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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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가라면 자기 자신의 이미지가 하나로 고착화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특히 자신은 나름대로 여러 색깔을 가졌다고 생각하는데도 그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어떨까? 엔도 슈사쿠가 그렇다. 그는 작품을 통해 보이는 작가의 이미지와 자신의 실제 모습이 다르다는 사실을 불편해했다. ‘나에 대해 고정화된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게 숨이 갑갑할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다’는 엔도 슈사쿠는 자신에게 씌워진, 무겁고 진지한 글만 쓰는 작가일 것이라는 멍에를 벗겨내기로 결심한 듯하다. 실제로 장난스럽고 유머스럽기도 했다는 그는 자신의 경박한 모습을 글로 담아내기로 결심한 듯하다. 『유모아 극장』은 보이는 그대로 경박하다. 요란한 컬러와 촌스러운 표지는 ‘이 책은 무겁지 않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그 느낌은 첫 번째 단편 「마이크로 결사대」를 읽는 순간 확신하게 된다. 정말로 경박하다. 양복을 쫙 빼입은 점잖게 보이는 사람이 똥 이야기를 꺼내는 격이다.

마이크로 결사대 ― 마이크로감마광선의 발견으로 축소된 의사들이 잠수정을 타고 환자의 몸 안에 들어가 수술을 하는 시대다. 젊은 외과의사 본타로는 은근히 사모하던 동료의 여동생의 수술에 동참하게 되지만 수술 후 나오는 길을 잃고 결국 사유리의 똥을 뚫고서야 탈출하게 된다.

여자들의 결투 ― 비슷한 가정들이 모여 사는 아파트 단지에 생긴 운전 교습소. 단지 내에서 인텔리 취급을 받던 기요코는 이웃에 남편이 도쿄대 출신이라는 것을 항상 자랑하고 다니는 야마오카 부인이 이사를 오면서 묘한 경쟁 심리가 생긴다. 이 둘의 경쟁 속에 이익을 얻는 것은 결국 둘을 은근히 부추기던 다른 이웃이었다.

하지 말지어다 ― 열심히 일해 마침내 장만한 우리 집 앞의 나무 담벼락은 지나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의 노상방뇨터가 되어버렸다. 경찰에게 도움을 청해 보지만 오히려 경찰마저 그 담벼락에 실례를 하게 되는 처지다. 결국 문화인류학자를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지만 이제 노상 방뇨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자 어쩐지 쓸쓸해진다는 것.

이런 식의 이야기다. 하지만 어디 작가의 본성이 어디 가랴. 「마이크로 결사대」나 「우리들은 에디슨」 정도를 제외한다면 나머지 이야기들은 소시민들의 삶 속에 유모아가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간 것들이 많다. 「우리 아버지」에서 고지식하고 안경 쓴 너구리같이 보이기만 하던 아버지의 첫사랑의 비밀을 발견했을 때 느꼈던 남자로서의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는 아들의 감정처럼 단순히 경박한 것이 전부인 유모아가 아니라 형식은 가볍지만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인간의 모습들이 그 속에 담겨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언가를 욕망하고,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며 허영심을 가지고 있다. 이런 사람들 사이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위에서 내려다본다면 그저 유치하고 경박한 유모아뿐이라는 것을 엔도 슈사쿠는 말하고 싶은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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