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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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 있을지도 모름.

 

1. <K.N의 비극>은 다카노 가즈아키의 다른 작품 중, 가장 정통 호러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를 모르고 읽다 깜짝 놀랐다.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이었다. 우연찮게, 한여름 무더위를 이기게 해 준, 최고의 공포물을 읽을 수 있었기에.

 

2. 자유기고가였다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슈헤이는 고급 아파트를 구입하고, 아름다운 아내 가나미와 행복한 미래를 꿈꾼다. 가나미는 임신하나, 슈헤이가 바라던 것은 아니었고 경제적 계산을 앞세워 낙태를 반강요한다. 이때부터 가나미는 일종의 '빙의현상'에 시달리게 되는데, 가나미에게 악령이 씌인 것인가? 아니면, 해리성 정체 장애라는 정신병인가?

 

3. 읽다 소름 돋았던, 가장 무서운 장면부터 보자. 나카무라 구미의 행적을 쫒던 쇼헤이는 구미가 이미 죽었으며, 귀신이 되어 자신이 죽은 '고야스 신사'에 출몰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괴담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쇼헤이는 한밤중 어둠을 뚫고 '고야스 신사'로 향한다. 산길을 가는 내내,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거기다 의문의 아기울음소리(p.220)까지 듣는 쇼헤이. 괴담은 사실이란 말인가?

 

이 장면도 무섭지만, 진짜 공포는 다음이다. 신사에서 돌아온 쇼헤이에게 빙의 인격이 묻는다. "신사는 보고 왔어?" "고양이가 새끼를 낳고 있지 않았어?"(p.237) 직접 보지 않았다면 물을 수 없는 질문들. 쇼헤이는 깜짝 놀라, "어떻게 알았지?"라고 하자, 빙의 인격의 마지막 한방, "몰랐어? 나 네 등에 업혀서 계속 같이 있었는데."(p.238) ㄷㄷㄷ 귀신 구미는 고야스 신사로 가는 쇼헤이 등 뒤에 내내 업혀있었고, 쇼헤이가 느꼈던 인기척은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가 쇼헤이였다면 바로 기절-_-

 

4. 쇼헤이는 아내 가나미의 증세를 악령의 짓으로 봐야 할지, 정신병으로 봐야 할지, 이성과 비이성사이에서 고민(p.254)한다. 읽다 답답했던 건, 의사 이소가이의 태도다. 분명 사령의 빙의로 볼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음에도 이소가이는 도통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지식과 어긋나는 현상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지식인의 얄팍한 자의식같아 쓸씁.

 

사령의 빙의로 여겨지는 증거들을 간략히 정리해 둔다. ① 이소가이가 도다 마이코를 진료했다는 사실을, 가나미-빙의 인격-가 알고 있다. p.142 ② 인격변화시 가나미의 체취가 완전히 변한다. p.149 ③ 가나미-빙의 인격-이 보여준 증거 (드레스를 이동시켜서 찟는 등 염동력) p.238 ④ 가나미-빙의인격-이 가나미에서 나와 쇼헤이에 빙의된 충격의 비디오 영상. p.286 등등

 

5. 이야기 중후반에 이르면, 공포의 대상인 나카무라 구미가 과연 끔찍한 귀신에 불과한 존재인지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구미는 무책임한 남자들에 대항해, 끝까지 아기를 지키려 했고, 가나미에 들러붙은 이유도 가나미의 낙태를 막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 한 장면(p.325)을 보자. 슈헤이는 구미의 전 남친 오카베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오카베 왈, "밤길에 헤어지면서 구미가 돌아보더니 저에게 물었어요.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 "그래서 그 대답은 뭐였죠?" / "'나는 엄마야.'라고 구미가 말했어요. 굉장히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배 속에 있는 아기의 엄마야.'라고요." 이때 슈헤이는 '몸을 휘감고 있던 공포가 순식간에 경외로 바뀌는'(p.326) 놀라운 경험을 한다.

 

6. <K.N의 비극>은 한여름 무더위를 한방에 날려 줄 최강의 호러물이지만, 거기서 머물지 않는다. 낙태가 만연한 사회현실, 무책임한 남성들에 대한 비판, (원치않는 임신, 혹은 불임에 대해) 주로 여성이 책임을 지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강렬하다. 이로써 다카노 가즈아키의 국내 출간작 모두를 읽었다. 어느 하나 재미없는 작품이 없다. <K.N의 비극> 덕분에 무더운 주말을 즐겁고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 올 여름 공포소설을 읽으려던 사람이라면,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 한권으로 충분하다.

 

 

 

* 제목인 [K.N의 비극]의 K.N은 사람이름의 이니셜입니다. SM ENT가 수만의 S.M인 것 처럼요^^ 책에서는 동명의 특집기사도 나오죠. p.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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