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eat Company 500 : 세계 명문기업들의 흥망성쇠 CEO의 서가 1
래리 슈웨이카트 & 린 피어슨 도티 지음, 장세현 옮김 / 타임비즈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고전이 된 아리기의 ‘장기 20세기’는 미국이 어떻게 패권을 잡게 되었으며 어떻게 패권(hegemony)을 잃어가는가 란 질문에 답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그 책이 쓰인 1994년은 미묘한 시점이었다. 역사의 종말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미국의 징치, 군사적 패권은 정점에 있었지만 경제적으로는 황혼인 것으로 보엿다.

그 시점에서 아리기는 세계경제의 패권자(hegemon)로서 미국은 현재 어떤 상태에 있으며 앞으로 패권의 향방은 어디로 갈 것인가 란 질문을 던졌다. 질문에 답하기 위해 아리기는 자본주의가 시작된 13세기 이탈리아까지 거슬러 올라가 20세기까지 내려오는 장대한 탐색을 시작한다. 그 탐색의 결과 아리기는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일반론을 제시할 수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를 세계경제로 이해할 때 세계경제의 패권은 이탈리아 도시국가에서 스페인으로, 네델란드로, 영국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옮겨졌다. 아리기는 이러한 패권의 이동의 메커니즘에 대한 일반이론을 제시한다.

패권국이 시장을 확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한 그 패권국의 지위는 유지된다. 그러나 그 패권국의 시장확대능력이 한계에 이르면 이윤율저하 경향이 나타나면서 시장에 자본은 더 이상 투입되지 않는다. 아리기는 (맑스보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을 따라 이윤율저하 경향이란 시장의 규모에 비해 자본의 총량이 커질 때 일어난다고 본다. 단순한 나눗셈의 문제란 말이다. 시장이 확장될때 자본은 M-C-M의 정상적인 순환을 따른다. 그러나 이윤율저하 경향이 나타나 자본이 시장에투입되지 않을 때 순환은 M-M의 사이클을 따르게 된다. 다시 말해 물질적 확장은 멈추고 금융확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영국의 경우 이 시기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에드워드 시대에 해당한다.

패권국이 더 이상 세계경제를 확장할 능력을 보이지 않을 때 패권의 붕괴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패권이 붕괴하는 혼란기에 패권의 그늘에 있던 후보가 정상으로 등극하는데 이 후보는 패권국이 할 수 없었던 시장의 확대를 가능하게 하는 다른 조직구조를 가진다. 아리기에 따르면 미국이 패권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영국의 패권이 해결할 수 없었던 시장확대의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조직구조를 가졌기 때문이다. 아리기는 그 조직구조를 챈들러가 말한 경영혁명이라 말한다.



“As Chandler has shown, the internalization within a single organizational domain of activities and transactions previously carried out by separate business units enabled vertically integrated, multi-unit enterprises to reduce and make more calculable transaction costs – costs, that is, associated with the trasfer of intermediate inputs through a long chain of separate organizational domains connecting primary production to final consumption. The economies thus created were ‘economies of speed’ rather than ‘economies of size’” (Giovanni Arrighi)

이책은 700페이지가 넘는 두께에 어울리게 식민지시대부터 21세기까지 400년이 넘는 미국경영사를 다룬다. 저자들은 나름 각 시대의 특징과 그 특징을 잘 보여주는 기업들의 사례를 보여주면서 요령있게 그 긴 기간을 정리하지만 400년이란 시간을 생각하면 700 페이지는 결코 충분한 분량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책은 한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그 시간을 정리한다: 챈들러가 말하는 경영혁명이 왜 미국에서 일어났는지 그 혁명이 어떻게 변해갔는가.

독립 이전 미국은 농업중심의 경제였다. 식민지 시절 미국은 영국의 삼각무역의 한축을 담당하면서 사탕수수를 재배하는 서인도제도에 식량 등의 생필품을 팔아 번 돈으로 영국에서 공산품을 수입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 삼각무역의 시스템이 무너졌고 미국은 영국에서 수입하던 제철, 섬유 등의 물품을 자급하면서 산업화가 시작된다.

산업화와 맞물린 도시화는 “규모의 경제를 가능케 하여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수요를 창출했다. 1810년까지만 해도 14명중 13명이 시골에 거주했을 정도로 도시화가 미미했지만 인구의 집중으로 발생한 시장효과는 제조업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했다. 수요가 보다 광대해지면서 이전엔 장인들만 만들던 물품을 제조업자가 대량으로 생산하게 되었다. 이는 규모의 경제로 이어졌다. 생산량을 늘려 물품의 단위당 생산비용을 낮춤으로써 높은 수익을 유지할 수 잇었고 이를 통해 미국기업가들은 박리다매의 이점을 습득햇다. 또한 도시화는 한 주요 사업체 가까이에 그와 고나련된 다수의 부수적 사업체가 모여드는 현상을 야기했다.”

클러스터링은 기술과 조직 상의 발전을 촉진했다. 예를 들어 “휘트니는 일정한 규격의 부품 이용(프랑스에서 차용), 대량생산(아크라이트와 모즐리에게서 차용), 단순한 디자인(휘트니 본인의 아이디어0이라는 세가지 요소를 받아들엿다. 이 요소가 ‘미국식 제조업’의 토대를 형성했다. 정확한 수치에 따라 규격화된 금형을 사용하는 휘트니의 방식은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들가지 모두 장인으로 바꾸어 놓았다. 동력기계가 대량생산의 한 축을 담당했다면 부품의 규격화를 통해서는 호환성이 확보되었다. 휘트니가 너스킷 총 제조를 통해 구현한 새로운 제조업 방식은 북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한편 그가 발명한 조면기로 남부는 ‘목화 단일경제’로 이행할 수 있었으며 수익성 있는 노예제도를 영구화할 수 있었다. 사실 초대 대통령을 제외한다면 신생 미국이 세계적인 강대국으로 자리 잡는데 휘트니만큼 공헌한 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8세기초에 이미 미국은 기술적으로, 특히 제조공정에 있어 영국을 능가했다. 미국에서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아마도 노동력 부족때문이었을 것이다. 식민지 시절에도 미국의 생활수준은 영국보다 앞서 있었다. 노동력이 부족해 임금이 높은 이유가 컸다. 귀한 노동력을 대체하려는 인센티브가 충분했던 것이다.

“전통적으로 역사가들은 알프레드 챈틀러가 ‘보이는 손’에서 제기한 명제, 즉 1850년대에 이르러 철도의 등장과 함께 ‘경영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수직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명제를 인정해왔다. 그러나 그 주장에 의문이 제기되었다. 철 생산과 출판, 적어도 이 두 가지의 주요 영역에서는 철도가 등장하기 한참 이전부터 수직적 통합의 징후가 드러났다. 뉴욕에서는 상인들이 철을 비롯한 철 제품을 취급하는 사업을 확장해 생산, 보관, 운송, 판매를 아우르는 정교한 시스템을 개발해 철 생산이 활발히 이뤄졌다. 제철 회사들은 이미 1800년대 초반에 공장을 통합하고 회사 소유권을 주주들에게 분배했다. 이로써 제철회사는 소유권과는 무관한 전문 경영인ㄴ을 고용한 ‘초기 기업군’에 속하게 되었다. 1850년대에 이르러 출판업자들은 제철업자들이 실행애쑈던 혁신을 채택했다. 통합된 공장 시스템을 개발하고 (챈들러적 의미의) ;경영자적 관점’에서 시장을 통제햇다 편집, 인쇄, 제본, 보관, 운송, 소매, 도매 등이 한 군데에서 처리되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저술과 활자 주조까지 해결했다. 미국에서 기업 활동이 발달한 것은 철 제조업과 출판업 등의 초기 기업들이 변화의 밑바탕을 다져놓은 덕분이엇다. 그리고 훗날 등장한 철도산업이 이 방식을 채택함으로써 본격적인 변화의 파도가 밀려왔다.”

저자는 18세기 초반에 제조공정의 혁신에서 얻은 기술적 수익과 제철업과 출판업에서 등장한 새로운 구조적 수익 두가지가 챈들러가 말하는 경영 혁명의 바탕이 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교통망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동이 불편했고 운송비용도 높았다. 자연히 18세기 초의 기업들은 소기업 중심일 수 밖에 없었고 기술적 수익과 구조적 수익을 제대로 실현할 효율성을 갖우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이 바뀐 것은 운송혁명과 함께 전국시장이 형성되면다. “도로, 운하, 철도 네트웤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지리적으로 먼 지역ㄱ들이 긴밀히 연결되엇다. 정보의 흐름은 과거 어느 때보다 신속해졌고, 이동 거리가 짧아지면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대가도 낮아졌다.” 운송혁명과 함께 우편 시스템, 신문/잡지, 전신과 같은 커뮤니케이션 툴 덕분에 전국시장이 만들어질 조건이 갖춰진다.

남북전쟁 이전까지 미국의 전형적인 기업은 “소유자-창업자가 운영하는 ‘기업가 본위 회사’”였다. 그러나 “지리적 확장과 인구 증가로 인한 국가 규모의 호가대로 점차 대중 시장이 도래함에 따라 개인 운영으로 성공을 거두는 기업가는 극히 드물어졌다. 또 철도, 증기선, 전신 등에 의해 거래 속도가 단축되면서 회사 소유자가 단독으로 경영을 하기는 한층 더 어려워졌다.

이전보다 규모가 커진 기업은 다수의 투자자를 통해 자본 수요를 충족했다. 그에 따라 회사 지분이 회사와 직접적 관계가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넘어갔고 결과적으로 전문경영인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더 이상 ‘야망’과 ‘비전’만으로는 이길 수 없는 시대가 되엇다.”

“1800년대 중반, 세가지 요소가 결합해 새로운 ‘기업 운영체제’가 탄생햇다. 세 요소란 거래, 통신, 이동의 ‘신속화’, 종업원 수와 자본 수요를 포함한 ‘회사규모의 성장’, 수천 Km에 걸친 ‘운영범위의 확대’ 등이었다. 이로써 더 이상 회사 운영에 오너가 단독으로 세세한 부분까지 통제하기란 불가능해졌다. 기업은 수천 명의 직우너을 고용하여 세개의 표준 시간대와 10여개의 주를 넘나들며 활동했다. 기업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수천명의 주주들이 공동으로 소유하게 되었고 회사 운영책임은 전문경영인에게 넘어갔다.”

기업의 시스템은 갈수록 관료제를 닮아갔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챈들러는 경영혁명을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속도의 경제라 부른다. 관료제란 정보의 유통을 위한 시스템이다. 대륙 단위의 시장을 다루려면 방대한 정보가 효율적으로 처리되어야 하며 그런 정보의 흐름을 위해 기업은 관료제를 구축해야만 했다.

일단 관료제를 구축해 속도의 경제가 실현되면 이는 막강한 진입장벽이 되었다. “Even in industries in which techniques of mass production were crucial to business success, organization rather than technology came to constitue the real barrier to entry: The most imposing barrier to entry was the organization the pioneer had built to market and distribute their newly mass-produced products. A competitor who acquired the technology had to create a national and often global organization of managers, buyers, and salesmen if he was to astride the major marketing channels, Moreover, where the pioneer could finanace the building of the first of these organizations out of cash flow, generated by hign volume, the newcomere had to set up a competing network before hign-wolume output reduced unit costs and created a sizeable cash flow. And he had to do this while facing a competitor whose economies of speed permitted him to set prices low and still maitain a margin of profit” (Chandler)

미국이 대기업 시스템을 구축할 때 영국은 여전히 소기업 중심의 경제였다. 아리기는 바로 이것이 미국이 영국을 대신할 수 있었던 이유라 말한다.

조직혁명은 조직 자체가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었고 챈들러가 말하듯 scale and scope, 즉 규모의 경제를 가능하게 했다. 미국식 경영시스템은 19세기 후반 자본주의 경제를 괴롭혔던 이윤율저하 경향에 대한 해답이었다. 이윤율저하 경향은 근본적으로 경쟁의 문제이다. 자본총량이 시장이 수용할 수 있는 양보다 많아져 자본간의 경쟁이 격화되고 그 결과 이윤율이 참을 수 없는 수준까지 떨어지는 현상이다.

미국식 경영시스템은 진입장벽을 세우고 속도와 규모의 경제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 경쟁을 돌파하는 해답이엇다.

“당시 미국의 대기업들은 심대한 기술혁신과 조직혁신의 장이었으며 이는 경영혁명으로 알려져 있다. 그 두가지 중요한 측면은 한편으로는 피라디드 형태의 위계조직을 구성한 고아대한 일반 경영진과 노동자의 등장이었고 다른 판편으로는 테일러주의와 조립라인 등 작업장 수준에서 일어난 변화엿다. 사실 경영자와 노동자층의 형성이 경영의 모든 측면에서 진정한 혁명을 가능게 했다. 이는 (유동자산과 자금조달)의 금융관리와 함께 재고관리와 상거래의 수행을 통한 작업장 수준에 변화를 가져온 넓은 의미의 경영혁명이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선 철도와 통신부문에 영향을 미쳤고 이후 몇십년ㄴ에 걸쳐 점차 전 산업과 상업(새로운 형태의 대중 마케팅)과 금융에까지 확산되었다.”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저자는 이런 흐름의 선두주자를 록펠러와 카네기로 꼽는다. 록펠러와 카네기가 자신들의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생산성을 높여 단가를 낮춰 시장을 장악하는 전략을 구사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시장은 지배해야 할 대상이지 자신들을 지배하는 신의 손이 아니었다.

“이전에는 시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던 기업이 이제 경영자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경영을 중시하는 새로운 유형의 회사들은 외부와의 경쟁보다는 내부통제를 통한 ‘효율성 증진’에 역점을 두었다.”

그러나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 대신 경영자의 보이는 손(Visible hand)이 지배하는 챈들러의 세계에서 관료가 된 경영자들은 기업가 정신과 리스크 감수를 안정성과 보수성으로 바꿔놓는 경향이 있었다.

1차대전과 2차대전의 전시경제에서 정부관료와 기업관료들은 서로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정부든 기업이든 관료는 “그 속성상 통계에 입각한 통제와 안정성을 중시”한다. 전쟁과 뉴딜로 정부의 영향력이 확대될 때 기업과 정부는 서로에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었다.

전후 세계경제는 경영혁명과 케인즈주의를 내세운 혼합자본주의라는, 시장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지배하고 길들이려는 시스템이 지배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부터 이윤율저하 경향이 다시 나타난다. 경영혁명의 수명이 다되어간다는 증거였다. 19세기 이후 꾸준히 증가해온 생산성이 정체되고 이윤율은 낮아졌다.

“1960년대가 되자 한때 미국기업들에게 국제적 우위를 부여했던 조직 구조는 이제 혁신과 유연한 변화에 장애가 되었다.” 포드에서 “맥나마라가 중용된 것은 1960년대 후반에 미국 기업을 휩쓴 개로운 경향을 감안할 때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재무통과 숫자통이 마침내 생산통을 밀어내고 기업 내에서 우위를 차지했다. 자동차 산업만큼 경영 위계제도가 뚜렷한 분야는 없었다. 자동차회사들은 사업부 책임자들을 제조업 외무에서 영입해 회사의 통제권을 맡겼다.

그러나 대다수 재무나 회계 출신 경영자들은 자동차에 대해 즉 무엇이 자동차 산업을 움직이는지 무엇 때문에 소비자들이 자동차를 좋아하는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문제인 무엇 ㄸ매누에 사람들이 자동차를 사는지 이해하지 못햇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960년대에 이르자 다수의 회계, 재무 궈너위자들은 애당초 재무와 회계 부서가 있는 이유를 망각하고 그와 반대되는 행동을 햇다.

초기 철도회사들은 자본 수요가 대단히 높았던데다 철로와 차량의 노후와에도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계획부서를 두었다.” 재무와 회계는 그 계획의 수단으로 도입되었다. “철도회사들은 재무 영역을 ‘투자를 관리하는 곳’으로 간주했으며 카네기는 오늘날 ‘원가회계’라 불리는 회계방식을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1800년대 후반 이루어진 경영의 전문화는 20세기 초에 예기치 않은 영향을 미쳤다. 경영자들은 투자와 회계에 특화된 교육을 받았고 회사에 들어와 그런 업무만 담당했ㄲ다. 그들은 밑바닥부터 시작해 회사의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생산과 제조가 다른 분야와 분리되면서 경영진은 기업에 필요한 혁신과 투자를 반대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나타났다.

재무 회계부서의 부상은 경영에 또 한가지 영향을 미쳤다. 소유권이 대중에게 분배된 회사는 주주에게 이익을 제공하고 어느 정도 정기적으로 배당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었다. 주가를 유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해지면 경영진은 장기 이익보다는 단기 이익을 낼 수 있는 전략을 채택할 수 밖에 없다.

챈들러가 제시한 경영 위계제도의 특징은 경영 혁명 이후 첫 80년동안 각 사업부 사이의 균형이 유지되었다는 점이다. 1960년대에는 그런 균형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재정부문이 통제권을 획득한 것은 증권시장에서 단기적 성과를 요구한 것과 정확히 같은 시기였으며 그 결과 자동차 산업은 근시안적 사고와 품질저하의 악순화에 빠졌다.”

이런 문제는 자동차 산업만이 아니었다. 경영혁명을 주도한 거의 모든 산업들이 같은 병을 앓았고 경영혁명을 주도했던 미국의 제조업은 70년대 이후 몰락의 길을 걷는다.

미국의 경제가 다시 르네상스를 맞은 것은 과거 경제를 지배했던 경영 위계제도 밖에서 성장한 기업들 때문이엇다. IT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IT 기술은 전통적 대기업들이 조직구조를 바꾸는 수단을 제공하면서 90년대의 르네상스가 가능하게 했다. 전통적 대기업의 “경영진은 회사규모를 축소하고 경영 위계제도를 구성하는 관료층을 제거하는 작업을 통해 변화를 꾀했다.”

“1990년대에 존재앴던 불안의 상당 부분은 1980년대에 시작된 급격한 변모에서 기인했다. 대기업들은 큰 힘을 가지고 상당수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듯 보였으나 그들은 221세기 경제에서 ‘공룡’이 될 가능성 즉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거대한 몸집으로 비틀거리다 결국 더 작고 빠른 동물과의 생명을 건 싸움에서 패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그들이 생존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주요 희생자는 오랜 기간 그들에게 힘이 되엇던 ‘경영 위계제도’인 것으로 보엿다. 국의 기업은 챈들러가 찬양한 바로 그 관료제 때문에 몸집이 비대해졌고 그 결과 더 이상 신흥시장의 등장이나 수요의 급격한 변화에 신속히 대응할 수 없었다. 기업들은 놀라운 다운사이징을 감행하고 자동화와 컴퓨터를 이용하여 효율성을 제고했다. 기업들은 말 그대로 몸집을 줄여 수익을 냈다. 이와 동시에 전통적 경영 위계제도를 버리고 톰 피터스 같은 인기 컨설턴트나 드러커 같은 경제저술가들이 높이 평가한 독특한 구조를 채택하며 과거와 다른 새로운 경영방식을 추구햇다.”

‘이와 같은 변화가 낳은 결과 중 하나는 미국의 ‘생산성 향상이었다. 또 다른 결과는 1990년대 일어난 실로 놀라운 투자 붐이다.”

19세기의 경영혁명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80년대 이후 다운사이징, 리스트럭처링 등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경영혁명은 효율성을 제고해 생산성을 높이고 결과적으로 60년대부터 시작된 이윤율저하 경향을 끝낼 수 있었다.

“19세기 후반의 구조적 위기의 종언과 20세기 후반의 구조적 위기의 종언은 똑 같은 과정이 두 번에 걸쳐 진행된 형태를 취한다. 20세기 초에 나타난 위기의 첫번째 극복기간에는 생산체제가 경영혁명으로 불리는 최초의 격변을 겪었다. 경영혁명은 새로운 기술과 조직을 서로 상호작용시키며 확립했고 작업장과 생산의 성걱을 근본적으로 바꿨는데 그 영향이 미친 범위는 더욱 넓어서 기업활동의 모든 측면을 변화시켰다., .이것이 우리가 ‘경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다. ㅜ20세기 후반의 몇십년 동안에도 주요 변수(생산성이나 자본 대 노동 비율)의 관점에서 보면 비슷한 영향을 가져다준 발전이 나타났다. 다시 그 본질은 경영의 진보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이는 이제 정보통신기술에 기초한 생산과정의 고도화와 연관이 있다. 이러한 진보와 생산, 유통,금융을 조직하고 비용을 줄이는 능력의 효율성을 향상시켰다. 더욱 개ㅛ선된 경영이 그 원칙을 스스로에게 적용해 그 성과가 더욱 개선되었다.” (제라르 뒤메닐, 도미니크 레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제학의 배신 - 시장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라즈 파텔 지음, 제현주 옮김, 우석훈 해제 / 북돋움 / 2011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매년 미국에서 팔리는 빅맥은 5억 5000만개이다. 이 빅맥을 만들기 위해 2억 9700만 달러의 비용이 들고 12억 킬로그램의 CO2가 배출된다. 탄소 배출 말고도 물 사용과 토양 파괴 드으이 더 폭넓은 환경영향도 추가할 필요가 있겠다. 게다가 당뇨병과 심장병 같은 식단 관련 질병의 치료를 위한 건강비용도 추가해야 한다.

이 비용 중 어느 것도 빅맥의 판매 가격에 반영되지 않지만 누군가는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맥도널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로 우리가 환경 재난 비용, 기후변화로 인한 이주 비용, 더 놓은 보건의료 비용 등을 부담하게 된다.

다른 비용은 모두 제쳐놓더라도 숲의 나무를 모두 베어버린 땅에서 사육된 소의 고기로 만든 햄버거의 값은 족히 200달러는 나가야 한다. 200달러란 수치가 터무니없게 들릴지 몰라도 사회 전체에 끼치는 비용을 고려하면 4달러짜리 빅맥을 만드는 데 드는 돈은 오히려 그보다도 높을지 모른다. 기업은 사회 전체가 감당해야 할 비용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종종 다양한 보조금가지 받아 챙기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비자는 자신이 내는 세금으로 값싼 햄버거에 들어간 비용을 치르고 있다는 얘기다."

저자는 200달러 가치의 햄버거에 4달러를 붙이는 '시장 메커니즘'이 과연 제대로 작동하는 것인가 묻는다. 전통적으로 경제학의 대주제는 두가지이다: 성장과 분배.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란 말로 시장 메커니즘을 설명한 이래 경제학에선 시장이 가장 효율적으로 자원을 분배하는 최상의 제도라 말해왔다. 그러나 저자는 그 시장이 가격을 결정할지는 몰라도 가치와는 무관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어떻게 200달러짜리 햄버거가 4달러에 팔릴 수 있는가 묻는다. 그 답은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이다.

"시장은 시장을 둘러싼 사회에 결부(원어는 embedded로 보임)되어 있다고 폴라니는 주장했다. 폴라니는 자본주의를 돌아가게 하려면 특수한 사회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햇다. 시장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특정 물건이 경제체제 안에서 매매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되도록 사회가 허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폴라니가 '전환(transformation)'을 제목으로 선택한 이유이다. 그는 '거대한 전환'에서 사회의 가장 강력한 집단들이 토지와 노동을 예전에 시장에서 거래되어온 상품들과는 원칙적으로 전혀 다른 '허구적 상품'으로 '전환'시키려고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기술한다."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읽을 때 그가 왜 어떤 배경에서 그 책을 썼는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 시대 유럽인들처럼 폴라니는 문명이 어떻게 두번의 세계대전과 같은 야만으로 바뀔 수 있는가에 경악했고 그 이유를 알려 했다.

폴라니의 해답은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 자체였다. 문명은 원래부터 야만이었다는 말이다. 맑스가 자본론에서 말했던 원시적 축적에서부터 거대한 전환은 시작한다.

"과거 커먼스(commons, 공유지)는 그 사용자에게 식량과 연료. 물, 약초를 제공했다. 공유지는 극빈자에게는 생명유지 시스템이었다. 이것이 바로 영국에서 공유지가 '거대한 전환'의 시작점인 이유이다. 무언가에 가치를 매긴다는 것은 그것을 파악하고 사회가 그것을 어떤 규칙에 따라 사용할지를 정하는 일이다. 커머닝(공유화)의 규칙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 공공이 사용하던 토지가 사유화를 거쳐 하나의 상품이 되자 농촌 빈민은 유일한 생존수단을 박탈당했다. 결국 농촌 빈민은 그들에게 남은 유일한 것, 즉 노동을 팔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공유지의 인클로저를 통해 지대와 임금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보수가 탄생했고" 토지와 노동이란 상품이 탄생했고 자본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사유재산이 성립하려면 그것을 공공의 손에서 떼어내는사유화에 대한 사회적 승인이 필요하다. 재산은 사회적인 것이다. 누군가 땅에 울타리를 치고 다른 이는 접근하지 못하도록 허용하는 일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맑스는 공공 자원을 공유할 권리를 폐지한 것에 대한 반발로 급진파가 되었다. 원래 그의 정치적 견해는 낙관적 자유주의와 통했다. 근 ㄴ 19세기의 '와이어드'지 독자라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바꿔 말해 자유로운 언론과 제 역할을 하는 의회가 있다면 미래는 밝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두 가지 사건이 이런 그의 생각을 바꾸어놓은 듯 하다. 첫 번째는 라인 지방의 삼림에서 관습적으로 이루어져오던 땔감 채취에 대한 권리를 둘러싼 지방 의회에서 벌어진 논쟁이었다. 이때 그는 재산권 문제가 정치의 핵심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두번째는 프러시아의 검열이 그가 편집하는 신문을 너무나 쉽게 폐간한 일이었다. 젋은 맑스를 정치와 사회에서 재산 문제가 핵심이라고 생각하게끔 몰고 간 것은 이런 사건들이었다."

폴라니의 논의는 청년 맑스가 깨달은 정치와 경제의 그리고 사회의 불가분성에 대한 것이다. '거대한 전환'의 핵심 논점은 시장경제의 성립은 주류경제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자기완결적(self-regulating)일 수 없다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근대국가의 성립없이는 존재할 수 없었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 말한다. 자본주의 경제가 성립하려면 그 경제가 작동하기 위한 메커니즘을 국가의 권력으로 사회에 강제해야만 가능하다.

그런 강제력에 의해서만 토지와 노동은 상품이 될 수 있으며 토지와 노동이 상품이 되어야만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은 작동할 수 있다. 그러나 맑스가 말했듯이 토지와 노동은 특이한 상품이다. 폴라니는 그 특이함이란 사실 '허구성(fictitious)'이라 말한다. 허구적 상품인 토지와 노동이 상품이 되려면 시장은 (토지와 노동이란) 사회의 요소를 시장의 법칙에 복종하도록 강제해야만 한다(“subordinate[s] the substance of society itself to the laws of the market.” (폴라니)

그러나 그런 복종의 결과는 사회적 재앙이다. 19세기 내내 주기적으로 반복되었던 공황이 좋은 예이다. 시장의 변덕에 노출된 사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시장에 저항할 수 밖에 없다. 폴라니는 사회의 저항을 couter movement라 부른다.

"한편에선 토지와 노동을 매매할 수 있도록 바뀌기 위해 광범위한 권리 박탈이 필요햇다. 이것이 첫번째 운동이다. 두번째 운동은 자기조정적 시장이 할퀸 상처를 치유하려는 사회로부터의 대응이다. 그리고 이 두 운동 모두 시장사회의 틀안에서 일어난다." 첫번째 운동 역시 정치적이었듯 두번째 운동 역시 정치적이다. 폴라니는 이중운동의 역학에서 볼때 시장과 사회 그리고 정치를 분리해서 보는 주류경제학의 관점은 좋게 말해서 넌센스 나브게 말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수작에 불과핟고 본다.

19세기 후반의 대공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독일이 보호무역주의로 선회하고 복지국가의 원형을 만든 것은 대항운동의 좋은 예이다.

"The epicenter of the protectionist coutere-movement was newly created Imperial Germany. When the slump of 1873-79 hit Germany, Chancellor Bismarck believed as strongly as any of his contemporaries in the self-regulating powers of market mechanisms. Ironically, he found consolation in the world-wide scope of the depression and waited patiently for the slump to hit the bottom. However, when this occured in 1876-77, he realized that the verdict of the market on the viability of the German state and of German society was too harsh to take and that, moreover, the slump ahd created unique oppurtunities for the continuation of his state-making endeavors by other means. the spread of unemployment, labor unrest, and socilaist agitation; the persistence of the industrial and commercial slumps; plummeting land values; and, above all, a crippling fiscval crisis of the Reich - all combined to induce Bismarck to intervene in protection fo German society lest the ravages of the self-regulating market destory the imperial edifice he had just built." (아리기)

폴라니가 세계혁명이라 불렀던 금본위제의 붕괴 역시 마찬가지로 해석된다. 금본위제 시스템의 붕괴는 대공황의 반작용이었고 그 결과 미국의 뉴딜과 유럽의 복지국가가 등장한 것 역시 대항운동의 예이다.

"폴라니가 말하는 자기조정적 시장의 신화는 겉보기와 달리 사회를 통한 기능의 보완 없이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조정적 시장이 보다 확산되려면 경제와 사회가 두개의 구별된 영역이라는 신화가 더 널리 전파될 필요가 있다.

위기의 시기에는 그 신화의 본질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결국 은행의 실패는 그것을 지탱할 공공 부문이 없었다면 총체적인 경제 붕괴로 이어졌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는 자기 능력으로 지탱할 수 있는 한도 이상으로 스스로를 구제할 수 없다. 시장은 언제나 사회에 의존했다. 그래서 대마불사란 말은 '너무 큰 탓에 쓰러져도 사회에 의지해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왜 그런 신화가 필요한 것일까? 저자는 그 답을 맑스의 자본론에서 찾는다. 맑스는 자본의 특징을 무한증식이라 보았다. 이윤추구의 무한추구는 "기업을 탐욕으로 내몰고 윤리를 가차엇이 무시하도록 충동한다." 이러한 자본의 특징은 놀라울 정도로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정의와 맞아떨어진다. 경제학이 말하는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를 현실에서 찾는다면 정확하게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가 그 현실태이다. 그리고 기업의 행동 역시 정확히 그러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엇을 생산할지 어떤 가격에 내다팔지 결정할 때 기업은 호모 에코노미쿠스가 해야 할 법한 행위를 할 뿐이다. 생산에 투입되는 모든 요소를 사고팔 수 있는 시장에서 기업은 아무런 악의도 없이 ‘아주 합리적으로’, 합법적이든 때론 불법적이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이윤을 남기려 노력할 뿐이다."

반사회적인 인격은 사회에선 용납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런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윤리가 당연한 공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시장이며 그 시장을 합리화하기 위해 신화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시장은 언제나 있어왔다. 그러나 호모 에코노미쿠스는 새로운 현상이다. 저자가 말하듯 시장이 사회와 분리되지 않은 것과 분리된 것의 차이는 무엇인가? 예를 들어보자.

"1000킬로미터에 달하는 파키스탄의 해안선은 천혜의 수산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수세기 동안 18만명 이상의 소규모 어민이 생계를 이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어획량의 급격한 감소를 겪고 있다. 어획량이 70-80% 감소하면서 아라비아 해안 마을 전역에 기아와 채무, 빈곤이 증가했다. 수세기동안 아무 문제없이 꾸려왔던 어장이 갑작스레 고갈된 이유는 무엇인가?

현지인들은 정부가 수출소득을 높이려는 욕심에서 외국 트롤선에 대한 제한을 완화했기 때문이라 말한다. 기업적 트롤선은 현지 어민들과 달리 큰 바다를 밤낮으로 훑을 수 있다. 3킬로미터에 달하는 어망으로 모든 것을 건져 올린다. 트롤선의 어획량 중 국제시장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10%뿐이고 나머지 90%는 버린다.

파키스탄의 해양 공유지는 탐욕스런 현지 어민 탓에 고갈되는 것이 아니다. 그 공유지는 정부의 방조 아래 초국적 기업들이 사유화(인클로저)해왔다. 이 기업들은 자신의 생존 근거를 파괴당할 위험이 없다. 파키스탄 어장이 무너지면 수익성이 더 좋은 다른 바다로 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해온 어민에게 갈 수 있는 더 풍족한 바다란 없다.

20세기 대규모 환경재앙을 보면 행패를 부리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다. 더스트볼에서 열대우림과 대양의 대멸종에 이르기까지 환경재앙은 자본주의적 농업, 임업, 어업의 결과이며 기업이 벌인 행위의 결과다. 더스트볼이 일어난 이유는 무어ㅓㅅ일까? 그것은 개개인으로서는 표토의 가치를 충분히 알면서도 자본주의적 농업에 편입됨으로써 오직 단기 이윤의 관점에서 주변세계와 관계를 맺게 되고 자신의 생존터전인 땅을 착취하는 자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 저자와 폴라니의 논점은 '공유지의 비극'과 비슷하다. 그러나 저자는 공유지의 비극은 잘못된 이론이라 말한다. 공유지의 비극이 성립하려면 특정한 조건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행위자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남이야 어떻게 되건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사회적 제약에서 해방된 행위자가 전제되어야만 공유지의 비극은 성립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학에서 공유지의 비극에 대한 처방은 책임이 분명하도록 공유지를 사유지로 나누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 역사적 사례에서도 위의 파키스탄 어장에서도 공유지는 문제없이 돌아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공유지라고 해서 누구나 원하는 만큼 ‘다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공유지는 (공유지의 비극 이론을 말한) 하딘이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이 무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과거에도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공동체의 원칙과 생태계의 조건에 따라 협의해 구체적인 공유의 방식(commoning)을 결정햇다. 공유지에 대한 권리는 공유지의 물리적 지형 변화 아니라 공유지를 둘러싼 세력 간의 권력 구도에 따라 진화햇다. 다시 말해 공유지는 공유의 방식과 조건을 협의할 권리를 얻기 위해 투쟁하는 장소이자 ‘자유의 과정’이엇다. 누군가 공유지에 ‘비극’이라는 단어를 덧붙이려고 한다면 악몽은 공유지의 창조와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사적 소유권 아래에서 진행되는 파괴 과정에서 시작된다.”

저자가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은 일종의 외부효과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파키스탄 어장에서 일어난 사회적 비용은 경제학 용어로 말하면 외부효과이다. 외부효과란 가격 메커니즘이란 그물에 걸리지 않고 새나가는 비용이다. 파키스탄의 어장이 고갈되는 비용을 고갈을 일으킨 기업은 지불하지 않는다. 단지 이익만 거두고 딴 곳으로 갈 뿐이다. 어장 붕괴의 비용은 뒤에 남은 자들이 치룰 뿐이다. 빅맥의 가격이 200달러가 아닌 5달러가 될 수 있는 것도 나머지 195달러가 외부효과를 통해 사회가 부담하기 때문이며 “오존층 파괴, 나무가 주는 생태계 서비스와 어족 손실, 산업적 농업에 의한 수질 오염, 기후변화로 인한 홍수와 가뭄의 증가” 등도 모두 이윤지향적 시장경제에서 포착되지 않는 외부효과이다.

저자는 이러한 외부효과는 근본적으로 인클로저와 같다고 말한다. 기업이 그 비용을 치루지 않고 사회가 부담하도록 할 수 있는 이유는, 외부효과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힘있는 자로부터 힘없는 자 쪽으로 기울어진 불균형” 때문에 가능하다고 말한다. 폴라니가 말하듯 근본적으로 외부효과, 또는 공유지의 비극은 정치현상이라는 말이다.

“공유에는 어떤 자원을 이용할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이 축적할 수 있는지 재화를 어떻게 나누어 가질 것인지에 대한 제한이 따른다. 자유시장에는 그러한 제한이 전혀 없다. 지갑 가득 들어있는 현금과 약간의 기업가 정신만 있으면 세상은 당신 발 아래에 있다. 이러한 종류의 자유에 가장 잘 조응하는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다.

“시장은 다양한 욕구를 가진 사람들이 상품을 거래하는 장소로서 모든 인류 문명에서 존재해온 개념이다. 그러나 오늘날 시장은 욕구 충족을ㄷ 위한 거래가 아니라 이윤 추구를 위한 거래로 특징지워진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사회가 제 기능을 다하는 최상의 방식은 시장이 이윤을 추구하도록 놓아두는 것이고 개입을 최소화할 때 시장은 가장 잘 작동한다는 생각은 진리가 아니라 순전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 시장이 작동하는 조건은 힘 있는 자들에 의해 정해진다.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이다. 이 비극은 이윤지향적 시장이 진정한 가치를 알려줄 것이라는 명백히 잘못된 약속에 대한 믿음을 놓지 못해 생긴 병이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재계 3세 대해부 - 매경 기자들이 현장에서 전하는 주요 그룹 오너 3세 이야기
매일경제 산업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애가 울면서 들어오니까 애를 달래는게 아니라 더 때리는거야. 왜 지고 들어오냐고” 어느 재벌가에서 과외를 했던 선배가 술자리 잡담으로 한 말이다.

 

현실의 재벌가과 막장 드라마의 재벌가는 다른 세계이다. 누구보다 생존이 문제인 사람들이 그들이다. 아이들 싸움에서조차 이겨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는 곳이 그런 집안이다. 재벌가 사람이 느끼는 생존의 압력이 얼마나 거대한 가는 삼성가를 예로 들 수 있다.

 

식탁에 이병철씨와 아들 셋이 모여있다. 이병철씨가 눈을 부릅뜨고 상석에 앉아 있으면 첫째 맹희씨는 어버버 미친 시늉을 하고 둘째 창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자신을 감추려 한다. 셋째 건희씨는 자신이 그자리에 없는 것처럼 존재감을 지우고 자신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묵묵히 식사만 한다.

삼성가와 알고 지내던 선배가 그 집안의 분위기를 이렇게 말했었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사람이란 평을 듣고 살았던 이병철씨에겐 있을 법한 일이긴 하다. 그러나 그 선배의 이야기는 실제 일어난 일이라기 보다는 삼성일가에서 부자관계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다. 이병철씨에게 아들은 자식이 아니라 후계자였기 때문이다. 후계자라면 권리만큼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의무를 다하려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병철 씨가 자식에게조차 가혹했던 이유는 그 자신이 기업세계의 치열함을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1965 100대 기업의 현주소는 어떨까? 2009년을 기준으로 보면, 100위권 내에 12개사, 101-200위 내에 6개사, 201~300위 내에 4개사, 301~1000위 내에 1개사가 눈에 띈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세가 크게 위축되어 1000위권 밖으로 밀려난 기업은 2개사, 흡수합변 대상이 된 기업은 4개사, 그리고 나머지 기업들은 도산이나 해체 또는 무명기업이되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창업되어 이제껏 이름을 보전하고 잇는 대기업들은 그것만으로도 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공병호)

 

이루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그것은 당대에도 더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대를 이어간다면 그것은 더더욱 어려워진다. “창업자는 스스로 기업경영으ㅢ 길을 선택한 사림이다. 그러나 2 3세로 넘어가면 스스로의 선택이라기보다도 불가피하게 선택한 경우가 많다. 다행히 2세와 3세들이 창업자에 비견할 정도로 사업을 즐기고 자질도 있다면 창업자로서는 대단한 행운이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행운을 가질 수는 없다. 사업은 무척 고된 일이다. 자신이 사업하는 일 자체를 좋아해야 하고 자질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공병호) 좋아하면서 자질까지 갖추기가 쉽지 않다.

 

20세기초 미국에선 전문경영인체제가 정착된 이유이다. 챈들러가 경영혁명이라 부르는 체제가 정착된 이유는 여러가지이지만 창업자가 관리하기엔 기업의 경영이 과거보다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전국규모 또는 세계규모로 확대된 시장과 더 치열해진 경쟁은 질적으로 다른 경영능력을 필요로 햇다. “철도회사 오너 혹은 경영자에 관한 조사결과가 수록된 ‘미국기업 인명 백과사전’의 19세기 부분을 보면 제철분야에서 경영자 이상의 지위에 오른 인물 184명이 열거되어 있다. 회사 상속자 127명 중 아버지나 할아버지 수준의 성공을 거둔 이들은 64명이었으며 이들 중 1900년 무렵에 아들이나 손자를 경영에 참여시킨 인물은 단 한명 뿐이었다. 아버지의 기업을 더욱 발전시킨 이들도 없진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회사가 쇠퇴하는 데 일조한 레밍턴 가의 후손과 같은 이들이 수십 배는 더 많았다. 백과사전에 수록된 거물 기업가 가운데 보다 근대적인 산업에 종사한 16명의 아들이나 손자 중에는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낼만한 위치에 오른 인물이 없었다. 철도회사 오너의 2세 대부분이 경영자 지위에 올랐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나듯, 부유한 기업가 계급의 자녀로 태어난다는 것은 분명 유리한 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전문가로서 어느 정도의 능력을 지녔는가하는 관점에서 보면 계급 문제는 별개다. 나아가 3대째에 이르면 할아버지의 지위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은 거의 없다시피 햇다. (래리 슈웨이카드, 린 피어슨 도티)

 

흥미와 재능이 없다면 “2세와 3세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일은 기대보다도 훨씬 빠른 시간 내에 기업을 몰락으로 이끌 수 있다” (공병호) 사업의 어려움을 잘 알고 스스로도 망할 뻔한 일을 수도 없이 겪었고 망하는 것을 수도 보아온 가문의 사람들의 후계자는 우리가 꿈에 그리는 모습과는 다를 수 밖에 없다.  

 

“때로는 동화 속 왕자처럼 때로는 술과 여자를 끼고 사는 한량처럼 그려지는 재벌 3,4세이잠 이들의 실체는 TV 드라마와는 거리가 있다.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혹독하게 경영수업을 받으며 자신의 사생활이 거의 없는 생활을 하는 재벌 3.4세가 대부분이다.

 

이책은 그런 재벌 3.4세들이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잇는지를 말하려 한다. 그러면 실제 이책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월터스: 사람들은 당신이 냉정하고 신비스러운 인물이며 연기하는 주인공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두려우신가요?

 

이스트우드: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연기하는 인물의 이미지는 절제된 것인데 아마도 그렇게 연기하는 게 쉽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다 말로 나타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것을 압니다. 일종의 해방감을 맛보는 것이겟지요. 그래서 정신과 의사들이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나는 특별히 누굴 보고 대리만족을 느끼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월터스: 정신과 의사한테 가본 적은 없나요?

 

이스트우드: 강박증 같은 것을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항상 밖으로 나와 이 들판을 거닐며 꽃과 나무를 보면서 나 자신을 내려 놓습니다.

 

월터스: 가깝게 이야기를 나누는 여인이 있습니까?

 

이스트우드: 조금은 이야기를 나누지만 100% 다하지는 않지요. 100%를 기준으로 하면 60% 정도 이야기하는 정도라고 할까. 당신은 알아야 할 것은 100% 다 알고 싶으세요?

 

월터스: 알면 좋지요. 내가 당신한테 홀딱 반하면 아마도 나 때문에 미쳐 버릴걸요? 궁금한 걸 계속 물어 댈 테니까요.

 

그러자 이스트우드는 내 눈을 지그시 쳐다보면서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 그러면 어떻게 되나 한번 해봅시다.'

 

어느 순간엔가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터뷰하는 도중에 정신을 놓아 버렸다. 당황하고 얼이 빠져 나는 카메라맨에게 테이프를 멈추라고 말했다. 더 고약한 것은 인터뷰가 끝난 다음 이스트우드가 나보고 남아서 저녁을 같이 하겠느냐고 물었던 것이다. 이유야 뻔하지 않은가. 나는 크루들과 함께 LA로 돌아가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속으로 나는 인터뷰를 그렇게 끝내는게 아니라 남아서 저녁을 먹고 싶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누가 알아? (바버라 월터스)

 

인터뷰의 여왕이라 불리는 바버라 월터스의 회고록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책의 문제는 월터스의 인터뷰와 같은 긴장감이 없다는 것이다. 긴장감이 없는 이유는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이책을 받고 읽으면서 그 기업 홍보부 직원이 쓴줄 알았다. 물론 거짓을 쓰고 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늘어놓더라도 그 사실을 어떻게 배열하는가에 따라 진실이 되기도 하고 뻔한 거짓이 되기도 한다. 이책은 무미건조한 사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한 사실상의 거짓이다. 진실이 주는 긴장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책이 비판하는 드라마만도 못하다.

 

"대담 프로그램이 시청자에게 말해주는 바가 아무 것도 없다면 나 자신에게나 출연한 게스트에게나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무언가 전하는 내용이 있어야 한다. 동시에 재미있지 않고서는 아무 내용도 전할 수 없다. 내용이 전달되기도 전에 시청자들은 리모콘을 잡을 것이니까." (래리 킹)

 

이책은 전하는 내용이 있는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공식적인 이력서에 나올 내용, 밝혀도 아무 문제없을 내용만 나열하고 사실 이면의 진실은 보이지 않으니 전하는 내용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 재미는 있는가? 차라리 드라마가 더 잘한다.

 

이런 책이 된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기자들이 그것도 경제지 기자들이 썼다는 것이 아마 유일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책 팔아서 얼마 번다고 취재원을 밥줄을 건드릴 수는 없지 않은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달 2022-06-28 0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나쁜 보스가 회사를 살린다 - 성공한 중소기업 사장들이 차마 말할 수 없었던 독한 수익원칙
조지 클루티어.사만다 마셜 지음, 민영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절판


"오래전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 다닐 때 기업가 과정을 수강한 적이 있다. 강의 첫날 담당 교수가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결혼한 사람은 일어서세요.'

절반가량 되는 학생들이 일어서자 교수는 강의실에서 나가라 말했다. 어리둥절한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렸다. 그중 기혼 학생 한 명이 화가 나서 물었다.

'이유가 뭡니까?'
그러자 교수가 말햇다. '앉으세요. 학생은 강의를 들어도 됩니다. 그러나 내 말은 농담이 아닙니다.'

교수의 요점은 가족은 성공에 방해가 되므로 가족이 있는 학생은 이 과정을 수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사업에 전력투구하지 못하는 고객을 만날 때마다 그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난다."

저자는 이해할 수가 없다. 중소기업을 상대하는 컨설팅업체 대표인 저자는 수십년 동안 많은 사업주들을 만나왔다. 그러나 그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아이들을 야구 연습장에 데려다 주기 위해 일주일에 세 번씩 일찍 퇴근하고 교회기금 모금행사 초대권을 만들고 친척을 마중하기 위해 공항에 나가는" 사람이 주인인가? 월급쟁이의 마인드다. "휴대전화는 고객들과 연락하고 현장에 나가 있는 영업직원들과 접촉하는데 쓰는 물건이지 튀근길에 무엇을 사갈지 묻는 데 쓰는 물건이 아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로 일주일에 수십 시간을 낭비할 것인지 아니면 회사의 미래를 위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회사에 나와 열심히 일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놀랍게도 사업주의 절반 이상이 주말에 일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고 불평한다."

성공하려는 사람이, 돈을 벌어보겠다는 사람의 자세가 아니다. 중소기업은 약자이다. 약자가 강자가 되려면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자신의 모든 것을 부어도 될까말까이다. 그런데 월급쟁이처럼 사업을 해서 생존이나 가능할까?

저자는 사업이 되고 안되고는 모두 자신의 탓이란 자세없이는 절대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상사보다 일을 더 잘할 수 있으며 인생을 좀 더 즐기고 싶다는 생각으로 작은 사업을 시작한다." 좋다. 그러나 일을 벌였으면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어떻게 주인이 되는가에 관한 책이다.

주인이 되지 않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최악은 망하는 것이다. 최악은 아니더라도 "사업체를 유지하고 직원들과 거래처에 돈을 주기 위해 노예처럼 일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삶을 돌볼 여유는 찾아볼 수도 없다. 이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는 우선 사업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부터 분명히 하라고 말한다. 사업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수익을 가장 우선으로 생각해야 한다. 사업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이다. 소규모 사업체가 진짜 수익을 올리려면 사업주가 사업에 100% 헌신해야 한다. 사업은 복잡하지 않다. 사업의 성패는 사업주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가에 달려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우선 남 탓하는 버릇부터 고치자고 저자는 말한다. "직원들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은 사업주 탓이다. 회사의 모든 책임은 사업주에게 잇다. 무엇이 되었든 일이 잘못되었다면 사업주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업주가 제 일을 다 한다는 말은 회사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라 저자는 말한다. 회사는 돈 덩어리다. 그 돈을 책임지는 사람은 주인 외에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사업주는 사업자금을 조달화려고 은행에 집까지 저당 잡힌다. 소규모 사업주들 가운데 70%가 회사를 위해 자신의 명의로 대출을 받는다. 가족이 보증을 서고 집과 은퇴 자금까지 담보로 내놓는다. 회사를 위해 집과 자신의 미래까지 내놓는 사람은 사업주뿐이다." 회사의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사업주는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회사의 모든 것을 알아야 하고 장악해야 한다.

"사업주 가운데 2/3 가량이 중요한 업무를 위임한다. 그런데 위임한 후에 관리를 철저하게 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했다. 사람들은 일이 잘못된 다음에야 직원들이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불평한다. 인사관리 세미나나 경영서적에서는 직원들에게 업무를 위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위임한 후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그런 위임은 근무 태만과 다를 바가 없다. 사업ㅈ을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을 대신해주기를 기대하면서 사업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위임하되 '통제광'이 되어야 한다. 직원들이 위임받은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는지 꼼꼼하게 관리하고 일이 끝난 다음에는 제대로 처이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하라.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무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매일 야근하고 주말도 반납해야 한다. 그러나 그 대가로 최대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로널드 레이건은 항상 이렇게 말했다. '신뢰하되 학인하라.' 우리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위임하되 확인하라.'"

저자는 이런 말을 듣는다면 사업주로서 성공한 것이라 말한다: "칭기즈칸과 일하는 편이 더 쉬울 것이다."

"일반적인 경영상식으로는 경영자가 직원들에게 권한을 위임해 직원들이 책임을 느끼고 일하도록 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소규모 사업에서는 직원들이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나 돈이 없다! 일이 잘못된 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다. 소규모 사업은 순식간에 망한다. 그렇기에 잘못된 일은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경영서적을 보면 팀이니 신뢰니 하는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러나 저자는 마찬가지 이유에서 다 쓸데 없는 헛소리라 말한다. “비즈니스에서 팀위크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중소 규모의 사업체에는 팀이 필요 없다. 수익성이 높고 직원들이 잘 훈련된 큰 회사가 아니라면 팀을 두는 것이 오히려 사업에 방해가 된다. 사업주가 자신이 할 일을 팀에 미루기 쉽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사업주의 부하다. ‘동료’라는 말도 쓰지 마라. 직원들은 사업주가 요구하는 일을 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동료라는 말은 이런 사실을 잊게 한다.”

과격하게 들리는가? 그러나 이런 말은 저자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장은 모든 것을 성과로 평가받는 존재다. 아무리 훌륭한 비전을 가졌더라도 직원을 가족처럼 아끼는 따뜻한 마음이 있어더라도 성과가 없으면 실패한 무능력자로 전락하고 만다. 착하고 마음 따뜻한 사장이 있었다. 직원들에게 말 한 마디 건네도 정을 듬뿍 담아 마음을 전했고 어떻게 하든 한 푼이라도 더 주려고 노력했다. 직원들도 그런 사장을 믿고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사업이 생각했던 방향으로 풀리지 않아 위기가 닥쳤고 회사는 월급조차 몇 달씩 쳥겨주지 못할 정도로 자금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그러자 그토록 가족처럼 믿고 사랑했던 직원들이 하나둘씩 회사를 떠났다. 이것이 사장과 직원의 관계다.” (장성덕)

저자는 독재자가 되라고 말한다. 살아남으려면 성과를 내려면 이익을 내려면 독재자가 되는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신뢰니 친밀함이니 따위는 여유가 있는 큰 회사에 맡기라고 말한다. “인기 따위는 소용없다. 직원들이 사업주를 좋아할 필요는 없다. 직원들은 사업주를 존경하고 두려워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가 컨설팅한 6000개 회사 가운데 사업주가 독재적이고 혹독한 회사가 그렇지 않은 회사보다 훨씬 더 뛰어난 성과를 올렸다. 회사를 운영할 때 인내심이나 예의가 중요하다는 말은 깨끗이 잊어라. 소규모 사업주는 같은 말을 반복하면서 낭비할 시간도 없고 무능한 직원 때문에 돈을 잃을 여유도 없다.”

이책의 내용은 중소기업이나 창업 분야의 책이면 대부분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자수성가한 중소기업업체 대표들이 쓴 책에도 많은 내용이 겹친다. 그러나 그런 많은 책들과 이책이 다른 점은 그림이 그려진다는 것이다. 대개 그런 책들은 여러가지 내용을 모아놓은 잡탕 같은 느낌이다. 책을 읽고 나서 하나의 그림으로, 창업자로서, 중소기업체의 사장이 어떤 사람인가를 하나의 분명한 그림으로 그려주지 않는다. 그러나 위에서 정리한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책은 분명한 그림을 그리면서 중소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업체의 사장이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한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 없는 세계 - 중국, 경제, 환경의 불협화음에 관한 8년의 기록
조나단 와츠 지음, 윤태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바이킹이 정착하기 시작햇을 때 아이슬란드는 1/4이 숲이엇다. 정착자들은 나무를 베고 초지를 만들었고 나무들을 땔감과 목재와 숯으로 사용했다. 정착하고 수십년 만에 삼림의 80%가 사라졌고 연재는 96%가 사라졌다. 나무가 사라지고 양들이 풀을 뜯었다. 그리고 정착 초기에 돼지들이 뿌리까지 캐먹었다. 카펫처럼 얄팍하게 흙을 덮은 풀이 사라지자 바람이 싣고 온 화산재에 불과하던 흙들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바람에 날리기 시작햇다. 결국 바이킹들이 정착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슬란드의 토양이 고지대에서 저지대, 심지어 바다까지 밀려내려갔다. 그러자 고원지대에서 풀은 물론이고 흙조차 볼 수 없었다. 전에는 푸른 초원이었던 곳이 인간, 혹은 양 때문에 사막으로 변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아이슬란드의 사막화처럼 매년 중국의 황토고원에서 불어오는 황사는 人災이다. 사람이 황토고원은 울창한 숲이엇다. 그러나 사람이 정착하고 나무를 베어내면서 황토가 비바람에 노출되었다. 황토는 수백만년동안 바람이 쌓아올린 먼지이다. 그 먼지를 가려주던 나무가 없어지면서 황토를 쌓았던 바람은 다시 황토를 실어나르게 되었다. 황사는 자연현상이라기 보다는 사람 때문에 일어난 인재이다. 황사가 그런 것처럼 중국의 역사는 자연파괴의 역사라고 저자는 말한다.

서구인들은 중국이나 인도를 생각하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생태주의를 떠올리고는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물론 서구인들의 환상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고대 중국의 예술과 문학에는 자연을 찬미한 작품이 많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숲과 강, 늪을 보존할 수 없는 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격언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의 가치관은 점차 자연을 개발하는 쪽으로 기울어졋다. 유교에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천지합일’ 사상이 잇다. 그러나 유학자들은 자연보다 사회에 중점을 두엇다.” 숲으로 뒤덮였던 유럽의 역사가 그러했던 것처럼 인도도 중국도 결국 문명, 농업문명이었고 농업은 숲과 공존할 수없다.

“환경사학자 마크 엘빈은 중국인의 자연관을 이렇게 정리했다.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은 숲을 좋아하는 동시에 적대했다.’ 그는 ‘코끼리의 후퇴’란 책에서 지난 3000년간 중국인들이 숲과 야생동물, 소수민족을 평야에서 산악지대로 내몬 과정을 추적했다. 3000년 전 중국에는 숲과 야생동물이 풍부해 베이징에서도 코끼리를 볼 수 있었지만 한족 왕조가 들어서면서 남쪽과 서쪽으로 국가 팽창함에 따라 무자비한 삼림파괴가 자행되었다.”

저자가 보기에 서구인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중국인 역시 자연을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을 뿐이다. 그런 중국인의 자연관은 마오쩌둥과 함께 새로운 단계에 올랐다고 저자는 말한다.

“지난 60년간 중국 공산당은 마오쩌둥의 뜻을 이었다. 정치인들은 중국을 강한 국가로 만들고 인민을 전통 관습과 외세의 위협에서 해방하고자 마오가 계획한대로 자연을 개조했다. 이런 중국 공산당의 사고방식은 (장자의) ‘쓸모없는 나무’ 밑에서 졸고 있는 철학자의 생각과는 매우 다르다. 인간의 의지로 산을 옮기겠다는 (우공이산) 생각은 곧 사회의 주류가 되었다. 중국은 지구에서 가장 개척하기 어려운 티벳 고원까지도 개척했다.”

마오쩌둥의 사상은 아편전쟁 이후 중국인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부국강병. 서구의 충격 이후 중국 엘리트들의 머리 속에는 그 네글자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그 목적을 위해 무슨 수단이든 정당화되었다. 산업화 과정에서 서구인들이 그랫듯이 마오에게 자연이란 자원과 동의어일 뿐이었다. 그러나 마오는 어설펐다. 과학적 사회주의를 말햇지만 과학은 없고 이념만 떠든 어설픔이 대약진운동 같은 재앙을 낳았고 문화혁명 같은 역사의 코미디를 낳았다. 문화혁명 이후 마오는 화석일 뿐이다. 사진틀에 걸려 모셔놓으면 되는 무의미한 뒷방 귀신이 되었을 뿐이다.

그러나 마오의 자연관은 그대로 이어졌다. 중국 엘리트의 목표가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국강병을 위해선 자원일 뿐인 자연을 이용해야 했다.

그 결과는 인상적이다. “내가 중국에 이사온지 1년 만에 중국의 GDP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따라잡았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자니자 영국을 따라잡았다. 대약진 운동 시기에 마오쩌둥이 목표했던 일을 50년 만에 해낸 것이다.”

그러나 그 대가 역시 막대했다. “베이징은 도시의 공기가 너무 나쁜 날이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쉬는 시간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막을 정도였다 나는 두 딸이 걱정되었고 내 폐도 걱정되었다. 나는 어릴 적부터 계속 조깅을 해왔지만 베이징에서 몇 년 살다보니 짧은 거리를 뛰어도 숨을 헐ㄸ거이곤 했다. 집집마다 석탄 난방을 하는 겨울이 되면 목이 아플 정도로 기핌을 햇고 이사 온 뒤로 두번이나 폐렴에 걸려 생전 처음으로 흡입약을 처방 받은 적도 있었다. 베이징은 숨이 막히는 도시였고 나도 숨이 막혓다. 7년간 베이징에 머물면서 나는 영국이 200년간 겪은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을 빠르게 돌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중국이 세계 환경문제의 핵심지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경제성장이 환경에 준 피해를 GDP에 반영한 그린 GDP로 계산하면 지난 한 세대동안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잘해야 0이거나 마이너스이다. 물론 중국 엘리트들도 할 말은 많다. 우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 환경은 그 다음.

“지금까지 경제성장은 대가를 치러야 햇다. 현대화는 여러 부작용을 낳았다. 영국에서 시작되어 유럽, 북미, 일본으로 이어진 경제발전모델은 우선 경제를 개발하고 나중에 부작용을 해결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방식이라는 것이 문제를 남에게 떠넘기는 것이니 문제다. 어느 정도 살만하다 싶으면 이제 공해를 만들고 환경을 파괴하는 산업을 다른 못사는 나라에 떠 넘기고 자신의 땅만 깨끗하게 만드는 방식이었다. 일본이, 한국이 경제성장을 한 이유가 유럽과 미국이 더 이상 하려 하지 않는 더럽고 돈 안되는 산업을 하기 시작하면서였고 중국이 경제성장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현상은 어떤 면에서는 성장통이라 할 수잇다. 낙관론자들은 중국이 순조럽게 경제성장 단계를 밟아나가 결국에는 공해산업에서 벗어날 것이라 전망한다. 일본과 한국이 극복한 환경문제를 중국이라고 극복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저자는 회의적이다. “중국은 산업화에 늦게 뛰어든 탓에 다른 나라로 폐기물을 버리기도 힘들다. 그래서 중국은 공해 산업을 외국으로 이전하는 대신 간쑤 성, 닝샤후이족 자치구, 네이멍구 자치구 같은 서부지역으로 이전할 수 밖에 없다.” ‘세계경제의 하수처리장’이 된 중국으로 흘러든 하수는 중국 밖으로 흘러갈 곳이 더 이상 없다. 중국의 문제는 중국 안에서 처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과연 방법이 잇는가?

중국 정부도 바보가 아니니 문제를 잘 알고 방법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중국 자체의 규모가 문제다. 환경문제란 결국 경제성장을 지속할 자원이 바닥난다는 뜻이다. 지금의 경제성장방식은 국내의 자원이 바닥나거나 더 이상 뽑아내기 힘들어지면 밖에서 들여오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일본과 한국은 유럽이 그렇게 했던 것처럼 자국의 숲을 열성적으로 보호한다. 그러면서 필요한 목재는 다른 곳에서 수입한다. 중국의 문제는 중국 자체의 덩치 때문에 그렇게 자신의 문제를 전가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상하이의 화려한 외관은 자원을 제공해주고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주는 다른 지역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부유한 대도시들이 그렇듯, 상하이의 고단백, 고칼로리 식생활은 다른 지역의 환경을 파괴한다.” 그러나 중국인의 생활방식이 상하이를 닮아가면 갈수록 중국 내에서 희생이 되어줄 지역은 사라지고 중국 밖에서 그런 지역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지구는 중국의 규모로 커진 서구식 라이프스타일을 감당할 수 없다.

“1949년: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다
1979년: 자본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었다.
1989년: 중국만이 사회주의를 구할 수 잇었다.
2009년: 중국만이 자본주의를 구할 수 있었다.”

저자가 인용한 베이징에서 유행한 농담이다. 미래에도 중국이 세계를 구할 것인가? 저자는 그래야만 한다고 본다. 영국에서 시작된 경제성장모델이 중국에서 그 한계에 이르럿고 중국이 그 한계를 넘지 못한다면 중국과 함께 세계는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정부는 “세계 역사상 어느 국가도 이루지 못한 일을” 해야 하고 하려고 한다. 2세기 넘게 바뀌지 않은 경제모델을 중국은 바꾸어야 하고 바꾸려고 한다. 저자는 이책을 쓰기 위해 중국 전역을 돌아보면서 환경파괴의 참상을 너무도 많이 보았다. 그러나 희망도 보았다. 그러나 과연 중국이 할 수 있을지 저자는 의문이다. 
 

 

평점 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