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밥이다 - 매일 힘이 되는 진짜 공부
김경집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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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는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며 25년은 마음껏 책 읽고 글 쓰며 문화운동에 뜻을 두고 살겠다고 마음먹었다'(저자소개 참조)고 한다. <인문학은 밥이다>는 이런 저자의 50여 년에 걸친 삶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4부 12장에 걸쳐 인문학이 주제별로 총망라되어 있는데, 먼저 인문학의 범위부터 확정할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이 책에서 내가 말하는 인문학은 넓은 의미의 인문학, 즉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을 포함하는 인문학이다. 왜냐하면 사회과학과 자연과학도 결국은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인간의 학문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철학, 종교, 심리학, 역사, 과학, 문학, 미술, 음악, 정치, 경제, 환경, 젠더를 순서대로 다룬다."(p.6)

 

2.

 

인문학 하면 '지루하다'는 생각을 떠올리는 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인문학은 밥이다>는 굉장히 편하고 재미있게 인문학을 이야기한다. <해리포터>나 서태지같이 친근한 소재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지나치게 난해한 전문적 용어는 가급적 자제한다. 엄청난 지식과 사유의 결정체를 쉽게 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위대한 일이다.

 

말이 나온 김에, <해리포터>나 서태지가 왜 등장하는지 해당 부분을 보자. 저자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이야기하면서, <해리포터> 탄생 뒤에는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나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가 있음을 지적(p.310,311)한다. 옛날이야기나 신화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 또한 소설이 주는 즐거움마저 앗아간 우리 교육 현실을 비판한다. (<해리포터>와 조앤 롤링에 대해서는, 뒤에 별도 주제로 5페이지 가까이 더 이야기(p.334)한다. 문학수첩이 판권을 따낸 에피소드도 나온다.)

 

모든 시대마다 당대를 대표하는 음악이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대표음악은 '랩'(p.412)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는 서태지를 '한국 랩의 시작'(p.415)으로 꼽는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건, 음운학적 측면이다. 우리 말은 서태지 전까지 랩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졌지만, 서태지는 이를 점차 극복해 랩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이 부분을 보며, 저자가 얼마나 열린 생각을 갖고 있는지 감탄했다. 어르신 중에는, 무조건 연예인을 딴따라라고 무시하는 분도 많다.

 

3.

 

<인문학은 밥이다>에서 가장 크게 감명받은 부분은 [역사]파트다. 문장 하나하나에 크게 공감했고, 그간 알지 못했던 부분도 배우게 됐다.

 

저자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란 명제하에, 명칭의 왜곡가능성(p.165)을 제기한다. 인조반정, 에베레스트, 오리엔탈리즘, 중동 등등. (자세한 건, 직접 읽어보시길.) 이 책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일제강점기의 각종 잔재도 큰 문제라 생각한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란 속담이 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속담은 선조의 삶과 지혜의 결정체인데 우리나라에 있지도 않은 원숭이가 왜 등장할까? 그건, 이 속담이 우리의 속담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속담이다. 또한, 광역시 '대전'도 사실은 '태전'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를 '대전'으로 바꾼 건 일본 놈들이고.

 

다시 책으로 돌아오자. 저자는 우리가 너무 부정적으로만 인식하는 역사의 하나로 '붕당정치'(p.173)를 이야기한다. 붕당정치의 긍정적인 면이 많음에도, 지나치게 부정적인 면이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면(p.175)으론, 첫째, 상호견제를 통한 부패나 전횡 방지. 둘째, 정치적 후원세력인 사림과 유생들 배려. 결국, 민심을 헤아리게 되는 결과. 셋째, 붕당사이에서 최종판단자인 임금이 끊임없이 공부해야 했던 점을 든다. 저자의 견해에 크게 공감했던 부분.

 

4.

 

구성상 주목한 것은, 각 장 말미에 있는 [읽어 볼 책들]이다. 해당 분야의 양서가 저자의 서평과 함께 소개된다. 상당히 많은 책이 소개될 뿐 아니라, 서평도 훌륭해서 이 부분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인문학 관련 양서를 추천받고자 하는 분이라면, 다른 거 필요없다. 이 책의 [읽어 볼 책들]부분으로 충분하다.

 

<인문학은 밥이다>를 읽으며, 다양한 분야를 두루두루 꿰뚫고 있는 저자의 박학다식함에 놀랐다. 저자의 지식은 단순히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연결시키고, 엮어보고, 재해석해서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창조해낸 것이다. 이토록 깊고 넓은 지식의 샘을 돌아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지식의 샘으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하지만, 저자는 즐겁고 유쾌하게 이끌어 준다. 이렇게 멋진 길 안내자라니.

 

 

 

*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인문학을 레고에 비유한다. 참 멋진 글이다. 자세하게 소개하진 않겠지만, 기회있으면 찾아 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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