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화의 종말 - 유럽의 불안한 미래
요한 판 오페르트벨트 지음, 정향 옮김 / 골든북미디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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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경제공동체로 인식되는 EU의 동기는 경제가 아닌 정치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그로 인해 급격히 축소된 지위는 유럽에 심오한 심리적 영향을 끼쳤다. 독일은 자기혐오의 시기에 들어섰다. 나머지 유럽 국가들은 잃어버린 식민지에 대한 향수 그리고 제국과 통치권이라ㅏㄴ 짐을 벗어던진 안도감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했다. 유럽의 고갈과 함께 찾아온 것은 바로 유럽의 쇠퇴였다.” (조지 프리드먼)

 

EU는 쇠퇴에 대한 대답이엇다. “격하된 지위에 반응하는 독일의 모습은 유럽이 보이는 반응의 축소판이었다. 독일은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잠재적으로 적대적인 두 강대국 사이에 낀 독립적 행위자의 문제로 인식햇다. 소련의 위협은 고정적이엇다. 르러나 독일은 프랑스와의 관계를 재정립함으로써 유럽 전체와의 관계를 재정힙할 수 있다면 이렇게 중간에 낀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앗다. 독일이 생각해낸 해결책은 유럽 전체 특히 프랑스와 통합되는 것인었다. 그러나 유럽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통합은 필연적 결과였다. 한쪽에는 소련의 위협이 다른 쪽에는 미국의 압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럽의 경제가 통합되길 원했다. 이것은 유럽을 위해서뿐 아니라 분열되기 쉬운 동맹국들을 연합시키기 위해서였다. 유럽 역시 경제 연합은 전쟁에서 회복되는 길일 뿐 아니라 자신들을 한낱 지역세력으로 격하시킨 세계에서 입3지를 회복할 수단이라 판단했다. 되찾을 권ㄹ펵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일종의 연합체에서 찾아야만 했다. 이런 연합은 독일을 유럽에 통합하여 독일 문제를 해결하고 탁월한 독일 경제를 유럽체제의 일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엇다.” (조지 프리드먼)

 

그러나 냉전의 종식은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유럽이 뭉치게 만든 두 이유 중, 소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유럽이 잃었던 주권을 회복한 것은 바로 이 시점이다. 물론 그 주권을 정의하기 위해 여전히 애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조지 프리드먼) EU는 그 노력의 하나였으며 유로는 그 노력의 절정이었다.

 

유로를 낳은 것은 경제가 아니라 정치였다. 그리고 그것이 문제였다. 그 문제를 소로스는 ‘Two-speed Europe’이라 정리한다. 경제의 속도가 다른 두 지역을 억지로 묶었기 때문에 유로화 위기가 일어났다는 말이다.

 

화폐통합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고 볼 수 있으려면 그것이 성장과 대외충격에 대한 강건성 면에서 만약 회원국들이 국제개방시스템을 유지했더라면 달성할 수 있었을 성과보다 더 높은 성과를 가져다줄때만 그렇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문제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먼델은 최적통화이론을 제시하면서 영구 고정환율로 통합된 나라들이 거시경제적 측면에서 효율성을 누릴 수있기 위해 필요한 조건들을 거론했다. 그는 환율이 고정됨으로써 환율을 매개로 한 거시경제적 조정은 사라지겠지만 경쟁적 평가절하와 동일한 파괴적인 경쟁을 초해할 수 있는 국내 물가의 변동은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화폐통합을 형성하는 지역 내부에서는 노동의 이동성이 아주 높거나 강력한 소득 이전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고 주장햇다. 유로화 지역이 이 두가지 조건 중 어던 것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예를 들어 이런 문제가 일어난다. “실제로 2001년의 주가 폭락 때 그랬던 것처럼 불황을 초래하는 충격이 발생하면 유로화 지역의 회원국들은 이들의 구조적 이질성 때문에 비대칭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때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는 독일 및 독일과 가장 직접적인 연계를 맺고 있는 소국들이다. 그런데 공동 통화정책은 유로화 지역의 평균적 상황에 기반을 둔다. 따라서 이러한 통화정책 아래서는 경기침체 충격을 가장 크게 받는 나라의 이자율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이 나라의 인플레이션률이 더 낮아지기 때문이다. 유로화 지역 전체로 보면 명목 이자율이 아주 낮은 수준으로 보이지만 그 실질 이자율은 경기 침체에 빠진 나라들에게는 지나친 수준이 될 수 있다. 이런 통화정책이 비효율적임에도 외형상으로는 적당하다고 평가될 수있다. 진정한 화폐통합이라면 이러한 상황에서 일어나야 할 일은 회원국들간의 재정정책의 협조가 이루어지4거나 혹은 연방예산을 매개로 한 재정이전 메커니즘이 시행되는 것이다.” (미셸 아글리에타. 로랑 베레비)

 

다시 말해 정치통합이 있어야 화폐통합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로는 정치통합을 위한 도구라는 것이 문제였다. 화폐통합을 유지하려다 보면 정치통합으로 이어질 것이란 논리엿다. 그러나 이번 유로화 위기는 바로 그 경제통합 때문에 유럽통합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유럽중앙은행의 정책은 주로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경제에 맞춰져 있었다.” 유로존에서 이들 국가의 비중이 가장 크기 때문이다. “ 3대국가가 낮은 인플레이션 그리고 실업률이 높아지면 유럽중앙읂팽은 정책금리를 낮췄다. 물론 이런 저금리는 인플레이션이 높고 경제성장이 빠른 회원국에도 동일하게 적용됐다.” 여기에 유로화는 마르크화의 변신이라는 점이 그 금리를 더 낮췄다. 유로화를 쓰는 것으로 독일의 금리를 적용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10년 만기 국채의 실질금리는 1999 5%에서 2005 0%로 떨어졋다.”

 

유럽통화연맹 가입은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테인에게도 기적을 선물했다. 실질금리의 하락으로 인한 총수요의 확대는 더 큰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높은 경제성장은 물가상승을 부추겼다. 그러자 실질 이자비용은 더욱 줄어들어 마이너스로 떨어지기까지 했다. 금리는 매우 낮았고 국내소비는 국내총생산보다 더 확대되 이들 국가들의 경상수지 적자가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적자는 외국은행이나 다른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은 자금으로 쉽게 메울 수 있었다.” 그리고 경기과열은 부동산 과열로 이어졌다. 이런 현상은 아일랜드돠 스페인에서 가장 극명하게 나타낫지만 그리스 역시 유로존 평군보다 높은 부동산 가격 상승률을 보여주었다. 부동산 거품의 가장 큰 피해는 지중해 클럽 국가들이 국제 가격경쟁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수요폭증으로 부동산 분야의 임금이 상승하면서 국영기업들의 임금도 상승했고 연쇄적으로 임금이 올랐다.” 결국 거품은 터질 수 밖에 없었고 지중해변은 쑥대밭이 되었다.

 

소로스는 이 과정을 Two-speed Europe 이란 말로 정리한다.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의 속도에 남유럽이 맞춰졌기 때문에 위기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위기가 위기가 된 것은 위기 자체보다 대응 때문이었고 유럽통합의 한계 때문이었다.

 

“1993년 출범 이래 2008년까지 유럽연합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렸다. 그리고 그러한 번영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한동안 덮어주었다. 정치체제의 자질은 역경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2008년의 위기와 함게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모두 떠올랐으며 감추고 싶었던 국가주의도 모습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당한 정치적 힘을 발휘했다. 대부분의 독일인은 그리스에 대한 원조를 반대햇다. 그리고 대다수 그리스인들은 독일이 정한 것이나 다름없는 유럽연합의 조건을 따르느니 파산을 택햇다. 금유위기가 완화되면서 긴장상태도 가라앉았지만 2010년 우리는 잔잔한 유럽의 표면 아래에서 들끊는 힘들을 잠시나마 엿볼 수 있었다.” (조지 프리드먼)

 

이책의 상당부분은 그리스에서 시작된 위기가 어떻게 스페인까지 번져나갔는가를 타임라인을 따라 서술하는데 바쳐져 잇다. 그 주 내용은 유럽연합 내의 좌충우돌이다. 어떤 리더십도 없었다. 회원국들은 독일을 중심으로 한 북유럽 부국과 프랑스를 중심으로한 남유럽의, 소로스의 말로 하자면 two-speed로 갈라졌다. 두 진영으로 나누어진 회원국들은 서로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 타협을 하더라도 미지근한 것으로 사태를 진화하기에는 한발 늦게 그것도 불충분하게 이루어질 뿐이었다. 이책은 그 분열이 일으킨 우왕좌왕과 혼란, 내홍을 그려간다.

 

독일은 2008~2010년 금융위기 당시 자신들이 부담해야 했던 역할을 불편하게 느끼고 있다. 독일이 유럽연합의 주변국들에 대한 이해관계를 재고할 때 주변국들 역시 독일과의 통합에 따른 경제적 이익을 따져보게 된다., 이들은 은행 같은 광범위한 경제분야에서 통제력을 상실하거나 위기가 닥쳤을 때 스스로의 힘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문제 때문에 더욱 분개하고 있다. 주변국들의 경제가 핵심국가들을 위해 설계된 금융정책을 통해 유지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양측 모두에게 압력을 가한다.” (조지 프리드먼)

 

유럽은 변했다. “독일의 전후 정책은 나치정권의 범죄와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저지른 일에 대한 죄책감을 토대로 만들어졋다. 그러나 메르켈과 그들 세대의 정치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을 간접적으로만 전해 들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어지면서 전후 독일의 분단은 사라지고 문제가 있는 과거는 더 이상 큰 쟁점이 되지 않앗다. 오늘날 독일의 정치인들은 대부분 1950-1960년대 사이에 태어났다. 이드은 유럽통합에 무관심하고 일부는 회의적이며 사적으로 적개심을 표출하기도 한다. 오늘날 정치인들에게 유럽연합은 여러 정책 선택지들 중의 하나일분이며ㅑ 더 이상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독일이 전쟁에 대한 죄책감으로 유럽통합을 위해 큰 비용을 지불하는 것은 이제 불가능해졋다는 것이다.”

 

유럽통합의 축은 독일과 프랑스의 단결이엇다. 그러나 독일은 무관심해진 반면 프랑스는 갈수록 약해지면서 파트너로서 가치를 잃어간다. “예전에는 프랑스가 정치적 운전사였고 독일은 경제적 운전사였다. 그러나 이제는 메르켈이 결정권을 쥐고 있고 사르코지는 기자회견을 열어 그녀의 결정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과 중국만이 선두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 뒤를 인도, 일본 브라질 러시아와 독일이 뒤를 따르고 있다. 프랑스는 인도네시아, 터키, 멕시코,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그리고 영국과 같은 세번째 등급이다. 이런 국가들은 국제적인 논의의 장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리고 독일의 파트너로서 자격도 유지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유럽통합의 정점을 목격했다. 향후 10년 동안 밀물이 빠지면서 드러나게 될 것은 무엇보다도 독일의 힘이 될 것이다.” (조지 프리드먼)

 

콜 총리의 세대에게 유럽은 전쟁과 평화를 좌우하는 존재였지만 메르켈 총리 세대에게 유럽은 비용과 편익의 문제 불과할 뿐이다.” 이제 독일인에게 그리고 다른 유럽인들에게도 근본적으로 유럽연합은 경제연합이다. 국방과 달리 경제는 번영을 극대화하는 수단이다. 이런 한계 때문에 보다 고귀한 목적ㄹ을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것은 모순이 된다. 유럽연합은 유럽의 안전과 복지를 도덕적 목적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럽연합의 이상을 지켜내기 위해 싸우거나 죽음을 종용하는 고무적인 수사법에는 아무런 기반이 없다.” (조지 프리드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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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환상 -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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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라고 말한다. “오늘날의 경제위기에서 지배 이데올로기의 주된 과제는 금융폭락의 책임을 세계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아니라 그것의 일탈, 즉 느슨한 규제와 거대 금융기관들의 부패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따라서 정말 위험한 때는 금융폭락을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견해가 우리를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계속 꿈을 꾸게 만드는 경우다.”

 

탐욕도 문제였지만 그보다는 그런 탐욕이 가능했던 시스템이 문제였다는 말이다. 이야기는 금융화에서부터 시작된다. “고완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그가 새로운 월스트리트 체제라 부른 것 즉 지난 25년 동안 성장했고 투자은행들과 헤지펀드나 사모펀드 같은 그림자 금융이 지배하는 체제 탓으로 돌렸다.”

 

새로운 월스트리트 체제란 금융화란 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시장의 성장은 선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화라는 훨씬 더 광범위한 과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자본주의의 특징이 금융화라는 생각은 지난 몇십년 동안 급진좌파에게 널리 받아들여졌고 지금은 주류경제학계로 번지고 있다. 그러나 금융화란 무엇인가?” 저자는 금융화의 뜻을 세가지로 정리한다.

 

첫째는 금융자본이 경제를 지배하는 것이다. 19세기 영국이 그랬고 미국에서 J P 모건이 그랬듯이 금융자본이 산업자본의 위에서 군림하는 것이다. 힐퍼딩의 금융자본론이 고전적인 논의인데 경제사에선 그런 금융자본을High finanace라 부른다. 고등금융의 시대는 대공황과 함께 끝났다. 그러나 자본의 역습에서 뒤메닐과 레비는 신자유주의를 금융 헤게모니의 복원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금융경제학에서 지적하듯이 60년대 이후 기업자금수요의 탈중개화는 은행을 무력화시켰다. 새로운 월스트리트 시스템이라 부를 실체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19세기와 같은 형태는 아니다. 저자는 다른 정의가 보완되어야 말한다.

 

둘째는 금융 자체의 자율성이다. 요컨데 금융화는 은행이 산업,상업자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금융부문의 자율성이 증대되는 것이다. 산업자본과 상업자본은 공개금융시장에서 차입할 수 있게 되고 그 과정에서 금융거래에 더 깊숙이 관여하게 된다. 한편 금융기관들은 수익성의 새로운 원천을 개인소득과 금융시장 중개에서 찾았다.” 탈중개화의 정의와 상당부분 겹친다. 기업이 직접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고 주식을 팔며 자동차산업처럼 할부회사를 운영하고 은행이 아닌 AMEX가 카드사업을 통해 은행처럼 영업하는 것, 그리고 기업고객을 잃은 은행이 소비자금융에 뛰어든 것 등등 금융시장의 범위와 규모가 확대되었고 양적팽창은 질적변화를 가져와 금융시장 자체의 동학에 따라 움직이게 되었다.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보았던 파생상품의 경우가 그런 예이다. 여기서 세번째 의미가 파생된다.

 

셋째는 더 다양한 주체들이 금융시장에 통합되는 과정이다. “진짜 은행뿐 아니라 그림자 금융이라는 지하세계의 주민들, 산업,상업자본가들 그리고 노동계급 가정들도 통합되는 과정말이다. 다시 말해 금융시장이라는 경제구조와 금융기관이라는 특수한 경제주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대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하나는 산업기업과 상업기업이 금융시장에서 예컨대 채권과 CD를 발행해 직접 자금을 조달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특징은 모기지, 신용카드 등을 통해 개별 소비자들에게 신용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금융은 모든 경제주체를 금융의 그물망 속으로 엮어 넣는다.”

 

저자가 말하는 금융화는 그러므로 금융부문의 자율성 확대, 금융기관과 금융상품의 증대, 다양한 경제주체의 금융시장 진입을 뜻한다.” 저자는 파생상품이 금융화의 성격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준다고 말한다. “딕 브라이언과 마이클 래퍼티는 이렇게 썼다. ‘파생상품의 핵심적, 보편적 특징은 모든 자산을 해체하고 분해해서 그 구성요소들로 쪼개고 자산 자체를 거해하지 않으면서도 그 구성요소를 거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각각의 파생상품은 자본의 한 형태를 다른 형태로 전환해 만든 패키지 상품이다. 이 모든 상품들을 다 합치면 전환상품들의 복합체가 형성된다. 그러면 어느 곳에 있는 어느 시간대의 어떤 자본 조각도 다른 자본 조각과 비교, 평가할 수 있게 된다.’ 메타자본의 성격 때문에 파생상품은 1971년 미국이 금환본위제를 포기한 이후 국제통화제도에 존재하지 않았던 고정장치 구실을 할 수 있었다. ‘파생상품은 모든 형태의 자본(화폐와 상품)을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서로 비교할 수 있게 해주고 그래서 서로 다른 화폐 형태의 차이나 상품과 화폐의 차이를 없애 버린다.’ 금융시장 자체의 작동으로 생겨난 파생상품은 고정장치의 네트웤을 제공해 개벌자본들이 금융불안정에 노출되는 위험을 관리하고 마치 안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는 세계금융시스템 속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시스템이 불안정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문제는 금융시스템의 불안정성은 어디서 오는가이다. 케인즈와 민스키는 자본주의 자체의 불안정성 때문이라 말한다.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은 자본주의에 내재된 불안정성을 설명하는 고전파 경제학과는 다른 시각의 핵심용어이다. 케인스는 대부부의 경제활동이 합리적 경제적 동기에 따라 이루어지지만 동시에 야성적 충동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케인스의 시각에 따르면 이 야성적 충동은 경기 순환과 비자발적 실업의 주된 요인이다.”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

 

저자는 야성적 충동을 케인스가 자본축적 자체에 대해 말한 것으로 해석한다. “케인스와 민스키도 자본축적이 현대자본주의 경제의 핵심특징이라 봤다. 축적이라는 것은 상당한 생산적 자원을 수익성 있는 듯한 사업에 비교적 오랫동안 묻어둔다는 뜻이다. 이것은 미래를 놓고 내기를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주류경제학이 말하듯이 그것은 합리적인 동기가 아니라 야성적 충동이라 봐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리스크가 아니라 불확실성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투자란 근본적으로 계산할 수 없다.

 

민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불확실성은 미래를 오늘 다룰 때 나타나는 문제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경제단위들은 과거에 내린 결정의 흔히 뜻밖의 결과에 그럭저럭 대처하고 대응한다. 불확실성의 구체적 표현 하나는 물려받은 자본자산, 금융자산, 새로 형성된 자본자산에 대한 차입투자의행, 즉 빚을 내서라도 투자하겠다는 태도다.” “민스키가 보기에 불확실성으로 말미암은 불안정성은 자본주의의 고유하고 불가피한 결함이고 자본주의의 불확실성은 핵심적으로 기업이 투자자금을 조달하는 과정에서 취약해지는데서 비롯한다.” 민스키는 그 취약성에 따라 자금조달형태를 헤지금융, 투기적금융, 폰지금융으로 나누고 경기순환을 투자의 자신감의 수준이 세가지를 따라 오르내리는 것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민스키는 자본주의의 불안정성이라는 문제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에 대해서는 근본적으로 모호하다. 이점이 민스키와 케인스의 공통점이다.”

 

저자는 맑스의 위기론으로 넘어간다. 맑스의 위기론은 이윤율 저하경향이다. “맑스는 이윤율 저하가 경향일 뿐이라고 장조했다. 맑스가 보기에 경제위기는 자본주의의 최종붕괴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체제에 유용한 에피소드라는 것이다. 실업이 늘면 착취율을 높이기가 쉬워지고 파산으로 자본이 파괴되면 살아남는 기업들은 수익성 있는 사업 기회를 얻을 수 잇다. 따라서 경제위기는 이윤율이 다시 높아지고 경제성장이 재개될 수 있게 해준다.”

 

여기서 다시 저자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데이비드 하비로 넘어간다. “그는 자본론을 비판적으로 독해해서 생산의 동역학과 금융현상의 관계를 더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위기론 버전2’를 발전시키려 한다. ‘언뜻 보면 신용제도는 적어도 생산과 소비,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 현재의 사용과 미래의 노동, 생산과 분배 사이의 적대관계를 연결해주는 잠재력이 있다. 또 자본가의 개인적 이해관계와 계급적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그래서 위기의 요인들을 억제하는 수단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신용의 사용은 흔히 장기적으로는 사태를 더 악화하는데 교환에서 일어나는 문제들만 대처할 수 있을 뿐 생산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용이 생산자들에게 잘못된 가격신호를 보내 불균형과 과잉축적경향을 악화할 수 있는 온작 상황이 존재한다.’” 하비가 여기서 염두에 두는 것은 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비는 금융은 생산의 문제를 증폭할 뿐이라는 관점이다. 그러면 생산의 문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문제는 이윤율저하경향이다.

 

“1949~1973년의 시기는 자본주의 역사에서 예외적인 시기이다. 심각한 불황이 이 성장국면을 중단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결정적 요인은 마이크 키드런이 상시군비경제라고 부른 것이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냉전의 절정기에 미국과 소련이 모두 매우 높은 수준의 군비지출을 유지한 것 때문에 자본의 유기적 구성상승 경향이 상쇄됐고 그래서 1960년대말 닉슨 정부가 군비지출을 삭감할 때까지 이윤율이 높게 유지됐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73년 이후 세계경제의 혼돈은 단순한 경기순환의 부침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목격한 것은 자본이 과잉축적과 수익성의 근본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경제적, 금융적 불안정성의 고질적 패턴이아. 그런 위기를 해결하려면 착취율도 높여야 하고(노동자들이 임금삭감, 노동시간 연장, 노동조건 악화를 받아들이게 만들어서) 굳이 자본을 물리적으로 파괴하지 않더라도 그 화폐가치를 저하시켜 수익성이 낮은 자본을 제거하기도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과정의 결과로 이윤의 양은 늘어나고 자본의 양은 감소해 결국 이윤율이 높아질 것이다. 이것은 자본의 상당한 구조조정과 재편을 함의한다. 신자유주의가 그런 구조조정이 일어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틀이다. 그러나 이윤율은 1950년대와 1960년대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여기서 저자는 뒤메닐과 레비에게 반대한다. 그 이유는 과잉축적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계화는 과잉축적을 해결하려는 방편이었다. “하비는 이 문제를 위기론 버전3에서 다루는데 어떻게 자본이 새로운 투자처를 찾아서 공간적 조정으로 위기를 극복하려하는지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방편일뿐이다.” 공간적 조정은 결국 자본의 총량을 늘려 과잉축적 문제를 더 악화시켰다.

 

“1997년은 세계경제의 전환점이었다. 미국의 수익성 회복은 절정에 달했다가 그 후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미국의 산업, 상업기업들이 느낀 압력을 더 세게 만든 것은 1995년 이후 다른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상승이었다. 이 때문에 외국 경쟁업체들보다 미국기업들의 경쟁력이 약해졌다.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런 하향압력은 미래의 성장을 제약하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특히 미국자본주의를 관리하는 자들은 이윤율이 오르고 있던 1980년대 초부터 1990년대말까지의 시기보다 더 취약한 토대 위에서 경제가 계속 성장하도록 애를 써야 햇다. 신자유주의 정책레짐은 국가가 거시경제관리를 포기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 대책을 브레너는 주식시장 케인즈주의라 부른다.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심각한 불황의 늪에서 건져내기 위해 연준은 지속적 주가상승을 통해 미국국내소비와 투자의 증가를 가속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닷컴버블이 터졌을 때 연준은 그 거품을 주식시장에서 주택시장으로 옮겨놓았다. “신용거품은 미국경제(그리고 미국경제가 세계수요을 유지하는데 핵심구실을 햇으므로 세계경제도) 계속 성장하게 하려는 노력이엇다 비록 196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수익성과 과잉축적의 만성적 위기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시 거품은 공공부문으로 이전되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해결되지 않는다. “시장에서 비효율적인 자본들이 일소되도록 자유방임한다면 그 결과는 장기불황일 것이다. 그러나 국가가 나서서 자본의 대대적 가치저하를 막는다면 과잉축적과 수익성의 장기적 위기가 지속될 것이다. 2000년대 말의 경제,금융위기는 통제를 벗어난 금융시스템의 돌발사고도 아니고 우연한 결과도 아니었다. 그것은 세계자본주의가 수십년동안 해결하지 못하고 낑낑댄 근본적 모순이 여지없이 드러난 순간이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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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시 코스 - 시한부 세계경제의 진실을 말하다
크리스 마틴슨 지음, 이은주 옮김 / 미래의창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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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이 말하려는 것은 다음 문장으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물리적 한계가 존재한다. 그런데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는 세상에는 마치 그런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게 문제다. 경제는 성장을 요구한다. 경제는 성장하고 있을 때에만 제 기능을 다한다는 의미다. 경제가 성장해야만 일자리가 창출되고 부채도 상환될 수 있다. 성장이 없으면 일자리도, 기회도, 그리고 부채를 청산할 능력도 아주 말끔히 사라지고 만다. 궁극적으로는 이것이 경제공황과 혼란을 유발한다.”

 

길지 않은 문장이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보자.

 

저자가 문제삼는 것은 성장이 산술적 성장이 아니라 기하급수적 성장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기업은 끊임없이 성장을 추구하고 지자체는 성장목표를 수립하고 주정부와 지방정부는 고도성장을 갈망하고 연방정부는 경제성장을 장려한다. 한편 연준은 완전고용을 핵심과제로 삼고 있다. 인구는 꾸준히 늘어나는데 신규 일자리는 경기팽창을 통해서만 창출되기 때문에 경제성장은 중앙은행 즉 연준의 지상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연준은 또한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25 내외로 잡고 있다. 이를 뒤집어 생각해보면 통화공급량의 증가가 중앙은행의 목표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이쯤에서 다시 생각해보자. 인플레이션 목표치 자체는 비율로 표시돼 있다. 따라서 연준은 대놓고 통화의 기하급수적 증가를 목표로 삼고 있다고 공언하는 것과 다름엇다.”

 

그러나 기하급수적 성장은 유한한 세계에서 불가능하다. 기하급수적 성장의 좋은 예가 복리이다. “여러분의 선조가 약 2천년전에 먼 훗날의 자손을 위해 이자부 예금 계좌에 1센트를 예금했다고 하자. 이때 이자는 단 25라 하자. 예금 원년의 잔고와 1년 후의 잔고의 차액은 1센트의 100분의 2에 불과하다. 그러나 2천년이 지난 후의 예금 잔고는 1500조달러(2010년 전 세계 통화량의 20배 이상)으로 불어나 있을 것이다.” 은행들이 복리상품을 없앤 이유이다.

 

다시 말해 유한한 세계에서 영원히 기하급수적 성장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는 바로 그것을 전제로 한 시스템이다. 맑스는 그것을 자본의 무한축적이라 말햇다. 저자는 경제가 기하급수적 성장을 전제하는 이유를 통화시스템에서 찾는다.

 

통화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첫번째는 은행 신용으로 대출의 형태로 창조된다. 은행 신용은 이와 연계된 부채액과 상쇄된다. 이 부채액은 원금 잔고, 그리고 이를 기준으로 발생한 금리로 구성된다. 역시 무에서 창조된 이 돈에는 이자가 쌓이기 때문에 원금 잔고가 상환된다 해도 이것이 통화공급량의 증가를 촉진한다. 이자는 시간에 지남에 따라 축적되는 돈이며 모든 것이 계획에 따라 순조롭게 진행되는 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이자가 일정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본원통화가 두번째 유형이다. “본원통화 역시 대출을 통해 창조되며 이 두가지 통화가 어루러져 기하급수적으로 팽창되는 통화시스템이 구축된다. 실질적으로 이자부 대출을 통해 창조된 통화가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 다시 말해 모든 달러(통화)는 부채를 기반으로 창출된다,”

 

우리의 부채기반 통화 시스템은 항상 일정 비율로 증가하기 때문에 시스템 자체가 기하급수적 속성을 지닐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통화는 자산에 대한 청구권에 불과하다. 통화가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될 때는 미래 경제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한다는 전제가 있다.” 다시 말해 현대 금융시스템은 영원한 팽창을 요구한다. 통화공급량이 지속적으로 증가(신용팽창을 통해)하지 않으면 채무불이행 사태를 포함해 온갖 문제가 생긴다.”

 

개인적으로는 맑스의 자본의 무한축적이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 보지만(저자의 예는 원인이라기 보다 증상이다) 저자의 예도 경제성장이 기하급수적 성장을 전제한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충분하다. 그러면 왜 우리는 성장을 원하고 성장의 정확한 의미는 무엇인가?

 

산업혁명은 폭발적인 성장과 번영을 가져왔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빈곤선 이하의 삶을 산다는 이야기를 접하면 성장과 번영 간의 표면적인 상관성을 체감할 수 있다. 선진국의 거의 모든 국민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는 대단한 부자들만 누렸던 것과 같은 수준의 번영과 안락함을 누리고 있지 않은가! 성장이 이런 번영을 선사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그토록 성장을 숭배하고 갈구하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성장과 번영은 같은 말이 아니다. 성장은 잉여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우리 신체는 잉여 음식이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섭취한 열량과 소모한 열량이 정확히 일치하면 몸무게는 늘지도 줄지도 않는다.” 경제에서도 역시 잉여는 에너지의 잉여이다. ”경제 성장 여부는 줄리언 사이먼이 말하는 주요 자원즉 에너지에 좌우된다.” 물론 번영 역시 잉여의 결과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횡재로 가계수입이 10% 늘었다. 공돈으로 아이를 하나 더 낳아 키울 수도 있고(성장) 아니면 각자의 용돈을 더 늘릴 수도 있다(번영) 그러나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다. 성장과 번영을 동시에 실현하려면 둘을 다 지원할만큼 충분한 잉여가 있어야 한다. 즉 성장과 번영은 동의어가 아니다. 지난 수백년 동안 성장과 번영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을만큼 잉여 에너지가 항상 존재했기 때문에 두 개념을 같이 인식해온 면이 있다.”

 

다시 말해 성장이 기하급수적이란 말은 잉여에너지가 무한히 있을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우주는 유한하고 에너지도 유한하다. 그러나 경제는 무한을 원한다. “경제학자들이 낭패를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경제를 진공 상태에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이 전제하는 세상은 무제한의 특히 자원 이용에 제약이 없는 세상이다.” 그런 세상은 물론 있을 수 없다.

 

경제는 경제학자들이 생각하듯 닫힌 시스템이 아니라 열린 시스템이다. 오픈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에너지가 소비될 때 아니 더 정확하게는 에너지가 소비될 때에만 개방 시스템 내에서 질서와 복잡성이 구현된다. 농축된 에너지를 취해 이를 덜 농축된 형태로 만든 다음 여기서 유용한 일 에너지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열을 발생시킬 때 질서와 복잡성이 구현된다.” (복잡계 경제학에 대해선 부의 기원이 사실상 교과서이다)

 

우리 경제는 매우 복잡한 시스템이며 이런 복잡성은 지속적인 에너지 처리량을 바탕으로 한다. 개방 시스템에서는 에너지 사용을 통해 질서를 유지하고 복잡성 수준을 높일 수 있다.” 복잡성이 높다 또는 증가한다는 말은 에너지 투입이 많아진다는 말이다. “농업혁명 이후에는 건축설계, 미술, 음악, 음악, 법률 기타 오늘날과 같은 복잡한 사회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직종이 생겼다. 이처럼 다양한 직종이 생겨나고 사회적 복잡성 수준이 높아진 것은 잉여 식량이 전문적 역할과 활동을 추진하는 에너지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복잡성은 만년전 농업이 시작되었을 때 그리고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진화는 한 가지로 설명된다. 에너지를 더 많이 소비하는 방향으로 진화햇다는 말이다. “ 150년전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계속된 세번째 사건(복잡성 수준의 폭발적 향상)의 촉발 인자는 무엇이었나? 그것은 물론 식량자원이 아니라 에너지였다. 고대의 태양광말이다.”

 

문제는 그 속도다. “우리는 150년 남짓 되는 짧은 기간에 번개보다 빠르게 수십억년 동안 농축된 에너지를 뽑아냈다. 복잡한 경제 시스템을 창조하고 유지하려면 일을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는 그 에너지가 무한하다는 가정으로 작동해왔다. 만일 에너지 공급이 중단되거나 감소한다면 우선 경제성장이 중지될 것이고 그 다음에 성장의 역전 현상이 나타날 것이다.”

 

이후 저자는 피크오일, 식량위기, 자원의 고갈 등에 대해 위에서 소개한 기하급수적 성장의 한계에 기초해 설명한다. 이책의 후반부에서 소개되는 내용이 새로울 것은 없다. 그러나 그 논의들을 한권에서 단순한 이론에 기초해 일관된 설명을 한다는 것이 이책의 장점이며 매력이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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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의 미래를 말하다 - 끝없이 반복되는 글로벌 금융위기, 그 탈출구는 어디인가?
조지 소로스 지음, 하창희 옮김, 손민중 감수 / 지식트리(조선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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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책이다. 그 이유는 이책이 한권의 책으로 묶일 것이란 전제로 쓰이지 않은 시사칼럼을 편집했기 때문이다. 칼럼을 묶었다고 다 그렇지는 않다. 문제는 칼럼의 성격이다. 이책에 실린 칼럼은 저자가 FT에 연재한 것이다. 저자의 주분야도 그렇지만 지면 자체의 성격이 경제일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유력경제지에 실리는 글의 성격상 그때 그때 이슈가 되는 경제정책에 대한 저자의 코멘트가 되었다. 그러므로 칼럼이 쓰일 때의 정황을 알고 있고 그 정황에서 왜 이런 글이 나올 수 밖에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이책에 묶인 칼럼은 암호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책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상당히 유용하다. 저자가 이번 금융위기와 그로 인해 촉발된 유럽위기를 어떻게 정의하는지 알 수 있고 그 자신의 진단에 근거해 그 위기에 대한 대책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저자가 금융위기와 유럽위기를 어떻게 보는가에만 한정하겠다. 그가 말하는 구체적인 대책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상당히 기술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소로스는 이번 위기의 원인이 된 시장근본주의의 오류를 지적한다. “금융시장은 자율규제에 맡길 경우 반드시 균형으로 수렴되지는 않으며 오히려 버블을 형성하기 쉽다.” 전후의 브레튼우즈체제는 그런 경험의 교훈에 따랐고 내가 금융분야에 첫 발을 내디뎠을 무렵 은행과 통화는 엄격한 규제의 대상이었다. 이는 세계대공황과 2차세계대전을 겪은 후 피할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세계대공황의 영향으로 시작된 케인스 정책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었다. 두 차례 오일 쇼크 이후 산유국들은 막대한 흑자를 기록한 기록한 반면 석유 수입국들은 엄청난 적자를 감내해야 햇다.” 오일 머니를 순환시켜 이들간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 상업은행의 역할이었다.” 그리고 그 순환은 기존의 규제에서 벗어난 장소인 유로달러 시장에서 일어났다. “바로 여기서부터 은행은 직접적인 규제 제약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후 이번 위기로 터진 슈퍼버블이 시작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70년대 오일 머니의 리사이클을 맡았던 은행들은 그 돈을 정부채권에 투자한다. 그러나 “1970년대 인플레이션 시기 각 국가에 제공된 신용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 붕괴에 이르자 1982년 슈퍼버블로 인한 첫번째 국제은행체제의 위기가 발생했다.” 이때의 위기는 금융시스템의 붕괴를 막으려는 미국 주도의 개입으로 해소된다. “바로 이 시점에 브래디 채권이라는 것이 도입되어 질서 잇는 부채구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 위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대 중반의 저축대부조합 스캔들이다. 그 다음으로 발생한 중대한 국제적 위기는 1997년 아시아를 중심으로 발생했2000년 닷컴버블로 그리고 2008년에 미국의 주택버블이 터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일어났다.

 

그러나 슈퍼버블은 끝난 것이 아니다. “각국 정부는 부도 위기의 상업신용응ㄹ 국가신용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금융기관을 보호햇다. 그러나 이 같은 정부개입으로 슈퍼버블은 또 다시 계속 확대되었다. 슈퍼버블 시기에 형성된 불균형은 해소되지 않았으며 금융시장은 균형에서 한참 벗어난 상태로 운용되엇다. 격국 2008년 금융체제를 위기에서 구제햇던 국가신용도 그 신뢰성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저자는 슈퍼버블이 만들어질 수 있게 한 원흉으로 잘못된 이론, 효율적 시장가설을 지적한다. 우끼는 것은 효율적 시장가설에 따르면 버블이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버블은 만들어졌고 그것도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규모로 만들어졌다.

 

저자는 버블이 만들어지는 메커니즘을 인간행위에 대한 포퍼의 이론에서 끌어낸다. “행위자는 먼저 상황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를 인지기능이라 할 수 잇다. 또 다른 한편으로 상황에 영향을 주려고 노력하게 되는데 이를 유발기능(Causative Function) 또는 조작기능(Manipulative Function)이라 정의할 수 잇다.” 행동이란 상황을 인식하고 그 인식에 따라 상황을 조작하려는 것이며 인식에 따라 달라진 상황은 다시 인식에 영향을 주고 결국 행동에 영향을 준다. 다시 말해 인지기능과 조작기능은 동시에 작용하면서 루프를 이루며 상호순환관계를 만든다. 저자는 이를 재귀성(Reflexivity)라 정의한다. 저자는 재귀성을 불확실성의 원천이라 말한다.

 

불확실성의 원인으로 오류의 가능성은 널리 알려져 잇지만 재귀성은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잇다. 이는 재귀성이 인식과 조작이라는 두가지 서로 다른 영역을 연걸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들은 완벽을 추구하며 불확실성의이란 변수는 무시하거나 없애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곳이 바로 금융시장이다. 경제이론에서는 금융시장을 해석할 때 재귀성이 의도적으로 무시되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문제이다.

 

저자는 오류의 가능성과 재귀성이라는 두가지 요인 때문에 금융버블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모든 버블은 현실의 트렌드와 그 트렌드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는 두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1.     시장 참여자들이 트렌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이 같은 관심으로 인해 트렌드 자체와 그에 대한 해석이 모두 심화된다이 해석에는 인식의 오류가 수반되낟.

2.     어떤 이유에서든 트렌드가 중단될 수 있는데 이 경우 인식의 오류에 위협이 된다인식의 오류가 시험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버블은 확대되지 않는다그러나 트렌드가 중단되어도 인식의 오류가 계속 존재하게 된다면 트렌드와 인식의 오류는 더욱 힘을 얻는다.

3.     참여자들의 인식이 점차 기저현실과 동떨어지게 되어 참여자들이 서서히 모순을 인식하게 된다마침내 확신하는 참여자들보다 회의적인 참여자들이 많아져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에 이르게 되낟.

4.     진실이 밝혀지기 직전에는 관성으로 인해 잠시 동안은 트렌드가 지속될 수 있다.

5.     그럼에도 트렌드가 역전되는 순간은 오기 마련이다.

6.     그런 다음에는 불신이 만연해 트렌드가 반대방향으로 강화된다.

7.     어떤 형태이든 항상 신용이나 레버리지가 존재하므로 버블은 비대칭적 형태로 발전하여 서서히 확대되다 급격히 붕괴하며 결국 사라진다.

8.     이러한 과정을 형성하는 다양한 단계들은 그 순서만 사전에 정해져 잇다버블의 규모와 지속 기간은 예측할 수 없으며 어느 단계에서든 중단될 수 있다버블이 최대규모로 확대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이유는 버블성장의 메커니즘 때문이다. 버블의 성장은 양의 피드백과 음의 피드백에 따른다. “양의 피드백은 인식오류를 장화하지만 음의 피드백은 인식오류를 바로잡는다.” 두 피드백은 서로 상쇄되기 때문에 양의 피드백이 음의 피드백을 압도할 만큼 규모가 큰 버블을 생성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렇기 때문에 효율적 시장가설은 비현실적인 주장을 하기에 이른다. “다시 말해 양의 피드백은 존재하지 않으며 음의 피드백을 통해 인식과 기대가 현실에 완벽하게 들어맞아 균형에 이른다고 말한다. 그러나 양의 피드백은 존재했고 음의 피드백을 완전히 압도할 수있었기에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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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집 맏아들 - 대한민국 경제정의를 말하다
유진수 지음 / 한국경제신문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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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그렇지만 한국에서도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나라다. 일본으로 유학을 간 중국인에게 왜 일본인 학생들과 어울리지 않느냐 물으니 사회주의에 물들까봐라 말했다. 명색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명색이 자본주의인 일본이 더 사회주의적이란 말이다. 강한 평등지향성은 한국이 더 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다. 강한 평등지향성은 그 사회에서 부자를 어떻게 보는가로 측정이 가능하다. 나보다 돈이 많은 것이 부러움의 기준인가 존경의 기준인가이다.

 

평등보다는 자유 즉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미국의 경우 부는 존경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자유보다는 평등성향이 강한 사회에선 부는 존경보다는 단지 부러움이 기준일 뿐이다. 나보다 잘 난 놈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말인데 이 속담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토씨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다.

 

한국인은 부자를 부러워는 하더라도 존경하지는 않는다. 강한 평등성향이 이유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일까?

 

부는 권력과 마찬가지로 지위의 기준이다. 지위에는 존경과 부러움이 모두 따르게 마련이다. 어느 사회든 평등성향과 자유성향(즉 경쟁지향성)은 모두 있게 마련이고 단지 그 비율이 다를 뿐이다. 어느 성향이 더 강한가에 따라 존경과 부러움의 비중이 달라질 뿐 어느 것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얼마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에 대해 한국인들은 존경을 표시했다. 한국에서 존경이 없는 것은 아니란 말이다. 문제는 그 지위의 정당성이다.

 

전통이 사라진 한국과 달리 전통의 무게가 장구한 일본이나 유럽에선 여전히 과거의 귀족이었다는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과거에 조상이 어떠했다는 자체가 권위의 정당성을 제공한다. 전통이 없는 미국의 경우 그 정당화는 실력이다. 어쨌든 부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은 실력이 있다는 증명이며 지위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그러나 한국에선 전통도 실력도 지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요약한다. “혼자 힘으로 부자가 된 사람은 없다.”

 

학교 다닐 때 철학개론 시간이었다. 젊은 철학과 강사가 맡았던 수업인데 나이든 교수의 의무적인 수업보다 더 생산적인 강의였다. 교과서를 무시하고 현대철학자 한 사람씩을 골라 강사가 그들의 철학에 대해 소개한 다음 그 철학의 기준에 따라 현재의 눈앞의 문제들을 학생들이 발표하게 하는 형식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나는 주제 중의 하나는 동성애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를 학생들이 찬성, 반대로 발표했던 것이다.

 

그 강의에서 한번은 노직을 다루었다. 철저한 개인주의자인 노직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탔기 때문인데 강의 중에 그의 이론이 현실을 어떻게 보는가를 설명할 때였다.

 

내가 내 노력으로 돈을 벌었다. 그런데 왜 정부가 그돈을 뺐어가야 하는가? 그런 주장에 대해 내가 했던 질문은 로빈슨 크루소가 아닌 이상 내가 벌었다고 주장하는 그 돈에는 남의 몫도 잇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시장근본주의자라도 세금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시장이 존재하려면 경찰과 군대라는 최소한은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들이 시장에서 자신의 노력으로 번다는 주장을 하려면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필요한 것에는 여러가지가 잇다. 계약이 지켜질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는 사법시스템, 물류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한 교통 인프라 등은 모두 세금에 대한 국가의 서비스이다.

 

그러므로 내가 내 노력으로 벌었다고 주장하는 돈에는 국가의 몫이 포함된다. 그러나 노직이 반대한 것은 세금 자체는 아니다. 그의 속내는 복지국가였을 것이다. 내가 번 돈에서 국가의 몫이 얼마인지 그리 분명하지 않지만 몫 자체가 잇다는 것은 인정할 수있다. 그러나 왜 국가가 그 이상을 거둬가느냐는 것이다. 내가 돈 버는데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 세금은 강도짓이란 말이다.

 

레이건이 좋아하던 캐딜락을 타고 다니는 복지여왕의 예가 아니더라도 일리가 없는 불만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이 주장할 몫은 정말 없는 것일까?

 

여러가지 근거가 있을 수 잇지만 저자는 한가지만 언급한다. 도덕적 의무이다. 사회를 가족이라 생각해보자. 맏아들이 성공햇다면 맏아들은 가난한 부모와 동생들을 도와야 하는 도덕적 의무를 갖는다. 그것이 연대의무다. 돈을 많이 번 맏아들이 부모와 동생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경우 우리는 그에게 도덕적 비난의 화살을 던진다.” 연대의무는 단순히 그러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라 사람이면 당연히 갖는 인지상정이기도 하다.

 

“’당신이 코칭하는 CEO들이 인생에서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게 뭡니까?’ 애니스에 따르면 CEO들의 소망은 주가상승이나 분기 영업이익률 향상 같은 게 아니었다.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것은 사회를 위해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는 거에요. CEO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개인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어해요. 진정한 가치를 지닌 그 무언가에 기여하기를 바란다는 거죠.’” (하워드 블룸)

 

돈이란 것 자체가 왜 필요한지 생각해보자. 일정 수준을 넘어가는 돈은 생존과는 무관하다. “인간이 돈을 많이 벌고 싶어하는 이유는 돈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이야말로 인간이 마음 속으로 무엇을 원하는지 잘 보여주는 감정의 산물이다.” (하워드 블룸)

 

그러므로 연대의무는 인간이면 누리고 싶어하는 권리이기도 하다. 그런 의무를 무시할 때, 그보다는 그런 권리 자체를 모르는 부자를 사람들은 인정하기 어렵고 존경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권력은 행사되어야 하고 부는 쓰여져야 한다. 한국의 역사와는 별 상관이 없는 (군사귀족에게나 어울리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말이 유행한 이유는 쓰여지지 않는 부에 대한 비난이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의 부자들이 존경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보다 더 뿌리 깊은 것이라 말한다. 다시 저자는 가족의 비유를 든다.

 

세 명의 자녀를 둔 가난한 부모가 시골에서 근근히 논밭을 부쳐 먹고 살았다.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 때문에 세 자녀 중 한명, 맏아들만 대학 공부를 시켯다.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애지중지 키우던 소까지 내다팔았다. 다행히 맏아들은 공부를 썩 잘했고 의사가 되었다. 돈도 많이 벌어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대학에 가지 못한 둘째와 셋째는 가난을 이어받아 아직까지 어렵게 산다.”

 

저자가 말하는 맏아들은 물론 재벌이다. 모든 것이 부족하던 시절 정부는 몰아주기 전략으로 재벌을 키웠다. 없는 형편에 되게 하려면 공평한 것보다는 될 놈에게 몰아주는 것이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광복 직후 정부는 시장경제를 도입휴ㅏ는 과정에서 모든 기업과 국민에게 골고루 혜택을 주지 못했다. 경제적 자원이 크게 부족했기 때문이다. 정경유착이 심했던 것도 한 요인이었다. 당시 정부는 특정 기업 또는 특정인에 한정해 다양한 혜택을 주었다. 가난한 부모가 맏아들만 대학에 보내듯 말이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대부분 그와 같은 혜택을 입으면서 성장햇다.” 선택과 집중이란 전략은 성공했고 지금의 재벌이 있게 되었다.

 

“2006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목적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34.4%)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있다고 답했다. 근로자의 복지와 발전에 있다는 응답도 27.8%에 달했다. 반면 기업의 이익과 발전에 있다는 응답은 16.7에 붏과했다. 한편 중국은 응답자의 59.4%가 기업의 목적을 기업의 이익과 발전에 있다고 대답했다. 기업의 목적이 사회와 국가의 발전에 있다는 응답은 12.4%에 불과했다.”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보다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에서 더 사회주의적인 답변이 나온 이유는 재벌이 성공하기까지의 역사 때문이다. 문제는 그렇게 가족의 희생으로 성공한 맏아들, 재벌이 가족의 희생을 나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재벌의 나몰라라 하는 것은 얼굴에 철판 깔고 연대의무를 무시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재벌의 성공에는 분명 국가차원의 희생이 있었고 그 희생은 재벌의 성공에 대한 투자였다.

 

기업들에 대한 특혜로 인해 다른 기업들은 그와 같은 특혜를 누리지 못했다. 그리고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부담해야 햇다. 정부가 국내의 경쟁을 억제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했고 노조활동이 억압되었기 때문에 근로자드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환경에서 일해야만 했다.”

 

그런데 성공하고 나니 계약서에 쓴 일이 없다고 투자에 대한 배당을 무시한다는 말이다. “맏아들이 대학에 감으로써 다른 가족들이 암묵적인 비용을 지불했다면 의사로서 성공한 맏아들이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 보상을 가족에게 해야 함은 당연하다. 비용은 다른 가족들이 지불하고 혜택은 맏아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은 타당치 않기 때문이다. 맏아들이 가족들에게 지원을 한다면 이는 사랑하는 가족이 자신보다 못살기 때문에 돕는 연대의무 차원의 지원은 아니다. 비용을 지불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며 그렇기 때문에 보상해야 마땅한 의무이다.” 한국의 반기업정서는 자본주의나 시장에 대한 반감이 아니라 재벌의 배은망덕에 대한 반감이란 말이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성공한 맏아들의 도덕적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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