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기원 - 최첨단 경제학과 과학이론이 밝혀낸 부의 원천과 진화
에릭 바인하커 지음, 안현실.정성철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자들에게 정말 충격을 준 것은 경제학이 또 다른 시대로 후퇴한 것으로 보였다는 점이다. (산타페 연구소의) 미팅에 참가한 한 사람은 나중에 그날 미팅에서 경제학을 접하고 보니 자기가 최근 쿠바를 여행햇던 기억이 다시 생각나더라고 논평했다. 쿠바는 미국의 경제봉쇄로 거의 50년 넘게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었다. 거리는 이미 퇴출된 자동차 브랜드인 1950년대의 패커드와 데소토로 꽉 차있었다. 그토록 오랜 기간 여기저기서 수집한 폐품들과 소련제 트랙터의 끄트러기나 잡동사니들을 가지고 이런 자동차들이 계속 굴러다니게 해온 쿠바 사람들의 독창성에 놀랐는게 얘기의 골자엿다. 한마디로 경제학의 많은 부분이 이 물리학자에게는 바로 쿠바 자동차와 유사하게 느껴졌다는 얘기다. 과학자들의 눈에 경제학은 지난 수십년동안 과학적 진보와의 접촉 없이 그 자신의 지적 봉쇄에 갇힌 채 독창적으로 이론을 수정, 확장, 갱신하면서 굴러온 것처럼 보였다.”

물리학자들이 놀란 것은 자신들은 이미 예전에 폐기처분한 19세기 뉴튼역학이란 유령이 경제학의 패러다임에선 신주단지로 모셔진다는 것이었다. 뉴튼역학이 폐기된 것은 더 이상 현실과 맞지 않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반균형이란 개념이 문제엿다.

“19세기 후반 이후 경제학을 구성하는 패러다임은 경제는 하나의 균형 시스템 특히 정지 상태의 시스템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경제학자들이 영감을 얻은 곳은 물리학이었다. 그중에서도 운동과 에너지의 물리학이다. 전통적 경제이론에서는 경제를 큰 사발 그릇 멭에서 굴러다니는 고무공과 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궁극적으로 공은 사발 밑바닥에 멈추면서 정지 내지 균형 상태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어떤 외부적인 힘으로 사발이 흔들리거나 기울어지는 경우 혹은 충격을 받는 경우 공은 새로운 균형점으로 이동하겠지만 그전까지는 그 상태로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제에는 사발 안의 공과 같은 균형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균형을 가정하기 때문에 예를 들어 시장의 공급과 수요는 균형상태이다. 수급불균형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불균형은 사발 안의 공처럼 외부의 힘에 의해서만 일어나는 예외적인 경우이다. 사발 안의 균형을 복원력을 갖기 때문에 그 힘이 소진되면 언제나 균형은 회복된다.

그러나 “현실 시장은 공급과 수요가 같아지는 상황에 결코 있지 않으며 시장은 거의 균형에 이르지 못한다. 실제로 많은 시장들은 균형보다는 불균형이란 가정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대부분의 시장을 보면 재고, 주문잔고, 여유생산능력, 그리고 이런 불균형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중개자들이 존재한다. 당신이 살고 잇는 지역의 자동차 딜러는 천천히 팔리는 차들로 가득찬 주차장을 갖고 있고 소비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인기 차종에 대해서는 주문 잔고를 갖고 잇다. 당신 지역의 슈퍼마켓은 거의 균형상태에 있지 않다. 가게 뒷문으로 수송되어 오는 식료품 공급과 가게 앞문에서 빠져나가는 수요 사이의 불균형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가게의 재고가 오르락내리락하기 때문이다. 이론적인 사장에 가장 가까운 시장으로 볼 수 잇는 금융시장조차 불가피학5ㅔ 공급과 수요 간 불균형을 다루는 메커니즘을 갖고 잇다. 뉴욕증권거래소에는 많은 전문가들이 있고 나스닥에는 시장을 만드는 사람들이 잇는데 이들 모두 공급과 수요 사이의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해 존재한다.”

경기변동은 그런 시스템 내재적인 불균형 때문에 일어난다(경기변동에 관해선 라스 트비드, ‘비즈니스 사이클’이 좋은 시작이다). 키친 사이클이니 쿠즈네츠 사이클, 콘트라디에프 사이클 등 경제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사이클이 그렇다. 경제학자들도 익히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시스템의 상태를 정적인 균형으로 가정하기 때문에 경제학의 패러다임에선 그런 사실을 포함할 수 없다.

“균형을 위해 지불한 또 다른 대가는 시간에 대한 이상한 관점이다.” 뉴튼역학에선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 사발의 공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가역적이기 때문이다. 시간은 비가역적으로 흐르므로 가역적 균형을 가정하는 뉴튼역학은 시간을 설명할 수 없다.

그러므로 뉴튼역학의 균형을 받아들인 “전통 경제 모델은 실제로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은 현실 세계의 경제현상에서는 의심할 여지 없이 중요한 변수다. 물건을 디자인하고 만들고 수송하고 팔고 정보를 얻고 의사결정을 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는 경제의 역동성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요점은 우리가 이런 시간척도를 모른다면 시스템이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 이야기할 게 별로 없다는 얘기다. 그러나 복잡한 동적인 측면과 현실 세계의 시간 척도를 전통 경제학의 균형 개념과 결합하는 모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간을 포함할 수 없으니 경제학은 왜 변화가 있는가를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변화는 현실이니 설명은 해야 한다. 그 결과 변화를 경제학 밖으로 밀어내고 외생변수라는 말로 처리해버린다. 사발 안의 공이 움직이는 이유처럼 말이다. “가장 흥미로운 궁금증들을 경제학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버렷다. 기술 변화를 돌발적인 외부의 힘(기후처럼)으로 취급하면 기술 변화와 경제 변화같은 상호 작용에 관한 근본적인 이론은 필요치 않다. 마찬가지로 경기 사이클도 외부의 힘, 예컨대 소비자 신뢰의 변화라든지 뉴스에 따른 주식시장의 추락 등 같은 신비로운 바깥의 힘 탓으로 돌려 버릴 수 있다.”

문제는 경제학의 범위만이 아니다. 한 세기가 넘는 동안 경제학은 “비현실적 가정에서 출발해 수학적 불가피성에 따라 어떤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가정이 비현실적이기에 그들은 잘못된 문제를 풀었고 문제의 답도 잘못될 수 밖에 없었다. Garbage in garbage out.

산타페 연구소의 미팅에서 “물리학자들은 경제학자들의 가정에 충격을 받앗다. 가정에 대한 테스트는 현실과 부합하느냐가 아니라 이 가정이 이 분야의 공통적인 흐름인가 아닌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나는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던 필 앤더슨이 ‘경제학자들 당신들은 실제로 그렇게 믿는가?’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궁지에 몰린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햇다. ‘이런 가정이 있어야 문제를 풀 수가 잇다. 만약 당신이 이런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그러자 물리학자들은 이렇게 대답햇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그렇게 해서 당신들이 얻는 것이 무엇인가?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당신들은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경제학자들도 바보가 아니니(오히려 ‘지나치게’ 똑똑하다) 그 비현실성을 모를 수 없고 현실에 가까워지려 노력했다. 그러나 모델의 근본에 있는 균형이란 개념이 경제와는 무관한 것이기에 균형이란 개념을 버리기 전엔 어떤 시도도 쓸모가 없어진다.

균형이란 개념에 현실이 맞아들어가지 않으니 현실을 개념에 맞게 조작해야 햇다. “복잡하고 역동적인 경제를 단순하고 정태적인 균형이라는 박스 안에 집어 넣기 위해 경제학자들은 증거없는 전제들을 만들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어 “현실 세계는 매우 복잡한 상황에 직면한 정말 단순한 사람들로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텐데도 경제학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상황에 너무나 머리 좋은 사람들’로 모델화”되었다. 현실을 모델에 맞추려니 전지전능한 신이라도 된듯 모든 정보를 알고 잇고 비현실적으로 이기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필요햇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에 물리학자, 화학자., 생물학자들의 관심은 그런 균형상태와는 거리가 먼 역동적이고 복잡한 그리고 단 한번도 정지 상태에 접어들지 않는 시스템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은 이런 형태의 시스템을 복잡계라고 규정하기 시작했다.

뉴튼역학의 시스템은 닫힌 계이다. “닫힌 계는 어떤 다른 시스템과의 상호작용이나 소통이 없는 시스템이다. 닫힌 계에서는 어떤 에너지, 물질 또는 정보가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않는다. 우주 자체가 하나의 닫힌 계다.” 에너지의 유출입이 없으니 시스템 내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다(열역학 제1법칙). 그리고 열역학 제2법칙에 따라 ‘닫힌 계에서 총 엔트로피는 언제나 증가하면서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되는데 이는 질서가 무질서로 바뀌어 가면서 궁극적으로 시스템이 정치하는 것에 따른 것이다.” 뉴튼역학의 균형이란 엔트로피가 최고가 되어 정지된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경제학은 경제가 그런 상태라 말한다.

그러나 “닫힌 균형 시스템에서는 순간적으로 자기조직화를 하는 일도 없고 패턴이나 구조, 복잡성이 발생하는 일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간이 흐르더라도 새로움이란 게 창조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당신의 창 밖에 있는 경제의 모든 움직임 예컨데 그 시끄러움, 조직, 그리고 활동은 단힌 균형 시스템의 산물일 수 없다.”

“경제는 닫힌 균형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불균형 시스템이다.” 저자는 균형과 달리 경제를 열린 시스템이라 분류하는 것은 은유가 아니라 말한다.

“사회 시스템은 물질, 에너지 그리고 정보들로 이루어진 현실적인 물리적 시스템이다. 물리적 경제는 현실적으로나 물리적으로나 엄청난 에너지를 매일 그 속에 쏟아붓고 있다. 이 덕분에 경제가 작동한다. 에너지는 경제에 들어와 엔트로피에 대항할 힘을 주고 질서를 창조한다. 마찬가지로 경제는 제2법칙에 순응한다. 쓰레기, 오염, 온실가스, 그리고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등 둘러싸고 있는 우주로 무질서를 다시 돌려보낸다.

경제는 단순히 은유적으로 열린 계와 비슷한게 아니다. 말 그대로 물리적인 열린 계들로 이루어진 집합에 속하는 시스템이다. 누가 경제에 공급될 에너지를 끊어버리면 다시 말해 음식물, 석유, 가스 등을 끊어버리면 엔트로피는 더 이상 저항이 없는 상황이 될 것이고 경제는 정말로 균형으로 이동할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는 나라가 콩고에서처럼 전쟁으로 박살이 났을 때나 북한에서처럼 정치 지도자들 때문에 고립될 때 이런 상황을 본다.”

사회 시스템이, 경제가 열린 시스템이란 말은 복잡계란 뜻이다(복잡계에 대해선 다른 리뷰(http://blog.naver.com/qrat/20119554674 )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므로 여기선 생략한다. 더 자세한 것을 원한다면 이책 자체나 SERI에서 나온 ‘복잡계 개론’ 또는 뷰캐넌의 ‘세상은 생각보다 단순하다’를 추천한다)

저자는 복잡계의 이미지는 이렇게 그린다. “고립되어 존재하는 물 분자는 좀 지루하다 그러나 수십억 개의 물 분자를 모아 놓고 에너지를 가하면 소용돌이 같은 복잡한 거시적 패천이 나타난다. 이런 형태의 소용돌이는 개별 물 분자들 간 역동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다 하나의 물 분자로는 이런 소용돌이를 만들 수 없다. 정확히 말하면 물 소용돌이는 시스템 그 자체의 집단적인 또는 창발적인(emergent) 특성이다.”

물분자의 상호작용이 거대한 소용돌이를 만들듯이 사람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경제와 같은 거대한 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단순히 열린 시스템으로 보는 것만으로 전통 경제학의 거추장스러운 가정들 없이 경제를 설명할 수있고 현실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그 예로 슈거스케이프(간단한 요약은 http://en.wikipedia.org/wiki/Sugarscape 참조)를 든다. “전통적인 미시경제학 모델은 소비자, 생산자, 기술, 그리고 시장이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거시경제학 모델 역시 화폐, 노동시장, 자본시장, 정부 그리고 중앙은행 같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 모델은 그런 것들을 가정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조건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모델링해 경제질서가 어떻게 창발(emerge)하는지 보여주는 것이 이 모델의 목적이다.

슈거스케이프 모델은 행위자와 환경(2차원 그리드) 그리고 행위자와 환경, 행위자와 행위자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간단한 규칙으로 구성된다. 전형적인 슈거스케이프 모델에서 행위자는 그리드의 셀을 돌아다니며 설탕(또는 향료가 더해지기도 한다)을 찾고 먹는다. 시나리오에 따라 규칙을 확장하면 설탕(또는 향료)를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저장, 대여, 거래, 상속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모델은 행위자들의 상호작용만으로도 80:20으로 알려진 파레토 법칙 또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물론 거래 네트웤의 허브(현실에선 도시에 해당하는)의 출현, 은행의 등장 등을 관찰할 수 있다. 그 모든 것은 모델 자체에서 그리고 수요공급곡선에 따른 가격결정도 나타난다. 그러나 “슈거스케이프 경제가 순간적으로 근사한 X자 모양의 수요공급곡선을 만들어냈지만 거래가 이루어진 실제의 가격과 수량은 결코 이론적으로 예측된 균형점이 아니었다. 슈거스케이프에서 가격은 어떤 끌어당기는 것, 즉 인력체 주변에서 역동적으로 움직이지만 실제로 균형에 안착하는 일은 결코 없다.” 현실에서 가격이 균형에 있지 않듯 슈거스케이프 역시 그러했다. 이 모델에서 균형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현실세계와 마찬가지로 시간에 따라 일이 전개되고 또 거래 상대방을 찾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경제학이 말하는 일물일가 법칙이 나타나지 않고 같은 물건에도 다양한 가격이 매겨지고 그 가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시장을 그냥 가정하는 전통경제학과 달리 슈거스케이프는 현실의 사회를 시뮬레이트하기 위한 간단한 규칙만 가정하고 그 규칙에 따른 상호작용에 따라 물분자들이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듯 실제 경제 시스템이 창발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모델은 전통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요소들 중 많은 것을 재생해 보였다. 비현실적인 가정들의 구속을 전혀 받지 않는 모델을 통해 이런 고전적인 결과들을 보여 주었다. 행위자들은 초인적인 합리성이라는 힘을 가진 존재라 가정하지 않았다. 미리 존재하는 사회적 또는 경제적 구조를 가정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순간적으로 발생한다는 점도 가정하지 않았다. 슈거스케이프는 저자가 경제학에 대한 진실로 새로운 접근이라 믿는 것과 관련하여 하나의 예증을 제시해준다.”

그러려면 먼저 경제현실에 대한 가정을 구성해야 한다. 저자의 방법은 균형이란 개념에 현실을 맞추기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가 무엇인가란 질문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창발된 시스템 아래의 행위자부터 이해해야 한다. 행위자의 상호작용이 네트웤을 만들고 그 네트웤이 시스템으로 창발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행동경제학의 행위자 모델링에서부터 시작한다(행동경제학에 대해선 여러 리뷰에서 다루었으므로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복잡계 경제학은 아직 초보단계일 뿐이기에 복잡계 경제학을 구축하는 작업은 기존 이론에 대한 개괄에서 시작할 수 밖에 없다. 저자가 전통 경제학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복잡계 이론, 네트웤 이론에 대해서도 행동경제학에 대해서도 교과서 쓰듯이 자세히 다루는 이유이다. 실제 이책에 인용되는 연구사례들은 다른 개괄서에도 다루어진다. 그러므로 리뷰에서 그것을 요약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리뷰에선 저자가 그리는 복잡계 경제학 논리의 아웃라인만 잡아내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 행위자들이 상호작용으로 만드는 네트웤을 설명한다. 네트웤 수준에서 경제현상을 보았으면 이제 경기사이클과 같은 현상이 어떻게 창발하는지 설명할 수 있다(예를 들어 저자는 자주 인용되는 ‘맥주 게임’의 예를 들고 이 게임의 논리, 재고 사이클이 실제 어떻게 현실경제에서 경기 사이클을 만드는지 보여준다.)

저자가 그리는 논리의 아웃라인은 슈거스케이프에서처럼 전통적 경제학에서 미시와 거시 사이의 거대한 심연을 건너뛰어 경제를 하나의 전체로 행위자부터 시스템 수준의 거시현상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리려 한다. “그런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이론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 모습이 어떠할지 그 희미한 빛이라도 볼 수 있게 됐다. 그 이론은 거시 경제학적 패턴을 ‘창발적’ 현상들, 다른 행위자나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생겨난 시스템의 전체적 특성들로 본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진화 시스템이다. “’그건 정글이야’, ‘적자생존이다’ 경제를 말할 때 너무도 자연스럽게 생태계와 진화의 이미지를 곧잘 사용한다. 복잡계 경제학이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 중 하나는 이 표현은 단순한 비유나 수사가 아니라는 점이다. 조직, 시장, 경제는 생태 시스템과 단순히 비슷한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말 진화 시스템들이라는 그런 의미다.”

경제를 복잡계로 그리고 진화 시스템으로 본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경제가 진화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진화라는 “전쟁 밑바닥에 흐르는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좋은 복제자가 복제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연은 가장 적합한 자(the fittest)를 선택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그 선택되는 자가 누구냐이다.

“도킨스는 ‘복제자’와 ‘운반자’를 구분해야 한다는 중요한 개념을 도입햇다. 스스로를 복사하는 것이라면 뭐든 복제자라 부를 수 있다. 한편 운반자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개체를 말한다. 운반자는 내부에 복제자를 품고 보호한다. 최초의 복제자는 원시수프에 들어있던 단순한 자기복제 분자였겠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복제자는 DNA다. DNA의 운반자는 생물체이거나 생물체의 집단이고 그들은 바다나 하늘이나 숲이나 평지에서 살아가면서 서로 상호작용한다." (수전 블랙모어)

진화론의 단위는 우리가 볼 수 있는 생물체가 아니다. 운반체인 생물체가 품고 있는 DNA 분자가 진화의 주체이며 진화의 대상이다. 그렇다면 경제를 진화의 논리로 본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대니얼 데닛은 가능한 모든 DNA 생명체들의 디자인 공간을 가리켜 ‘멘델의 도서관’이라 부른다. 여기 있는 것들 중 대부분은 시시한 것들이다. 어떻게 해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기껐해야 처음부터 실패작인 돌연변이체를 생산하는, 한마디로 유전자로서는 별 볼일 없다는 얘기다.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해 살아남을 수 있는 디자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지만 그보다 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거대한 디자인 공간의 규모와 비교하면 극히 드물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진화란 정보를 처리하는 알고리즘이라 말한다. 거의 무한에 가까운 디자인 공간에서 효과가 잇는 디자인을 골라내는 ‘공식’이란 말이다. “진화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고 지식을 축적해가는 하나의 학습 알고리즘이다. 진화는 자연 세계의 모든 질서, 복잡성, 그리고 다양성을 설명해주는 공식이다. 알고지름은 적합한 디자인을 찾아 매우 광활한 디자인 공간을 탐색하기 위한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내생적인 진화에서 어떤 디자인들이 살아남아 환경의 제약 하에서 복제를 해나간다면 그것들은 적합한 디지안이다.(좋은 복제자들이 복제된다)”

멘델의 도서관과 같은 디자인 공간이 있는 것은 무엇이든 진화의 알고리즘이 존재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사업 계획서가 그 좋은 예가 된다고 말한다.

"Ecologists assume that organizationl populations can be identified that have 'unit character', responding in similar ways to environmental forces. Populations are dependent upon distinct combinations of resources-called 'niches'- supporting them. Brcause they compete for resources within the same environment, organizations in a population are in a state of competitive interdependence. Competition pushes organizations toward adopting similar forms, resulting in greater homogeneity or specialization of fomrs within different niches. Organzaitons, in a sense, find niches to protect themselves against competition. Organizations often make common cause with one another as they compete with other organizations and populations, thus creating a mutualistic state of cooperative relations. Competitive and cooperative interdependencies jointly affect organizational surivival and prosperity, resulting in a distribution of organizational forms adopted to a particular environmental configurations" (Aldrich)

Population ecology(간단한 요약은 http://en.wikipedia.org/wiki/Organizational_ecology 를 참조)라 불리는 학파에 대한 요약이다. 여기서 organizational forms, 저자의 말로는 사업계획서는 DNA와 별 다를 것이 없다. DNA가 진화의 대상이라면 사업계획서 역시 진화의 대상이다. 진화는 디자인을 선택하는 알고리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의 진화는 하나의 단일 디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사업 계획서의) 3개의 다자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공진화의 결과이다. 사업계획서는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을 ‘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혼합하는데 핵심적 역할을 하며 경제 상황에 적합한 디자인을 제시한다. 내가 이 책을 통해 강조하려는 모델은 경제의 진화를 물리적 기술 공간, 사회적 기술 공간, 사업 계획 공간이라는 이 세 공간에서의 합동적인 진화의 산물로 볻다. 세 공간은 별개의 개념이면서도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함께 진화는 것으로 생각할 수있다. 각 공간마다 진화가 작동한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디자인을 탐구하고 거기에서 적합 디자인을 찾아내 증폭시키는 한편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디자인은 도태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기술, 사회, 경제 세계의 질서는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다.”

경제를 진화 시스템으로 본다면 시장은 사업계획이 선택되는 생태계로 보아야 한다. “시장을 진화를 위한 탐색 메커니즘이라 해석할 수 잇다. 시장은 사회구성원의 고아범위한 수요를 반영하는 적합도 함수와 선택과정을 제공한다. 이에 따라 시장은 선택5된 사업계획으로 자원을 몰아주어 승자는 더욱 번성하게 하고 패자는 도태시키는 역할을 한다. 시장이 우월하다는 주장은 ‘진화는 당신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통치자가 아무리 합리적이고 지적이고 자비롭다 해도 경제적인 적합도 지형에서 적합도가 가장 높은 정점을 찾아가는데는 진화의 알고리즘을 당할 수없다. 시장이 명령, 통제보다 우월한 것은 시장이 균형 상태에서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불균형 상태에서 혁신을 효과적으로 유도할 수있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시장은 역사적으로 혁신 제조기였다. 대부분의 물리적 기술과 사회적 기술 혁신은 시장경제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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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전쟁 - 세계 경제를 장악한 월스트리트 신화의 진실과 음모
펠릭스 로하틴 지음, 이민주 옮김 / 토네이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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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출판사가 좋은 책을 망쳐놓은 경우이다. 이책의 내용은 책 표지에 도배된 음모론 문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책은 음모보다는 월스트리트 금융사의 자료로 훌륭하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네트웤 덕분에 놀랄 정도로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글로벌 시스템을 형성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비밀스런 대화와 은밀한 만남을 충분히 관찰해온 나는 여기에 음모가 도사리기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엇다. 실제로 이들 엘리트들은 서로의 의견차에 고통을 받으며 대부분의 음모가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에 좌절한다. 세계지배에 대한 오래된 환상은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다.

유대인인 나는 ‘전세계를 지배하려는 유대인의 음모’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렇게 된다면 유대인 숫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세계지배기관의 내부조직에서 괜찮은 자리를 하나 얻을 가능성이 꽤나 높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음모는 없다는 것이다. 아니면 내가 그 음모에 참여할 경우 비밀을 지키지 못할 것같아서 혹은 뉴저지 출신이어서 특별히 차별을 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까ㅓ지 나는 과거 수천년에 걸친 유대 역사의 주요 사건들, 예컨대 추방과 이단자 탄압, 나치의 대학살, 적들로 둘러싸인 사막에서의 국가 건국, 그리고 잔인한 증오와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그 많은 사건들의 주도자가-희생자가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주장에 항상 놀란다. 유대인이 절말로 그런 음모를 주도했다면 그들은 분명 모든 면에서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데이비드 로스코프)

‘슈퍼클래스’의 저자는 잇는 것은 음모가 아니라 세계를 지배하는 엘리트의 엘리트, 슈퍼클래스가 있고 그들은 집단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증대하는 식으로 권력을 행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 엘리트간의 이해충돌과 의견충돌은 엄연한 사실이며 음모론이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한다.

반세기 이상을 월스트리트에서 보낸 이책의 저자는 비즈니스 엘리트들의 네트웤의 중심에 있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정치에도 연결이 되었다. 이책에는 수많은 거물 경영자들과 정치인들의 이름이 등장한다. ITT 회장이었던 제닌, 워너브러더스를 인수한 스티브 로스, GE의 잭 웰치, 등과 같은 거물 비즈니스맨은 물론 뉴욕시장, 뉴욕 주지사, 닉슨 대통령, 여러 의원들도 등장한다. 그리고 이책의 저자는 많은 월스트리트의 엘리트들이 그랬듯 비즈니스와 정치의 경계를 넘나든다. 뉴욕시의 공직을 맡기도 하고 프랑스대사를 지내기도 한다.

흔히 말하는 음모론이 사실이라면 유대인 금융가인 저자는 음모의 참여자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 그러나 이책에는 그런 음모론은 나오지 않는다. 아마 그런 음모 자체가 없기 때문이라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이책은 원제인 dealings가 말하듯, 월스트리트 투자은행가가 자신이 해왔던 거래에 대한 회고록일 뿐이다. 여기엔 어떤 음모도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단지 투자은행가의 비즈니스 현장이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가치가 있다.

'탐욕은 좋은 것이다' 우리가 월스트리트라면 떠올리는 말이다. '월스트리트'란 영화에서 고든 게코가 한 이말은 우리가 월스트리트라면 떠올리는 이미지이기도 하지만 월스트리트의 실상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번 금융위기는 정말 탐욕이 좋은 것인가란 의문을 던지게 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가 원래부터 그런 곳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책의 저자가 처음 투자은행에 들어가 자신의 경력을 쌓던 시절에는 그랫다.

저자는 거의 평생을 라자드 투자은행에서 보냈다. 저자는 처음 입사했을 때 사소한 사고를 친다. 저자가 라자드에 들어간 것은 아버지와 회사의 대표인 마이어와의 인맥 때문이었다. 그러나 물정 모르는 젊은 저자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은 것이다. '마이어 씨는 사무실에 선 채 처음으로 그와 만나는 자리에서 나는 그의 질문 속에 담긴 비난을 즉시 이해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견습으로) 2개월 동안 근무한 후 (정식사원이 되어) 주급이 50달러로 인상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에게 감사의 편지를 쓸 생각조차 못했다. 이는 '가족'의 일원이 할 만한 행동이 아니었다." 마이어 씨의 배려로 채용되었든 아니든 '가족'의 일원이 된 이상 가족답게 행동해야 했다는 말이다.

당시 월스트리트에서 '가족'이란 말은 말 그대로엿다. 당시 투자은행들은 주주들의 것이 아닌 파트너들의 공동소유였고 이익이 나면 가족기업처럼 나누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관계는 내부만 아니라 외부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이어는 라자드를 가족중심체제의 기업체로 유지하려고 노력해왔다. 다른 투자은행들처럼 라자드는 여러 세대를 거쳐온 특정한 가족중심체제의 기업들과 오랜 개인적 친분을 가지고 있었다. 리먼브러더스와 군로브, 딜리온리드 그리고 골드만삭스처럼 라자드 역시 유대계 기업으로 인식되었다. 우리는 우리만의 건실한 고객관계를 구축했으며 모건스탠리, 이스트만 딜론같은 비 유대계는 그들대로 그들만의 관계를 구축했다." 당시의 투자은행은 J P 모건이 살아있을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High finance란 말이 쓰이던 그 시절의 은행업은 광고가 필요 없었다. 물론 소도시의 작은 은행들은 지금 우리가 아는 은행들처럼 지점을 내고 크게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했다.

그러나 모건과 같은 거물들에게 그런 것은 잔챙이들의 코묻은 돈을 만지는 하찮은 일이며 자신과 같은 ‘고귀한(high)’ 은행가가 할 일이 아니었다.

‘고귀한’ 은행가가 할 일은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로 고귀한 거물들의 돈을 굴려주는 것이었다. 론 처노는 그런 금융귀족들의 영업방식을 관계형 거래라 부른다.

모건 시절의 고급금융이 몰락한 전후에도 그런 관계형 거래는 살아있었다. 투자은행 자체도 투자은행의 고객도 같은 올드보이 클럽에 속했기에 말 그대로 ‘가족’같은 분위기였다.

“마이어씨는 이 회사의 문화를 구축했다. 그는 이 회사의 투자은행가들에게 라자드가 활동의 양보다 질을 추구하며 우리가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사라는 믿음을 주입햇다.” 그렇기 때문에 마이어의 시절 라자드에서 "리스크란 리스크를 만들지 않는 것을 말했다."

그러나 보수적 은행가인 신사들의 시절은 끝나가고 있엇다. 론 처노는 모건이 살아와 지금의 월스트리트를 걷는다면 뭐라고 할까 상상해본다. 모건이 살아있을 때보다 분명 지금의 월스트리트는 더 화려하고 커졌다. 그러나 모건과 같은 거인이 살았을 때 월 스트리트는 그렇게 화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힘이 있었다고 론 처노는 말한다. 모건이 살아 온다면 눈살을 찌푸릴 것이라는 것이다. 월스트리트가 화려하고 거대해진 것은 모건과 같은 거물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말한다.

월스트리트가 100년을 사이로 허우대만 멀쩡해진 것은 대공황을 전후해 금융의 지배가 내리막길을 걸었기 때문이며 금융의 몰락을 보통 금융교과서들은 탈중개화로 설명한다. 은행업은 자금의 공급자와 소비자를 중개하는 것이다. 은행의 힘은 공급자와 소비자의 힘이 커지면 작아진다. 대공황 이전 강세장은 공급자들, 즉 개미들의 자금이 풍부해지고 잇다는 전조였다. 그리고 그 이후 경제력이 성장하면서 기업들의 힘이 막강해졌고 2차대전 이후 대중의 시대가 되면서 소비자들의 자금도 풍부해졌다.

저자가 은행업에 입문한 시절은 바로 탈중개화가 시작되던 무렵이었다. 거래 상대방보다 은행의 힘이 약해져 간 것이다. 그리고 은행의 약화는 은행의 모습을 바꾸어갔다. 더 이상 신사들의 여유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이다. 변화의 촉매는 1970년에 일어났다. 저자는 당시 뉴욕증권거래소의 이사로서 그 중심에 있었다.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월스트리트 투자은행들이 하나둘 파산상태에 들어갔고 저자는 라자드와 뉴욕 투자은행가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뉴욕증권거래소의 이사로서 은행들의 파산을 막기 위해 3년을 분투한다.

저자가 월스트리트의 붕괴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때 이후로 투자은행의 모습은 변한다. 라자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객들이 거대해지고 자본시장에 직접 참여하면서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왜소해지고 거래를 잃어갔다. 그리고 증권거래의 수수료도 얄팍해지면서 은행들은 사면초가에 빠진다. 대안은 마찬가지로 거대해지는 것이었다. 올드보이 클럽 같은 목가적 분위기의 파트너십은 더 이상 시대에 맞지 않았다. 이제 은행도 시장에서 피터지게 싸우는 싸구려 용병이 되어야 햇다. 신사의 시대는 끝났다.

“라자드는 성장했다. 1970년대 말에는 30명의 파트너와 250명의 직원들이 근무했다. 그리고 20년 후가 되면 이 회사는 1,000여명의 직원과 69명의 경영이사들이 일하게 될 것이다. 예전에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사무실을 들락거리며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직원들이 저마다 무슨 일을 하는지 회사가 어떤 속도로 흘러가는 지 파악할 수 있었다. 이제 라자드에서 내가 그렇게 할 수 잇는 날들은 끝났다.

또 한가지 문제는 회사가 내가 거의 열정을 느끼지 않는 분야로 과감하게 나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이어의 후임인) 마이클은 거대 시장 참여가 우리의 성공적인 인수합병 비즈니스와 비교적 많지 않은 우리의 증권인수능력을 보완하는 데 필요하다고 믿었다. 라자드가 추가적인 트레이딩 기능을 갖춰야 하는지 논의햇던 경영이사 회의에서 나는 반대하는 주장을 펼쳤다. 하지만 무시되었다. 조만간 수익성이 있고 위험성이 낮으며 자본 집약적이지 않은 자문사업이 위험성이 높고 자본집약적인 트레이딩 활동을 보조화게 될 것이다. 그리고 대차대조표상의 이런 불일치가 회사 내의 긴장감을 유발하게 만들 것이다.”

마이어는 라자드를 작고 가족적인 회사로 유지하려 애를 썼다. 그 시절에 투자은행업에 뛰어든 저자는 자신의 일을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서비스를 전달하고 주주들에게 수익을 주는 것을 돕는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몇십년이 지난 지금 안정된 금융의 원칙은 걷잡을 수 없는 탐욕에 짓밟혔다. (투자은행업의 주업무 중 하나인) 합병은 단순한 딜일 뿐인 추상적인 금융거래가 되어버렸다. 이것은 ‘가동 중인’ 기업들이 하는 일이나 제조한 물건 혹은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벌어질 일과는 거의 무관하다. 수천개의 일자리가 없어지거나 기업들이 도산할 때 그 지역이 붕괴되는 것은 딜을 성사시키는 사람들에게는 상관없는 것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몇 명의 사람이 과 과정에서 얻게 되는 놀라운 부가 전부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기업 문화가 형성되는 것을 목격했다. RJR-나비스코의 합병이 그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커다란 딜이 중요하게 여겨졌고 직원들과 해당 지역에 미치는 결과들은 대부분 무시되었다. 높은 레버리지의 투기시대엿다. LBO와 정크본드들 말이다. 은행가들은 기업을 휘젓는 것과 달리 투자에는 관심이 없어졌다. 그때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직접적으로 이끌어낸 관행과 마음가짐, 세상을 바라보고 시장을 조종하는 방식들이 형성되던 시기였다. 리먼을 파산으로 몰고 간 투기적인 도구인 모기지 기반 금융 파생상품의 번들이 정그본드의 사생아였다. 성공적인 LBO가 진행되는 동안 경영자들이 챙겼던 막대한 보수가 오늘날 거대한 월스트리트 보너스의 선구자엿다.”

이책은 저자가 라자드에 처음 입사했던 40년대 후반부터 저자가 프랑스대사로 라자드를 떠난 90년대 후반, 그리고 리먼브러더스에서 일한 2000년대 후반, 그리고 리먼브러더스에서 나와 다시 라자드에 들어간 이후 지금까지 50여년을 포괄한다.

그 긴 시간 전체가 이책에서 다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월스트리트에서 자신이 반세기를 보내며 겪은 일들의 무용담을 말한다.

“우리는 2등입니다. 그래서 더 많이 노력할 것입니다.” 광고사에 언제나 언급되는 에이비스의 광고이다. 이책의 저자가 맺은 빅딜의 첫머리에 오는 인수합병건이었다. 에이비스를 시작으로 이책에선 60년대 인수합병 열풍의 선두엿던 ITT의 인수합병들을 말하고 RJR 나비스코, GE의 RCA(NBC의 모회사)인수, 마쓰시타의 MCA 인수 등이 말해진다.

저자는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면서 투자은행가가 어떻게 딜을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어떻게 거래기회를 만나고 사람들과 신뢰를 쌓으며 협상을 어떻게 했는가 등 거래의 현장을 그려준다.

저자가 이책에서 소개하는 딜들은 경영사에 기록되는 큰 건들이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이책이 큰 가치를 갖기에 부족하다.

월스트리트에서 거물이 된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저자의 경력은 금융에만 머물지 않았다. 경제의 혈관이랄 수 있는 금융은 정치와 연관될 수 밖에 없고 그런 일에 종사하면서 공공성에 눈을 뜨게 된다. 그렇기에 나름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있는 금융인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마련이다.

이책에서 저자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70년의 금융위기와 75년 파산 직전까지 갔던 뉴욕시 재정위기의 중심에 있었다. 위원회를 조직하고 위기를 타개할 전략을 짜고 그 전략을 실행해 하루 하루를 넘기기 위해 어떻게 고군분투했는가가 잘 그려진다.

경영사에 남는 빅딜들과 금융사에 남는 큰 사건의 인사이더의 기록이기에 이책은 처음에 언급했듯이 월스트리트 역사의 좋은 자료이다. 이책은 누구나 읽을 책은 아니다. 금융사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금융과 금융사에 대한 나름의 배경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배경지식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권할만한 책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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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으로 배우는 경영전략 워크북 - 현장에서 통하는 경영전략 만들기
가와세 마코토 지음, 현창혁 옮김 / 케이펍(KPub)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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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략은 전술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고 명쾌해야 한다. 산의 어느 정상을 어느 길로 오를 것인가가 전략이라면 전술은 그 길을 어떻게 가야할 것인가란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전략은 복잡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경영전략서적들은 단순명쾌한 논리로 무장한다. 이런 식이다.

여성용 명품 브랜드의 포지셔닝을 그래프로 그려보자. Y축이 고객의 연령, X축이 여성화의 정도라면 가장 왼쪽의 꼭지점에 프라다가 자리잡고 중간에 루이비통, 구찌가 놓이고 우측에는 샤넬, 디올, 이브생로랑이 자리잡는 삼각형이 그려진다.

샤넬은 중년층의 여성화 정도가 높은 소비자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샤넬의 광고 모델은 우아하고 고귀한 이미지를 가진 원숙미가 넘치는 여성이다.”

프라다 역시 높은 연령층을 대상으로 한다. 그러나 여성화 정도가 가장 낮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를 보면 프라다의 업종의 본질이 확연히 드러난다. 편집장 미란다는 늘 박수갈채와 유명세를 몰고 다니는 매력적인 중년 여성으로 남성들 위에 군림하는 악마 같은 존재로 묘사된다. 그녀의 차갑고 도도한 모습에 남성들은 감히 접근할 엄두를 못낸다.”

프라다의 포지셔닝은 LG와 손잡고 만든 프라다 핸드폰에도 나타난다. “심플한 디자인과 블랙의 색상으로 남성적인 이미지를 물씬 풍기는 이 핸드폰은 마치 업무용 컴퓨터 같은 단단한 모습을 하고 잇다. 영화속의 미란다도 검은색 옷을 입고 프라다 핸드폰을 사용한다.

미란다를 닮아가는 자신을 견디기 힘들었던 안드레이는 좀처럼 손에서 놓지 않았던 프라다 핸드폰을 분수대에 버리고 그 자리를 떠난다. 이를 지켜보던 미란다는 안드레아에게 ‘받아들일 수 없다면 영원히 떠나라’고 말한다. 이 한마디가 바로 프라다 브랜드의 핵심이다. ‘좋으면 받아들이고 싫으면 말아라!’ 이것이 프라다가 100년이 넘도록 키워온 업종의 본질이자 브랜드의 정신이다.” (랸셴핑)

명품 브랜드의 지도를 아주 간단하게 잘 정리하고 있다. 브랜드의 포지셔닝의 논리가 그렇기 때문에 삼각형의 전부를 차지할 수는 없다. 그 삼각형의 어딘가에 자리를 잡는(포지셔닝) 이상은 비현실적이다. 브랜드 구축이란 그 포지셔닝을 어디에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이며 업종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시장의 정점에서 규칙을 만드는 기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당신이 2억 유로를 지불하고 프라다를 인수햇다고 하자. 성공은 시간 문제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프라다의 업종의 본질을 모른다면 세계적인 브랜드를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결코 성공은 장담할 수 없다.” 왜 그럴까? 프라다를 인수하더라도 프라다가 자신의 포지셔닝을 구축하기까지 거쳐야만 했던 악전고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프라다가 자신의 결론을 얻기까지의 서론과 본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프라다를 인수해봤자 프라다의 포지셔닝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프라다의 현재 포지셔닝만 본다면 단순명쾌하게 깔끔한 논리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 그 깔끔한 논리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깔끔하지 않다. 경영전략이 무용지물이란 말을 듣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현실은 위에서 본 명품 브랜드의 지도의 결론처럼, MBA 코스에서 배우고 작성하는 케이스 스터디처럼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 결과만 보고 사후적으로 왜 그런 전략이 나왔는지는 누구나 쉽게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전략이 왜 어떤 과정을 거쳐 나왔는가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현실에서 그런 전략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수와 엉뚱함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가르치고 책에서 가르치는 전략에선 그런 현실이 없다. 교실에서 가르치는 전략은 그 전략을 어떻게 얻는가에는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는다. 경영서적에서 전략이 푸대접받고 마케팅이 인기있는 이유이다. 현장에서 전략은 회사내에 공통의 언어가 된다는 이상은 아닌 것이 현실이다.

이책 역시 그런 공통의 언어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보다 더 큰 목표가 있다. 책상 위의 전략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행할 수 있는, 현장에서 도출되는 전략이 이책의 목표이다.

거창하게 들릴 것이다. 작은 분량은 아니지만 이책정도의 분량으로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잇을까 의문이 들 것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저자는 어느 정도 성공하고 잇다.

전략이란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서 시작한다. 내가 시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란 질문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이 나오면 나의 고객은 누구인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나의 고객은 누구이고 그 고객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나의 위치에서 그 고객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란 말이다. 고객이 누구인가란 질문은 전략의 목표를 도출하는 것이다. 목표가 나왔으면 그 다음은 그 목표로 가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방법이 나오면 그 방법에 따른 비즈니스 모델, 즉 수익모델은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이어진다.

이책의 구성은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이루어져있다. 전략서적이면, 체계적인 전략서적이면 모두 갖추는 구성이다. 그러나 이책의 미덕은 현장성에 있다. 이책은 어디까지나 전략이란 가설이라 말한다. 전략이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는 과정일 뿐이란 말이다. 저자는 현장의 누구나 이책의 질문법을 따라 전략적으로 생각할 수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저자의 그런 바램이 현실적이 되는 것은 저자의 오랜 컨설팅 경험과 강의 경험 때문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널리 알려진 BCG 매트릭스라든가 4P 등과 같은 기본 프레임들을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런 프레임들을 실제 현장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에 관심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잘 알려진 내용들을 자기식대로 재해석한다. 현장에서 실행가능한 의미로 재해석한다. 그리고 그런 프레임들을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시작하는 질문들의 흐름에 묶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도구로 제시한다.

이책은 어렵지 않다. 전략 자체가 누구나 공유해야 하는 것이므로 어려운 것이서는 안되듯이 전략을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도 어려워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책은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한 좋은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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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전쟁 3 - 금융 하이 프런티어 화폐전쟁 3
쑹훙빙 지음, 홍순도 옮김, 박한진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40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국제체제는 중심부와 주변부 경제로 나뉜다. 중심부는 대외 준비금으로 사용되는 통화를 발행하는 엄청난 특권을 누리며 자신들의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중심부를 따라잡기에는 한참 멀리 떨어진 주변부는 저평가된 환율 유지를 바탕으로 수출주도성장에 몰두한다. 그 결과는 중심부 국가가 자국 통화표시로 발행한 저수익 대외준비금의 대규모 축적이다. 1960년대에 중심부는 미국이엇고 주변부는 유럽과 일본이었다. 이제는 아시아 신흥시장이라는 새로운 주변부가 등장했다. 중심부는 여전히 미국이고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는 경향 역시 여전하다.

미국은 적자를 계속 내면서도 달러의 가치는 주변부 통화에 대해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이는 주변부 국가들이 미국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주변부 중앙은행들은 자국 환율이 절상되지 않도록 시장에 개입하여 달러를 매입한다. 1990년대 외환위기를 통해 얻은 교훈, 즉 세상은 위험한 곳이며 대외 준비금 축적을 통해 정부는 금융흐름의 갑작스런 변동에 대비해야 한다는 교훈으로 인해 이런 경향이 더 강화되었다. 준비금을 늘리려는 아시아 중앙은행들이 미국이 쏟아내는 달러표시 증권을 기꺼이 흡수해가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공공지출을 억제해야 하는 압력을 별로 느끼지 않는다. 미국은 다른 채무자에 비해 낮은 금리를 지불하면서 외국 중앙은행과 정부에 채권을 매각했다. 그 결과 달러는 별로 절하되지 않는다. 이는 프랑스가 1960년대에 불평햇던 ‘과분한 특권’이엇다.

이 상황은 1950-60년대와 흡사하기 때문에 이 시기를 제2의 브래튼우즈라 부른다. 본래의 브레튼우즈 체제가 20년의 좋은 시절 동안 존재햇다면 신브래튼우즈도 마찬가지엿다.

시장에 맡겨두면 후발경제의 통화가치는 오른다. 생산성이 신속하게 오르기 때문에 통화의 가치는 오른다. 통화절상은 고도의 생산성이 고도의 생활수준으로 전환되는 방식이다. 시장의 압력은 영원히 병속에 머물러 잇지 않는다. 본래의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시장의 압력은 1970년대 초에 폭발햇다. (배리 아이켄그린

신브레튼우즈 체제 역시 2008년 폭발했다. 신브래튼우즈, 또는 글로벌 불균형은 폭발하기 전까지 팍스 브리태니커의 아름다웠던 시절, 벨르 에포크가 그랬던 것처럼 팍스 아메리카나의 좋은 시절이었다. 앞으로 팍스 아메리카가 어떻게 될지 세계경제가 어떻게 될지는 불확실하다

16-17세기 유럽 최강국이었던 스페인 제국은 한때 세계 금과 은 총량의 80%를 가진 가장 부유한 국가였다. 다른 국가들은 모두 스페인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한 국가가 이토록 많은 부를 가지면 그 국가는 부를 창조하는 능력을 잃어버린다.” 쉽게 돈을 벌게 된 ‘스페인 제조업자들은 더 이상 힘든 생산활동을 하지 않았다. 손에 들어온 주문을 다른 국가에 대량으로 하도급을 주었다. 영국의 방직업, 네델란드의 조선업, 이탈리아의 농장업과 북유럽의 어업이 스페인을 대신해 제품을 만들었다. 스페인을 부를 믿고 무절제한 소비와 대외 확장만 추구하다 생산이 위축되고 재정이 파탄나고 실업률이 급증했다.

세계의 맹주 자리를 차지한 영국은 스페인 제국과 같은 기로에 섰다. 부지런하고 성실한 노동으로 계속 부를 창출할 것인가 아니면 군사패권과 금융패권으로 다른 사람의 노동성과를 나눠가질 것인가? 이미 많은 부를 거머쥔 영국인들은 스페인처럼 후자를 선택했다.  


역사는 놀랄만큼 반복된다. 미국은 200년 동안 고통스런 노동을 통해 거대한 부를 창조한 후 스페인과 영국처럼 점차 부의 창조능력을 상실했다.미국은 달러 발행 특권을 행사하면서 세뇨리지 수익과 자본 투자수익을 얻는 데만 혈안이 돼 귾임없이 자국 산업을 외국에 수출하고 있다. 미국인은 거액의 이익을 얻는 대가로 부의 창조능력을 상실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 영국과 미국이 그랫듯 중국과 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을 위해 일햇다. “탱고는 둘이 추는 것이다. 미국은 다른 나라들이 막대한 흑자를 내기 때문에 대규모 적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미국은 다른나라들이 더 많이 저축하기 때문에 투자에 비해 덜 저축할 수있었다. 밴 버냉키는 글로벌 불균형을 글로벌 저축 과잉을 반영하는 것으로 설명햇는데 일리 잇는 말이다. 미국은 생산하는 것에 비해 더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행복햇다. 중국은 저축을 통해 번영하고 국제 거래를 하는 데 필요한 준비금을 대량 비축하는데 관심을 가졌다. (아이켄그린) 중국(그리고 다른 동아시아 국가들)은 행복했을까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햇다. 세계경제란 경기장에선 모두가 이익을 보지만 게임이 공평한 것은 아니다. 게임의 규칙은 미국이 정하고 중국은 그냥 따르는 것 외엔 선택권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 게임의 규칙을 정하는 힘을 금융 하이 프런티어라 부른다.

"세계 최대 채무자가 세계 최대 채권자에게 여러가지 가혹한 조건을 내걸고 걸핏하면 징벌성 조치를 들먹이며 위협하는 게 말이 될 소리인가." 그러나 현실에선 말이 된다. 걸핏하면 미국은 중국이 환율조작을 한다며 너가 버는 돈은 나를 속여 도둑질한 것이라 욕을 한다. 그러면서 부당한 이익을 더 이상 보지 말고 환율을 올리라 한다. 그러나 중국 입장에선 기고만장한 채무자의 헛소리일 뿐이다.

미국이 환율을 들먹이는 이유는 내부용인 측면이 강하다. 적자를 내는데 손놓고 있으면 유권자들이 뭐라 하겠는가? 뭔가 하는 시늉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위기 이후 환율압박은 내부용 구호를 넘어섰다고 저자는 본다.

"중국에 절상 압력을 가하는 목적은 무역적자나 실업난 해소가 절대 아니다. 인민폐 절상을 통해 인민폐의 명목 구매력을 상승시키고 실질 구매력을 하락시켜 인민폐 보유자, 다시 말해 달러 채권자들의 수중에 있는 달러 채권 가치를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환율장난을 쳐 빚을 떼먹는 수법은 이미 써먹은 적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1980년대에도 미국은 쌍둥이 적자를 줄이겠다며 최대 채권국인 일본을 압박해 엔화를 올리게 했다. 그 다음 결과는? 엔화의 실질 구매력이 감소했고 줄어든 돈 가치에 비례해 자산가격이 폭등햇다. 그리고 일본경제는 지금도 자산버블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미국의 압력을 못이긴 "중국 역시 2005 7월에 환율을 20% 절상한 후 부동산 시장과 증시가 과열되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햇다. 미국은 대중국 실제 부채 규모를 대폭 줄이려는 것이면서 중국의 자산버블을 부추기려는 것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세계 각국이 자국 화폐를 빠르고도 대폭적으로 평가절상하여 이들 국가의 경제가 회복된 틈을 노려 미국의 부실 채무를 분담하고 희석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싸구려 달러 때문에 키워진 자산버블이 어떻게 되건 알바가 아니다.

저자의 논리대로라면 기고만장을 넘어 뻔뻔한 채권자이다. 이런 뻔뻔함이 가능한 이유는 미국이 세계경제의 금융 하이 프론티어를 장악했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금융장난질에 당해 온것은 아편전쟁 이후 굴욕의 100년 동안도 마찬가지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편무역으로 중국의 은이 물밀듯이 외국으로 빠져나가 중국에는 '은 가치 상승, 화폐가치 하락'이란 심각한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혈액인 화폐가 빠져나간 경제는 죽어갔고 정부의 재정도 악회되었다. "아편무역이 시작되기 전인 1781년 건륭 연간까지 국고에 7,000만냥의 은이 남아 있었으나 1850년에는 800만냥밖에 남지 않아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를 여력조차 없었다. 대청제국 금융 하이 프론티어의 초석인 은본위제가 결국 아편에 의해 무너지면서 무역적자 급증, 재정수입급감, 백성 생활의 불안정, 빈부 격차 심화 " 중국의 사회는 해체된다. "국제은행가들은 아편무역으로 수탈한 거액의 은으로 '중국의 잉글랜드 은행'을 설립했다." 

은이 빠져나간 자리를 외국은행들이 발행한 화폐가 "널리 유통되었다. 특히 (중국의 경제중심지인) 화남 지역에서는 청나라 정부의 화폐를 대체해 주요 결제수단으로 사용됐다." 그 정점에는 홍콩상하이은행(HSBC)이 있었다. 홍콩상하이은행은 저금리로 유치한 중국부호들의 돈을 "고금리 단기 대출 방식으로 전장과 표호들에 공급함으로써 앉은 자리에서 엄청난 차익을 챙겼고" 중국경제의 자금통로를 완전히 장악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홍콩상하이은행이 시중에 돈을 풀면 금융이 완화되고 반대로 시중의 돈을 회수하면 금융긴축이 발생햇다." 홍콩상하이은행은 사실상 중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했다.

홍콩상하이은행은 원래 중국무역업체의 금융서비스를 위해 만들어진 은행이었다. 중앙은행이란 권력을 장악한 영국계 자본은 그 권력을 휘둘러 중국경제를 착취한다. 예를 들어 "1878년부터 해마다 중국의 생사와 찻잎 출하 시기에 맞춰 시중 자금이 경색되는 기현상이 나타났다. 당시 상해에서 상업무역 활동이 정상적으로 유지되려면 시중에 약 300만냥의 자금이 필요햇다. 그런데 홍콩상하이은행은 생사와 찻잎 출하 계절마다 시중의 자금이 100만냥을 밑돌로고 자금을 급히 회수하여 상인들은 생사와 찻잎 구매 자금을 충분히 융통할 수 없었다. 결국 재배농가들은 헐값으로 생사와 찻잎을 팔아치울 수 밖에 없었고 홍콩상하이은행의 주주(양행)들은 이 틈을 타 찻잎을 매점해 폭리를 취햇다," 

굴욕의 100년 동안 중국이 반식민지로 전락한 근본이유를 저자는 금융 하이 프론티어를 빼앗겼기 때문이라 말한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과 일본의 처지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중국이 약간 더 나은 면이 많았다. 그러나 중국은 반식민지로 전락하고 일본은 제국주의 열강으로 진입할 수 있었던 이유를 저자는 금융 하이 프론티어를 중국은 잃어버렸고 일본은 지킨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본다.

미국이 뻔뻔한 채무자로서 과분한 특권을 누리면서 채권자인 중국에게 큰 소리를 치며 빚을 떼먹을 음모를 대놓고 말할 수 있는 이유도 중국은 금융주권이 없고 미국은 있기 때문이라 저자는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달러에 대한 (한국도 마찬가지인) 중국의 환본위제를 혁명기와 개혁개방 이전의 물가본위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준비금으로 달러를 사용하는 환본위제는 금융주권을 자국의 손에서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에게 자발적으로 넘겨주는 것이므로 문제가 잇다고 말한다. 싸구려 달러를 남발하는 지금 고스란히 빚을 떼이고 고생해 축적한 부를 잃어버리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미국기자: 산동 근거지 화폐는 금, 은이나 외화를 준비금으로 하지 않고 어떻게 화폐 가치와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는가? 이는 믿기 어려운 기적이다.

팔로군 간부: 우리 화폐는 물자 본위화폐이다. 우리는 40%의 황금과 50%의 물자를 준비금으로 삼앗다.

(미국기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대방을 바라봤다.)
 
: 예를 들어 화폐 1만 위안을 발행한다면 우리는 그중 5,000위안으로 식량, 목화, 무명, 땅콩 등 주요 물자를 구매 비축했다. 물가가 상승할 경우에는 이 물자들을 풀어 시중의 화폐를 회수하고 물가 상승을 억제했다. 반대로 물가가 하락할 때에는 화폐를 회수하고 물가 상승을 억제했다. 반대로 물가가 하락할 때에는 화폐를 증발해 시중의 물자를 매입햇다. 우리가 준비금으로 삼은 이 생필품이야말로 먹을 수도 입을 수도 없는 금이나 은보다 훨씬 낫다.

지폐 본위제가 확립되면 통화량이 화폐가치를 결정한다.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고 통화량이 10배 증가하면 물가도 똑같이 10배 상승한다. 법폐와 위폐 가치가 폭락한 이유는 통화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대적으로 물가를 안정시킬 수 있었던 건 통화량을 적절히 조정했기 때문이다.”

1945년의 인터뷰이다. 지금은 상식이 된 통화주의의 기본 이론이다. 그러나 저자는 프리드먼의 이론과는 다른, 지금도 유효한 혁신성이 있는 화폐제도였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왜 준비금으로 기업의 주식 같은 자산은 쓸 수 없는가 묻는다. 싸구려 달러보다는 훨씬 좋은 자산이 아닌가 묻는다. “중앙은행의 자산 계정에 있는 외환 자산이 점차 다른 자산으로 교체되면 더 이상 달러화 자산을 인민폐 발행 준비금으로 삼지 않아도 된다. 대신 중국의 중점 산업과 민생 사업의 강력한 생산력을 기반으로 인민폐를 발행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인맨폐는 중국의 경제 발전과 연결돼 인민의 화폐가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 최고의 원칙을 구현할 수있다. 한마디로 외화에 대한 의존도를 줄임으로써 자주 독입적인 인민폐 발행이 가능해진다.”

그 외에 저자는 종장에서 여전히 음모론 작가의 면모를 잊지 않지만 저자가 이책에서 하려는 말은 인민폐의 본위제에 대한 논의라 할 수 있다. 매력적이고 현실적이며 설득력이 높은 이론이다. 그러나 저자는 왜 개혁개방 이후 물가본위제에서 환본위제로 전환했는지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게임의 룰 때문이었다. 세계경제에 참여하려면 게임의 룰을 따라야 한다. 그 룰 중의 하나가 화폐의 호환성이었고 그 결과가 환본위제엿다. 저자의 제안이 실현되려면 위안화가 기축통화가 되어야 한다. 달러의 헤게모니가 흔들리므로 세계의 기축통화는 파운드화 시절처럼 3개 이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중의 하나가 위안화가 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기축통화가 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러가지 조건이 맞아야 하는데 중국의 현재로선 꿈도 못꿀 일이다. 저자는 그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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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 금융위기의 순간 그들은 무엇을 선택했나
앤드루 로스 소킨 지음, 노 다니엘 옮김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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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제가 내린 결정과 행동에 책임을 질 것입니다. 여기에 있는 누구도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그때 다르게 할 수 있었는가 묻는다면 대답은 그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청중은 펄드의 회한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질문은 그의 보수에 집중되었다. '당신의 회사는 파산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48,000만 달러의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게 공정합니까?"

"제 보수는 대부분 자사주입니다. 그 주식의 대부분을 저는 파산 신청 시에 그대로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가 보유했던 주의 가치는 한때 10억 달러에 이르기도 했으나 지금은 6 5,486달러 72센트였다. 그는 이미 아파트와 아내가 아끼는 예술품을 팔려고 내놓았다. 펄트는 자신의 부를 회사의 주에 장기적으로 묶어놓고 위험을 감수한 CEO였다.

"리먼 브러더스에 관계되거나 영향을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는 아픈 일이었지만 이번 스나미는 특정한 기업이나 시장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또한 헤지펀드들이 그릇된 소문을 퍼뜨리고 지난 여름 리먼이 은행지주회사가 되려고 했을 때 연준이 허용하지 않은 것 등에 대해 그리고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엄청난 좌절감을 표시했다.

펄드는 준비한 메모를 옆으로 밀어놓고 동석한 고문변호사들이 노라는 가운데 즉흥적으로 발언을 시작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관심이 없으시겠지만 저는 매일 밤 궁금해서 일어났습니다. 무엇을 달리 할 수 있었을까?" 이 대목에서 펄드는 눈물을 흘릴 듯했다. "어떤 대화에서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했을까? 내가 무엇을 해야 했을까? 저는 매일 이런 질문을 합니다. 이번 일은 제가 평생 안고 가야 할 아픔입니다." 이 말에 이어 그는 미국 정부가 금융 시스템을 구하기 위해 전례 없는 조치들을 취하면서 왜 리먼에는 그런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 물었다. "제가 땅에 묻힐 때까지 이 의문을 품고 살 겁니다."

 

리먼브러더스는 망할 이유가 충분했다. 펄드는 아멕스에서 방출된 후 미미한 채권매매업체에 불과했던 리먼을 빅5의 하나로 올려놓았다. 그러나 펄드의 시절은 가버린지 오래였다.



"펄드와 (그의 오른팔인) 그레고리는 주식이 아닌 채권 족의 고정소득 거래에 익숙한 사람이어서 1980년대 이후 극적으로 변한 금융시장을 제때에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고정자산 쪽에서도 가장 변화가 없고 리스크가 적은 CP 업무부터 금융을 배운 사람이었다. 게다가 변확 느린 고정소득거래도 그들이 금융을 배운 시절과는 딴판으로 변해있었다. 은행은 이제 기초가 되는 자산을 활용해 다양하고 복잡한 금융상품을 만들어냈다. 과거보다 금융의 리스크가 본연적으로 증대했다는 말이다. 펄드와 그레고리는 그런 현실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려 하지 않앗다.



결국 리먼의 임원들 중에서 (펄드의 오른팔인) 그레고리를 회사의 장애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햇다. 그들은 그레고리가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레고리 치하에서 리먼은 잠재적으로 판단되는 가치보다 훨씬 많은 투자를 해댔다."



엘리트들의 엘리트가 모인 빅5 중 하나인 리먼에서 그런 리스크 감수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고정소득 부문의 직원들은 미국경제에 기차 충돌 사고 같은 것이 올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2007 2월 리먼에서 부실채권 거래 부문을 이끌던 래리 매카시는 그의 그룹에서 발표를 하며 어두운 전망을 내놓았다. '앞으로 도미노 효과가 발생할 겁니다. 투자은행 다음으로 쓰러지는 것은 상업은행이 될 것에요. 상업은행들은 겁이 나서 융자를 거둬들일 거시고 이는 소비자 융자를 축소하고 신용 스프레드를 더 넓힐 겁니다. 시장에 아무런 리스크도 없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상황은 더 이상 지속되지 못할 겁니다. 오늘날 세계화가 과거에 존재하던 자연적인 경기순환주기를 소멸시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틀린 생각입니다. 세계화가 바꿔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리먼의 대차대조표에 들어있는 지금의 리스크는 우리를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넣을 겁니다. 리스크가 너무 크고 우리는 너ㅓ무 취약합니다. 지금의 어려운 상황을 견딜 화력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리먼의 공격적인 문화는 어쩔 수 없었다. 더 문제는 위기가 현실이 되었을 때 펄드는 위기를 현실로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70년대의 어려운 시절부터 일을 배웠고 80년대 S&L 위기도 겪었으며 닷컴버블, LTC 사태를 모두 겪었던 펄드는 이번에도 그런 위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그런 위기들과 다를 것 없는 또 하나 위기일 뿐이라 생각햇다. 이번에도 리먼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다르다는 것을 몰랐던 펄드는 많은 실수를 했고 그 기회를 날린 실수들은 그의 모든 것인 회사를 무너트렸다.



그러나 왜 리먼만인가? 펄드는 자신은 사라지더라도 최소한 베어와 같이 회사 자체는 살아남기를 바랬다. 물론 빅5 중 실질적으로 살아남은 회사는 없었다. 서열 3위인 메릴린치는 살아남기 위해 회사를 팔아치웠고 2위와 3위인 모건스탠리와 골드만삭스는 투자은행으로서 누렸던 자유를 포기하고 정부의 규제를 받는 지주회사가 되었다. 사실상 비즈니스 모델로서 투자은행은 멸종되었다.



그러나 빅5 중 리먼처럼 회사 자체가 사라진 경우는 없었다. 왜 그랬을까? 금융위기 당시 제기되었던 설은 2가지였다.



첫째는 모럴 해저드를 경고하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설이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저자가 이책에서 그리는 정황은 그런 설을 부정한다.



금융위기와 모럴 해저드가 무관하지는 않다. 80년대 S&L 위기의 원인 중 하나가 모럴 해저드였다. S&L의 예금도 보험이 적용되면서 예금에 대한 책임을 덜 느끼게 된 S&L 경영진들은 더 공격적인 포지션을 취할 수 있었고 그 공격성이 위기를 낳았다. 그러나 과연 그 경영자들이 보험만 믿고 무책임한 결정을 했을까?



펄드의 의회증언은 꾸민 것이 아니다. 그가 리스크를 무모하게 무시한 것이 회사를 무너트리기는 햇지만 파산은 그의 의도가 아니었다. 그의 모든 것인 회사가 무너질 것이란 생각을 못한 것일 뿐이다. 골드만삭스의 CEO를 지낸 행크 폴슨이 그런 것을 몰랐을까? 그렇지는 않았다.



둘째는 리먼이 월스트리트의 비주류였기 때문에 월스트리트와 정부를 장악한 골드만 커넥션이 리먼을 무너지게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랫을까? 저자는 부정적이다. 투자은행 모델이 무너진 구조적 원인은 과도한 레버리지였다. 자기자본의 30배를 우습게 넘는 레버리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빌려준 단기자금으로 조달되었다. 서로가 서로의 신용카드가 되어 돌려막기를 하는 구조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카드의 하나인 리먼이 파산한다면 그 충격은 시스템 전체를 무너트릴 수 있다. 그 위험을 알기에 재무성과 연준은 모든 수단을 쥐어짜고 그래도 안되면 편법까지 동원해야 했다.



이책의 저자는 리먼이 무너진 것은 우연 또는 운명의 장난이엇다고 말한다. 리먼이 영국 바클레이즈에 합병되기 직전 미국의 불이 옮겨붙을 것이라 질겁한 영국정부의 반발로 합병이 무산되었고 대안은 파산 밖에 남지 않았다.



그런 ''이 나온 것은 당시 재무부 장관을 맡았던 행크 폴슨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의 정점인 골드만삭스 CEO를 지냈던 그는 금융위기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일생을 보냈던 월스트리트가 사라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정권말기의 장관으로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었지만 행동에 나섰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러나 정치가로서 정치적으로 행동해야 했던 그는 정치적으로 가능해지기 전엔 필요하더라도 행동에 들어갈 수 없엇고 정치가로 행동해야 했기에 하얀 거짓말을 해야 햇다.



위기의 몇달 간 폴슨의 행동은 모두 임기응변이엇고 (있지도 않은) 큰그림에 따르지 않았다. 리먼이 무너진 것은 그의 그런 임기응변이 한계에 이른 결과일 뿐이다.



이책은 베어가 합병된 후 골드만삭스가 지주회사가 되는 몇달 동안 행크 폴슨과 월스트리트 경영진들이 어떻게 그 몇달을 보냈는가를 다룬다.



이책이 다루는 기간 내내 이책에 등장하는 정부관계자들과 빅5 경영진의 심리는 '공포'였다. 시스템이 붕괴한다는 공포,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그리고 그 모든 노력에도 한숨도 돌릴 수 없게 위기 다음 위기가 반복되는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쌓여가는 피로와 무력감. 이책이 그리는 풍경이다.



이책은 경제학자들이 쓴 책처럼 위기가 왜 일어났고 무엇이 잘못되었으며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하는가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단지 그 몇달동안 위기의 중심에 있던 사람들이 무엇을 보았으며 무엇을 느꼈고 무엇을 했는가란 질문을 할 뿐이다.  이책은 어떤 판단도 하지 않고 사람들을 보여줄 뿐이다. '사람'들이 그 때 거기서 무엇을 했는가를 말할 뿐이다. 그리고 이책은 그런 목적을 충분히 이루고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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