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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분 후의 삶
권기태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1.
고등학교 2학때였다. 학교 옆 은행나무에서 은행을 따려 했다. 냄새나는 은행은 왜? 갑자기 효심이 발동했었다. 은행을 따다 어머니께 가져다 드리고 싶었다. 때마침 학교정문에선 나무 베기가 한창이었는데, 어떤 공사때문에 걸리적 거리는 나무를 베어 내는 거였다. (아, 우리 학교는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로, 주변에 수령 30,40년 정도 된 나무들이 아주 많았다. 이 나무 역시 높이 10,20미터 정도됐다.) 은행을 따러 담장 밖으로 나가 있던 나를, 인부들은 알아채지 못했다. 나 역시 나무 베기에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으드득 쾅!!!!!!' 어마어마한 나무가 내 눈앞으로 덮쳐 왔다. 내가 서 있던 바로 옆으로.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난 어떻게 됐을까? 깔린 걸까? 천만다행으로 바로 옆으로 쓰러졌다. 생채기하나 생기지 않았지만, 1미터만 옆이었다면 살아 있지 못했을 거다. 냄새나는 은행을 따다, 나무에 깔려 죽는다라...너무나 허무하지 않은가?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순간이란 걸 절절히 느꼈다. 하지만, <일분 후의 삶>을 읽고보니 내 경험은 어린아이의 장난과 같은 거였다.
2.
사실, <일분 후의 삶>이 정확히 어떤 책인지 알지 못했다. 그냥 'KBS2 [인간의 조건]에 소개된 책' 정도만 알고 읽기 시작했다. 점점 눈시울이 붉어졌고, 죽음이 손짓하는 긴박한 상황에선 몸이 부르르 떨렸다. 삶의 강렬함이 죽음을 밀어내는 순간에선,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그렇구나. 이 책은 삶의 의지에 대한 책이다. 인간에 대한 책이다. 한순간 사그라들지도 모를 당신 인생에 관한 책이다.
<일분 후의 삶>은 '죽음의 위기를 극복하고 생의 진정한 순간들을 겪은 열두 사람의 이야기'(일러두기 참조)이다. 작가는 이들은 수차례 만나 인터뷰하고, 이야기를 재구성해 냈다. 이런 노력덕인지 글은 착착 감기고, 생동감 넘친다. 거기다 실화라 더욱 강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3.
이야기 어느 하나 감동적이지 않은 게 없지만, 특히 극적이고 놀라웠던 이야기는, [나를 방생해준 자연](p.32)이다. 주인공은 방글라데시 차타공으로 가던 상선에 타고 있다. 잠시 바람을 쐬러 갑판으로 나왔던 주인공은, 파도에 휩싸여 망망대해에 빠진다. 빠르게 항해하던 배는 멀찌감치 사라져버린다. 누구도 그가 빠졌는지 모르는 상태.
주인공은 생각한다. '도대체 내 발아래 몇 미터를 내려가야 바닥에 닿을까? 100미터? 200미터? 아니 1킬로미터도 넘을지 모른다. 그럼 육지까지는? 생각도 못 한다.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그럼 헤엄쳐 갈 수도 없는 게 아닌가. 이럴수가 이렇게 죽는 거구나.'(p.38)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상선은, 되돌아와 수색하지만 주인공을 발견하지 못했다. 점점 체력이 바닥나고 희망이 사그라들던 순간, 기적이 강림한다. 커다란 거북이가 주인공 곁에 나타난 거다. 흥분한 주인공은 거북이에게 말까지 건다. "희한하지, 거북아. 네가 어떻게 나를 살려주려고 여기까지 왔냐? 언제 왔냐? 내가 여기 있는 걸 알고 왔냐? 고맙다, 거북아. 정말 고맙다."(p.47) 주인공은 이렇게 거북이 등에 업혀 구조를 기다렸고, 결국 구조된다.
동료들은 거북이를 보며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거 동화책에나 나오는 일인데."(p.51) 더욱 놀라운 건, 주인공의 아내가 매년 거북이를 방생해 왔다는 거다. 우연치고는 신기하지 않은가?
4.
삶과 죽음은 단어의 깊이 때문에, 때론 멀게만 느껴진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은행을 따다 거대한 나무에 깔려 죽을지도 모르고, 전신주에 걸린 연을 내리다 25만볼트 전기에 감전될지도 모른다. 또한, 갑자기 인도로 질주하는 차에 치일지도 모른다. 다들, "나는 아니겠지. 나는 괜찮을 거야" 라고 자기 위안하며 애써 태연한 척하는 건 아닌지.
<일분 후의 삶>은 희망의 책이다.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는 극한 상황에서, 삶을 갈망했던 12명의 생존 의지가 담겨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들었던 이들에게, '일분 후의 삶'은 얼마나 소중한가? 삶의 소중함, 이 중요하고도 잊기 쉬운 교훈을 새삼 일깨우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일분 후의 삶>을 읽기 전의 당신과 읽은 후의 당신은, 아주 많이 아주 많이 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