀 자신이 살던 세계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그렇게 좋은 세계도 아니었어." 어차피 인류는 전쟁에서 재국, 붕괴 그리고 또다시 전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한 적이 없다.

왜 놔두면 안되는가? 무엇을 위해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1권의 마지막에 나온다. 마지막 편은 한니발의 2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가 져 모든 역사가 뒤집힌 세상을 바로 잡는 이야기이다.

로마제국이 성립하지 않으면서 로마의 경쟁자인 켈트족이 득세하고 게르만족이 밀려난다. 이후의 세계는 켈트족이 유럽을 잡으면서 어떤 세상이 되는가이다.

바뀐 세계에선 1950년대에 겨우 증기기관이 움직이고 있었고 사람들은 마법을 믿으며 기술은 있지만 과학은 없었다.

"난 그들의 종교에 대해 물어 보았던 거야. 그것은 순수한 다신교였네. 유대교조차 와나전히 사라진 것같고 불교는 그다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어. 화이트헤드가 지적했듯이, 전능한 신이라는 중세적 개념은 만물에는 법칙이 있다는 관념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음으로써 과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거야."

그리스의 과학과 수학, 철학을 계승하고 기독교를 낳은 로마제국이 사라지면서 이 세계에는 과학이 없었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 왜 원래의 역사를 돌려놔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무엇을 위해서? 솔직하게 말해서 그는 이 시공 연속체가 자신이 소속된 곳보다 더 나쁘다거나 좋다고 판단할 수가 없었다. 단지 이질적일 뿐이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 역시 존재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단 말인가?"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묻는다. "결국 그를 움직인 것은 추상적인 책임감 따위가 아니라 그의 뇌리에 각인되어 있는 사소한 일들과 사소한 사람들의 기억인 것이다."

이책은 대중문학인 SF 장르에 속한다. 그에 걸맞게 이책은 모험담을 줄기로 하고 있고 그 위에 위에서 요약한 것과 같은 역사에 대한 저자의 사색을 덧붙인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책은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는 전제 위에서 위와 같은 사변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요소는 억제되고 있다.

다시 말해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은 50년대의 불안감이나 인간에 대한 냉소는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읽혀야 한다는 전제에서 억제되고 있다.

그러나 재미있게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작가의 사색을 따라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이책을 걸작으로 불리게 한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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