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승주나무 > 사교육 논쟁

서재를 간만에 웹핑하다고 아프락사스 님의 오래된 페이퍼를 발견하고 마음이 동해서 글을 남깁니다.

서재에는 교육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있으므로, 정식으로 논재에 부치고 싶습니다.

아프 님의 페이퍼 주소 : http://www.aladin.co.kr/blog/mypaper/1009150

 

http://news.media.daum.net/society/affair/200611/27/pressian/v14858179.html

"나는 왜 사교육으로 돈 벌기를 포기했나"

[인권오름]"진보도 '학벌'의 기득권 버려야 하지 않나"

 [프레시안 임재성/'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그런데 어떻게 해서 먹고 살아요?"
  
  사회운동 단체 활동가들이 흔히 받는 질문 중 하나다. 활동가들 역시 생계 문제를 회피할 수 없는데, 사회단체들이 그들에게 지급하는 급여는 최저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활동가들이 흔히 택하는 수단 중 하나가 입시 과외다.
  
  물론 사교육으로 생계를 해결하는 것이 현직 활동가들의 경우만은 아니다. 과거 학생운동을 했던 이들 중 상당수도 졸업 후 사교육 시장에 진출했다. 수감 경력 등으로 인해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다. 이들 중 일부는 시장에서 꽤 성공했다. 게다가 최근 대학 입시에서 논술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이들은 날개를 달았다. 운동권 동아리에서 사회과학 세미나를 하며 훈련한 글쓰기 및 토론 능력을 바탕으로 논술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이제 흔하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언론은 "386 운동권 출신이 논술 시장을 장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성공한 이들은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낄까. 많은 경우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사회의 과도한 입시열에 편승해 돈을 버는 게 그다지 떳떳하지만은 않다는 자책이다. 또 최근 심화되고 있는 교육 불평등도 이런 자책을 가중시킨다.
  
  하지만 쉽게 그들을 탓할 수는 없다. 안정적인 직장을 구하기 힘든 이들이 생계를 위해 택한 일에 대해 함부로 비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현행 공교육이 학생들에게 충분한 만족을 주지 못 하고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를 지향하는 이라면 사교육으로 돈 벌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이가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로 인한 수감 생활을 마치고 지난 5월 출소한 '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임재성 씨다. 임 씨도 수감 전에는 입시 과외로 생활비를 벌었다. 하지만 수감 생활 도중에 얻은 깨달음이 그의 생각을 바꿨다.

  
  노동자 한 명의 죽음에 대해 분노했던 이들이 해마다 입시 때문에 100여 명의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상황에 대해 무감각하다면 모순이라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학벌 기득권에 안주하여 편하게 밥 벌이를 하다보면 소외된 이들에게 공감할 수 있는 진정성을 갖기 어려우리라는 것.
  
  이런 생각으로 그는 입시 경쟁에 편승한 사교육에 가담하는 것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물론 사회단체 활동과 병행하기에 가장 손쉬운 생계 수단인 입시 과외를 포기하는 게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그리고 임 씨 혼자 사교육 시장에 뛰어들지 않는다고 해서 청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입시 경쟁과 학벌지상주의가 사라질 리도 없다.
  
  하지만 애당초 임 씨가 수감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병역을 거부한 것 역시 당장 전쟁을 없앨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일단 누구라도 먼저 총을 내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임 씨가 사교육으로 밥 벌이를 하지 않기로 선언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임 씨는 "진보도 '학벌'의 기득권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제목의 글에 자신의 결심을 담아 인권운동사랑방에 보냈다. 다음은 인권운동사랑방이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 실린 임 씨의 글 전문이다. <편집자>
  
  '양심적 병역거부자'에서 '양심적 사교육거부자'로
  
  수감시절, 출소 이후 활동을 하면서 돈을 어떻게 벌지를 고민하면서 사교육은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다. 수감되기 전까지 열심히 했던 사교육의 기억들을 감방 안에서 곰곰이 반추해보면서 그렇게 낯 뜨거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현실적인 금전적 이해에서 조금 떨어진 상황이었기에 그런 성찰의 시간이 가능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는 어쨌든 밥과 잠을 법무부에서 해결해 주는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좌파'랍시고 스스로를 규정하는 이가 자신의 학벌을 밑천 삼아서 그 학벌에 목 매다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절박함을 이용해 돈을 벌다니. 정말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 사실 별 대단한 결심도 아니건만 감옥에서 "양심적 사교육 거부"라는 글을 써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싣게 되었다. (당시 '전쟁없는세상 소식지'에 실렸던 글, "양심적 사교육 거부"를 보려면 다음 주소를 클릭하면 된다. http://www.withoutwar.org/bbs/view.php?id=www_letter_11&no=6 )
  
  그 글에서 나름대로 노렸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광고. 왜 성공적인 금연을 위한 조언 중 하나가 '주변에 금연 사실을 알려라'이지 않은가. "생각해보니까 이거 할 짓이 아닌 것 같아. 나 앞으로 사교육 안 할 거야." 당시 글의 내용은 길었지만 핵심이 이것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공명의 욕심이었다. 사교육을 하면서 활동을 하는 이들이 가지고 있는 맘 속의 무거움을 알기에, 그러나 그 무거움을 가지면서도 사교육을 계속 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나름의 자극이 되고 싶었다. 이러한 내부적 비판은 당시 내 주변의 활동가들을 많이 불편하게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의 글 일부를 다시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 페미니스트파시스트건 집에서 설거지 안하는 것은 똑같다는 이야기를 진보건 보수건 사교육 시장에서 학벌주의 조장하는 것은 똑같다고 대유(代喩)하면 비약일까. 페미니스트 남성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기득권을 버리고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진보'가 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학벌을 팔아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유혹을 거부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밖에서 후원을 해주었던 친구에게서 대안교육잡지인 '민들레'에서 연락이 와서 글을 그 잡지에 싣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투박한 글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대안교육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운동권들의 사교육시장 장악을 보면서 얼마나 답답하게 여길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답답함에 작은 위안이라도 된다면 정말 기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 광고를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 입시학원가 풍경. 출처: 청소년 인터넷뉴스 <1318바이러스>

  학벌주의와 떨어질 수 없는 사교육 거부…쉽지 않은 결정
  
  지난 5월 충주에서 수감생활을 마치고 출소를 했다. 사람들을 만나며 나누는 여러 이야기 중 하나가 사교육 정말 안 할 거냐는 질문이다. 별것도 아닌데 글까지 쓴 것이 부끄럽기도 했는데 막상 나와 보니 화제다.
  
  사교육 아니면 돈 어떻게 벌거냐는 질문도 이어진다. 뭐, 계획은 있는데, 쉽지는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사교육은 절대 안하련다. 이렇게 답을 하고나면 좀 어색해진다.
  
  함께 활동했던 이들은 여전히 사교육을 통해서 생활비를 벌고, 활동을 해 나가고 있었다. 다 안다. 그 사람들, 그 동지들 다 안다. 내가 무슨 이야기 하는지. 내가 왜 이런 결심을 했는지. 근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다들 힘들게 살고, 어렵게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누구보다 급진적 사상과 주장을 가지고 늘 현장을 뛰어다니지만 먹고사는 일 앞에서는 현실적이 될 수밖에 없다.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교육만큼 적당한 게 별로 없다.
  
  과외를 10개 가까이 하면서 대학원 학비를 만들고 집에 생활비를 보내며 공부와 활동을 하는 한 선배는 나에게 그런다. 이것이 치열한 나의 삶이며 자신에게는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사교육 어쩌고 하는 비판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또 어떤 선배는, 그럼 공교육이 대안이냐고, 사교육 안하는 것이 대안이냐고 묻는다.
  
  함께 평화운동을 했던 이는 그런다.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고, 나 사교육 아니면 활동 못한다고, 활동을 하지 못하는 거 보다는 나은 거 같다고.
  
  
그 이후 다른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면서 스스로의 신념을 지키는 자부심은 있지만 유혹도 있다. 사교육, 참 매력적인 돈벌이다. 스트레스야 좀 받겠지만 이만한 돈벌이가 어디 있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짧은 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활동과 병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리만 좋으면 한 달에 얼마 일하지 않아도 최저임금에 준하는 돈을 벌 수도 있다. 또한 아이들에게 갑자기 '선생님' 소리도 듣는다. 이것저것 '왼쪽'의 이야기를 하며 나름의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근데 그 돈, 애들이 좋은 대학 보내달라고 내는 돈이다. 내가 4년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돈이다.
  
  입시 때문에 일 년에 백 명 정도의 학생들이 자살을 한다고 한다. 노동자 한 명이 자살하면 눈물을 글썽거리며 살인정권이라 외치는 우리가 왜 그 백여 명의 죽음에는 이리도 무감각한지.
  
  최소한 운동권이라면, 진보주의자라면 현상 이면의 본질에 대해서 성찰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속에서 불편해야 한다. 비록 당장은 계속 사교육을 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고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참 부끄러운 일이다.
  
  어렵지만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잡으며
  
  얼마 전 한 일간지에서 강남 논술시장의 대부분을 학생운동권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사교육 중에서도 논술 같은 경우는 운동권이 대부분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었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요즘 논술의 추세가 조금 진보적 관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좋은 점수를 받는 비결이라는 이야기에 학부모와 학생들이 그런 강사를 찾기도 한다고 한다. 곧 '한국판 소피스트들'이라는 타이틀 안에 운동권 출신들의 논술강사들이 다뤄질 날이 멀지 않은 느낌이다.
  
  트럭을 몰며 배추장사를 하는 선배가 있다. 시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일주일에 3일 정도 일하고 한 달에 백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돈을 번다고 한다. 운동하며 사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그리고 이 사회에서 돈은 번다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인데 너무 고민이 없다고 말한다. 사교육이 쉬워 보이지만 그건 운동하는 사람들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운동하는 것이 무슨 의미냐는 것이다. 그럼 다른 일을 찾아봐야 하는데, 역시 어렵다. 하지만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음에도 아예 생각이나 시도조차 없는 후배들에게 아쉬움을 표현했다.
  
  활동가들이 최소한의 생활비를 받으면서 운동할 수 있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안일 것이다. 그러나 비록 현실이 열악하더라도 삶의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이 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자신의 원칙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특히 이 사회의 모순에 저항하고자 하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면 말이다.
  
  여기서 '운동권'이라는 호칭의 일차적 지칭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누군가 먼저 총을 내려놓아야 한다면 내가 먼저 놓겠다는 신념으로 병역거부를 결심했다. 비록 어렵고 힘들었지만 스스로의 삶에서 늘 자랑스러운 결정이자 가치가 되었다.
  
  수감 시절, 병역과 마찬가지로 사교육을 거부하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실 사교육을 거부한다는 것은 병역거부에 비하면 훨씬 쉬운 일이라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막상 사회 속에서 그 매력을 거부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또다시 사교육 거부자로서 스스로를 다잡아본다.
  
  이 글은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행하는 <인권오름> 최근호에도 실렸습니다.
 
임재성/'전쟁없는 세상' 활동가




이에 대한 승주나무의 견해

사교육에 머무는 사람으로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 싶지만, 제가 볼 때 이 글을 쓴 사람은 '사교육'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사교육은 '사교육적'인 것과 '교육적'인 것 두 가지로 생각해야 합니다. '사교육적'인 것은 자본주의와 신분상승욕구 등 입시양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사교육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람이 이에 정진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사교육을 거부하는 이유가 된다면 저는 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공교육이 무너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공교육을 강화해서 사교육을 약화시킨다는 것은 제가 보았을 때 너무나 순진한 발상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하지만 사교육에서 시작해서 사교육의 '사교육적 한계'를 극복하고 공교육과의 모색을 고민하여 '교육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제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입니다. 학생들이 사교육에 손을 내미는 것은 매우 복잡한 문제입니다.
이렇게 구조의 문제가 담겨 있는 사안에 대해 단지 '거부'만 한다고 해결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는 군 생활 2년여 기간 동안 고민과 성찰을 거듭하며 '본격학문' 대신 '논술'(사교육)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나름대로 서양의 철학자와 철학사, 사서삼경에 침잠하고 성찰하면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한국사회을 감싸는 유령의 근원지가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 '교육'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다음에는 포지션이 문제가 됩니다. '공교육'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하는 것이 의문이었습니다. 공교육은 '관료화'를 극복하기가 참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강의 외에도 해야 하는 일이 있고, 어느 정도 틀거지가 정해져 있습니다. 이에 비해 다소 유연하다 할 수 있는 사교육과 학생들이 많이 믿고 의지하는 곳에서 학생들과 소통하며 교육은 진정한 문제를 성찰하고 이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글을 쓴 사람에게 '사교육을 죄악시하지 마시오. 사교육에는 신분상승의 욕구 외에 현행 입시구조에 고통받는 학생들의 신음소리가 담겨 있고, 이곳에 진입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욕구불만까지도 담겨 있는 슬픈 성이오'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사교육에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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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님의 블로그를 보다가 든 생각..아이를 유치원에 보내시면서
커가는 아이와 함께 겪고 있는 이야기를 쓰시는데..
그걸 보면서 불현듯 내가 어렸을 때가 생각났고.. 또 토토가 생각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좀 잘난척 페이퍼가 될지도.

나는 어릴적엔 좀..유별 났다.
엄마의 시대를 앞서가는(?) 교육 덕분 이었겠지만 말이다.
음.. 어릴때 어땠냐면
돌 때, 혼자 집앞 골목길에 상점에 가서 새우깡을 사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돌 짜리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해서, 걸어가서, 상점에 들어가서, 새우깡을 들고,
그걸 가져오기 위해서 아줌마한테 뭔가를 주고(그니깐 돈을 주고) 그걸 들고 집에 왔다는 거다.
울 아들 녀석 돌을 10일 쯤 앞두고 인제 하루에 세발짝 씩 띠고 이러는데
그거에 비하면 정말..대단한거 아닌가..움하하
걷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상점에 가고
새우깡을 가져오기 위해 뭔가를 줘야 한다는 개념을 이해하고 있으니.
생각해보니 동전을 쥐고 떨어뜨리지 않고 상점까지 들고간것도 대단하군.
물론 그 상점은 우리집  옆에 옆에 집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 돌때 기저귀도 안찼다고 한다. 이때 벌써 대소변을 가렸다는 얘기지.
가끔 쉬를 하긴 했다고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만 두 살 되기 전에 한글을 떼고..혼자 책보고
음악틀어주면 비올라 바이올린 첼로 소리를 구분하더란다.
지금은 들어도 뭔지도 모르겠더만.

하긴 그도 그럴것이 엄마가 다 훈련을 시켰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아침마다 더운물에 궁둥이 살짝 담궈서 아침에 변 한번 보도록 일단 습관들이고, 그러니 쉬는 금방 가리고
들은 음악이라곤 클래식 뿐이고
부산에 일단 전시회를 한다고 하기만 하면 다 갔고
엄마가 별도로 짬짬이 일해서 번 돈으로 ,
부산에선 그 당시 대학교수 및 그런 상류층(?) 사람들이 간다던 호수 그릴에 가서 한달에 한번 외식
호텔에서 일했던 엄마답게 양식에 대한 예절을 얘기하고
그 호수그릴 이란데는 아주 어릴적엔 신기하게도 우리나라 같지 않은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소곤소곤 얘기하고, 누군가 나이프를 떨어트리면 그 소리가 홀안에 다 울릴 정도로
사람들이 점잖게 얘기하는 그런 식당 이었다.
그랜드 피아노에 제대로 정장을 한 멋진 지배인에
내가 가면 단골이라고 별도 어린이용 의자를 대령해주고 디저트도 주곤 하고..
그래서 어릴때는 식당에서는 누구든 그렇게 하는 줄로만 알았다. 소곤소곤.
( 내가 머리가 좀 굵어지면서 그 그릴도 더이상 좀 고상하신 분들이 오는 곳이 아니게 되었고
그런 식당만 있는게 아니라는걸 알게되었지만.. 어릴땐 식당이란 다 그런 곳인줄 알았다.
엄마가 한 번은 외식하는 날에 아파서 못갔는데,
동네 언니한테 대신 데려가 달라고 했는데 못찾아서,
그 당시엔 비쌌던 본젤라또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고 들어왔는데, 그 때 한여름에 날은 더운데
가고 싶던 곳에는 못가고, 아이스크림 먹던 가게의 처량한 풍경은 안잊혀진다. 그 느낌도.. 참....)
책은 항상 집에 많았고, TV는 주말에 영화나 프로그램 하나정도?
국민학교 들어가면서 부터는 시향 정기연주회는 해운대서 살던 몇년을 제외하곤 거의 두 달에 한번 꼴로 가고
4살이 되던해 혼자서 피아노 학원을 보내고.
(내가 어릴땐 우리동네엔 국민학교 3학년에 되어도 반에 피아노 학원 다니는건 2~3명 이었다..)
피아노와 공문수학과 그림학원, 수영학원 정도는 번갈아가며 했으니
친척들은 엄마더러 극성이라고 머라고 할 정도였다. 지금이야 이정도는 암것도 아닌거 같지만
30년전 그것도 지방의 달동네 라고 하면
한달에 한번 비싼 식당을 가고, 그림을 보러 가고, 시향 정기연주회에 가고, 학원을 몇개씩 다니고
그것 자체가 이상한 집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우리 아버님, 나 국민학교 1학년 때 중 1 수학 문제집 사와서 가르치셨다.
물론 집합만 가르치다가 말으셨지만. 당신이 집합 설명해 주고 이해 했냐고 하길래
응 알겠다고 이 기호가 이렇게 되는거 알겠다고. 그러자 한번 설명해 주고는 아빠는 문제를 풀라고 했고
당근.. 문제를 푸는 테크닉을 몰랐던 나는 문제는 못풀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체집합과 여집합의 개념을 몰랐던건 아니었다. 문제 한 두개 맞췄던 기억은 난다 머.쳇,
이것도 내 편의에 의한 기억의 조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빠가 조금만 요령이 있고 끈기가 있었다면 정말 중1 수학을 그 때 배웠을지도...
설마.. 뭐 그 때 겨우 사칙연산 떼고 분수 하고 있었나?
그랬으니..머..배웠다 한들 지금 달라지는 것도 없겠지만
게다가 잘난척은 하고 싶어서, 3학년 때부터 어려워 보이는 책은 무턱데고 읽기 시작했으니,
어이 없던건 칼세이건 코스코스 4학년때 읽은거.
이건 참 재미났었다. 뭔소린지는 기초 지식이 바탕이 안되니 당근 잘 이해 못했지만.
유전자 부분을 읽으면서 도대체 RNA와 DNA와 리보솜이 어쩌구 하는건 알게되었지만.
기본적으로 유전자가 몸속에 도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라는게.. 나의 의문점이었고..
그건 중학교 생물시간이 되어서야 알수 있었다. 그러니 읽어도 제대로 읽은건 아닌게지..
5학년 올라가면서 죄와벌 읽은거. 도대체 5학년 짜리가 죄와벌을 제대로 이해할리가 없자나..
그러면서 그때는 나름 끄덕거리면서 읽었던 기억이 나니. 참 나라는 애는..그냥 이해하는척 하고 싶었던 거겠지. 열나 재미없어하면서도 읽고야만다 였고.
그래도 죄와벌을 4일 만엔가 읽고는, 두도시 이야기는 반나절 만에 다 읽었다. 그게 훨 재미났었지 아암..

여튼 서론은 이정도로 하고, 
그래서 지금의 나를 아는 사람들이라면 그렇게 생각을 저~언혀 안하겠지만
어린 시절에는 집안에서의 생활 자체가 주변 아이들과 많이 다르고
또 나름 발달이 빨랐던지라 학교가 참 재미없었다.
내가 재미있어하고 관심 있어하는 얘긴 나눌 친구가 없었고, 선생님들도 그런 얘긴 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규칙을 굉장히 중시해서 수업시간엔 거의 열중쉬어 자세로 선생님의 움직임을 시선으로 쫓긴했다
물론 요렇게 꼼짝도 안하고 앉아서 그러도록 시킨 선생이 있으니 그랬겠지만.

00님 얘기를 읽으면서 문득 어릴때가 생각나 엄마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누구누구도 6살에 유치원을 보내 놓으니
엄마 왜 애 들은 베토벤을 아무도 모르지? 그랬었지 그러신다.
히힛 얼마나 잘난척을 하고 싶었겠으며 그렇게 잘 난척을 해도 애들은 안받아 줬을거고.
그래서 그런가 이상하게 유치원은 기억에 정말 없다. 어릴시절에 대한 기억은 참 많이 남아있는 편인데도
유치원 2년 정확히는 1년 반 이지만. 그 때의 기억은
교복 입기 싫었던거 맨날 꾸물거렸던거
언젠가 아침에 너무 일찍 유치원에 가서 문이 열려 있는 텅빈 공간에서 혼자 돌아다녔던거
그러고 있는데 도시락을 안가져와서 엄마가 도시락을 가져다 주신거.
놀이터가 비좁아서 그네에 눈썹 부분이 찍혀서 멍들었는데 꾹 참았던거.
그래서 선생님들이 오히려 뇌에 문제가 생긴거 아닌가 하고 한참 걱정하는데 엄마가 괜찮다고
원래 잘 참는다고 그래서 선생님들이 되려 안심하면서 잘 참는다고 칭찬해 주던거.
굵은 소금에 염색해서 유리컵에 채워넣는 공예 하던거. 졸업식날 엄마가 만들어준 하얀 드레스.
스팽글이 조롱조롱 달리고 아래에는 한가득 레이스가 달린.. 그 정도..
기억에 남는 공간은 한적하고 사람이 얼마 없는 가운데서 내가 몰랐던
아름다움이나 무언가를 발견한 그런 몇가지 밖에 없다.
국민학교 때도 친구들과 잘 놀긴 했지만 사실 요새 용어로 한다면 은따였다고나 할까.
왕따지만 스스로 내가 따 시키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말이지.
그래도 별로 부족함을 느낀적은 별로 없었다. 그냥 내 세계에서 엄마와 이야기를 하면 되니까.
내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그냥 무시하면 된다고 생각했던거 같다.
(내가 친구였으면 얼마나 재수 없었을까..--;;; 하긴 몇 안만나는 고등학교때 친구를 만나도
너는 참 대학 가더니 인간되었다 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니..)

4학년 때 시립도서관에서 방학때 하는 독서클럽에 참가했다가
독서 토론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책 한권을 읽고 독후감 써와서 이것저것 얘기하는 데였는데
너무 좋았다.
처음 나간날이 어린왕자가 주제였는데, 죽 돌아가며 자신의 독후감을 읽고 서로 어떻하고 얘기하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궁금한 거, 얘기하고 싶은걸 얘기하는데
누군가 마지막이 잘 이해가 안간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영혼과 육신의 경계와 껍데기와 본질 어쩌구 굉장히 복잡한 생각을 했는데 (뭔진 정확히 생각 안나지만 )
차마 부끄러워서 그런 생각들을 밖으로 말을 하진 못했는데 (정확히 뭔지 모르고 어려운 용어들만 생각나니 말을 못했겠지 정리가 잘 되었으면 얘기를 했겠지만. 여튼 어린애였으니 그려려니 하고)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게 너무 행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생각을 해낸 느낌. 희열과도 같은 기분. 그 분위기만은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독서클럽은 동화책 5권을 집으로 빌려갈 수 있었다. 일반회원은 안 빌려줬는데 말이지
그래서 여러가지 책들을 너무 재미나게 봤었다.
대표적인게 호비트였고(빌보 아저씨의 모험)가 그렇구 왕자의 비밀(이건 아직 제목을 알 수 없음)에
내가 읽고 엄마가 읽고 서로 얘기하고 그렇게 할 수 있어서 참 좋았었다.
그러나 그 모임도 모임을 주도하던 회장이랑 친구들이 중학생이 되면서 모임이 흐지부지 되버렸고
6학년에 되고, 조금 먼 곳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도서관과도 멀어졌다.
그 이후 만화책을 접하게 되었고. 그 세계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서..
친구들과는 그런 얘기만 해도 되게 되었고. 그러다가 이래저래 평범하게 커버렸다.

고등학교 때는, 수능 대비 국어 문제집 푸는게 참 즐거웠다.
내가 접해 보지 못한 온갖 다양한 텍스트가 나왔다.
수능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는 시절이라 지문의 길이도 A4 한 장 정도 되게 길었고
소설이나 수필 시 들과는 전혀 다른 고급 텍스트들이 나와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 글들을 읽는 재미에 지문이 좀 재밌었던 디딤돌 같은건 하루에 두꺼운거 한권의 반 이상을 풀기도 하고.
철학, 사상, 문학, 종교, 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용어들과 문체들과 주장들.
아 세상에는 이런 글들이 있구나 싶었고 그런 글이 있다는걸 알려주지 않은 엄마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무슨 그런 억지가 있을까 싶지만,
그 때는 엄마가 내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는 창과도 같았고,
그런 글들을 읽으며 명작/고전을 넘어서 독서를 한단계 높이기 위해선 이런 글들로 옮겨가야 되는데
그런 글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니, 욕심은 나고 참 뭔지는 모르겠고 그래서 엉뚱한 엄마한테 투정을 부렸다.
하지만 정말 하고자 한다면 문제집에 나와있는 출처가 표시된 글만 이라도 찾아서 읽으면 되었을 것을 말이지..바 보..)

토토를 보면서도 참 많은 생각이 든다.
나도 앞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커야 겠지만.
지금의 토토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길들을 보여주어야 할까.
00님은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양의 책을 아이에게 사주시는데
육아에 조예가 깊은 분들과 얘기한 결과
오히려 책을 너무 작게 사주었다는 얘기를 들으셨다니..
물론 아이가 책이 너덜너덜해 질 때까지 보고 이것 저것에 관심이 많아 하니 그러니 그러는 거지만.
굳이 책만이 문제 인건 아니지만,
토토는 지금도 책을 가지고 잘 논다.
주로 거꾸로 보긴 하지만 혼자서 장난감 가지고 놀다 심심하면 책들 와락와락 꺼내서
휘적휘적 페이지 넘기고 요새는 제법 읽는 척 하고 '떼구떼구 에유 에~ 에~' 머라고 머라고 머시기 머시기 하는데
사실 난 토토에게 뭔가 만들어 준것도 재료만 이것저것 사두고 몇일전에야 첨으로
뭐 만들어서 주고.. (그전에는 완성품으로 준게 없다..)
신랑은 지금도 책은 충분히 많다고 그러고..
지금 있는건 오르다와 프뢰벨 베이비 스쿨에 노부영 몇권, 창작그림책 한 뭐 조금..
물론 오르다는 내가 사고 싶어서 지른거고.. 베이비스쿨도 중고 9만원인가 주고 산거고.
지금의 토토에게 맞는 책들은 많이 없는데..
나는 내용을 떠나서 다양한 그림이라도 이것저것 더 보여주고 싶고.
지금 당장 욕심 내는건 아니다 싶기도 하고.

가끔 엄마랑 얘기를 하면, 엄마는 젋었을 때 아이를 빨리 키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래저래 가르치고 육아책 같은데서 나오는데로 하고 욕심을 냈었는데
뭐 어릴때 그래도 커서 소용없더라고 나를 보면서 말하시면... 하핫
할 말이 없다. 뭐 내가 산 증인이 아니겠는가.
나에 대한 자괴감이 아니라,
엄마가 농담으로라도 그래도 한~나도 소용없드라 크니까 똑 같데
하시면 나두 토토를 그리 빨리 가르치고 하고 싶은 생각은 안들면서 좀 여유로와 진다.
어차피 깊어지는건 자신의 몫이니까. 
뭐 프랑스에선 유치원에서 문자를 안가르친다고 하지 않는가.
(신랑한테 얘기했더니 바로, 프랑스 문맹율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 이러고 쿠사리 먹긴 했지만)
그래서 지금도 뭐 지 변기 싫어해서 안 앉히고, 컵도 내가 잡고서 먹이고,
젖병도 안 떼고, 숟가락도 주니 좀 잡다가 내가 힘드니 엄마니가 먹여도 이런 식으로 나오길래
숟가락도 아직은 그냥 안주고 있다. 담달 부터는 엄마가 본격적으로 숟가락 연습 시작한다고 하시더만
발달 단계와 그런거에 상관없이 잘먹고, 잘놀고, 하기 싫다는거 안시키고
아직은 그러고 있다.
아 최근에 매직트리를 보니 10개월 이후에는 한번도 안들어본 언어를 언어로서 인지를 안하는거 같다길래
We Sing 시리즈를 열심히 틀어주는 중. 다행히 노래가 신나서 좋아하니. 그냥 같이 듣는 수준.. 

그렇지만 어려운건.. 어떤 문들을 토토에게 어떻게 소개할 것이냐다.
문을 열고 들어가는걸 선택하는건 토토라면.
나의 역할은 수 많은 문들 중 일부의 벽앞에 서서 문을 살짝 열어서 그 안이 이렇다 라고 보여주는거.
그 문뒤에서 토토가 뭘 발견하고 또 그 뒤의 어떤 미로에 맞닥드릴진 모르겠지만.
때론 너무 일찍이라서 토토가 또 자기 또래 사이에서 갑갑함을 느낄지도 모르고
때론 너무 늦어서 그 시기를 놓친 것일 지도 모르고
혹시나 토토가 머리가 엄청 좋다면 아니면 주변 사람들이 거의 한가는 문에 그 길에 매달린다면
토토 자신은 그리고 나와 토토의 주변 사람들은 또 얼마나 어긋나게 될까..
그럼 나는 어떤 문을 선택해서 언제 어떻게 보여주고 열어줄건지.
유리창을 내서 보여줄건지 문을 열어줄건지, 문을 열고 등을 떼밀건지
문을 열고 와락 뛰어들려는 녀석의 뒷덜미를 움켜쥐고 온힘을 다해서 막아야 할지
어떤 문은 아예 못을 박고 시켄트로 마감해서 페인트 칠까지 해서 그런 문이란 애초부터 존재 하지 않는다는 듯 해야할건지도 말이다.

나는 지금은 토토의 웃음 소리만 들어도 행복한데,
토토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해줄수 있을까..
어렵고도 행복하면서 두렵고 또 두근거리는 고민이다.

힛 결론은 언제나 그렇듯 사랑해 토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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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6-12-26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짱구(크래용 신짱)의...실존인물...이셨나요..? =3=3=3=3=3=3

토토랑 2006-12-2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크하하 설마요.. 감히 짱구님에 비하겠습니까 ~ 혹 메피님이 어릴적 그랬다고 말씀하시려는건 아니시온지 ^^;;

하늘바람 2007-01-01 0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토토랑 2007-01-02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하늘바람님~~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행복한 한해 되세요
 

~삼 체를 별로 안좋아 하지만, 이우일의 책에는 왠지 ~했삼을 붙여도 될거 같은 기분이다.
아니 그래줘야만 될거 같은 기분이라는게 더 맞겠다.
카리브 해와 남미 국가들. 그 발음하기도 좋지 않은 케찰코아틀이라든가 케토치티틀란 이라든가
그런 단어를 소리내어서 말하면 왠지 신비로운 기분이 들면서
그곳으로 가면 숨겨진 신화의 세계에 닿을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어릴적이 많이 했더랬다.
아마도 아즈카 평원의 거대 그림이라든지, NEWTON 잡지에 나오던 유적에 대한 화보들이라든지,
태양의 소년 아스테반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남미에는 꼭 가보고 싶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덧 머리통이 굵어지면서, 현실적으로다가 첫째 그 비행기값 세상에~ 아니 잘만하면 유럽도 오십 몇만원이면 같다오는 판국에 이건 두배가 아니라 기본이 세 배, 아니면 네 배 라니. 어디는 것보다 더들고 말이지.
둘째로 비행시간. 그래 그래도 돈만 있으면 이건 감당할 수 있지암.
그러나 것도 어디까지나  혼자갈 때의 얘기. 만약 토토와 함께?
오노~ 토토가 적어도 10살이 넘기전까진 그러니까 앞으로 꼬박 9년 동안은 꿈도 못꿀 얘기. 
셋째로 그 유적의 띄엄띄엄함과 한적함을 가장한 썰렁함.
어렸을 때는 그 도시들의 이름만으로 매료되었었는데 (물론 지금도 사마르칸트는 아직 가보고 싶다)
사진도 전문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놀러가서 찍은 사진들이 보급되면서
어라.. 여기는 좀 정말 한적하군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갓진거 참 좋아라 하는데
거의 유적들이 다 한갓지다 못해, 썰렁한 느낌이 - 어디까지나 사진으로 봤을 때- 드는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가 가보고 싶어했던 곳들은 어찌 그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지
지도 상으로 위치를 확인하고는 포기다 포기. 안가 그래버렸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식구가 남미로 여행을 갔다왔으니 바로 이우일씨네.
멕시코와 카리브해와 쿠바를 다녀온 그들 가족의 이야기.
책을 보다보니 앞서 길게 늘어놓은 핑계에도 불구하고 토토가 조금 더 크면,
우리식구 쿠바나 저기 남미로 여행 가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사실 책에는 여행안내 서적이라면 흔히 기대하는 그런 현실적인 정보 (방값 이나 밥값이나 그런)
것들은 거의 없다. 가족들이 무엇을 만났는지 그들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이우일의 말투와 그림으로, 간간히 곁들여지는 그의 아내와 딸의 그림/이야기로 엮어냈다.
쿠바에서 방을 구하는 과정도 그들의 집도 그림이 곁들여진 에세이나 수필같은 느낌이랄까?
전혀 안부담스럽게 말이지..
책을 덮고나니 왠지 끊었던 데낄라가 생각나기도 하고 말이지.
카리브 해라. 그 따뜻함과 느긋함. 우리식구가 그렇게 카리브해를 즐길 수 있는 날이 올까?
부럽다.. 부러워

덧. 케찰코아틀은 도시 이름이 아니라 신 이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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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흐흐. 드디어 읽었다. 사실 다른 님들의 서재를 들락거리며.. 이 특이한 제목에 마음이 끌렸던 것도 사실이나 왠지 장바구니에 잘 안담기는 그런 녀석이었는데
사실 난 책제목이 용의자 X의 현신인줄 알았다. 음~ 용의자가 교묘한 방법으로 자신을 들어내고
사람들을 조롱하는 건가 훗 마치 명탐정 코난의 꼬맹이가 사람들을 속이는 것처럼
여긴 용의자가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건가라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면서
그러나.. 명백히 현신이 아니라 헌신 이었고. 책을 덮고 난 뒤엔 좀 씁쓰름 해졌다.
더불어서 그 대학교수 녀석이 얄미웠다. 그걸 그녀들에게 말해주는건 자기 마음일뿐
정말 그 사람을 위한다면 그 사람이 택한 방식을 존중해 줘야 하는거 아닌가..
상식이고 아까운 마음이고 안타깝고 한건 자기 감정이고.. 그런것들을 뛰어넘어
그가 선택한 방식을 왜 존중해주지 않는거지.. @#$%^%#$^%^&%$
그렇지만 중간에 그녀들에게 보내는 X가 쓴 협박편지가 정말 인줄 알았는데
그 편지로 인해서 서로가 생각하는 갈등들이 오호~ 재밌는걸 이라는 생각이 들게했는데
그것마저 헌신 이었을 줄이야 원..
할머니들 말씀을 빌자면 이런 배알도 없는 녀석 이겠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등가교환 법칙에 따라 그만한 가치를 투자해도 좋았을 그런 일이었는데.. 쩝.
여튼 그 대학교수 미워...

음음.. 기대가 크면 역시.. 달의 제단을 너무 분위기 잡고 봐서 잔뜩 기대를 한터라
개인적으론 아무래도 달의 제단 보다는 감흥이 좀 떨어진건 사실이다.
이현과 이세, 이진. 주인공들 이름이 다 외자로구먼. 3사람의 이야기.
달의 제단에서 보여주었던거 같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는 치밀한 구성은 덜하지만
이현의 연애도 재밌었다. 영혼을 기록하는 여자와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들.
그들의 모티브는 용궁에 다녀오다 집에 갈때까지 절대로 열어보지 말라는 보물상자를 열어버린
그 혹은 그녀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빙하에서 막 길어올린듯한 눈동자를 가진 이세상의 것이 아닌듯한 아름다움을 가진 그녀를
코끝에 감도는 복숭아 향기를 지는 그녀를
그들은 자신의 욕망으로 금기를 금하고 그들에게 내려진 형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마지막의 그녀의 존재에 대한 부분을 읽으면서는 왠지 저 프랑스 어디에 전해온다는 블랙 사라와
프랑크 왕조에 전해졌다는 위대한 선지자의 혈통 이야이가 생각났다.
별로 아무런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새와 이야기를 나누고 병을 치유하는 손을 지녔으며
신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고하는 어느 외국의 왕가 이야기 말이지..
왜 그 얘기가 생각났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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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X의 헌신과 이현의 연애가 도착했다.

다른 님들의 서재에서 보고 군침만 꼴깍 꼴깍 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도착했다~

그리고 아침에 확인하니 도서관에 구매신청한 푸른곰 선장도 들어왔다

1권을 사고, 2/3권 읽고 싶었는데 ^^;;  음 1권은 회사 기증할걸 그랬나..

우하하~~ 좋아라 빨랑 읽고싶어 읽고싶어

이우일 카리브해에서 데킬라를 마시다와

수퍼내니 따라하기, 장난감이 아이를 망친다는 빨랑 반납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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