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일즈 보르코시건 : 명예의 조각들 마일즈 보르코시건 시리즈 1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 지음, 김창규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13년 7월
평점 :
절판


 

1.

 

[한국의 독자들에게] 건네는 인사에서 작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p.9)를 합니다. 한 캐나다 여성이 은행에서 <명예의 조각들>을 읽고 있었고, 자기 차례가 되어 창구로 갑니다. 하지만, 직원은 어이없다는 듯, "좀 전에 은행강도가 들어 돈을 전부 챙겨가지 않았느냐?"고 반문하죠. 즉 이 여성은 <명예의 조각들>이 너무 재미있어 몰입한 나머지, 은행에 강도가 침입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겁니다. 저는 처음 이 이야기를 듣고,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과장이 심한데. 어떻게 은행강도가 든 걸 모를 수 있어?" 이랬죠.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저 여성의 태도를 100% 이해합니다. 아니, 단언합니다. <명예의 조각들>을 읽는 사람은, 은행강도 들었는지, 대지진이 일어나는지, 천지가 개벽하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왜? 너무너무 미친 듯이 재밌어서 이야기속으로 빠져버리기 때문이죠.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한 책이네요^_^

 

2.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명예의 조각들>은 보르코시건 시리즈(작가에 의하면, [대하소설 보르코시건])의 첫번째 책입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마일즈가 태어나기 전 이야기로, 마일즈의 아버지 [아랄 보르코시건], 어머니 [코델리아 네이스미스]가 어떻게 만났으며, 어떻게 사랑을 나누고, 결혼까지 이르게 되었는지가 담겨 있어요. 일단, 줄거리부터 보겠습니다.

 

바라야 제국군 보르크래프트의 함장인 아랄 보르코시건 대령베타 천체탐사대 소속 코델리아 네이스미스 중령을 포로로 생포합니다. 코델리아가 바라야의 영토를 침범했다는 이유로요. 하지만, 코델리아는 자신들이 과학 연구목적을 위한 비전투원이며, 바라야 측이 부당하게 공격했다며 맹비난합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티격태격은 시작이네요^_^) 그런데, 아랄 대령도 뭔가 이상한 처지입니다. 무리에서 홀로 떨어져 있어요. 이유인 즉, 배신자 라드노프, 다로베이가 권력을 빼앗기 위해 함장 아랄 대령을 함정에 빠뜨린 거였습니다. 황량한 행성에 덩그러니 남은 두 사람.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바라야 제국군 아랄 대령과 베타 출신 코델리아 중령의 관계는 아주 미묘합니다. 코델리아는 분명 포로신분이지만, 아랄은 그런 코델리아를 존중하고 정성껏 보호합니다. 코델리아가 후임 로즈몬트의 시체를 매장해야 한다고 하자, 직접 구덩이 파서 매장을 돕고(p.39), 파괴총 공격을 받아 반송장인 된 두바우어 소위를 코델리아의 주장대로 같이 데려가기까지(p.32) 합니다. 아랄 대령, 멋지네요. 코델리아 역시 서서히 아랄에 마음을 열고, '묘한 감정'을 느낍니다.

 

한 장면을 보죠. 매번 '오트밀과 블루치즈 드레싱'만 먹던 둘은 사냥을 하기로 합니다. 아랄이 한방에 생물을 명중시키자, "명중이에요!"(p.50) 코델리아는 기뻐하며 소리를 지르고, 아랄은 어깨 너머로 '그녀를 보며 아이처럼 웃고는'(p.50) 전리품을 챙기러 빠른 걸음으로 움직입니다. 코델리아는 그의 웃음을 보고 멈칫하면서 "오~"라고 중얼거리죠. 그리고는 생각합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의 얼굴이 태양처럼 빛났다. 저 모습을 한 번만 더 보여주면 좋을 텐데.](p.50)라고요. 아하, 둘이 사랑에 빠지는 건 시간문제로군요^_^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힘든 여정에 지칠 대로 지친 두 사람. 코델리아는 '마법에 걸린 공주처럼 100년 동안 자고 싶었지만'(p.79) 도리어 불침번을 자청하며, 아랄에게 충분히 자도록 권합니다. 아랄이 미안해하자, 코델리아는 단호하게 "당신이 실패하면 나도 실패해요. 적어도 내일 당신이 무슨 활약을 펼칠지는 보고 싶다고요!"(p.79)라고 하죠. 결국 자리에 먼저 누운 아랄. 조심스레 말을 건넵니다. "당신은 내가 생각했던 여성장교와 다르오." / 코델리아 왈, "그래요? 흠, 당신도 내가 생각했던 바라야 장교하고는 달라요. 그러니 피차일반이네요. 어떨 거라고 생각했는데요?"(p.79,80) 둘은 이제 완전히 서로를 신뢰하고 있네요.

 

힘든 여정끝에 아랄 대령과 코델리아 중령 일행은 바라야 본진에 다다르게 되고, 반란군을 제압합니다. 이때, 쿠델카 소위나 보타리 중사같은 중요인물들이 등장하죠. (이들은 아랄 대령의 최측근입니다.) 그리고, 꿈에 그리던 청혼!!! 청혼 장면을 보겠습니다! 휴식을 취하던 코델리아에게 아랄이 찾아와 이야기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바라야로 돌아고 당신이 자유의 몸이 되면, 거기 머무는 것을 고려해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소. (중략) 거기서 사는 걸 말하는 거요. 보……보르코시건 부인으로 말이오"(p.123) 아랄 대령은 누가 군인 아니랄까봐 빙빙 돌려 말하네요^_^ 더 들어보죠,

 

"당신에게 해주고픈 건, 당신과 하고 싶은 일은 그런 게 아니오. 당신은 최고의 배우자를 만나야 하오. 이제는 알겠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오. 하지만 내가 가진 최고의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 주, 중령, 배타 기준으로 보기에 내가 너무 서두르는 거요? 여러 날 동안 적절한 기회가 오기만을 기라렸소. 하지만 그런 기회는 오지 않을 것 같구려."(p.123) / "여러 날이라고요?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한 거에요?"(p.124) / "계곡에서 처음 만났을 때부터요."(p.124) 아하, 코델리아 중령을 정중히 대한데는 저런 이유가 있었어요. 처음부터 좋아했군요^_^

 

그 후, 아랄은 에스코바 침공전쟁을 마무리 짓고 다시 한번 청혼을 합니다. "당신이 필요하오. 나와 결혼해 주겠소?"(p.238) 이번에는 돌직구를 날리네요. 그리고, 이어지는 황홀한 키스...!!! (p.240) 읽다 가슴이 벌렁벌렁거릴 정도로 이제껏 읽은 키스장면 중, 가장 아름다운 키스장면이었습니다. "작가님, 보르코시건 시리즈, 그냥 마일즈 빼고, 아랄과 코델리아 중심으로 가는 건 어떤가요?"ㅋㅋㅋ

 

3.

 

아랄 보르코시건과 코델리아 네이스미스는 모두 개성만점인 캐릭터입니다. 저는 코델리아에 대해 분석해 보았습니다.

 

1) 코델리아는 [보르코시건 시리즈-대하소설 보르코시건]의 주인공인 마일즈의 어머니입니다. 위대한 주인공의 어머니인 만큼, 그에 걸맞는 품격을 갖추어야 할텐데요, <명예의 조각들>엔 코델리아의 아름다운 모성애가 제대로 부각됩니다. 이런 겁니다. 바라야 군의 공격으로 파괴총에 맞은 두바우어 소위는 거의 시체같은 상태가 됩니다. 그럼에도 코델리아는 고생고생하며 두바우어를 보살피고, 끝까지 함께 합니다.

 

한 장면을 보겠습니다. [코델리아가 딱딱한 음식을 억지로 씹으며 웃었다. 두바우어가 뱉으려고 하는 바람에 그녀는 직접 손으로 먹여주어야 했다. 그녀는 식사가 끝난 다음 두바우어를 씻기고 그의 잠자리를 바주었다.](p.79) 어떤가요? 코델리아에서 성녀 테레사의 고귀함이 비치는 건 저만이 아니겠죠.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두바우어는 거의 아기같은 상태이고, 코델리아는 마치 아기를 돌보는 듯 먹이고, 씻기고, 잠을 재웁니다. 두바우어를 미래에 태어날 마일즈와 병치시킬 수 있고, 두바우어를 돌보는 모습에서, 미래에 태어날 마일즈를 돌보는 코델리아를 상상할 수 있어요.

 

또한, 정신줄 놓은 보타리 중사를 돌보고, 약을 주사하는 장면(p.185), 다리 상처때문에 고통스러워 하는 아랄을 치료하고 안정시키는 장면(p.87)에서도 코델리아의 모생애를 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코델리아는 강인하고, 실천력있는 여성입니다. 도주했던 배신자 라드노프, 다로베이는 코델리아를 찾던 배타인들과 협력, 함정에 다시 침입합니다. 그러자, 코델리아는 꾀로 타파스를 회유(p.146)한 뒤, 홀로 원형해치를 뚫고 들어가 배신자 일당을 해치웁니다.(p.147) 마치 영화 [에일리언]의 여전사 리플리를 보는 듯 했어요.

 

에스코바 전쟁 후 코델리아는 고향인 베타 개척지로 갑니다. 그런데 베타 군부는 이상한 오해를 해요. 바라야 측이 코델리아의 기억을 조종해서 첩자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죠. 심지어 코델리아를 강제입원(p.284)시키려 합니다. 그러자, 코델리아는 결심합니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아랄에게 가기로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겁니다. 결국, 코델리아는 바라야로 가서 아랄과 재회(p.304)하고 운명적인 결혼을 합니다. (의외로 결혼식 장면은 자세하게 묘사되지 않더라고요.)

 

4.

 

SF소설은 다소 난해하다는 생각, 누구나 할 겁니다. 저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 약간 걱정 했거든요. 하지만, <명예의 조각들>은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부터 빠져듭니다. 주말에 읽기 시작해서 순식간에 200페이지를 읽었습니다. 그 후에는 페이지 넘어가는 게 너무 아쉬워서 일부러 천천히 천천히 책장을 넘겼습니다. 특히, SF소설 특유의 어려운 관념이나 난해한 설정이 없고, 이야기 전개가 아주 빠르며, 연애소설적 요소, 액션 스릴러적 요소도 가미되어 있어서, 남녀노소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이정표가 될 만한 책이 있을 겁니다. 저에겐 고3때 읽은 양귀자 작가님의 <희망>이 하나의 이정표였습니다. 10년이 지난 오늘,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습니다.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명예의 조각들>, 그리고 [보르코시건 시리즈-대하소설 보르코시건]은 감히 인생의 이정표라 칭할 수 있는 명작중의 명작입니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생각해 봅니다. 시리즈의 서막인 <명예의 조각들>이 이 정도라면, 본격적인 시리즈의 나머지 권들은 얼마나 대단할까요? 하루하루 손꼽아 기다리겠습니다.

 

 

 

 

 

 

 

 

* 솔직히 고백하면, <명예의 조각들>이 처음 읽은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작품입니다. 읽기 전에, 작가가 남자인 줄 알고 있었습니다-_- 자칭 SF매니아로써 조금 부끄럽네요

 

* 얼마 전, 배명훈 작가의 <청혼>을 읽고 후기를 남겼습니다. 제가 속으로 그려왔던, [SF가 가미된 러브스토리의 이상향]같은 걸 밝히고, <청혼>이 제가 바라던 작품이 아니어서 실망했다고 했죠. 그리고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SF가 가미된 사랑이야기란, 정말 쓰기 힘든 것이구나."라고요. 그런데!! 꿈에 그리던 작품을 얼마지 않아 찾았습니다. 바로 로이스 맥마스터 부졸드의 <명예의 조각들>, 이 작품입니다^_^ 이런 훌륭한 작품이 이미 있었던 거죠. 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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