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스트리트 : 머니 네버 슬립스 - Wall Street: Money Never Slee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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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리버 스톤 감독은 언제나 현실적이고 날카롭다. 세상의 문제점에 대해 그는 망설임없이 비판했고, 그래서 그의 영화는 바로 현재의 추악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당연히 전세계를 위험에 빠트린, 자본주의의 추악한 사태인 2008년 미국의 월가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스톤 감독은 그냥 포장하지도, 그렇다고 걷돌지도 않았다. 그는 그냥 들이밀었다. 가상현실인 어느 주인공과 미래의 어느 시점에 아내가 될 어느 여인 등이 나오긴 하지만 그래도 영화는 그들의 사적인 이야기나 하려고 영화를 만들지 않은 것임은 확실하다. 그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모든 것들을 망가뜨린 월가, 바로 그곳을 보여주고 싶었고, 더 중요한 것은 그속에 있는 인간들의 참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월가, 아니 진정한 자본주의자들이 원하는 것은 분명했다. 신자유주의라고 포장까지 됐고, 신의 영역으로까지 찬미된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을 계속 유지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체제든 좋은 사람들이 중심이 됐을 때 유지가 가능하다. 착한 사람의 뜻이 무엇인가라는 논쟁이 붙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남을 배려하는 것쯤은 포함되겠지만 현재 전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자본주의엔 이런 배려심은 찾기 힘들다. 어차피 자본주의는 나만 잘살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기본전제가 주도하는 철학이니까. 이런 점에서 자본주의는 그들이 비판했던 공산주의처럼 공멸의 위험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기이했다. 앞으로 다가올 위험을 경고하면서 책을 펴낸 작자가 다름아닌 월가의 악명높았던 금융가였단 사실이 말이다. 그야말로 영화의 진짜 주인공일 것이다. 어쩌면 영화 속에 그나마 존재하는 로맨스를 주도하고 여인과 사랑에 빠지면서, 그리고 화면 전체 중 상당수를 차지하는 제이콥(샤이아 라보프)은 관객들의 눈을 사로잡기 위해 준비된 거짓된 주인공일 뿐이다. 그나마 순수하고 정의라고 말하기엔 낯뜨겁지만 자신을 키워준 은인을 위해 월가에서 복수하려는 그는 관객들이 원하는 캐릭터일 것이다. 그러나 그가 겪고 있는 내용은 영화의 그 무엇도 아니고, 차라리 동화 같은 그일 뿐이다.
  게코는 그와 달리 영화의 가장 큰 비중을 담당한다. 무엇보다 그야말로 월가의 산증인이고 월가의 본성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바로 탐욕 말이다. 금융사고를 저지른 후 11년만에 출소한 게코(마이클 더글라스)는 세상에 고해성사를 하듯 월가에 의한 금융위기를 예언한다. 영화 자체는 이미 월가가 대형사고를 친 후에 제작되어서 이미 다 아는 사실이어서인지 게코의 이야기는 구구절절 옳았다.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들 중엔 월가는 물론 금융이란 것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듣기 싫은 소리들이 계속 튀어 나왔다.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은행과 관련된 인사들이 위기의 월가에 대해 대책회의를 하고 있을 때, 자본주의를 지키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는 어느 인사에 대해, 정부의 보조와 사회주의 아니면 자본주의 모두가 공멸할 것이란 넋두리는 자본주의의 허약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또한 자본주의란 체제의 목적이 모든 이들의 행복인지 아니면, 무엇을 희생시키든 자본주의란 수단을 보호하겠다는 것인지 저의가 의심스러웠다. 어떤 방식이든 사람들의 탐욕을 키워서 투기로 이끌었고, 그에 대한 피해가 생겼을 경우 자신들만 빠져나가겠다는 생각과 그리 다르지 않다. 공동체는 자본주의자들의 마음 속엔 존재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추악한 모습이 다시 게코에게서 벌어진다. 그는 뉘우치기 위해 월가의 위험을 공격하는 책을 쓴 것이 아니라는 뒷부분의 장면들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인간의 그칠 리가 없는 탐욕 속에서 가족조차 버리는 모습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영화 마지막은 해피엔딩이었지만 이런 모습은 영화 상으로 작위적일 뿐, 현실은 그렇지 않을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의 피해로 커야 할 수밖에 없다면, 그 희생자가 가족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방송에서 Mr. Doom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루비니' 교수의 잠깐 출연은 영화의 지향점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잘못 했으면 책임을 져야 하며, 그것을 책임지란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의 인간들 중 월가에 이미 많은 인생을 산 자들의 모습은 어떤 식으로든 돈을 벌려고만 하지,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인간은 이기주의니까. 따라서 그들의 탐욕에 대한 대가를 법으로 응징해야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요원한 것 같다. 현실에서나 영화에서나 말이다. 참 힘든 세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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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우강호 - Reign of Assas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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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협, 한때는 나에겐 동화였고, 신화였고, 이상향이었다. 무협의 이야기 속엔 화려한 무술이 보였고, 또한 원초적인 인간관계와 사랑이 있었다. 부모와 가족에 대한 복수, 그리고 현재에선 도저히 믿기 힘든 우정과 믿음, 그리고 끝없기만 한 사랑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모습은 현대의 영화와 소설에선 사라진 지 오래다. 철들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험한 세상은 냉정하고, 종종 냉혹하기만 했다. 그 속에서 기본적인 가치를 담은 인간관계의 핵심인 가족까지도 무너지는 것까지 현대의 세상은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검우강호’란 영화는 반갑기만 하다.
  뻔한 구성이지만 진보한 무협영화란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복수 속에서도 새로운 인연은 시작됐다. 그것이 작위적이고 거짓된 시작이었지만 말이다. 어느 고승의 시체를 갖고 최고가 고수가 된다는 믿음이 사실이 되는 순간, 그에 대한 희생이 벌어졌고, 갈등은 그렇게 시작됐다. 죽고 죽이는 인연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 결코 희망이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한계는 인간이면 항상 느끼는 감정일지 모른다. 그를 피해 도망하지만 인연은 그리 쉽게 깨지지 않은, 아니 더욱 집요하게 한 인간의 인생을 옥죈다. 그리고 과거의 인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가게 된다는 설정은 인간사의 근본적인 철칙일 것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든 인간관계는 삶이 어느 순간 수단이 되어버린 비극을 이야기한다. 희망을 품고, 그리고 행복해야만 할 인생은 과거의 질곡 속에서 헤매면서, 과거의 악연을 끊으려는 행동이 도리어 과거에 얽매이는 상황만이 연출된다.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계로 진화하는 상황 앞에 한 인간의 선택은 양자택일이 될 뿐이며, 어떤 선택도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주저하게 되며, 도리어 인간적이 고뇌로 파멸되어 갈 뿐이다.
  과거의 무협영화가 좀 단순했다고 할까? 그 무협영화들의 후손은 좀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워졌다. 어떤 선택이든 가볍거나 획일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현재의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액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고민이 될 수 있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재미와 현대적인 재미가 현대의 무협영화라 할 ‘검우강호’에 존재한다. 구성에서, 혹은 영화의 흐름에서 다소 미진한 것이 있지만 전체적으론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지저분한 인간관계가 아닌 단순하면서도 고민스런 구성을 갖고, 그에 대해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풀어간 것은 무척 좋아 보였다. 괜히 오우삼이 아닌 것 같다. 가을에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얻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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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 밑 아리에티 - The Borr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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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감독 ‘미야자끼 하야호’의 작품엔 이젠 없는 것들로 가득 차있다. 깨끗한 마음,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 그리고 함께 있으면 좋다라는 동료애. 이런 것들은 경쟁이 격화된 이 세상에선 사실 찾기 힘든 멸종생물과도 같이 참 보기 힘든 것들이다. 그래서일까? ‘미야자끼 하야호’와 많은 공동작품을 한, 그의 수제자인 ‘요네바야시 히로마사’의 첫 작품은 자신의 스승이 갔던 같은 길을 걷고 있었다. 창조성에 대해 비판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그런 비슷함이 너무 반갑기만 하다. 그가 보여주는 세상은 지금은 보기 힘든, 그러나 보고 싶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동화에 대한 강한 갈증이 있다. 잠시 동안의 행복은 극장을 나서는 순간 사라지겠지만, 동화로 가득한 내용을 통해 풍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하는 이 영화는 그래서, 매력 덩어리로만 느껴졌다.
  작은 인간인 소인들, 진부한 소재다. 분명 과거의 어느 이야기책에 등장해서이겠지만, 진부하다고 외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고 또한, 그런 진부함 속에서 도시인들은 행복해질 수 있다. 이색적인 볼거리로만 치장된 S/F 공상영화나 우주를 배경으로 한 공포물은 기이한 모습을 통해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겠지만 도시인의 정서엔 결코 부합될 수 없는 약점이 있다. 차라리 이미 어디선가 봤던, 미지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존재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정서적이고 행복감을 준다.이 모양새는 마치 태어날 때부터 있던 인간의 욕망처럼 보인다. 그래서일까? 그들과 함께 은밀하게 산다는 설정은 현대인을 행복하게 해주는 즐거운 이야기 거리다. 동화에 나오는 설정이 바로 우리 옆에 있다는 환상을 주며, 다른 종류와의 더불어 살기에 대한 이야기를 즐거우면서도 동화처럼 이야기한다. 
  그런 즐거운 시간을 만끽할 주인공인 ‘쇼우’가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어느 외딴 집으로 온다. 이미 육체는 물론 정신적인 아픔까지 갖고 있는 듯한 주인공은 부모의 외면 아닌 외면 속에서 그들과 멀리 떨어진 채, 현실로부터 벗어난 동화의 한 고장으로 들어간 것이다. 마치 도시 속에서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상처입은 도시인처럼 말이다. 그 속에서 만나게 된 미지의 존재인 소녀 ‘아라에티’는 이제 그녀가 맞이할 세상을 보게 된, 그래서 성장통을 앓게 될 소녀다. 처음이기에 망설였지만 묘한 신비감에 이끌려 평범(?)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으로 들어온 10cm의 작은 소녀는 위험으로 가득 찬 곳에서 자신이 꿈꿔온 낭만과 이국을 인간이 살고 있는 현실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 둘은 어리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는 설레임 역시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엄연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길들여져 있으며, 그래서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들의 만남은 평범하면서도 낯설다.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은 있지만 간접적으로 맺은 관계에 대한 편견으로 그들의 만남은 언제나 주저를 먼저 하게 되고, 그리고 묘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혼재해있다. 다른 세상의 것을 훔친다고 생각하기에 만남 앞에서도 부끄러움을 갖고 있는 ‘아리에티’는 가난한 자들의 속마음일 것이란 생각도 든다. 이런 소녀 앞에서 자신의 거친 목숨 앞에 마지막일지 모르는 동경의 세상에 대해 그가 하고 싶은 만남과 그를 위한 친절에 최선을 다하는 쇼우는 마지막이란 운명 앞에 마지막 소원을 빌고 있는 불행한 어느 소년의 모습이다. 그들 주변에 산재한 어른들의 삶의 방식은 그런 그들을 힘들게 한다. 그러나 간절하게 기다려온 소중한 인간관계와 우정은 그런 것들을 기우로 만들고, 자신들만의 멋진 인간관계를 만든다. 그리고 자신들의 세상에서도 이젠 흔하지 않은 좋은 인간관계를 구성하며, 상대의 행복을 진지하게 기원한다. 이것 역시 우리들에게 흔한 것이 아니다.
  부러웠다. 그들의 이색적인 만남도 부럽지만, 지금의 현대인에게 없는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만드는 모습도 그랬다. 휴머니즘을 발산하는 그들의 만남과 위험 속에 생성된 타인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점점 잃어버린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질타로 보인다. 이젠 흔하지 않은 것들로 변한 인간의 우아함을 이젠 동화로밖엔 볼 수 없는 현재의 우리들의 모습은 정말 안타깝기조차 하다. 경쟁으로 인해 서로 공유할 것들은 사라졌고, 과시를 위한 것들을 얻기 위해 애쓰는 우리들의 모습은 동화의 주인공들이 보기엔 역시 낯설 것이다. 어서 빨리 그들의 세상에서 지배하는 가치가 우리들의 가치로 어서 오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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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가? 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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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권은 자신의 옷을 제대로 입었다. 앞으로도 그의 미래에 찍을 영화들은 있겠지만 아마 이 독특하고 괴이한 분위기의 웃기는 영화가 아마도 그의 최고의 작품이 될 것 같다. 다만 이런 이야기가 기우이길 바라지만 영화 최대의 수확 두 가지 중 하나라면 주연배우 김인권의 탄생이란 것을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다문화 문제를 직접 앵글로 다루면서 한국사회의 이면으로만 남았던 부분을 영화로 끌어낸 영화, 그 자체다. 영화는 매우 재미있었고 유익했다. 그것도 가슴 아프게 말이다.
  한국이 변했다. 현재 스포츠 경기에서 한국이란 말보다 대한민국이란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된 어휘가 된 상황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말만 쓸 수 있는 사람들이 국민인 나라에서, 언어가 다른, 다양한 국가들 출신들이 함께 사는 나라로 변한 것이다. 그러나 일종의 통과의례였으면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한국의 기업들이 싼 맛에 들여왔고, 그것도 제대로 월급도 주지 않으면서 착복하는 그런 모습이 사실 한국에선 매우 자연스럽다. 한국은 변해도 나쁘게 변하고 만 것이다.
  탐욕에 멍든 기업인들은 분명 한국사회는 물론 아시아의 모든 사람들에게 죄를 짓고 있다. 그러나 그들을 처벌하는데 인색한 한국은 분명 악당의 모습, 그대로이다. 앞으로 변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엄청난 희생이 따를 것이고, 그것은 단순히 머나먼 타국에서 온 이들만의 희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일거리가 없어 최악으로 내몰린 오늘날의 젊은이들 역시 꿈을 잃긴 마찬가지다. 기업인들은 약자들의 땀과 고혈을 짜내는데 혈안이 되고 있고, 약자는 외국인이든 한국인이든 가리지 않는다. 외국인 수입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오직 저렴한 노동력일 뿐,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 한국의 상류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외국인들이 오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한국의 상류층들 중 군대 도피를 위해, 해외출산원정을 떠나는 마당이고, 미국 국적이라면 어떤 비용이라도 마다하지 않은 것 역시 현실이다. 한국은 이렇게 엉망이 되고 말았다.
  영화는 그런 시대적 배경을 기반으로 진행된다. 주인공은 두 가지 이름과 국적을 갖고 있다. 한국 이름은 ‘방태식’이고 부탄 이름으론 ‘방가’였다. 한국에서 정상적인 한국인으로선 취직이 안 되기에 자신의 국적까지 바꿔야 하는 청년의 모습은 ‘88만원 세대’의 솔직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나 그가 바꾼 국적인 부탄이란 나라는 불쌍한 나라이긴 마찬가지다. 아니 그 나라에서 불쌍한 사람으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온 것뿐이다. 그래서 그가 한국인이든 부탄인이든 그의 모습은 불쌍하기 그지 없었다. 멀리서 오든 가까운 곳에 있든 돈이 없어 불쌍한 것은 마찬가지일 뿐이다.
  한국인이지만 부탄인이 되어 돈 버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님 돈 한 푼 벌기 힘들어 자신의 국적을 버려서라도 생존해야겠다는 노동자로 떨어져버린 한국인의 비애를 슬퍼해야 할까? 아님 한국사회의 비극을 기막히게 조롱하고 풍자한 구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가 얻고자 한 베트남 여자와의 사랑은 아름답기만 할까? 그 뒤에 있는 슬픈 배경과 과정, 그리고 행복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은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즐거운 재미를 맘껏 선사하면서도 끝날 때 느끼는 비감은 묘한 대조가 된다. 비정규직도 아니고, 도망을 다니거나 도피를 하면서도 돈을 벌어야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극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비정규직은 도망 다닐 필요는 없지만 외국인들은 도망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비극을 넘어선 희극으로 극을 이끌었고, 매우 효과적이었으며, 또한 많은 생각을 하도록 이끌었다. 사실 영화라면 해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만들어준 것이다. 기대하지 않은 대단한 수확을 얻은 느낌, 바로 그것을 이 영화에서 얻었다. 무엇보다 건방져 버린 한국인들에 대한 질타는 웃기면서도 뼈아팠다. 한국인 모두가 비겁하고 악랄하진 않겠지만 방관자라는 문제의식은 분명히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비록 자신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최소한의 책임의식은 가져야 할 것이다. 안 그런다면 정말 나쁜 국가의 국민이 될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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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셉션 - Ince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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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기발한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영화엔 그런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발한 상상력은 관객의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감동을 줄 수 없고, 깊은 사색의 시간을 만들어주지 못한다. 영화는 그런 것을 넘어 깊이 있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으며, 감독 ‘크리스터퍼 놀란’의 과거의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단순하지 않은, 복잡한 인간의 내면을 하나하나 끄집어내는 고달프지만 의미 있는 작업을 통해 수준 높은 영화를 만들어냈다. 사실 ‘배트맨: 다크 나이트’에서 그랬고, 그 전 작품에서도 그랬다. 감독의 탁월한 인식이 부러울 뿐이다.
  인간의 깊은 내면은 어쩌면 인간이 알지 못하는 공간인 것 같다. 자신의 것이지만 결코 알 수 없는 내면, 그것은 인간의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것들이 잠재해 있다. 그런 잠재적이고 추상적인 인간의 내면과 연결되어, 그 내면을 형상화하는 매개체는 꿈이다. 최소한 서양은 그렇게 여기고, 또한 연구되고 있다. 꿈의 이해를 통해 인간 내면을 연구하는 심리학 등은 그래서, 꿈에 대한 해석을 중히 여긴다. 그런 꿈을, 영화 ‘인셉션’은 매우 기이한 서사를 통해 또 다른 세계이면서도 현실의 인식이 현실화되는 공간으로 꿈을 구성했다.
  이해하기 무척 힘들었다. 과연 내가 꾸는 꿈 속에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었는지 지금 역시도 궁금할 정도다. 언제나 수동적인 공간으로만 알고 있는 꿈이란 가상적 공간이 계획과 의지가 통용되는 세상으로 변화하는 것에서 기발함이라고만 이야기할 수 없는 굉장한 인상을 받았다. 또한, 꿈 속에서의 세계를 꿈으로 가기 전에 만들 수 있고, 그 꿈 속에서 다시 꿈을 꿀 수 있다는 이야기는 불가해한 이야기였다. 이런 꿈에 대한 괴이한 인식은 이상하게도 공포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독특한 구성으로만 이 영화가 관객을 끌려 했다면 그것은 수준 낮은 작품이 됐을지 모른다. 영화는 꿈이란 매체를 통해 볼 수 있는, 인간이 감추고 싶은 내면을 드러내면서 인간의 허약함은 물론, 인간의 본질로까지 영화의 앵글을 비추고 있었다. 어쩌면 이 점이 이 영화의 강한 매력이었던 것 같다. 감추고 싶다는 것은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일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도 잊고 싶은 기억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감출 수도 잊을 수도 없는 것이다. 정신 한 켠에 잠재하면서 현실의 자아의 행동과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소위 생각의 근원인 이것들은 인간의 가장 가슴 아픈 상처로서, 언제나 스스로의 열등감과, 비애감, 그리고 현실 속에서의 공포로까지 존재한다. 또한, 이런 죄책감과 함께 갈망은 또 다른 잠재적인 힘으로써 현실의 자아를 움직이고 통제한다. 자신의 죄책감으로 인해, 현실로 돌아오길 망설이는 자아의 행동에서, 결국 세상은 인간에겐 가장 큰 두통거리이자 불만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런 구도 속에서 보이는 것은 현실에 대한 인간의 불행과 불만, 그리고 공포다. 현실을 살면서 언제나 위험의 일상화에 힘들어하는 인간은 꿈이란 매개체를 통해 현실의 공포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이라고 표현하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꿈도 사실은 행복에 대한 실패를 의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꿈을 통해 본질에 다가가면서 주인공과 관객이 만난 것은 일탈이라도 해서 얻을 수 있는 행복이 아닌, 죄책감과 소외감으로 억눌려있던 인간의 나약한 모습이었다.
  꿈은 그런 공간이었다. 그나마 일탈이자 행복의 공간으로 볼 수 있는 꿈 역시, 현실과의 연계성 속에서 인간의 도피를 자극하는 공간일 뿐, 결코 영원한 행복을 보장해주는 공간이 아니며, 어쩌면 현실과 다르지 않은 고통의 공간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힘들어하는 인간의 모습은 갈망을 통해 그것을 벗어나려 하지만 영화 속에서 보이는 구도에선 매우 힘들어 보인다. 어쩌면 인간의 세상살이 역시 그런 것이리라. 그래서 매우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 한 켠엔 슬픔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 영화는 속편을 염두에 두고 제작됐을 것만 같다. 꿈 속에서 시간이 5일 이상이었던 것으로 기획된 이상, 영화는 꿈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를 더 보여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들, 매우 궁금하다. 그 속에서 인간의 불행을 벗어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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