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 죽은 남자 스토리콜렉터 18
니시자와 야스히코 지음, 이하윤 옮김 / 북로드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처음 소개되는 작가의 작품을 읽는 건, 소개팅 하는 것과 같다. 거의 대부분 실망하지만, 드물게 이상형을 만나기도 한다. 이제껏 일본소설을 읽으며, 오츠 이치와 기시다 루리코, 단 두 명의 작가만이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기대보다 괜찮았다'는 거지, 딱히 이상형에 가까운 건 아니었다. 갑자기 왜 이런 얘기를 하냐고? 드디어 이상형을 만났기 때문이다. 바로 <일곱 번 죽은 남자>의 니시자와 야스히코.

 

<일곱 번 죽은 남자>는 타임슬립이란 SF 요소를 미스터리에 결합한 작품이다.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박수받을 만한데, 놀랍게도 완벽하다. 마치, [SF+미스터리]란 장르가 이미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자칭 'SF 매니아'에다 일본 미스터리 광팬인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작품에 경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주인공 '오바 하시타로'의 타임슬립 능력부터 보자. 사실, '능력'이라 표현하기도 뭐하다. 왜냐하면 타임슬립은 하시타로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느 날 갑자기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어느 날 갑자기 같은 날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 거다. (하시타로는 이를 '반복함정'이라고 부름 p.18) 등장하는 사람도, 발생하는 사건도, 오가는 대화도 모두 같다. 오로지 하시타로만이 반복되는 흐름 속에서 '다른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하시타로는 원래 일어났어야 하는 현실을 의도적으로 변경(p.19) 시킬 수 있다. 아, 반복함정은 9차례 반복되고, 24시를 기점으로 리셋된다.

 

정년을 맞아 할아버지(후치가미 레이지로) 댁으로, 가족들이 모인다. 할아버지는 엣지업社의 경영자로 차녀 고토노 이모와 회사를 운영 중이다. 모임의 최대 이슈는, 고토노 이모의 양자로 과연 누가 선택될 지이다. 경제적으로 어렵던 히사타로의 어머니 가미지, 막내 하루나 이모는 사활을 걸고 자기 자식을 양자로 보내려 한다. 양자가 되면 엣지업社를 고스란히 상속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앙숙인 두 자매의 티격태격, 미녀 루나를 둘러싼 사촌 간 애정다툼 및 애정행각, 비서 도모리씨와 히사타로의 미묘한 감정교류, 할아버지의 극적인 인생역전과 괴짜행동 등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특히, 니시자와 야스히코의 유머코드는 감탄할 정도였다. 읽다 웃겨서 뒤집어진 게 한 두번이 아니다. 두 장면을 보자.

 

초등학교 여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말한다.(p.15이하) "학교 뒷산 신사에는 절대 가까이 가면 안 됩니다. 알았죠?" / "왜요? 귀신이라도 나와요?" / "그런 비과학적인 말을 하면 안 돼요." / "비과학적이란 게 무슨 말이에요?" / "터무니없다는 뜻이에요. 뒷산 신사에는 귀신보다 훨신 더 무시무시한 사람이 있어요" "요전에 다른 학교 여학생이 신사에서 놀다가 그 아저씨한테 잡혀 갔어요. 무섭죠? 겁나죠? 그리고 불쌍하게도 그 아저씨가 억지로 그 아이의 팬티를 벗겨버렸어요." / "왜 아저씨가 팬티를 벗겨줬어요, 선생님?" / "그리고 아저씨도 자기 팬티를 벗었어요. 여기까지 말하면 그 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겠죠?" / "둘이 팬티를 바꿨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

 

히사타로의 어머니와 하루나 이모는 시종일관 티격태격하다 결국 폭발(p.216이하)한다. 시발점은 후자타카와 루나의 다툼이었다. 둘이 남녀관계까지 맺었음을 알게 되자, "도대체가 넌 아들놈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거야? 발정 난 개새끼도 아니고, 어쩔거야. 대체 어떻게 책임을 질 거냐니까? 시집도 안 간 처녀를." / "시끄럽네 진짜. (중략) 같이 잔 거라면 그건 당연히 너희 집 멍청한 딸이 유혹했겠지. 머리는 텅텅 빈 주제에 엉덩이랑 가슴만 크면 다니? 이 걸레. 못생긴 게. 멍청이." 이런 대사가 오가다, 온 가족이 대격돌을 벌이는 베개싸움으로까지 이어진다.

 

<일곱 번 죽은 남자>는 사실 긴 말이 필요없는 책이다. 엄청나게 재밌다. SF에 미스터리를 결합하고, 유머코드까지 장착했으니, 별로 일리가 있겠는가? 전기장판 위에 엎드려서 이불 뒤집어쓰고 읽으며, 책 속에 풍덩 빠져 버렸다. 이토록 몰입해서 읽는 건, 20대 이후엔 거의 없던 일이다. 니시자와 야스히코가 왜 이제야 국내에 소개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얼른 다른 작품도 쭉쭉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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