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잔티움의 첩자 행복한책읽기 SF 총서 8
해리 터틀도브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이책은 대체역사 장르에선 고전에 속하는 책이다. 대체역사 장르의 작품들은 보통 'What if'란 질문에 대한 한가지 가정에서 글을 시작한다. 이책은 이슬람이 역사에 없었다면 비잔틴 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란 질문에 대한 저자의 역사적 상상을 그리고 있다.

이책의 저자는 무하마드가 이슬람을 세우지 않고 기독교로 개종해 추기경이 되고 대주교로 삶을 마감한 다음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14세기 비잔틴 제국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비잔틴 제국의 멸망원인은 모든 제국이 그러했듯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다른 거대한 제국들과 달리 비잔틴 제국의 치명상은 잦은 외침이었다. 게르만족과 슬라브족, 중앙아시아의 유목민족 등의 외침에 시달리며 힘을 소진하면서 서서히 죽어갔다. 그러나 비잔틴 제국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이슬람의 팽창이었고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것도 이슬람이었다.

이책은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14세기를 배경으로 한다. 그러나 이슬람이 없었기에 비잔틴 제국은 멸망하지 않았고 프랑스 중부와 북부와 영국과 서독일 지역을 제외하면 로마제국 전성기 시절의 영토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제국이 그러했듯이 비잔틴 제국 역시 밖으로부터의 무너진 것이 아니라 안으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Byzantine을 소문자로 쓰면 영어에선 복잡하다, 권모술수에 능하다, 현학적이다, 등의 의미가 된다. 그리고 이책은 그러한 부정적 의미가 의미가 왜 생겼는가를 잘 보여준다.

복잡하다는 뜻이 생긴 것은 현실보다는 파피루스(로마제국 시절부터 공문서는 파피루스를 사용했다) 더미를 처리하는 것을 더 본질적으로 생각하는 제국의 관료들때문이었다. 2천년에 가까운 세월의 무게는 온갖 허식을 퇴적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고위관료인 주인공의 업무들을 보여주면서 저자는 왜 그런 말이 생기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권모술수는 모든 궁정의 특징이다. 그러나  비잔틴의 권모술수는 다른 어떤 궁정보다 복잡할 수 밖에 없었다. 황제가 교회의 수장이기도 한 제도 덕분에 정치는 세속관료와 교회관료까지 참여하는 미로와 같이 되었었다.

이책에서 저자는 우상파괴주의자들을 제지하기 위한 종교회의의 이야기를 다룬 장에서 세속권력과 종교권력이 어떻게 얽히는지를 잘 보여준다.

현학적이란 의미는 비잔틴 제국인들의 종교성향 때문에 생긴 말이다. 로마제국의 특징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었다. 로마인들의 학문은 정치가의 연설을 위한 수사학, 행정을 위한 법률, 그리고 제국의 인프라를 위한 건축이었다. 그러나 제국의 중심이 철학과 수학 같은 관념적 학문을 낳은 그리스로 옮겨지고 지상의 양식이 아니라 하늘의 양식을 말하는 기독교가 제국인의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서 로마제국의 기풍은 사라진다.

이책의 저자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선 무조건 악마의 짓이다 마법이다는 말을 해대는 제국인들을 묘사한다. 주인공은 망원경을 보고 악마의 마법이라 생각한다. 화약을 처음 사용한 폭탄을 보고 제국군은 악마와 싸울 수 없다며 지리멸렬한다.

물론 이책은 역사소설이 아니다. 대체소설은 보통 미국에선 SF의 하위장르로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대체역사에 첩보물, 모험물, 로맨스물 등의 테크닉이 동원되어 있고 대중적으로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책이다. 그러나 그렇기만 하다면 이책을 아시모프가 추천하고 자신이 주관하는 시리즈에 간행되도록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시모프가 그렇게 한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런 재미 아래에 깔린 비잔틴 제국의 일상들 덕분이다. 다시 말하자면 이책은 재미를 주는 대중소설이면서 역사책에선 느끼기 힘든 비잔틴 제국의 일상을 들여볼 수 있게 하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역사소설로서 재미있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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