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긴 잠이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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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를 통해 '탐정 사와자키'가 아닌, '인간 사와자키'의 면모를 발견한 건 큰 수확이었다. 사실, 사와자키의 첫인상은 별로였다. 말투도 괴팍하고, 행동도 완전 밉상ㅋ 내 주변에 저런 인간이 있다면 절대 가까이하지 않을 타입이다. 이때 난, 하라 료의 스타일을 전혀 몰랐고, 하드보일드가 뭔지도 몰랐고, 하드보일드 탐정의 특징을 알지 못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이런 걸 알아가면서, 어느 순간 탐정 사와자키의 매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작품엔 전작보다 사와자키의 인간적 면모가 많이 부각된다. 작가의 의도가 어땠건, 사와자키에게 보다 더 인간적인 친근감을 느꼈다. 한 장면만 보자. 오래동안 도쿄를 떠나있던 사와자키. 다시 탐정사무소를 열지만 손님은 오지 않는다. 천하의 사와자키도 도리가 없었는지, 일거리를 얻으러 다른 탐정사무소를 돌아다니기도 하고, 신문에 광고를 내야지 않을까 고민도 한다. 그러던 중, 누가 사무실 문을 노크한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의뢰인이 온 걸까? 이때 사와자키의 반응에 집중하시면서, 다음을 보시길. [누가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놀라울 정도로 '들어오세요'라고 힘차게 소리쳤다. 끼적이다 만 메모지를 뜯어내 휴지통에 던져넣었다. 말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생물이건 대환영이라는 심정이었다.](p.133) 힘차게 "들어오세요!"를 외치는 사와자키의 모습이라니^^

 

고시엔에서 승부조작 의혹을 받았던 전 야구선수, 우오즈미가 사건을 의뢰한다. (의뢰하는 과정부터가 아주 고난의 연속인데, 이건 패스) 11년 전 자살한 누나의 죽음을 조사해 달라는 것. 조사과정에서 자살 장면을 목격했던 목격자들의 비밀을 밝혀지고, 오토바이를 탄 의문의 인물이 의혹을 핵심으로 떠오른다. 과연 우오즈미의 누나 유키는 자살한 걸까? 사와자키와 우오즈미를 노리는 검은 손의 정체는?

 

결말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내가 죽인 소녀>에서도 엄청난 결말에 놀랐는데, 이 작품 역시 대단하다. 하라 료의 노련함에 다시금 감탄. 다만, XX가 XX의 옷을 입고 있었다는 설정은 무리수.

 

그 외, 세이와카이의 하시즈메, 사가라 / 형사 니시고리가 사와자키를 들볶는 것도 여전하다. <내가 죽인 소녀>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하시즈메는 완전히 회복했다. 사와자키와 이들의 관계를 분석해보는 것도 의미있을 듯. (보이는 것과 달리, 이들에겐 뭔가를 뛰어넘는 공감대 같은 게 있다.) 아, 하시즈메가 괴한에게 습격당한 사와자키를 구해주는 장면(p.434)도 있다. 그리고, 사와자키의 옛 파트너 와타나베의 신상 관련 중요한 내용도 언급(p.548)된다.

 

책 홍보문구처럼 과장된 것도 없지만, 이 책의 홍보문구는 아주 정확하다. [당신이 기대하는 정통 하드보일드 미학의 최대치!] 탐정 사와자키에 놀라는 분이 있을지 몰라도 (특히 언행에ㅋㅋ), <안녕, 긴 잠이여>에 실망하실 분은 없을 것이다. 멋진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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