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우강호 - Reign of Assasin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무협, 한때는 나에겐 동화였고, 신화였고, 이상향이었다. 무협의 이야기 속엔 화려한 무술이 보였고, 또한 원초적인 인간관계와 사랑이 있었다. 부모와 가족에 대한 복수, 그리고 현재에선 도저히 믿기 힘든 우정과 믿음, 그리고 끝없기만 한 사랑이야기가 있었다. 이런 모습은 현대의 영화와 소설에선 사라진 지 오래다. 철들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험한 세상은 냉정하고, 종종 냉혹하기만 했다. 그 속에서 기본적인 가치를 담은 인간관계의 핵심인 가족까지도 무너지는 것까지 현대의 세상은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검우강호’란 영화는 반갑기만 하다.
  뻔한 구성이지만 진보한 무협영화란 느낌이 들었다. 복잡한 인간관계와 복수 속에서도 새로운 인연은 시작됐다. 그것이 작위적이고 거짓된 시작이었지만 말이다. 어느 고승의 시체를 갖고 최고가 고수가 된다는 믿음이 사실이 되는 순간, 그에 대한 희생이 벌어졌고, 갈등은 그렇게 시작됐다. 죽고 죽이는 인연 속에서 자신이 살아온 삶 속에서 결코 희망이나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한계는 인간이면 항상 느끼는 감정일지 모른다. 그를 피해 도망하지만 인연은 그리 쉽게 깨지지 않은, 아니 더욱 집요하게 한 인간의 인생을 옥죈다. 그리고 과거의 인연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지만 결국 다시 원점으로 가게 된다는 설정은 인간사의 근본적인 철칙일 것이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만든 인간관계는 삶이 어느 순간 수단이 되어버린 비극을 이야기한다. 희망을 품고, 그리고 행복해야만 할 인생은 과거의 질곡 속에서 헤매면서, 과거의 악연을 끊으려는 행동이 도리어 과거에 얽매이는 상황만이 연출된다. 끊고 싶지만 끊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인간관계로 진화하는 상황 앞에 한 인간의 선택은 양자택일이 될 뿐이며, 어떤 선택도 만족스러운 것이 아니기에 주저하게 되며, 도리어 인간적이 고뇌로 파멸되어 갈 뿐이다.
  과거의 무협영화가 좀 단순했다고 할까? 그 무협영화들의 후손은 좀 더 성숙하고 어른스러워졌다. 어떤 선택이든 가볍거나 획일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현재의 영화는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액션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고민이 될 수 있는 그런 영화들 말이다. 그래서 고전적인 재미와 현대적인 재미가 현대의 무협영화라 할 ‘검우강호’에 존재한다. 구성에서, 혹은 영화의 흐름에서 다소 미진한 것이 있지만 전체적으론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지저분한 인간관계가 아닌 단순하면서도 고민스런 구성을 갖고, 그에 대해 직접적이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풀어간 것은 무척 좋아 보였다. 괜히 오우삼이 아닌 것 같다. 가을에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얻어서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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