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인의 정신세계
뤼시앙 레비브륄 지음, 김종우 옮김 / 나남출판 / 2011년 8월
평점 :
품절


1.

<원시인의 정신세계>는 '원시인의 특징적인 정신습관을 추출하여 묘사하고, 그것이 우리의 것과 왜, 어떻게 다른지를 살펴보는'(p.17) 책이다. 일단 '원시인'이란 개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쓰이는 원시인은 고대 네안데르탈인이나 콜라병을 든 부시맨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저자는 서양문명이 미치지 않았으며, 고유한 전통을 유지하는 모든 부족을 '원시인'으로 포괄한다. 이러다보니, 1900년대 조선과 조선사람들의 정신세계라고도 할 수 있는 부분이 '원시인의 정신세계'에 포함되어 있다. (심지어 오늘날까지 전통으로 남아 있는 사고방식 일부까지)

이런 서구편향적인 입장은,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1900년대 초반임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제국주의 확장에 따라 서양인들이 제3세계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면서, 자신들과는 다른 전통을 지닌 사회를 '열등의(inferieure)', '야생의(sauvage)', 문명화되지 못한(non-civilisee)'등의 경멸적 용어(p.18 역주10 참조)로 지칭했다. 이들에게는 자신과는 다른 이들은(아마존의 조에족이던, 1900년대 조선인이던) 모두 미개한 '원시인'이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서구편향적인 입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원시인이란 표현을 '부적절하다'(p.18)고 하는 등, 약간의 진일보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 서구편향적으로 보이는 서술 대부분은 인용한 사례부분이며, 저자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이를 분석한다. 그리고 역자가 말한 바로는, 뤼시앙 레비브륄의 이 책은 서구편향적인 사고방식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p.15 역주1 참조)고 한다. 이상이, <원시인의 정신세계>에서 등장하는 서구편향적 서술을 보다 유연하게 바라봐야 하는 이유이다.

2.

<원시인의 정신세계>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다양한 사례가 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저자는 굶어 죽거나 벼락 맞아 죽은 자들에 대한 독특한 믿음을 갖고 있던 바수토 부족의 예(p.378이하)를 4페이지 가까이 든다. 그런 다음 사례를 분석해서 사고와 불행에 대한 원시인의 정신세계를 도출해 낸다. 이는 이 책의 엄청난 장점이다. 제시되는 사례는 원시 다큐를 보는 듯, 무척 흥미로워서 인문서의 딱딱함을 덜 수 있기 때문이다.

꿈을 현실의 예지로 보는 원시인들의 사례는 인상적이었다. 우리(우리 조상)만이 꿈에 가치를 부여한 것이 아니었다.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어떤 장소에서 백조의 둥지를 발견하는 꿈을 꾼 사람은 실제로 거기서 백조의 둥지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p.144) 또한 꿈에 개가 심하게 소란을 피울 경우, 개가 캥거루를 잡는 예지라고 생각하고는, 다음날 사냥때 그 개를 꼭 데리고 나간다고 한다.(p.144참조) 이는 마치 예지몽을 통해 100년 먹은 산삼이 있는 장소를 알게 되는 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윈시인의 식인행위를 해석한 부분이 있다. 와카야 부근으로 14~16명의 사람이 난파당해 표류하자, 와카야 원시인들은 이들을 전부 구워먹어 버린다. 선교사가 "그들을 전부 살려주었으면 합니다."(p.389)라고 만류했으나, 이들은 "아니지요. 그들은 죽어 마땅하지요. 그들은 난파당했으니까요"(p.389)라며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왜 이들은 난파당한 사람은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한 걸까? 저자의 해석을 인용한다. "이 잔인한 징벌은 난파당한 사람들의 불행과 관련되어 있다. 난파당한 사람들은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므로 이 사람들을 살해하는 것은 신들을 기쁘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며, 심지어 필요한 것으로 간주되기까지 한다."(p.390)

상세한 역주 또한 이 책의 특징이다. 역자는 수많은 부족의 정보를 역주에서 설명하며, 다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단어(p.57 역주47, p.61 역주63 등)나, 핵심내용(p.49,223 등)을 자세하게 풀이한다. 거의 1세기전에 쓰여진 작품임을 고려하면, 무척이나 어려운 작업이었을텐데 역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3.

MBC다큐 <아마존의 눈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다큐 <아마존의 눈물>을 재미있게 보지 않았다면 이 책에 관심을 두진 않았을 것이다. TV속 조에족이나 원시부족을 제대로 이해해 보고 싶었다. 이런 의문이 들지 모른다. "이 책이 다큐 <아마존의 눈물>을 그대로 옮긴 책도 아닌데, 왜 둘을 관련짓는 거지?"라는 의문. 답은 역자의 말로 대신하겠다.

 "<아마존의 눈물>은 공간적으로는 우리와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시간적으로는 우리와 동시대에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조에 부족등 <아마존의 눈물>에 등장하는 원시부족들은 이 책에 묘사된 것과 동일한 전통적 사고방식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중략) 이 책의 번역을 거의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다큐멘터리 <아마존의 눈물>과 영화 <아바타>를 접했던 나는 이 책이 어쩌면 두 작품의 원전 텍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p.5 이하)

TV속에서 '바라보기만 했던' 원시부족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그들의 정신세계는 어떠한지, <원시인의 정신세계>엔 그 답이 있다. 제시된 다양한 사례는 TV영상과는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재미있는 인문서'라, 놀랍지 않은가? <아마존의 눈물>에 열광했던 사람이라면, 분명 <원시인의 정신세계>에서 또다른 충격을 경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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