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 Unbow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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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난다. 사회적 정의의 최후의 보루라고 여겨진 법정에서의 불법이 자행되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저급한 표현이겠지만 법원의 판사들과 검사들에게 국민들이 혈세를 들여 월급을 주는 이유는 억울한 일을 막아달라는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요구사항은 묵살됐다. 그래서 그들은 독재다. 사회의 악의 근원이 재벌일 수도 있고 조폭일 수도 있지만 법원이라고 해도 틀리지는 않다. 기득권이란 권리 아닌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그들이 벌인 악행은 영화 ‘부러진 화살’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정말 이런 판검사들을 왜 국민들이 먹여 살리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대입시험의 수학 문제의 오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된 문제의 원인은 반성과 사과를 통해 해결했어야 했다. 그러나 조직의 원리와 상위 1%의 자존심을 위해 진실은 묻혀졌고, 오만만이 득세하게 됐다. 이미 다 알고 있는 성균관대 김명호 교수의 석궁테러 사건을 영화화한 ‘부러진 화살’에서 그런 추악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다. 한국은 아직 정직한 사회가 아니었다.
  석궁을 통해 위협만 하려 했느냐, 아니면 죽이려고 작심했냐 하는 쟁점을 갖고 석궁테러 사건의 심리는 진행됐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실존인물 김명호 교수를 본뜬 ‘김경호 교수(안성기)’에 대해 사법부와 법원, 그리고 대법원과 그 수장은 이미 그를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법정에서 요식행위만을 하려고만 했다. 사건의 진위와 그에 따른 판단을 하지 않고 법원에 대한 도전이란 이유로 그를 단죄하려고만 한다.

 


 

 

 

 

  증거는 중요하다. 범인이 왜 범인인지를 밝히는 가장 구체적이고 근본적인 실체니까 말이다. 동시에 법원은 공정한 판정을 위해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관을 통해 사건을 확인하고 판단하고 마지막으로 단죄해야 한다. 하지만 영화 속 어디에도 법원은 중립적이지도 못했고 공정하지도 못했고, 동시에 증거조차 제시하지 못했다. 김경호 교수의 행동이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가중처벌하는 것도 아닌데 그는 자신이 하지도 않은 죄목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그 잘난 사법부의 자존심 때문에 말이다. 이미 그 자존심은 오만이란 사악함으로 바뀐 지 오래다. 단순한 이익집단으로 하락한 사법부가 과연 제대로 뭘 할 수 있는지 의심이 들게 하는 장면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나오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법원에도 양심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최초로 법정을 이끌었던 법관이 사직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그러나 다음이 더 가관이었다. 더 엉망인 법관을 통해 심리를 진행하려 했고, 이 대목에서 사법부와 법원의 사악함이 또 한 번 드러났다. 이미 대법원과 사법부는 착해질 마음이 없었다. 과거 독재정권의 만행을 정의의 마지막 보루에서 또 다시 나온 것이다. 거기에 김경호 교수의 자존심을 뭉개기 위해 감옥에서 벌어진 만행은 한국 사법부의 야만성이 도대체 어디까지 뿌리내렸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미 사법부가 범죄의 온상인 것이다. 그래서 김경호 교수는 결국 유죄를 받았다. 사법부 아닌 모든 사람들에게 비웃음을 살 수 있는 이 기막힌 판결이 21세기를 시작한지 훨씬 지난 한국에서 벌어졌다는 것이 슬프다.

 


 

 

 

 

  국민들은 이런 엉망인 판결을 막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런 억울한 일에 국민들은 막을 관심도 없었을 것이다. 한국민 자체가 그런 불평등하고 추악한 판결에 익숙해졌을 것이고, 그런 부당함을 막아봐야 자기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해졌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문제가 많은 이명박 정권을 최고의 지지율로 당선시키기조차 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악영향이 부메랑으로 다가오는 법이다. 영화 속 박준 변호사(박원상)가 이민 가고 싶다는 표현은 남의 일처럼 들리지 않았다.
  창피했다. 수출이 얼마냐, GDP가 얼마냐 하면서 한국의 성장을 축하하는 말들은 많았지만 한국민들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다. 그것은 3심재가 마련되고 헌법재판소가 마련돼도 국민들이 느끼는 법적 서비스는 요원한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아무것도 좋아진 것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한다. 증거 하나 없는 조작된 증거만 날뛰었던 법정에서 어떻게 그런 엉망인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판결을 내린 판사와 검사가 혹시나 고속승진하고 있을 것 같아 더욱 그렇다. 한국은 자성이 너무 필요하다. 그러면서 기득권이 자신의 고고함을 사악함을 지키고 있는 이때, 이들에 대해 준엄한 비판을 하지 못하는 한국사회는 스스로 채찍을 휘둘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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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본 - SIU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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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찰이 살해된다. 자신과 지금까지 함께 일한 동료경찰의 죽음으로 경찰들은 부산을 떨지만 영화의 특성이라 그런지 언제나 범인들은 그리 멀지 있지 않다. 즉 경찰이 가장 큰 피의자이다.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에서 경찰은 정의를 수호하는 사회의 지낌이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의 기강을 헤치는 악당들 중 경찰도 많다. 선과 악이 공존하는 것인지 아니면 최근의 세상에서 이기적인 인간들이 판을 치다 보니 경찰도 예외는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경찰들은 영화에서만 유별나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금 TV 뉴스에서 경찰들이 범죄에 가담해서 잡혀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특별한 내용들도 아니다. 경찰, 그냥 직업인이란 느낌만 든다.
  특별수사본부의 약자인 ‘특수본’이란 영화는 달라진 세상을 느끼게 한다. 영화 속 악당 경찰들은 이제 대규모의 힘을 가졌으며, 한 집단이 통째로 사회의 부정을 저지르고 있다. 그들을 쫓는 자들은 도리어 소규모이고, 그래서 위험천만하기까지 하다. 그런 과정에서 특이한 점이라 할지 모르겠지만 경찰이 경찰을 믿지 못하는 관계가 너무 쉽게 시작된다. 그런데 그런 상황이 너무 공감이 간다. 뇌물 먹는 경찰, 그리고 범죄집단을 보호해주는 경찰, 너무 일상화된 느낌이고 전혀 이질감을 느낄 수가 없다. 그게 비현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어리다는 핀잔을 들을 판이다.


 

 

  자신의 경찰 동료를 살해한 범인을 잡기 위해 오랜 경험으로 수사를 하면서 거의 실수를 하지 않는 동물적 감각의 강력계 형사 성범(엄태웅)에게 임시적으로 만들어진 팀인 ‘특수본’ 투입은 너무 자연스럽다. 그런데 먼 미국인 FBI출신으로 공부도 엄청나게 한 범죄분석관 호룡(주원)이 특수본에 들어온다. 이 둘의 성격상 서로 갈등을 겪고 티격태격 싸운다. 뭔지 모를 미움도 존재하고, 나중에 뭔가 숨겨야 할 것까지 생기면서 이들은 긴장상태에만 있다. 그러나 어떤 사실 하나로 그들은 급격하게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한 팀이 됐다 해도 그들이 상대해야 할 상대는 막강하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폭력 집단으로 활약하는 경찰들을 보면서 의로운 경찰의 앞날이 얼마나 험난한지를 알게 됐을 때, 사실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이 이상할 정도다. 그 정도면 사실 경찰 이상의 집단들의 탐욕이 끼었다고 밖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두우면서도 즐거운 액션 끝에 모든 것이 잘 해결된다. 이 영화는 분명 액션의 비중이 높은 영화며, 그것을 보면 매우 재미있는 영화다. 다만 영화가 담은 배경은 사실 유감이다. 한국영화 히트작들 중 우울한 현실적 배경을 담은 영화들이 많다는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 같다. 현실적 배경을 통해 알 수 있는 우리들의 현실과 그런 우울한 현실 속에서 멋지게 일처리를 하는 것을 보면서 관객은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가 즐기는 것이고. 다만 이런 배경이 어서 없어졌으면 하는 순진한 생각을 하게 된다. 억울한 자들이 없는 그런 세상 말이다. 영화 보는 내내 재미있으면서도 유감이었던 이유가 그것이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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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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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친 시대다. 임진왜란이 터지기 얼마 전이 말이다. 거칠다는 것은 소통은 적고, 욕망은 대세고, 가혹한 만행은 일반적인 그런 시대다. 이런 시대에 희생된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양산되는 법이다. 그런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지도, 그리고 위로 받지도 못한다. 바로 그런 시대 속에서의 엉망진창의 일 처리들이 자행되고 거행된다. 그런 일들을 자행하는 인간들이 딱히 정해진 것도 아니다. 위로는 임금이 그렇고 아래로는 노비도 그랬다. 임진란이 터진 조선에서 말이다. 한 번 무너진 방어막은 신뢰를 무너뜨렸고, 신분의 가치도 땅에 떨어뜨렸다. 왕이든 사대부든 국가를 지키고 백성을 지키는 역할이 주어졌기에 그들의 가치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할 때, 그들의 가치는 취소되는 것이며, 비난한다고 뭐라 할 상황도 못 된다.
  조선이란 나라를 보호하겠다고 만든 대동계는 조선 정부의 당쟁에 상관없이 자신들의 일을 하려고 만든 조직이다. 그러나 대동계도 인간이 만들었으며, 원래의 목적이 무엇이든 결국 인간의 욕망이 침투한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영화 속의 fiction이겠지만 대동계의 우두머리였던 ‘정여립’의 죽음에 이은 대동계의 이익집단화와 반역은 어쩌면 인간으로 구성된 집단이 갖게 될 수밖에 없는 정상에 서고 싶은 욕망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이 점에서 일본이 침략한 상황에서도 왕권탈취를 위해 한양으로 향하는 대동계의 우울한 진군을 보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시절, 황정학(황정민)과 이몽학(차승원)은 대동계의 동지로써 평등 세상을 꿈꾸며 이 땅의 민초들을 위한 세상을 만들려 하지만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는다. 그들의 꿈은 곧 기득권층의 약화를 의미하기에 조선 조정은 그들을 역적으로 선포하고 대동계를 해체시키려고만 할 뿐이다. 이런 대립구도는 결국 한 쪽은 정의, 다른 한 쪽은 악당이란 이분법적 구도를 만들며, 결국 조선 타도라는 목표를 만든다. 그 속에서 싹튼 개인적 야욕 역시 이런 목표에 기름을 붙는다. 하지만 그런 야욕에 반대하는 이들은 같은 동료들 속에서도 반대파를 만들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희생시키고 희생당하면서, 원수와 복수를 양산하게 된다. 욕망에 의해 붕괴되는 대동계 속에서의 이분법이 다시 양산되는 것이다.
  이런 이분법은 곧 동지와 적을 만들며, 그들 역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된다. 즉 서로를 찾고, 또한 칼을 들고 싸워야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버림받는 자들도 생기며, 버림받은 자들이 다시 쫓는 웃지 못할 관계도 만들어진다. 사랑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그대로 관계는 관계인지라 그것을 계속 유지하려는 여인과, 그런 여인을 버려야지만 그녀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몽학의 행동은 상대를 위한 배려가 피치 못할 사연을 만들 수 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거기에 이몽학의 행동을 배신으로 규정, 그를 막아 서려는 봉사 검객 황정학의 행동 역시 그 당시 어쩔 수 없는 피치 못할 짓이다. 거기에 자신을 서자의 신분으로 만들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아버지인 한신균의 서자 견자(백성현)는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이몽학에게 복수하기 위해 이몽학을 쫓는다. 이몽학의 야심으로 인해 희생당한 자들의 분노, 그리고 그런 과정 속에서 빚어지는 또 다른 비극들. 이 모든 것들은 욕망으로 인해 만들어진 불행한 인간사이다.
  그들의 마지막은 처량했다. 한두 가지를 이룰 수 있었지만 더욱 큰 것을 잃어버려야 할 상황에 봉착한 것이다. 욕망의 화신이 된 이몽학이 도착한 한양엔 아무것도 없었고, 그를 찾았던 이들도 이룬 것을 그리 크지 못했다. 모든 것들은 왜구에 의해 모든 것이 허망하게 된 것이다. 야욕의 끝은 모두의 피해를 양산하고 만 것이다.


 

 

  폭력적인 야망을 피도록 조장한 조선사회의 비극의 끝이 적나라하게 형상화된 한양 도성에서의 비극은 곧 오늘의 우리를 보는 듯 하다. 임진왜란에서 최고의 영웅 중 하나였던 유성룡이 동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영화는 진실에 한층 다가서는 듯 하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의 로망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를 제대로 보여준다. 기득권층은 기득권층일 뿐, 결코 타인을 위해 배려하는 인간들은 아님을 보여준다. 그런 기득권층의 작태로 인해 빚어진 비뚤어진 욕망의 양산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도 보여준다. 이것은 기득권만의 문제라기보다 인간 본연의 약점에 기인한 것이다. 그것을 통해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욕망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사회는 얼마나 갖췄는지, 그리고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런 통제가 가능해야 만 사회의 인간다움과 우아함이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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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게임 - Perfect Game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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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벌써 20년 전이라 기억도 가물가물한 87년, 앞선 경기들에서 1승 1패를 이뤘던 이 둘은 마지막이 된 세 번째 ‘퍼펙트 경기’를 하게 되고, 한국 야구 역사상 다시는 올 수 없는 최고의 투수경기를 만든다. 이 둘의 이야기, 정말 영화로 만들 만 하다. 최동원과 선동렬, 그들은 시작부터 모든 것이 경쟁이었다. 각자 영남과 호남 출신이었고, 고등학교 역시 자기 지역이었으면, 대학은 전통적인 사학의 라이벌, 연세대와 고려대였다. 거기에 서슬 퍼런 독재 시절 정권에 의해 의도적으로 이뤄졌던 대립구도 지역인 영호남에서의 프로야구팀들인 해태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 선수들이었다. 그들, 정말 모든 것이 라이벌이었기에 그들은 운명의 잔인함이 저주스러웠을 것이다. 최고였기에 그들의 경쟁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그들끼리도 외면할 수 없는 경기로 그들은 흥분했다.
  영화는 이런 그들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담았다. 다소 감정과잉이나 두 인물 주변의 인물들 표현이 과도하게 희화한 측면도 없지 않다. 또한 영화 속의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장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이 선동렬과 최동원의 마지막 경기를 위한 치열한 고민이고 복선이었으리라. 좋게 봐도 될 것 같다. 이 영화 하이라이트인 그들의 세 번째 경기이자 마지막 경기에서의 흥미와 감동은 단연 최고였다.
  정말 그때로 돌아간 것 같다. 특히 동시대에 최고의 연기자들로 평가 받는 조승우와 양동근도 최동원과 선동렬의 그때를 매개 삼아 라이벌 연기력을 펼치는 듯 하다. 그들의 연기력도 인상적이었다. 자신들이 담당한 배역의 모습은 물론 습관과 감정, 그리고 그들의 운명을 닮으려 노력하는 그들이 있었기에 영화의 수준은 한 단계 높아졌음은 분명하다. 좋은 연기는 좋은 영화에 필수적인 만큼 그들의 선택은 좋았다. 

 


 

 

 

  라이벌은 자신들이 붙인 것이 아니다. 타인이 붙였다. 하지만 결국 그들은 자기 자신들에 의해 라이벌이 된다. 1등은 한 명이 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이기고 싶은 선수로서의 욕망은 둘의 감정을 건드리기 마련이다. 이것을 갖고 정치적 의도를 갖거나 흥행을 촉발시키기 위해 사용할 수는 있지만 정작 흥분하고 있는 것은 본인들이다. 그래서 한 번 붙어야 할 운명으로 가게 된다.
  영화의 정점은 그들의 마지막 승부에 있다. 이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그래도 영화의 진면목은 바로 영화 속의 경기에 있다. 그리고 그 어느 스포츠 영화에서도 성공하지 못한 극적 긴장감과 사실성, 그리고 투수가 던지는 공의 느낌과 활력, 그리고 경기에서도 보기 힘든 그들의 숨소리를 제대로 담았고, 마치 경기를 보는 현장 속에 있는 듯 했다. 직구와 슬라이드, 그리고 커브 등의 모습을 CG로 제대로 표현했고, 두 선수의 감성과 함께 영화 속의 경기는 극적 쾌감을 더한층 끌어올린다.
  영화 속의 경기 장면만으로도 이 영화는 스포츠 경기의 고전으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경기 장면만을 담은 것이 아닌, 순수하면서도 본질적인 인간의 감정을 담았다. 또한 라이벌은 어떤 것이며, 어떤 멋을 지니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매우 공감했을 수도 있는 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한 인간이 갖고 있어야 할 책임감이나 인간성, 그리고 승부에 대한 의지 등을 모두 보여준 수작이다. 그들의 마지막 악수 장면에서 영화는 많은 것을 보여준다. Fair Play가 뭔지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다. 그 속에서 보인 인간다움,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이 후 다시는 경기를 하지 않았고 개인적으로도 좋은 마무리라고 생각한다. 고 최동원 선수 역시 생전에 세 번째가 마지막 경기가 된 것을 다행이라고 할 정도로 이들의 마지막 경기는 최고였고, 그만한 가치가 있다. 승부가 갈린 것 이상으로 많은 감동을 준 그들의 처절하면서도 위대한 경기에 그들께 감사를 드린다. 아마도 고 최동원 선수 역시 이 영화와 특히 경기 장면, 그리고 마지막에 공감하실 것 같다. 그 분을 다시금 보게 된 기회를 준 것에 매우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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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리츠 - Blit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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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우 제이슨 스태덤이 나온다면 대충 느낄 수 있는 영화 분위기는 화끈한 액션이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폭력이 난무하고 명확한 선과 악의 이분법 속에서 냉정한 판단이 필요없는 악의 징벌 정도가 그런 액션에 덧붙여질 뿐이다. 그런데 이 영화, 좀 다르다. 과거의 자기 영화에 대한 반성인지, 아니면 연기자로서 뭔가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오스카 상 한 번 타려고 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의 이전 작품과는 달랐다. 그래서인지 미국이 아닌 영국 런던이 촬영의 배경이었던 것도 같다.
  영화 속에서 경찰들이 나온다. 하지만 정의감에 사로잡혀서 악당을 잡는데 주저하지 않은, 정의의 사도 같아 보이지 않았다. 시작부터 나오는 경찰은 술을 엄청 마셨는지 방안이 술병으로 가득 찼다. 또한 그의 사건 해결 방식도 거칠기만 했다. 우리가 아는 성숙한 경찰이 아닌, 경찰과 깡패의 차이를 별로 느끼지 못할 만큼 야만스러웠다. 즉 경찰서에 출근하는 것을 보면서 경찰인지 알았지, 처음 그가 경찰인지도 몰랐을 정도다.

 

 

 


 

  경찰이 난폭하다. 그리고 술을 마시면서 과거를 잊곤 한다. 즉 정상이 아닌 것이고 아프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 그랬던 것이 아니다. 동료 경찰들 중 여경사는 재활프로그램을 갔다 왔으면서도 결코 인간적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만다. 자신의 아내의 죽음으로 상처 입기도 한 경찰이 있었고, 차분한 듯 하면서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일을 해결했던 경찰도 있었다. 우리가 염원하는 멋지고 정직하며, 제정신인 그런 경찰이 이 영화에선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현실인지 모른다. 그들도 힘든 도시생활을 하는 현대인이니까 말이다.
  이 영화에서 범인이 나온다. 그것도 아주 잔혹하면서도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고 경찰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다. 소위 죄질이 매우 나쁜 범인이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그런 범인, 과연 영화의 악역답다. 문제는 합법적으로 그를 잡아들이는 게 너무 힘들다는 점이고, 그것으로 인해 경찰은 더욱 힘들다. 정말 경찰 해먹기 너무 힘든 것이다. 세상은 정의로운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줬으면 하고 경찰에게 바라지만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경찰이 피폐해져 가는 것은 어쩌면 비상식적인 방식으로만 해결해달라는 세상의 요구에 경찰이 억눌린 채 살아가야 한단 점일 것이다.
  참 힘들다. 좋은 방식은 요원하기만 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이 어쩌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된 세상,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과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좋은 것으로 바뀔지 모르겠다. 나만 노력한다고 될 일도 아니고, 사회는 결국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모두의 동참이 필요하다. 하지만 의구심은 언제나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 의심이 모든 노력을 물거품이 되도록 한다. 그래서 비참함이 감돈다. 그런 현실을 이 영화는 적실히 보여준다. 심지어 민중의 지팡이란 애칭을 갖고 있는 신문기자까지 요행수를 바라는 시점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느 순간 영화 ‘도가니’와 같은 현실고발 영화가 된다. 우리는 너무 서로에게 과도한 것을 요구하다 보니 계속 탈이 나는 사회인지 모르겠다. 과연 희망은 무엇일까 하는 고민도 있지만 그래도 제대로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역시 가치는 있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영화가 보여주는 세상은 배트맨의 고담시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 우울했고 축축했고, 영 개운하지 않았다. 영화 속에서 보이는 세상은 그렇게 우울하기만 했다. 어쩌면 그래서 스태덤은 새로운 도전을 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가 보여줬던 폭력물들은 인터넷 게임과도 같은 소비성 영화였고, 자신의 가치를 보여줄 수 있는 게 화끈한 폭력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변하고 싶었고, 나름 자신의 역량에서 할 수 있는 것을 찾은 셈이다. 어떻든 그는 자신이 맡은 역할 중 가장 좋은 연기력을 보여줬다. 또한 보다 현실에 가까운 장면들을 통해 세상에 사는 모든 이들이 참 힘들게 사는 것을 보여준다. 경찰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책임이 얼마나 고달픈지, 그리고 세상은 얼마나 크게 변했는지를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 때문에 스태덤의 변신은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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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1-12-09 1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대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novio 2011-12-09 14:10   좋아요 0 | URL
색다른 스타뎀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