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치 - 2013 제37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이재찬 지음 / 민음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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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도 안 좋고, 이래저래 일이 많아서 집중해서 읽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괜한 걱정이었다. <펀치>는 일단 가독성이 좋다. 읽을수록 감칠맛 나는 문장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리 몰입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사람을 쭈욱쭈욱 끌어당긴다. 재미도 있다. 개성 넘치는 (때론, 지나치게 과장된 듯 보이나) 인물들, 여고생의 삐딱하고 도발적인 시선, 믿기 어려운 설정 등 재미로 똘똘 뭉쳐져 있다.

 

하지만, 뭔가 대단한 사건이 벌어지는 건 아니다. (뭐, 그게 대단한 사건이 아니면 뭐야? 이럴 분도 계시겠지만) 스토리는 아주 심플하다. 사회 지도층이나 속물인 방 변호사와 부인, 그런 부모를 경원시하는 딸 방인영이 있다. 여고생 방인영은 우연히 고양이를 죽이는 '모래의 남자'를 본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부모를 죽여달라고 부탁한다. '모래의 남자'는 과연 방인영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가?

 

남자작가가 삐딱하고 도발적(반항적)인 여고생을 제대로 그려냈다는 점이 놀랍다. 여고생 방인영은 굉장히 독특한 캐릭터지만, 난 방인영 사촌뻘인 여자아이를 알고 있다. 바로 김영하 작가의 단편 [오빠가 돌아왔다]속 경선이. 경선이가 좀 더 자라면('악의'까지 장착해서), 제2의 방인영이 될지도 모른다.

 

근데, 투정하나 하자면, 방인영의 심리변화에 강약을 두지 않은 점이 아쉽다. 뭔 말인가 하면, 인영은 시종일관 시니컬하고 반항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엔 읽기 거북하고 지치는 감이 있다. 이런 상상을 해봤다. 교회오빠에 사랑에 빠지는 인영의 모습이나, 길 잃은 고양이를 보고 가여워하는 인영을 중간중간 등장시키면, 도리어 삐딱함이나 악의가 더 부각되지 않았을까? 소금을 살짝 곁들이면 단맛이 더 강해지는 것처럼.

 

<펀치>는 재기발랄하고 재미있는 작품이다. 읽으면 왜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지 알게 될 것이다. 비윤리적인 설정은 그대로 보지 말고, 배후의 상징을 생각하는 게 낫다. 읽으며 모든 게 인영의 꿈이 아닐까란 생각도 해봤다. 너무 허무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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