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상페
장 자크 상뻬 지음, 허지은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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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고시니와 함께 작업한 꼬마 니콜라가 아니었다면 장 자크 상페가 처음부터 그리 친근하게 다가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상페의 검은 펜 끝에서는 니콜라도, 니콜라의 친구도, 니콜라의 엄마와 아빠도, 니콜라의 선생님도 모두 익살맞고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종이 밖으로 튀어나온다. 상페가 그 모습을 부여한 캐릭터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오히려 친밀하게 느껴지는 것은 몇 번의 슥삭슥삭과 사각사각을 거치기만 하면 누구의 연필 끝일지라도 금세 나타날 것 같기 때문이다. 상페의 그림들은 심심함을 달래려고 공책이나 수첩 한 귀퉁이에 장난삼아 낙서했을 법한 그림이기에 차라리 독자에게 공감과 웃음과 위안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만약 상페가 이상적인 육체의 황금비에 따라 극사실적으로 정교하게 데생하고 섬세하게 채색하여 누구도 감히 논평할 수 없는 명화를 그린다면 우리는 단지 멀찍이 떨어져 그에게 경의를 표하기만 했을 것이다.

사실 삽화로만 상페를 만나왔을 뿐 『뉴욕의 상페』처럼 일종의 정식 작품집으로는 이번이 처음이다. 『뉴욕의 상페』에는 1978년부터 2009년까지 『뉴요커』 표지화로 실린 상페의 그림들 150여 점을 모아놓았다. 상페는 마르크 르카르팡티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에게 『뉴요커』가 어떤 의미를 지녔는지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상페는 “아주 오래전부터 동경한 잡지”라고 말하면서 지인을 통해 『뉴요커』의 표지에 자기 그림을 싣게 된 일을 추억한다. “『뉴요커』가 채택하는 그림이 『뉴요커』 표지화의 요건”이라고 당연한 것을 묻는다는 듯이 대답하는 『뉴요커』에 아직 존재감이 미약한 프랑스 청년이 표지화를 그리기 시작한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흥분되고 격앙하여 불안하기까지 한 일인지, 상페는 아직도 그때의 “미칠 것 같은 기분”을 생생하게 떠올린다. 그렇다면 『뉴요커』는 어떤 잡지일까? 1925년 로스 부부에 의해 창간된 이래로 당대 최고의 지성인과 일러스트레이터가 참여하여 다양한 장르의 글쓰기를 통해 미국과 뉴욕의 문화에 대한 풍자적, 해학적, 독창적인 담화를 주도하고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존 업다이크,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필립 로스, 트루먼 카포티, 앨리스 먼로, 무라카미 하루키 등이 필자로 참여했다니 두 눈이 다 휘둥그레질 정도이다.

그런데 그 자부심 강한 이름은 여기저기 많이 얻어들었지만 잡지의 실물을 제대로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뉴요커』와 상페가 어떻게 어울릴지 상상하지 못했다. 다행히도 창간 이래로 그 디자인이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는 『뉴요커』 표지도 나란히 실려 독자의 무지와 빈약한 상상력을 보완해 준다. 상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뉴요커』에 관해 더 많이 떠들어대긴 했지만 상페의 그림은 여전하다. 간결한 선, 투명한 색채, 화폭을 차지하는 풍경과 인간의 반비례, 숨 쉬는 여백, 때론 뜨끔하지만 따뜻한 미소로 마무리되는 유머, 숨은 이야기가 상페 특유의 그림들 속에서 서정적인 정취와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평범하고 소박하고 고단한 일상이 ‘상페’라는 필터를 거쳐 화폭에 투영되면 연민과 위안과 공감으로 반짝거린다. 그림의 감동을 글로 재현한다는 것은 평범한 필력을 지닌 나에게 거의 불가능한 일이므로 상페의 그림에 대한 세부적인 묘사는 포기한다. 특히 좋아하는 몇몇 그림에 대한 인상기 정도는 남겨두려 했지만, 이제 와서 책장을 팔랑팔랑 넘기니 그런 그림들이 너무 많아서 마음의 선택조차 갈팡질팡 쉽지 않았다.

대신 『뉴요커』 표지화 작업 중 에피소드 가운데 폭소를 멈출 길 없었던 일화를 하나 기록해 둘까 한다. 『뉴요커』는 ‘『뉴요커』 표지화의 요건’ 혹은 ‘미국적인 그림’ 같은 것은 밀쳐두고 상페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라고 말했지만, 그 말은 화가가 어떤 구애도 없이 자유롭게 그림의 주제나 소재를 선택하고 마음껏 자기 재능과 상상력과 창의력을 펼치도록 배려한 것이다. 아무리 ‘상페다운’ 그림도 ‘역, 창문, 가로등’ 같은 사소한 부분들은 『뉴요커』의 발행 장소에 맞도록 무수히 수정해야 했다. 상페는 그림을 고쳐달라는 『뉴요커』의 모든 요구를 아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그것이 몇 번이나 되풀이되든 수정에 최선을 다한다. 화가 자신의 전시회에 걸릴 그림이 아닌 이상 책이나 잡지에 들어갈 그림을 의뢰받았다면 그 그림을 직접 그린 사람이 화가일지라도 그것은 ‘공동 작업’의 결과물이다. 상페의 겸손한 태도가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림의 수정을 애꿎은 ‘자존심’과 결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뉴요커』 사장이었던 윌리엄 숀과의 일화는 더 재미있다. 숀은 그림 속 남자의 팔이 거슬린다는 이유로 상페에게 열 번이나 수정하도록 요구한다. 상페는 묵묵히 고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종이가 너무 얇아져 더 이상의 수정이 불가능해졌을 때 남자의 팔을 원래대로 되돌려놓는다. 숀의 반응은 어땠을까? 그는 그제야 만족스러워했다! 사실 이런 일은 얼마나 비일비재한지! 그럴 때마다 나는 소모적인 토끼 훈련의 부당함과 변덕스러운 안목의 뻔뻔함에 울분을 토했는데, 상페는 여전히 숀을 신뢰하며 최고의 잡지를 만들기 위한 착각을 너그럽게 이해한다. 숀이 자신보다 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으니까. 그렇다, 책임의 크기가 원천적으로 다른 것이다! 물론 자기가 최종적으로 결정하고도 그 책임은 모두 떠넘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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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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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날마다 축제』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미국 문학의 대가라는 위대한 명예를 얻기 한참 이전, 프랑스 파리에 체류하면서 이제 막 소설가로 자리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젊은 날의 이야기이다. 이 회고록을 써 내려간 시기는 헤밍웨이가 1961년에 엽총 오발 혹은 자살로 추정되는 불시의 사고로 죽기 4년 전쯤인 1957년 가을부터 1년 전쯤인 1960년 봄까지이다. 이 집필 시기에 자꾸만 눈길이 머무는 것은 만년에 헤밍웨이가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걸작으로 1953년에는 퓰리처상을, 19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거머쥐며 작가의 명성에서도, 경제적인 부(富)에서도 남부러울 것 없이 누렸던 헤밍웨이가 생애의 마지막 시절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가장 행복했다고 절절하게 떠올린 시간이 하필이면 가장 가난했던 시절이라니.

헤밍웨이의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기 이전에 나는 인생의 굴곡과 거리가 먼 삶을 대체로 편안하게, 비교적 풍족하게 누려왔다. 지금껏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별 고비 없이 살아가리라고 순진하게 믿었지만, 자기 보호막 정도는 스스로 쳐야 하는 단계의 인생에 이르면 삶은 언제나 예측 불허.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읽은 이후에 나는 처음으로 굴곡이나 고비, 혹은 역경 같은 단어들로 표현되는 쓴맛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이 책의 첫 장을 펼치고 끝 장을 덮은 때와 맞물렸다.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작가의 풋내기 시절 사생활을 들여다보는 재미(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실비아 비치와의 교류 등)에만 한가롭게 빠져 있었는데, 헤밍웨이가 죽음을 맞으면서 자기 인생의 가장 행복한 시간으로 가장 가난했던 시절을 회상했다는 사실에 이제 나는 내 희망을 걸고 있다. 어쩌면 나에게도 조금 가난해진 오늘을 행복하게 추억할 날이 언젠가는 오리라는 것을 말이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헤밍웨이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를 쓴 작가 셔우드 앤더슨의 권유로 프랑스 파리에서 문학 수업을 받기로 한다. 그는 갓 결혼한 아내 해들리 리처드슨을 데리고 《토론토 데일리 스타》의 해외 통신원으로 1921년 말부터 1926년까지 5년여 동안 파리에 머문다. 토론토 신문사의 원고료에 기대어 생활할 때도 작업실을 덥힐 장작 한 단을 선뜻 사기가 부담스러웠으며, 독서광이었지만 책 한 권조차 마음 내키는 대로 구입할 여력이 없어서 실비아 비치의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서 빌려 읽었다(심지어 도서 대여를 위한 등록보증금마저 수중에 없었다!). 자기 글에 집중하기 위해 기사 원고료를 내팽개쳤을 때는 약간의 식비를 아끼려고 점심에 초대받아 멋진 식사를 했다고 아내에게 거짓 너스레를 떨었다. 헤밍웨이가 청춘을 추억하는 문장들에는 그 시절의 궁기가 고스란히 스며 있다. 하지만 그 궁기는 과거의 무수한 사실들 중 하나를 무심히 드러낼 뿐 그로 인해 비참하거나 남루하거나 좌절하거나 주눅 들지 않는다.


가난해도 사랑하는 첫 아내 해들리와의 신혼 생활은 조금도 구차하지 않다. 실제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헤밍웨이의 기억 속에서 그들은 가난 때문에 징징거리지도, 질척거리지도 않고 서로에게 유쾌하고 산뜻하며 자족한다. 센 강변을 따라 함께 산책하면서 셰익스피어 & 컴퍼니에 들러 책을 빌리고, 없는 돈으로 경마에 운을 시험했다가 몽땅 날려도 다음에 둘 중 누군가 속내를 비치면 또다시 선뜻 따라나서고, 어쩌다가 경마에서 행운을 잡으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근사한 식사를 즐기고, 엉뚱하게도 부부가 똑같은 머리 모양을 만들기 위해 남편은 기르고 아내는 자른 뒤 파리에서 유행하는 머리 모양이라고 눙친다. 사실 그리 대단하고 인상적인 추억 거리랄 것은 없는데도 그토록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읽다 보면 그 사소한 행복의 빛이 이상하리만치 찬란하게 아른거린다.


무엇보다 가난해도 훌륭한 글과 문장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흔들리지 않고 작품을 성실하게 구축해 나가는 열정도 수그러들지 않는다. 헤밍웨이의 집필 작업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규칙적으로 행해진다. 오전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 “한 대목을 완성하기 전에는 중간에 일을 멈추지 않았고, 또 다음번에 쓸 내용을 미리 생각해 둔 다음에야 그날 일을 끝냈으며”, 오후에는 뤽상부르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헤밍웨이는 글쓰기에 진척이 없으면 ‘수사적인 표현, 과장된 문장, 미사여구’를 모두 지우고 “가장 진실한 문장”을 집요하게 찾아들었다. 글로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오히려 “생략”을 통해 남겨진 내용을 강화하고 독자에게 단순한 이해 이상의 깊은 울림을 주려고 애썼다. 또한 헤밍웨이는 장편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조금씩 긴 글을 쓰는 훈련을 꾸준히 했다. 모든 작품들이 호평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명실상부하게 미국, 아니 세계 문학사에 커다란 발자취를 새긴 대작가인 헤밍웨이가 자기 재능을 과신하지 않고 부단히 연습했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후대 문학가들이 선망하고 연구하는, 헤밍웨이의 간결하고 건조하며 강인한 ‘하드보일드’의 정제된 문체가 천재성으로 거저 얻어진 게 아니었던 것이다.


지독한 가난은 헤밍웨이에게서 아무것도 퇴색시키지 못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이루어진 말년에 헤밍웨이는 가난 속에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파리 시절로 끊임없이 돌아가고 싶어 한다. 가난했으되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것들의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청춘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나의 청춘’은 언제나 ‘지금의 나’보다 과거에 존재한다. 훗날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나’를 떠올리면서 ‘나의 청춘’이라 기억할 것이다. 가난은 헤밍웨이에게서 그러했던 것처럼 내게서도 아무것도 퇴색시키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지금 가장 행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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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 가드닝 - 우리는 총 대신 꽃을 들고 싸운다
리처드 레이놀즈 지음, 여상훈 옮김 / 들녘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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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함께 놓았을 때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 있다. ‘전쟁’과 ‘평화’, ‘사랑’과 ‘무관심’처럼 의미가 상반되는 경우가 많은데 ‘게릴라’와 ‘가드닝’도 마찬가지이다. 게릴라는 정규군에 속해 있지 않으며 전투를 치르는 사람이나 단체를 의미하며, 가드닝은 말 그대로 정원이나 꽃밭을 가꾸는 것을 의미한다. 도대체 작가는 이처럼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함께 사용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리처드 레이놀즈의 『게릴라 가드닝』은 총 대신 꽃씨를 들고 싸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도대체 꽃씨를 들고 어떻게 싸운다는 것인지 궁금해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자기 집에 꽃을 심는 것은 당연한 권리일 터이니 싸우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게릴라들이 벌이는 싸움은 무엇인가? 자기 땅이 아닌 남의 땅―특히 공공 소유의 땅―에 불법―정부는 자신의 땅에 꽃을 심는 것조차 법을 어긴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으로 꽃밭을 가꾸는 싸움이다. 그야말로 ‘작은 혁명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들이다. 소규모로 몰래 게릴라전을 수행하듯 꽃밭을 가꾼다. 다만 정부를 전복시키기 위한 혁명이 아닌 꽃을 가꾸기 위한 게릴라전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전쟁(게릴라)’과 ‘꽃밭(가드닝)’이 어울리는 말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둘은 묘하게 닮은 구석도 많다. 통제하기 힘든 적과 싸우며 주변을 변화시키고 승자와 패자로 나뉘는 것처럼 둘을 연결시키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전쟁의 결과가 승리의 기쁨은 잠시이고 남은 것은 파괴와 허무함뿐이라면 가드닝의 결과는 승리의 기쁨은 물론 아름다운 생명체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싸움이 어렵고 힘들수록 승리의 기쁨은 더하다. 현대사회는 싸우기 어려운 거대한 적이다. 시멘트밖에 없는 공간, 무수히 많은 각종 법률들은 이들의 투쟁을 힘겹게 만든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있다. 흙이 있는 작은 공간―쓰레기통 주위나 가로등의 홈 안이나 아무도 가꾸지 않는 아파트의 화단도 좋다―이라도 있으면 꽃씨를 뿌리고 물을 준다. 땅뿐만이 아니라 시멘트 건물을 담쟁이로 덮거나 버스 정류장에 화분을 매달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투쟁들이 항상 성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척박한 곳에서는 꽃이 자라나기 힘들 뿐 아니라 땅의 소유권과 관련된 문제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도 많다.


흔히 전쟁의 승자는 없다고 한다.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피를 흘리고 막대한 손실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전쟁의 승리를 기뻐하는 것은 정치가들이나 부자들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승자만 있는 전쟁이 있다. 게릴라 가드닝, 설혹 진 쪽이라 하더라도 예쁘게 자라난 꽃을 보며 억울해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자신들의 세력이 위협적으로 성장하는 것 또한 바라지 않는다. 이들은 여전히 사람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메마른 곳을 찾아 불법적으로 꽃밭을 가꾸고 향기를 만들며 도시 속의 작은 혁명을 꿈꾸고 있다. 이들은 게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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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삽질하는 대학생, 게릴라 가드닝
    from SK텔레콤 대학생 자원봉사단 써니 블로그 2012-11-24 10:49 
    눈 뜨자마자 5.3인치 HD슈퍼아몰레드 디스플레이를 시야에 비춘다. 이어폰으로 귓구멍을 틀어막으면 외출준비 완료.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어두운 지하 소굴로 입장한다. 반찬통같은 지옥철에서 영역다툼을 하다가 물 밀리듯 밖으로 튕겨져나오면 획일적인 네모세상이 늘 보던대로 우중충하게 서있다. 회색 빛 네모세상 속 초록빛 한줌을 찾아 늘 지나치는 주변을 새삼스레 다시 둘러보자. 콘크리트 건물, 쭉 뻗은 도로, 온통 규격화되고 디지털화된 콘텐트들...획일적으..
 
 
 
런던통신 1931-1935 - 젊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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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러셀이라면 ‘이름은 아는 사람’ 중의 한 명이다. 적당한 교육 덕분에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모를 때를 일컫는다. 실제 버트런드 러셀은 나에게도 생소하며 딱 집어 말하기는 수많은 영역과 업적을 이룬 사람이기도 하다. 수학자, 철학자이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비평가로 활약한 러셀은 관련 분야에서 40권 이상의 책을 쉬지 않고 출간할 정도로 왕성한 지식욕을 가진 인물이었다.

러셀의 『런던통신 1931~1935』는 1931년부터 1935년에 걸쳐 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책이다. 1930년대는 대공황으로 세계가 몸살을 앓던 시기였고 인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러셀은 이 칼럼에서 인플레이션, 불경기의 지출, 정치가들의 위선 같은 사회적으로 무거운 주제부터 아이들의 용돈과 가구 수집벽, 관광객들의 무례함, 노인들의 고집과 같은 사소한 주제들까지 다양하게 다룬다. 80여 년 전의 칼럼이라고는 하기에는 대부분의 경우 현대를 사는 우리들에게도 가감 없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하루만 자고 일어나도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모든 곳에서 혁신을 부르짖고 세상은 쉴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인간의 본질적인 부분은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수도 있지만 차례를 살펴보고 마음에 드는 부분을 골라서 읽는 것도 재미있다. 물론 그렇게 한다면 재미있는 제목을 가진 칼럼만 먼저 읽어버릴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명상이 사라진 시대」 같은 칼럼보다 「채식주의자도 사납다」 같은 칼럼이 눈에 들어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재미없는 제목의 칼럼이라고 해도 그냥 넘겨버리지는 않게 될 정도로 유쾌하고 짧은 글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80여 년 전의 칼럼이라는 이유로 우습게 생각하면 말 그대로 뒤통수를 얻어맞게 될 것이다. 물론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변화를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여성이나 아이들 같은 문제에 있어서는 당시의 보수적인 정서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거의 삶에 대한 본질적인 태도가 현재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은 여전히 흥미롭다. 80년이 흘러 2100년을 눈앞에 두게 되어도 어쩌면 이 이야기들이 통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80년 전의 노인들이 경험을 내세우는 것처럼 80년 후의 노인들도 경험에 의지하고 있을 것이다. 당시의 라디오가 대화의 기술을 줄였다면 스마트폰이 대화의 기술을 줄인 정도의 차이다. 미래에는 뇌의 연결이 대화를 줄일 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은 변하지만 정작 우리는 변화 없는 삶에 익숙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곧 있을 선거 때문에 요란하다. 「우리가 투표를 하는 진짜 이유」에서 러셀은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에서 우리의 정치가를 비판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비판하는 것과 같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의 수준이 곧 정치가의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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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욕망, 그림으로 읽기 아트가이드 (Art Guide) 11
스테파노 추피 지음, 김희정 옮김 / 예경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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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랑과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불거지는 치명적인 욕망 없이 예술은 성립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물론 자연이 빚어내는, 장엄하고 숭고하며 아름다운 풍경의 감동에도 압도되어 찬탄을 금하지 못하지만, 그것은 모방조차 불허하는 신의 예술에 속한다. 인간의 예술은 무엇을 어떤 형태로 창조하든 그 주체인 인간의 그림자를 온전히 배제할 수 없다. 우주의 영원한 시간에 비하면 인간의 생애는 찰나처럼 덧없고, 우주의 무한한 공간에 비하면 인간의 족적은 티끌보다 보잘것없지만, 예술은 인간이 존재했던 시공을 특별하게 포착하여 영원으로 남긴다. 먼지처럼 허공에서 스러질 인간 삶의 드라마가 미술이 되고, 음악이 되고, 문학이 되어 밤하늘을 수놓는 별자리처럼 반짝인다. 스테파노 추피의 『사랑과 욕망, 그림으로 읽기』는 인간이 없으면 예술도 없다는 것을 일깨운다.

인간의 삶에서 모든 드라마는 무엇으로부터 시작될까? 일단 단 한 사람만으로는 어떤 드라마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얽히고설킨 관계가 드라마의 시작점이다. 사람이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싶어 하는 바탕에는 그를 향한 보편적인 의미의 사랑이 내재되어 있다. 연인을 향한 에로스는 물론 자식에 대한 부모의 내리사랑, 형제와 자매에 대한 우애, 친구와의 우정부터 함께 동료애, 동지애, 전우애, 사제지정, 애국심…… 심지어 그 대상이 돈과 물질이든 영육의 파멸을 이끌든 사람을 움직여 삶의 무대에 세우는 것은 사랑뿐이다. 사랑을 자양분으로 다른 모든 욕망들이 부풀어 오른다. 사랑했기에 뜨거운 눈빛, 부드러운 키스, 숨 막히는 포옹, 강렬한 애무, 순결과 헌신을 맹세하는 충실한 서약과 결혼, 부부로 아이와 함께 가족을 이루는 연인의 미래는 달콤하고 향기롭고 장밋빛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사랑했기에 쓰라린 배신은 폭력적인 분노를 일으키고, 극심한 질투심과 수치심에 사로잡히며, 자신이 더는 가질 수 없는 그를 소유하고 싶은 욕망에 병적으로 집착하게 된다. 사랑의 대상이 엇갈리면 사랑의 모든 행위는 불쾌한 폭력으로 강제되고 만다.

스테파노 추피는 사랑의 두 얼굴이 강렬하게 드러나는 그림들을 소개한다. 사랑의 기쁨이 충만한 순간도, 사랑의 고통에 일그러진 순간도 인간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동해 온 모든 절정의 순간순간들이 화가의 시선에 사로잡혀 붓끝으로 재탄생했다. 그 순간순간들은 화가의 캔버스에 담기지 않았더라면 시간의 무심한 단층 속에 덧없이 묻혀버렸을지도 모른다. 화가들은 사랑의 가장 밝은 빛과 욕망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를 포착하여 인간의 진실에 가닿으려 했다. 때론 각 시대와 문화가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신화와 성서 이야기로 가장하지만 결국 사랑과 욕망에 울고 웃는 인간사를 드러내고자 했음은 금세 알아차릴 수 있다. 『사랑과 욕망, 그림으로 읽기』가 흥미로운 것은 베일, 모피, 편지, 침대 같은 소품들이 그림의 주제를 어떻게 증폭하는지를 콕 짚어준다는 점이다. 그림 속에서 사소하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들을 직접 표시하여 간단하게 설명해 주는데, 이것은 화가가 은밀하게 숨겨놓은 상징들(혹은 기호나 코드)이라 개안(開眼)의 경험을 가능케 한다.

책의 형식에 따른 한계 탓에 좀더 깊이 있는 설명이 아쉽다면 박제의 친절한 예술서를 추천한다. 스테파노 추피가 그림 속에서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디테일까지 감상자에게 환기시키듯, 박제는 화폭에 그려졌다면 크든 작든 모든 것을 성실하게 읽어낸다. 스테파노 추피는 퐁텐블로 화파가 그렸다고만 전해지는 「가브리엘 데스트레와 자매」를 단순히 ‘레즈비언(235쪽)’으로 설명하는 데 비해 박제는 붉은 커튼, 가브리엘이 왼손으로 우아하게 들고 있는 반지, 자매가 엄지와 검지로 살짝 잡은 가브리엘의 젖꼭지, 가브리엘과 자매 사이로 보이는 시녀, 그 시녀의 바느질과 붉은 옷, 초록 벨벳으로 덮어놓은 관 등을 통해 앙리 4세의 정부였던 가브리엘의 비극적인 운명에 이른다(『오후 네 시의 루브르』 277~283쪽). 프리다 칼로의 「두 명의 프리다」를 ‘레즈비언’이라는 주제에 포함한 것도 다소 억지스러워 보인다. 오히려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의 「키스」(35쪽)나 「침대」(106쪽)를 옮겨 오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것 같다. 그런데도 『사랑과 욕망, 그림으로 읽기』가 대체로 만족스러웠던 이유는 ‘사랑과 욕망’ 그림들을 분류한 주제어에 대해 간혹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며 공감을 이끌어내기 때문이다.

“사랑은 우리와 같이 태어나고 그 존재가 본질적으로 인간과 연결되어 있으며 이리저리 모양을 바꾸고 변화하지만 언제나 우리 삶 속에 가장 강력하고 진실한 일부로 남는다.” (21쪽)
“키스는 진실을 드러내고 서로 다른 두 존재를 조화시키는 신비로운 힘을 지녔다. 이는 남자와 여자를 동등한 위치로 끌어올려, 지배하거나 지배당하는 자 없이 서로의 사랑만이 충만한 곳으로 이끄는 문이다.” (31쪽)
“결혼은 신성한 사랑과 세속적인 사랑이라는 두 가지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다.” (198쪽)
“질투의 감정은 소설 속에서 전개되는 사건의 주된 원인이 될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드라마의 토대가 된다.” (203쪽)
“뱀파이어란 삶의 본능인 에로스와 죽음의 본능인 타나토스의 모슨 속으로 치닫는 병적인 사랑의 전형이다.” (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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