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지 에디션 D(desire) 1
조세핀 하트 지음, 공경희 옮김 / 그책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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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적인 관념이나 사회적인 관습에 의하여 어떤 행동이나 말을 금하는 것을 터부(taboo)라고 한다. 종교적인 금기는 물론 이사나 결혼, 또는 출산처럼 사회적인 부분에서도 어른들은 여지없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성적인 부분에서 역시 가장 금기시되는 터부라면 근친에 관한 것일 것이다. 특히 성에 대한 터부는 인간의 원초적인 욕망(Desire)이 내재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일반적인 터부가 나라마다 다르게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성에 관한 터부는 어느 나라나 비슷하며 이를 법적으로 제재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터부는 욕망을 억제하고 욕망은 그 터부를 깨고 싶어 한다. 조세핀 하트의 『데미지』는 인간의 숨겨진 욕망 중에서도 가장 금기시되는 부분을 건드린다.

스티븐 플레밍은 의사이자 국회의원이며 무엇 하나 부족해 보이는 것이 없는 중산층 가정을 가진 50대의 남자다. 아름다운 아내와 사랑스러운 두 자녀를 가진 그는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삶이 축복받고 괜찮은 삶이었지만 과연 그것이 누구를 위한 것이었는지를 고민한다. 혼돈과 열정이 부족한 그저 지루하고 평온하기만 한 삶, 고독하고 허기진 그에게 어느 날 안나가 나타난다. 그는 안나를 처음 본 순간 자신과 닮은 사람이며 그녀와 사랑에 빠질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이며 아름답지만 치명적인 선물이 될 것임을……. 안나는 아들 마틴의 연인이었다. 예전처럼 평온한 삶을 위해서는 안나를 포기해야 했지만 스티븐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마침내 다시 발견한 자신의 진정한 삶을 포기할 수 없었으며 참기에는 너무나도 원초적이고 정열적인 욕망이었기 때문이다. 스티븐은 결국 금기를 깨뜨렸고 비극은 찾아왔다. 안나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아들 마틴은 계단에서 떨어져 죽었다. 스티븐은 지루하기만 했던 평온한 삶은 물론 기적과 같이 나타난 안나까지 모든 것을 잃었다. 이전만큼 욕망에 시달리지는 않지만 이제는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D라는 글자 안에 섹스를 암시하는 사진이 들어가 있다. 인간의 에로티시즘과 욕망을 말하는 ‘에디션 D(desire)’ 시리즈의 첫 번째 책으로 『데미지』를 선택한 것은 탁월해 보인다. 실제로 영화가 개봉되었을 때도 파격적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 흔하디흔한 삼각관계를 터부시되는 설정으로 바꾼 것이 이렇게 비밀스럽고 치명적인 이야기가 될 줄이야. 조세핀 하트의 의도적이고 작위적인 설정은 금기된 것을 깨뜨리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을 가장 비극적으로 표현해 냈으며 안나는 그것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자신을 사랑해서 죽은 오빠,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사랑해준 마틴, 그리고 자신에 대한 욕망을 끝까지 숨기지 못한 마틴의 아버지. 금기를 깨버린 성적인 욕망은 결국 비극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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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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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자기 자신의 이미지가 하나로 고착화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자신은 나름대로 여러 색깔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떨까? 엔도 슈사쿠가 그렇다. 그는 작품을 통해 보이는 작가의 이미지와 자신의 실제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불편해했다. ‘나에 대해 고정화된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게 숨이 갑갑할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다’는 엔도 슈사쿠는 자신에게 씌워진, 무겁고 진지한 글만 쓰는 작가일 것이라는 멍에를 벗겨내기로 결심한 듯하다. 실제로 장난스럽고 유머스럽기도 했다는 그는 자신의 경박한 모습을 글로 담아내기로 결심한 듯하다. 『유모아 극장』은 보이는 그대로 경박하다. 요란한 컬러와 촌스러운 표지는 ‘이 책은 무겁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 느낌은 첫 번째 단편 「마이크로 결사대」를 읽는 순간 확신하게 된다. 정말로 경박하다. 양복을 쫙 빼입은 점잖게 보이는 사람이 똥 이야기를 꺼내는 격이다.

마이크로 결사대 ― 마이크로감마광선의 발견으로 축소된 의사들이 잠수정을 타고 환자의 몸 안에 들어가 수술을 하는 시대다. 젊은 외과의사 본타로는 은근히 사모하던 동료의 여동생의 수술에 동참하게 되지만 수술 후 나오는 길을 잃고 결국 사유리의 똥을 뚫고서야 탈출하게 된다.

여자들의 결투 ― 비슷한 가정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에 생긴 운전 교습소. 단지 내에서 인텔리 취급을 받던 기요코는 이웃에 남편이 도쿄대 출신이라는 것을 항상 자랑하고 다니는 야마오카 부인이 이사를 오면서 묘한 경쟁 심리가 생긴다. 이 둘의 경쟁 속에 이익을 얻는 것은 결국 둘을 은근히 부추기던 다른 이웃이었다.

하지 말지어다 ― 열심히 일해 마침내 장만한 우리 집 앞의 나무 담벼락은 지나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노상방뇨터가 되어버렸다. 경찰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오히려 경찰마저 그 담벼락에 실례를 하게 되는 처지다. 결국 문화인류학자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지만 이제 노상 방뇨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어쩐지 쓸쓸해진다는 것.

이런 식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디 작가의 본성이 어디 가랴. 「마이크로 결사대」나 「우리들은 에디슨」 정도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이야기들은 소시민들의 삶 속에 유모아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 것들이 많다. 「우리 아버지」에서 고지식하고 안경 쓴 너구리같이 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첫사랑의 비밀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남자로서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아들의 감정처럼 단순히 경박한 것이 전부인 유모아가 아니라 형식은 가볍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인간의 모습들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욕망하고,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며 허영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그저 유치하고 경박한 유모아뿐이라는 것을 엔도 슈사쿠는 말하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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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낭만 탐닉 - 예술가의 travel note를 엿보다
세노 갓파 지음, 송수진 옮김 / 씨네21북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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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 관한 책은 내 눈에 별로 들지 않는 편이다. 여행 자체를 크게 즐기지는 않아 여행정보서를 살 일은 거의 없다. 여행지를 감각적으로 찍은 사진들이 절반 이상 차지하는,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너무나 감상적인 요즘의 여행 에세이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특수 임무를 띠지 않는 한 모든 여행은 사적이기 마련이지만, 어떤 식견도 통찰도 없이 화려한 사진들을 과하게 펼쳐놓은 사이 빈약한 글들이 양념처럼 더해지는 ‘넌 어디까지 가봤니? 난 여기까지 가봤다’ 식의 내용에는 조금도 끌리지 않는다.

그런데도 등에 커다란 베개를 괸 채 즐거운 기분으로 『유럽낭만 탐닉』을 펼쳐 든 것은 ‘세노 갓파’라는 이름 때문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작업실 겸 책 빌딩에 그 유명한 고양이를 그려 ‘고양이 빌딩’으로 불리게 한 장본인이 바로 그였다. 『나는 이런 책을 읽어왔다』에는 다치바나의 빌딩에 고양이를 그리게 된 세노 갓파의 짧지만 재미있는 글(「다치바나 씨의 ‘고양이 빌딩’ 전말기」)과 함께, 다치바나가 책을 어떻게 분류하여 보관하고 있는지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는 그의 고양이 빌딩 내부 조감도가 실려 있다. ‘갓파(河童, 일본 민담에 등장하는 아이만 한 물의 요정으로 거북이 등딱지를 가진 개구리 모습을 하고 있다)’라는 독특한 이름이 기억에 남았었는데, 역시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도 포함되어 있는 『작업실 탐닉』이라는 책으로 완전히 반하고 말았다. 그런 그의 스케치 여행이라면 뭔가 색다른 풍경들을 담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높아진다. 그는 다른 사람들이 별다른 의식 없이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것들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것이 그의 눈을 통과하면 가장 특별한 것으로 변하는 마법이 그의 손끝에서 이루어진다.

세노 갓파는 1971년에 무대미술 공부를 위해 일 년 동안 국비 지원으로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에게 흥미롭게 다가왔던 유럽의 인상들을 짧은 메모와 스케치 들로 남겼다. 그저 “호기심 많은 사람이 유럽 곳곳을 돌아본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일 뿐이라 처음에는 출판을 거절했던 이 여행 기록들이 1976년에 드디어 책으로 엮어 나왔는데, 『유럽낭만 탐닉』은 바로 그 번역서다. 40년 전이라면 내가 태어나기도 한참 전인데, 해외여행도 흔치 않았던(일본의 사정은 달랐을지도 모르지만!) 그 시절에 이미지(스케치) 중심의 유럽 여행서가 일본에 이미 존재했다는 사실은 놀랍다. 사실 나에게는 그다지 반가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이야 이미지가 과도하게 넘쳐나는 책들이 이리저리 발에 채일 정도로 많지만, 그에 비해 우리나라 출판의 역사에서 성인 단행본의 경우 독자의 이해를 돕고 흥미를 높이기 위해 책장마다 빽빽하게 들어찬 글자들 사이에 이미지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젠 실용 목적을 완전히 상실한 이 오랜 여행책을 찾는 일본 독자들이 아직도 꾸준하고 우리나라에까지 번역됐으니, 그것이 세노 갓파의 저력일 것이다.

『유럽낭만 탐닉』의 절반을 차지하는 것은 세노 갓파가 머물렀던 방들의 도면과 조감도 스케치다. 그는 각 나라별 호텔 방의 구조에 관심이 많았는데, “갓파 씨는 천장에 올라가지도 않고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릴 수 있죠?”라고 한 호텔 보이가 궁금해할 만큼(나도 감탄을 연발하며 똑같이 품었던 의문!) 그가 집요하리만치 남긴 그 흑백 스케치들은 방의 정경을 상상하게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 스케치들을 나라별, 도시별로 모아 보면 각 방들의 특색이 선명하게 나뉜다는 사실이다. 그가 특히 주목한 것은 ‘비데’의 유무였는데, “라틴계의 나라*에 가면 방에 화장실은 없어도 비데는 꼭 있다”고 말한다. 특히 재미있는 것은 “같은 스위스에서도 취리히 같은 독일권에는 비데가 없지만 제네바 같은 프랑스어권에는 비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산이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늘 고급 호텔에 머물 수 없었던 점들을 감안하더라도 그가 머물렀던 방들을 들여다보면서 궁금증이 일었던 것은, 욕조는 차치하고 샤워기와 세면기와 변기가 구비된 화장실이 딸린 방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세면기(와 라틴 문화권의 비데)는 침대, 옷장, 탁자, 의자 같은 기본적인 가구들과 함께 방 안에 설치되어 있었다. 씻기 위한 별도의 공간이 있기는커녕 칸막이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곳들도 많았다. 그 물기와 습기는 어쩌나 걱정될 정도였다. 그러나 세노 갓파는 이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떤 방이든 고유의 매력을 발견하면 그는 불편함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듯 즐기기에 바쁘다. “나는 또다시 이 냄새 나고 더러운 방이 마음에 들었다”고 거침없이 고백한다. 또 그런 이유로 다락방을 무척 좋아했는데 100개나 되는 계단도 불사하는 모습은 역시 그답다는 웃음이 절로 배어 나온다.

세노 갓파의 유쾌한 호기심은 방 말고도 닿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그는 유럽을 횡단하는 국제열차의 차장들에게도 호기심 어린 시선을 뗄 줄 모른다. 이 열차가 국경을 넘어갈 때마다 그 나라의 차장으로 바뀌는데, 이 차장들의 특색 있는 차림이 그의 손을 바삐 움직이게 한다. 모자, 제복, 견장, 단추, 가방, 소지품까지 세심하게 스케치해서 나라의 색깔을 들여다보게 한다. 무엇보다 열차의 이동에 따라 차장들이 자연스레 교대하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 국경은 철책을 따라 총을 든 군인이 삼엄하게 경계하는 분단선으로 다가온다. 한반도에서는 함부로 오갈 수 없는, 생사의 갈림길 같은 국경이 유럽으로 넘어오면 열차도 사람도 동물도 자유롭게 넘나드는 강, 능선, 건널목 차단기로 친근하게 다가온다. 우리의 전국 일주처럼 그들에게는 유럽 일주가 부담스럽지 않은 일이라는 사실은 마냥 부럽기만 하다.

이 외에도 기후에 따른 지역별 창문의 모양과 용도, 네덜란드의 점자가 있는 지폐와 달리는 우체통, 유럽 열차의 나라별 내부 구조, 아름답고 웅장한 성들에 관한 짧은 이야기와 스케치도 정감 있다. 특히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게트라이데 거리의 아름다운 간판들을 모아둔 스케치는 동화 속 세상처럼 무척 황홀했다. 『유럽낭만 탐닉』에는 유럽에 가면 아무나 볼 수 있지만 아무나 기억에 남기지는 못하는 풍경들이 갈피마다 들어 있다. 여행 에세이도 글자만 빽빽하게 들어찬 책을 편애하는 편이라 스케치가 중심이 이 책이 개인적으로 아쉽긴 하지만, 어쩌면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읽히는 세노 갓파의 저력은 ‘지극히 당연한 것조차 호기심 가득한 아이의 시선으로 놀랍게, 신기하게, 재미있게 바라보는 시선’일지도 모르겠다. 갓파 식으로 바라보면 이 책은 ‘그래도 마음에 들었다.’


덧붙임

*사실 ‘라틴’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남아메리카’뿐이었다. 그래서 유럽의 역사와 문화에 무지한 탓에 유럽의 문화권에 대해 찾아봤는데 여기에 간략하게 기록해 둔다. 유럽 문화권은 튜튼족 중심의 북서부 유럽 문화지역(북해 주변의 영국, 베네룩스 3국, 독일, 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라틴족 중심의 남부 유럽 문화지역(지중해 연안의 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 그리스, 프랑스), 슬라브족 중심의 동부 유럽 문화지역(슬라브족 백인종이 주민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동부 유럽 여러 나라와 러시아)으로 크게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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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코믹스 - 버트런드 러셀의 삶을 통해 보는 수학의 원리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 & 크리스토스 H. 파파디미트리우 지음, 전대호 옮김, 알레코스 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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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과 ‘수학’은 나랑 별로 친한 단어가 아니다. ‘로지코믹스’의 ‘로직(logic)’과도 별다르지 않다. 러셀에 관해서라면 그의 이름자와 함께 전쟁과 핵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인 영국인 사상가 정도라는 것밖에 모르며, 나의 수학은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고등학교 시절에 읽었더라면 숫자의 세계도 언어의 세계만큼 아름다운 시라는 것을 알았을 테고 덜 지긋지긋했을 텐데 하는 뒤늦은 후회로 가득 차 있다. 게다가 언어로 이루어져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수많은 주관식 문제들에서 정답은 언제나 좀더 커다란 권력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의 말 한마디라는 것을 알게 될 만큼 나이가 든 후에는 빼도 박도 못하는 숫자, 계산, 객관 같은 것들이 애틋해졌다. 논리에 관해서도, 나는 언제나 객관적인 가치 판단에(‘가치’와 ‘객관’의 조합이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의거하여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지만, 언제든지 감정적으로 돌변하여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코믹스(comix)와는 아주 친하다. 『로지코믹스』를 읽게 된 것은 나랑 친한 코믹스를 통해 러셀과는 안면을 트고 그동안 격조했던 수학이나 논리와는 더 친해지고 싶어서다.

『로지코믹스』는 20세기 최고의 지성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수학, 논리학, 철학, 사회학, 문학 등 다방면에서 폭넓게 활동한 버트런드 러셀을 가리키는 그 빛나는 명함들 가운데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한 수학의 토대를 찾아 나선 수학자이자 논리학자로서의 생애를 부각하고 있다.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의 의도대로 ‘학습 만화’가 아니라 ‘이야기 만화’인 이 책은 크게 세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어 진행되면서 서로를 보완해 준다. 먼저 이 만화책의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이 『로지코믹스』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들의 『로지코믹스』는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것을 반대하는 미국 고립주의자들에게 ‘인간사에서 논리의 역할’을 전하는 러셀의 강연을 액자 형식으로 품는다. 그 강연에서 러셀은 수학을 완벽하게 지탱하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던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당대에 그와 함께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적으로 논쟁을 벌인 수학자들과 논리학자들의 이야기까지 더불어 들려준다.

러셀이 수학에 매혹됐던 것은 그가 성장한 펨브로크로지 저택의 미스터리, 완고한 할머니의 이해할 수 없는 규칙들, 비극적인 가족사, 부모의 비밀, 집안의 정신병 같은 비합리적인 온갖 의문투성이들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은신처였기 때문이다. 광기(그를 평생 지배한 트라우마)가 스며들 여지조차 없을 것 같은 이성과 합리성의 굳건한 성채 안에서 러셀은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세상사를 모두 수학으로 모순 없이 명확하고 진실되게 증명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그는 절대적인 앎의 세계를 꿈꾸지만, 그곳에서 ‘공리’에 부딪치고 만다. 증명할 수 없는 진리, 그리하여 증명되지 않은 진리를 토대로 삼은 증명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견고하다고 믿었던 수학의 토대에 의심을 품기 시작한 러셀은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한 수학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논리학을 선택한다. 고트프리트 라이프니츠의 추론계산법, 고틀로프 프레게의 개념표기법, 게오르크 칸토어의 무한과 집합론 등을 거쳐 러셀은 ‘러셀의 역설’에 이른다. 하지만 이 역설은 수학의 토대를 마련하기는커녕 논리학과 집합론을 동시에 붕괴시킨다. 이 붕괴를 막기 위해 앨프리드 화이트헤드와 끊임없이 전제를 의심하면서 공동 집필한 것이 미완성 『수학 원리』다. 하지만 러셀은 “역설 없는 논리학을 구성해서 수학을 지탱하려고 애썼는데, 결국 그들이 성취한 것은 아래로 한없이 이어지는 거북들(우주를 떠받치는 신화 속 거북)의 탑이었다”고 고백한다.

사실 이 책에도 적혀 있듯이 논리는 “아는 것들을 결합해서 모르는 것에 도달하는 기술”에 불과하다. 아는 것들을 결합해 모르는 것에 도달하는 순간, 그 모르는 것은 아는 것들에 포함된다. 이런 반복은 무한히 이어질 것이고, 어쨌든 진리는 그만큼 인간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어 저만치 멀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논리학은 언어의 공허한 형식일 뿐 실재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과학이 밝혀낸 사실들을 전부 다 알아도 세계의 의미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하다. 세계를 의미를 이해하려면 세계 밖으로 한 걸음 나가야 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논리적으로 말할 수 없다)”고 말했고, 쿠르트 괴델은 “답이 없는 질문이 항상 존재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러셀의 강연 결론처럼 “논리학과 수학에서도 이성적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면 복잡하고 어지러운 인간사에서는 더 말할 것이 있을까.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을 막론하고 인간사에서 완벽한 이성적 확실성에 이르기는 정녕 불가능하다”.

여기까지가 낯선 이름, 낯선 생각, 낯선 개념 들 사이를 흥미롭게 헤매며 겨우겨우 잡아낸 이야기의 얼개다. 여기에 빠진 것이 있다면 바로 그들을 ‘광기’에 가둔 ‘열정’이다.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는 ‘사람’과 ‘열정’이 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고 거듭 강조한다. 낯설고 어려운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데도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완전무결한 진리의 세계를 찾기 위해 열정적으로 맹진하는 사람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모험소설과 다르지 않다.

아이스킬로스의 고대 비극 「오레스테이아」가 모순 덩어리인 삶을 독자와 논리학자 들 앞에 던져놓는다. 아들 오레스테스는 아버지 아가멤논을 살해한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죽여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할까, 하지 말아야 할까? 클리타임네스트라는 오레스테스의 누이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친 아가멤논에게 딸을 대신해 죽음의 복수를 했는데? 아가멤논 살해에 가담한 아이기스토스는 자신의 형제들을 죽인 아트레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아들인 아가멤논을 대신 죽였는데? 아트레우스는 자신의 아내와 간통한 티에스테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 자식들을 대신 죽였는데? 여신 아테나는 오레스테스 집안에 깊이 뿌리박힌 비합리적인 복수와 살인의 비극적인 딜레마를 종식시키기 위해, 결국 어머니를 죽여 아버지의 복수를 한 오레스테스의 유죄와 무죄를 아테네 배심원들의 민주적 투표에 맡긴다. 전혀 신답지 않은 행동이지만 아테나는 비합리적인 비극에 대해 합리적인 이성으로 맞선 것이다.

러셀의 말처럼 모든 인간사에서 이성적 확실성과 절대적인 합리성에 완벽하게 이르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일마저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순투성이 삶에서 정답은 없다.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삶을 무한한 색깔로 살아가는 각 개인의 몫일 뿐이다. 그 선택에서 합리적인 이성, 혹은 비합리적인 감성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할지는 “책임, 정의, 선악을 느끼는 감각”에 기대어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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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독자 보통의 독자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인용 옮김 / 함께읽는책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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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는 어딘지 낯익은 그 이름과는 다르게 읽기 쉬운 작가는 절대 아니다. 그녀는 페미니즘, 모더니즘, 그리고 의식의 흐름 기법을 완성한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내적 독백’이나 ‘무의식적 기억’ 같은 말로 불리는 ‘의식의 흐름’ 기법은 ‘인간의 정신 속에 끊임없이 변하고 이어지는 주관적인 생각과 감각, 특히 주석 없이 설명해 나가는 문학적 기법’을 이야기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보통의 독자’를 정의하기를 특별한 문학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독자들이라 하였고, 격식을 차리지 않고 열린 자세로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듯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나마 그녀의 소설에 비해 덜 난해하고 그나마 읽기에는 편하다. 말 그대로 다른 작품이나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한 버지니아 울프식 보통의 독자론이다.

하지만 『보통의 독자』가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이 책에서 언급하고 작가나 작품들이 너무 낯설기 때문일 것이다. 셰익스피어나 『제인 에어』, 『폭풍의 언덕』의 브론테 자매, 『로빈슨 크루소』의 다니엘 디포 정도가 귀에 익을까, 몽테뉴나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의 조지 엘리엇이나 『오만과 편견』의 제인 오스틴은 낯익기는 해도 읽어본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다. 2011년에 이 작품들을 읽는 것이 ‘보통의 독자’의 자격이라고 한다면 시간이 너무 흘러버렸거나 현대의 일반 독자들의 문학적 소양이 크게 후퇴했다는 것 이 둘 중의 하나다. 혹은 버지니아 울프가 보통 독자의 기준을 너무 높게 잡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작가였던 아버지의 서재에서 수많은 책들을 자양분 삼아 문학적 소양을 넓힌 그녀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와 비슷한 수준의 사람들을 보통의 독자로 생각했던 게 아닐까?

어쨌든 이 책은 진짜 보통의 독자가 쉽게 쉽게 읽어 내려갈 수 있을 만큼 재미있지는 않다. 해석적 비평가로도 이름이 높았던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는 오히려 작가론이나 비평에 가깝기 때문이다. 앞서 이야기한 디포의 경우에도 『로빈슨 크루소』보다는 그 명성에 가려져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몰 플랜더스』나 『록새나』 같은 낯선 이야기에 치중한다. 에세이 「그리스어를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에서는 그리스어 배우기에 대한 어려움이나 상상하기 힘든 그리스의 기후와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곧 그리스 문학 전반이나 언어에 관한 광범위한 통찰로 이어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녀는 보통의 독자를 대상으로 이 책을 썼다.

사실 이 책은 제목만 보고 덤비면 자신이 ‘보통의 독자’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자괴감을 얻기에 충분한 책이다. 문학 전반에 광범위한 지식이 있다면 버지니아 울프가 주는 ‘보통의 독자’의 지위를 얻기에 충분할 것이다. 아쉽게도 나는 ‘보통 이하의 독자’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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