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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 그리운 조선여인
이수광 지음 / 스타리치북스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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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을 소설로 만난다는 것은 특별한 기쁨이 있다. 역사적 사실 그대로만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한 작가의 재해석의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어쩌면 역사적 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이 되어버리는 단점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작가가 해석한 역사적 인물을 새롭게 만난다는 기쁨은 언제나 크다.

 

팩션의 대가라고 불리는 이수광 작가가 바라본 사임당을 소설을 통해 만났다. 『그리운 조선 여인, 사임당』이란 제목의 소설이다. 이 소설을 통해, 현모양처의 대명사로 굳어버린 사임당이 아닌 새로운 사임당을 만나게 된다.

 

사임당이 현모양처의 대명사가 된 이면에는 율곡을 높이기 위한 송시열의 정치적 의도가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소설 속에서 만나는 사임당은 현모는 될지언정, 양처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물론 남편 이원수에게 악처는 아니다. 그럼에도 사임당과 시어머니의 관계는 좋지 않게 묘사되고 있다. 단순한 시어머니의 시집살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시어머니에게 순종하지 않고 반항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이런 해석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사임당은 결혼 후에도 시집이 아닌 처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이런 사임당과 시어머니 간에 갈등이 있었을 것은 당연지사. 소설은 이런 갈등을 보여준다. 그것도 갈등 뿐 아니라 시어머니에게 순종치 않는 그런 다소 되바라진 며느리의 모습을 말이다.

 

또한 소설 속에서 만나게 되는 사임당의 또 다른 모습이라면 시대적 한계 속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프런티어정신이다. 이 부분이 어느 정도나 역사적 사실일지 모르겠지만, 소설에서 묘사되는 사임당의 모습은 이렇다.

 

14살 때, 남장을 하고 금강산 유람을 다녀온 일. 이때의 경험을 <금강산등유기>로 적어 베스트셀러(?)가 된 일. 결혼을 부모가 정해주는 데로 한 것이 아닌, 자신이 마음에 품은 사람(금강산에서 만났던 이원수)으로 정하는 일. 주역을 통해 가족들과 주변인들의 장래 일에 대해 조언을 하는 일(완전 무지 용한 점쟁이 수준이다.^^). 심지어 죽은 육촌 오빠의 이름으로 남장을 하고 과거 시험을 치르기까지 하는 모습 등 많은 부분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에 안주하기보다는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모습들을 많이 묘사하고 있다.

 

예술가로서의 빼어난 재능과 열정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며, 남편의 기를 누른다는 이유로, 후에는 어미의 이름이 아들의 이름을 가릴까봐 작품을 태우는 장면은 위대한 예술인이었음에도 여성이라는 시대적 한계에 무릎 꿇는 모습처럼 다가와 먹먹하기도 하다.

 

어린 시절의 인선은 다소 과장되게 묘사되고 있어, 오히려 영웅의 신화화작업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치 무협지의 주인공마냥 모든 것에 능한 그런 모습에선 실소를 짓게도 한다. 사임당의 어린 시절이 천재성이 있었을 것은 분명하겠지만, 다소 과장된 모습은 아닐까? 그럼에도 이렇게 사임당의 엄청난 천재성이 과장되는 부분들, 다소 과하다 싶은 영웅담마저 균형을 잡아주기도 한다. 바로 사임당이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의 회상 형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모든 소설의 내용은 죽음 앞에서 힘겨워하는 사임당,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마저 느끼게 하는 회상을 통해 이야기된다. 그렇기에 다소 과한 영웅담마저 시대적 한계 속에서 힘겨워했을 사임당의 인간적 고뇌와 연결된다. 어쩌면 작가는 이런 균형을 염두에 두지 않았을까?

 

아무튼 신사임당은 현모양처라는 공식 속에 갇힌 여성이 아닌, 보다 인간적이고 때론 다소 과격하리만큼 진취적인 여성으로서의 사임당. 시대적 한계 속에서도 꿈꾸며 나아가던 꿈 많은 소녀 인선 사임당. 한 남자를 사랑하던 여인 사임당. 하지만, 그럼에도 남편의 외도로 힘겹게 몸부림쳤던 여성 사임당.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끝까지 품었던 딸 사임당. 아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전심전력할 줄 알던 엄마 사임당. 등 다양한 사임당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만나게 되는 고마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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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지음 / 예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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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관 작가의 신작 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한 마디로 재미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때론 피식피식 웃다가, 때론 껄껄 웃느라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된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건달들이 등장하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모든 조직들을 점점 하나로 모아 막판에 가서는 신나게(?) 칼부림 한 판 거하게 벌어지기도 하는 느와르 소설이다. 소설 속엔 다양한 조직들이 등장한다. 그 조직들을 나름대로 정리해 봄으로 서평을 여는 것도 좋겠다.

 

- 양사장 : 인천지역 암흑세계를 휘어잡고 있는 전국구 오야봉이다. 형근과 몇몇 측근들을 거느리고 있다. 잔혹한 오야봉이지만, 어쩐지 나이 탓에 조금씩 유해지는 느낌이 있는 오야봉이다. 전국구 오야봉임에도 자꾸 맞고 다닌다.

- 박감독 : 인천지역에서 삼류포르노 영화감독을 하고 있다. 원래 사체업자로 자체 세력을 거느리고 있으며 양사장의 눈치를 보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 쿠데타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조카를 탤런트로 꽂아 놓고, 조카의 출연분량을 키우도록 작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 장다리 : 인력사무소를 운영하는 건달.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가운데 가장 잔혹한 캐릭터. 호시탐탐 양사장의 자리를 노리고 있는 양사장의 예전 부하.

- 손 회장 : 부산 지역의 큰 형님으로 양사장보다 더 알아주는 전국구. 자신이 아키는 종마를 도둑맞은 일로 인해 양사장의 세력을 쓸어버리기 위해 올라왔다가 족보에도 없는 논두렁들과 칼부림을 벌인다.

- 남회장 : 전남 영암 지역 유지. 국회의원이 되기 위해 동물원을 영암지역에 짓고자 하는데, 이 일을 위해 호랑이에 집착한다. 사기꾼 뜨끈이에게 사기당한 일로 인해 양사장과 얽히게 된다. 휘하에 논두렁 건달들을 거느리고 있는데, 건달 세계의 족보를 모르기에 가장 위험한 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에게는 건달 오야봉들의 전설이 통하지 않으니까.

- 종식과 동생들 : 비정규직 건달 조직으로 양사장의 호출이 있을 때, 일을 맡아 하곤 한다. 이 가운데 울트라가 특히 여러 가지 사건을 벌이기도 한다. 울트라는 양사장의 눈에 들기 위해 애를 쓰지만 정작 자신과 교통사고를 낸 중년 꼰대가 양사장인 줄 모르고 눈이 돌아 밟아버린다. 나중엔 뜬금없이 작전을 나갔다가 말을 훔쳐오는데, 그 말이 손 회장이 아끼는 종마(35억 상당)를 훔쳐 일이 꼬이게 만든다. 울트라는 상당히 순박한 건달청년이다.

- 사기꾼 뜨끈이 : 여기저기 사기를 치고 다니는 인물로 뜨끈이로 인해 몇몇의 이해관계가 얽히게 된다. 온갖 사기행각으로 여러 조직의 위협아래 있다.

- 세 명의 대리기사 : 박감독 조직에서 끌어 쓴 사채를 갚기 위해 다이아를 훔치는 일에 끼어들었다가 모든 조직들을 얽히고 꼬이게 만든 장본인들. 언제나 초짜가 무섭다. 정말 어수룩함의 대명사격인 이들로 인해 조직이 온통 꼬이게 된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양념 노릇을 톡톡히 한다.

 

이렇게 여러 조직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파국을 향해 나가게 된다. 그 과정이 흥미진진할뿐더러 곳곳에 웃음 포인트가 감춰져 있어 독자들을 유쾌하게 만든다. 건달들의 이야기니 곳곳에 폭력이 난무하고 위험하다. 그런데 유쾌하다. 이런 유쾌함은 작가가 만든 캐릭터들의 어수룩함에서 기인한다. 그 앞에 서면 살이 떨릴만한 무시무시한 건달인데 하는 짓을 보면 완전 어리바리하다. 모든 건달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신화의 인물인 양사장은 왜 그리 맞고 다니는지 안쓰럽기까지 하다. 게다가 호모가 되어버린 건달도 그렇고. 말과 사랑에 빠진 건달도 그렇다.

 

20억 상당의 다이아몬드, 그리고 35억상당의 종마, 여기에 호랑이까지. 이것들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한판 칼부림. 그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까?

 

모두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올라탄 이들. 이들이 만들어가는 그림이 유쾌하다.

 

아울러, 왠지 씁쓸한 웃음도 짓게 한다. 건달 세계에도 비정규직의 서러움이 있으니 말이다. 집은 클수록 좋고 사무실은 작을수록 좋다는 것이 양사장의 지론이란다. 온전히 시선이 자신에게로만 향해 있는 모습이다. 가정도 이루지 않은 양사장의 집이 크면 클수록 외롭고 쓸쓸함만 커질 텐데, 손을 밖으로 뻗기보단 움켜쥐려고만 하는 인생이라니. 그리고 이런 가치관의 희생양이 바로 비정규직이다. 돈만 주면 언제든 각목 들고 달려올 비정규직 건달들이 뒷골목에 넘쳐난다는 대목은 어째 오늘 한국사회 전반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란 미명 하에 오히려 노동력을 착취하겠다는 가진 자들의 논리가 사회 전반을 집어삼킨 한국사회의 모습 말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죽지 않고 살만큼만 임금을 주면, 그 일이라도 감사함으로 달려들 비정규직 노동력이 차고도 넘친다는 가진 자들의 여유를 양사장의 모습에서 보는듯하여 씁쓸하다.

 

그럼에도 소설은 너무나도 재미나다. 그저 책장을 펼치는 순간 아무런 생각 없이 깔깔거리며 읽고 몸에 힘을 주며 액션을 상상하게 되는 그런 재미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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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자의 첫사랑
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 지음, 염정용 옮김 / 로그아웃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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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마이어푀르스터의 『황태자의 첫사랑』은 소설보다 연극과 영화로 더 유명하다. 연극으로 수없이 상연되었고, 영화 역시 15번이나 제작되었다니, 이처럼 유명한 작품의 원작 소설이란 이유만으로도 매력적이다.

 

금번, 출판사 로그아웃에서 완역 출간된 『황태자의 첫사랑』을 만났다. 어쩐지 로맨스 소설의 원조격인 고전이라는 생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책장을 펼친다. 요즘 로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임을 먼저 밝힌다. 역시 고전은 고전이다.

 

주인공은 다소 엄격하고 암울한 분위기에서 자란 황태자다. 이제 20살이 되어 하이델베르크로 1년간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떠나기 전 군주는 황태자를 가르치던 박사를 불러 당부한다. 그곳에서 대학의 낭만을 배우는 것이 아닌 학문 도야에 힘쓰도록 지도해줄 것을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떠나게 된 박사와 황태자는 점차 암울한 땅을 벗어나 낭만의 땅으로 향하게 됨을 어쩔 수 없다. 특히 박사는 하이델베르크로 가까워지면서 황태자보다 먼저 활력을 되찾아 간다. 그리고 장차 하이델베르크에서의 낭만의 길을 박사는 열어주고 권면한다.

 

이렇게 도착한 하이델베르크에서의 생활은 낭만 그 자체.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방탕함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황태자는 하이델베르크에서 학문수학은 전무하고, 오로지 대학생활의 낭만에만 올인한다. 날마다 친구들과 함께 몰려다니며 맥주를 마시고, 노래를 부르고, 결투를 하기도 하고. 그 최고봉은 하숙집 하녀(하숙집 질녀라고 보면 좋겠다.)와의 사랑이다. 황태자는 비로소 젊음의 낭만을 찾아간다.

 

지금 이 시간에 카를 하인리히는 언뜻 깨달았다! 고향 카를부르크에서 사람들이 나를 속여 내 청춘을 몽땅 빼앗은 거야! 나와 함께 놀아 줘야 했던 사람들도 하인들, 내가 함께 말을 타고 돌아다닌 사람들도 하인들, 1년 내내 하인들, 아침부터 밤중까지, 언제나 급료를 받는 하인들뿐이었어!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사실 까맣게 모르고 있었어! 나는 삶에 관해 아무 것도 몰랐어. 전혀 아무 것도! 사람들은 나를 황금 우리에 가둬 두고 있었던 거야. 길들여져야 할 짐승처럼.(76-7쪽)

 

하지만, 낭만의 시간은 짧기만 하다. 백부가 건강이 유독하여 3개월 만에 하이델베르크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가야만 했으니 말이다. 이렇게 또 다시 암울한 궁정 생활로 돌아간 황태자. 과연 그의 젊음, 낭만은 이대로 끝인 걸까?

 

소설의 분위기가 참 묘하다. 황태자와 하녀의 사랑이야기이니, 로설로서는 딱이다. 하지만, 알콩달콩하고 달달한 사랑이나 밀당의 순간들은 생략되어 있다. 그저 폭풍 같은 사랑만 자리한다. 그러니, 요즘의 로설과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다. 고전의 느낌이 물씬. 하지만, 그럼에도 황태자와 하녀의 사랑이 가슴 먹먹하게 적시는 힘이 있다. 고전이 갖는 또 다른 느낌의 힘이.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이 느낌은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아, 이 부분도 요즘 로설의 공식에서 벗어난다. 하지만, 오히려 이 마지막 순간 황태자의 대사가 가슴을 적신다.

 

우리 서로를 마음속에 간직해 두자. 나는 당신을 절대 잊지 않고 또 당신도 날 잊지 않기로. 우리가 서로 다시는 만나지 못하겠지만 서로를 잊어버리지도 않아. 난 당신을 결코 잊지 않을 거야. 케티, 절대, 절대로!(207쪽)

 

그러니 흔히 말하듯 쿨 한 사랑인 듯하지만, 쿨 하지 않다. 오히려 절절하다. 그리고 못났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을 용기도 없다. 그럼에도 잊을 수도 없단다. 자신도 절대 잊지 않을 테니, 상대도 잊지 말란다. 참 질척하다. 그래서 더 애잔하다. 질척한 사랑이 도리어 아름답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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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사임당
손승휘 지음 / 책이있는마을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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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임당에 대한 책들이 봇물 터지듯 출간되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시류에 맞춰 나 역시 사임당에 대한 소설 한 권 읽게 되었다. 손승휘 작가의 『소설 사임당』이란 책이다. 소설의 가독성은 참 좋다. 재미나게 술술 읽혀나간다.

 

소설을 통해, 무엇보다 사임당이란 여인을 만나게 되는 기쁨이 있다. 신사임당이야 오늘 우리가 가장 가까이 하고 싶어 하는 인물이 아닐까? 온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신사임당. 하지만, 그 사임당은 어쩌면 화폐 속에 유폐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젠 그저 5만원이란 이름으로. 그런 사임당을 화폐 속에서 해방시켜 소설 속에 다시 살아나게 해주고 이렇게 독자들과의 만나게 해준 작가가 고맙다.

 

단지 아쉽다면, 사임당이 주인공이 되어야 할 소설임에도 사임당 보다는 사임당 아버지인 신명화, 그리고 사임당의 외할아버지인 이사온, 또 뒤에 사임당의 남편이 되는 이원수 이렇게 세 사람의 남성 이야기가 더 주를 이룬다는 느낌이다. 물론, 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린 사임당, 성장하는 사임당,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는 사임당이 계속하여 등장하고 있음에도 왠지 사임당은 조연에 그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이것이 당시 여성이 갖는 시대적 한계 때문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우리 한국미술사에 당당한 한 획을 그은 위대한 미술가 사임당에 대한 이야기도, 위대한 사상가 율곡 이이를 낳고 교육하며 기른 어머니의 역할도 약화되어 있음이 아쉽다.

 

물론, 작가는 당시의 시대적 한계 속에서 사임당의 진취적인 성향을 사임당의 입술을 통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저는 사내가 아니므로 세상일에 직접 참여할 수도 없고 출세를 할 수도 없지만, 대신 제 남편도 사내일 것이고 제가 아들을 낳으면 아들도 사내일 것이니까 그 사내들이 세상에 나가서 출세도 하고 나랏일을 하도록 돕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세상일에 아주 나서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요.(108쪽)

 

이게 어쩜 솔직한 상황해석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소극적인 모습은 개인적으로 아쉬웠다. 비록 여성의 역할이 극히 제한된 시대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서도 혹 사임당의 보다 더 적극적인 역할 상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을까? 그런 역사적 해석의 여지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차피 독자는 소설 속에서 역사를 읽어내려 하기보다는 소설이란 무대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인물을 만나길 원하니 말이다. 이 인물은 역사성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분명 재해석될 여지는 있다.

 

이런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대단히 가독성이 좋을뿐더러 사임당의 어린 시절 모습, 그리고 꿈꾸던 세상, 아내로서의 현실 속에서의 애환 등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좋다.

 

전 국민을 tv 앞으로 모이게 했던 인기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유명 탤런트가 새롭게 tv 드라마에 복귀하며 사임당 드라마를 찍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내년 초 방영이 확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꼭 드라마를 위해 책을 읽을 필요는 전혀 없지만, 그럼에도 이왕지사 드라마를 볼 생각을 가진 분들이라면 드라마를 접하기 전에 사임당에 대한 소설 한 권 읽는 것도 좋겠다. 이처럼 쉽게 읽히는 소설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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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
마르탱 파주 지음, 김주경 옮김 / 열림원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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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마르탱 파주의 작품을 처음 접했다.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란 제목의 소설집. 이 안엔 7편의 단편소설이 담겨져 있다. 표지부터 다소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만나게 되는데, 소설에 삽입되어 있는 그림들 역시 대다수 그로테스크하다. 그림만 그런가? 아니다. 소설 내용들 역시 대체로 묘하다. 정말 기괴한 분위기인데, 묘한 매력이 있다. 분명 기괴하지만, 잔잔하다. 기괴함 가운데 유머가 담겨 있고, 기괴함 가운데 안정감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까? 아무튼 묘하다. 그리고 재미있다.

 

첫 번째 소설인 「대벌레의 죽음」을 접하면서부터 ‘허걱!’ 하게 된다. 이게 뭐지? 뭐 이런 소설이 있지? 싶으면서도 재미나다. 주인공은 집에서 일어나보니 자신이 살인 피해자가 되어 있다. 형사가 현장 조사를 하며, 멀쩡히 살아 있는 주인공을 살인 피해자로 몰아세운다. 시체가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둥. 당신이 살해당한 증인이 있고, 범인도 자백했기에 당신은 살해당한 게 틀림없다는 둥. 아무리 자신이 살아있음을 이야기하지만, 형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며 살해당한 피해자임을 이야기한다. 멀쩡히 살아 말을 하는데도 여전히 살해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니.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이 시체라 주장될 수 있는 그럴 듯한 근거들이 있다는 것이 문제. 마치 커다란 코끼리를 작은 생쥐라 우김으로 냉장고 속에 집어넣는 경우와 같다. 문제는 실제 그렇게 우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 냉장고 속에 들어가게 될 상황이라는 것.

 

끝내 말이 통하지 않는 형사. 한 대 쥐어박고 싶을 정도로 말이 안 통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에게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다. 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단지 꽉 막힌 형사 한 사람의 문제일까? 어쩌면 이게 공권력의 폭력임을 말하려는 건 아닐까?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소설은 주인인 독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공권력의 폭력을 발견하게 된다. 멀쩡히 살아 있는 사람조차 시체로 몰아세울 수 있는 뻔뻔함과 실행능력은 어쩌면 오늘 우리 주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책 제목과 동명인 단편 「아무도 되고 싶지 않다」에서는 자신의 이름, 자신이란 존재에 대한 책임보다는 익명의 존재로 살고자 하는 욕구를 느끼게 된다. 「멸종 위기에 처한 남자」에서는 심각한 사회적 아이러니는 발견하게 된다. 무엇에 근거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인공이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멸종된 줄 알았던 종족이라는 생물학계 권위자들. 이로 인해 하루아침에 정부의 보호대상이 된 주인공. 멸종위기의 희귀종의 인간을 보호한다면서 오히려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강요하게 되는 정부. 여기에 자유를 되찾아 준다며, 주인공을 보호의 감옥으로부터 탈출시켜 무인도에 유배시켜버리는 자들. 어디 하나 정상적이지 않다. 어쩜 오늘 우리 사회 군상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닐지. 본질을 잊고 주변의 것들에 집착하는 비정상적인 군상들 말이다.

 

「평생직장에 어울리는 후보」는 학벌 좋은 한 사람이 직업소개소 상담실에 찾아와 범죄자가 되길 원하는 이야기다. 상담자는 끝내 범죄자가 될 자질이 없다며 반려하고. 주인공은 끝내 범죄자가 되겠노라 자신의 의지를 피력하고. 그런데, 왜 이렇게 범죄자가 되려는 걸까? 그건 한번 범죄자가 되면 영원한 범죄자가 되기 때문. 다시 말해 평생직장을 갖기 위한 것. 어찌 보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오늘 우리들의 모습을 비꼬는 것이 아니겠나. 백세 시대를 맞으며, 평생직장을 찾아 기웃거리는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범죄자를 꿈꾸는 이 사람의 모습 속에 투영되어 있지 않을까.

 

「내 집 마련하기」는 관계의 단절 속에서 오히려 자유함을 누리고, 자신의 내면 속으로 함몰되어 가는 자발적 사회적 외톨이의 모습을 보여준다. ‘함께’보다는 나 ‘혼자’가 더 행복한 현대인의 모습을.

 

「벌레가 사라진 도시」는 어느 날 갑자기 벌레가 사라졌다. 처음엔 모두 환호했다. 더럽고 귀찮은 벌레들이 사라졌으니, 하지만, 점차 심각해진다. 벌레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 동물들이 사라진다. 결국 도시에 심각한 위기가 초래할 것이라 여긴 사람들도 빠져나가고. 동물들이 사라진 이유는 뭘까? 작가는 말한다.

 

동물들이 우리를 버리고 떠난 까닭은 그들이 보기에 인간이 사귀어선 안 될 존재가 되었기 때문임을 알았다. 동물들이 미리 감지하고 피해 달아났던 그 위험, 우리가 두려워하고 있는 그 위험은 바로 우리 자신, 곧 인간이었던 것이다.(171쪽)

 

오늘 우리는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런 위험, 무서움은 바로 내가 만들고 있다.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벌레마저 그 위험성을 감지하고 피할 위험한 인간들이 되어버렸음에 부끄럽다.

 

마지막 이야기 「실업자가 된 알베르」 역시 괴상하며 재미나다. 실업자가 되어 버린 알베르는 혼자 집안에서만 살아가다가 몸만 비대해지는 폐인이 되어간다. 그러던 알베르는 어느 날 이상한 생각을 한다. 이 세상은 온통 위험으로 가득하다고. 세상엔 온통 살인의 위협이 가득하다고. 그 모든 위험과 자신이 싸워 이겨야겠노라고. 다소 싸이코와 같은 접근을 하며, 집안의 모든 위험 요소들과 싸워 제거해나가며 승리한다. 그리곤 그런 장면들을 하나하나 사진으로 남겨놓고. 이제 집안의 위험을 모두 해체한 그는 밖으로 나간다. 밖으로 나간 그를 맞은 위험 요소는 주차장에 주차되어 있던 대형 트럭. 이 괴물이야말로 살인과 위험의 대명사. 알베르는 결국 이 괴물과 싸워 승리한다. 무려 네 시간에 걸쳐 괴물을 모두 해체한 것. 물론, 그 현장 앞에 승리자의 모습으로 사진을 남기고. 이렇게 그는 정신병자가 되어 간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사진들이 전시회에서 놀라운 반향을 일으키고. 그는 이제 세상의 모든 위험 요소를 해체하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사람들이 가져다주는 수많은 위험 요소들을 해체하고 사진을 찍으며.

 

7편의 단편 하나하나 예사로운 것이 없다. 아니 평범한 내용이 없다고 해야 할까? 때론 괴기스럽고 때론 황당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을 읽어가는 가운데 묘한 매력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가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 어쩌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야말로 이처럼 괴상한 모습임을 작가는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마르탱 파주라는 작가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해준 단편소설집이다. 작은 단편소설집이지만, 그 안에 담겨진 기괴함은 결코 작지 않다. 아울러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독특한 소설집. 강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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