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엘로, 정신의 힘 예술가의 삶과 진실 2
프레드 베랑스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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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얼마 전 '앙드레 드 헤베시'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이 레오나르도를 생생하게 그려내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조반니 파피니의 미켈란젤로 전기와 비교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앙드레 드 헤베시는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었던 건 아닐까? 레오나르도와 관련된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에. 스스로 콘디비에게 구술자서전을 쓰게 한 미켈란젤로에 비해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관련 자료는 많이 부족하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방랑>에서 앙드레 드 헤베시가 애매모호한 기행문 형식을 취한 것도, 사료부족으로 인한 불가피한 선택은 아니었을까? 그에게 했던 비난은 제한적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

이제 막내격인 라파엘로의 전기, <라파엘로, 정신의 힘>이다. 프레드 베랑스는 사료가 절대 부족한 상황에서 라파엘로를 그려내기 위해 힘든 여정을 떠난다. 먼저 라파엘로가 태어나기 전 이탈리아의 역사를 돌아보고, 그에게 영향을 주었을 법한 역사적 사건ㆍ배경위주 서술을 한다. (제1부) 그리고 제2부에서는 라파엘로의 주변 인물을 살피면서 흩어져 있는 라파엘로의 흔적을 더듬는다. 직접적으로 라파엘로가 얽힌 사랑이야기(전설은 잠깐 이야기 된다.p.323)나 충격적 사건 따위는 없지만, 차근차근 위대한 예술가의 자취를 찾아가는 여정은 위대했다.

제1부는 다양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부각되기 때문에, 약간의 세계사적 지식이 필요하다. 라파엘로가 페루자에 머물 때 벌어졌던 '보르자의 로마뉴 침공'(p.129)이나 라파엘로의 고향에서 벌어진 '체사레의 우르비노 공화국 침공'(p.151) 같은 것들. 저자는 이런 사건을 라파엘로 중심으로 구성하고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핀다. 생소한 부분이라 다소 어려웠지만, 프레드 베랑스의 탐구적이고 세밀한 서술은 마음에 들었다.

제2부에서 놀란 건 작가의 미켈란젤로 비판이다. 프레드 베랑스는 브라만테,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등과 라파엘로를 비교하는데, 특히 라파엘로와 사이가 좋지않던 미켈란젤로를 심하게 비난한다.

- "그(미켈란젤로)가 머물렀던 피렌체, 볼로냐, 로마 어디에서나 싸움꾼처럼, 그는 주변의 모든 것을 물리치고 텅 비워놓았다. 그의 성격은 그의 천재성에 누가 되었다."(p.357)

한마디로 성격이 X같아서 친구도 없이 혼자 쓸쓸했다는 말이다. 프레드 베랑스는 미켈란젤로가 페루지노를 공공연히 얼간이 취급을 한 것, 대노상에서 레오나르도를 모욕한 것, 시뇨렐리가 일거리를 엊고자 하는 걸 방해한 일(p.356이하), 라파엘로의 패배를 위해 세바스티아노에게 데생을 제공한 것등을 언급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얽힌 보다 충격적인 이야기도 하는데,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 '십 년 뒤에(길에서 미켈란젤로가 레오나르도를 모욕했던) 두 사람이 다시 마주치게 된 로마에서,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를 끈질기게 괴롭혔다고 한다. 이에 레오나르도는 바티칸에서 생활하면서 레오 10세의 찬사를 받았고, 줄리아노 데 메디치는 그를 떠받들었는데도, 유배지에서 죽게 될 줄 알면서도 떠나기로 했다고 한다.'(p.356) 이 글을 그대로 믿는다면, 미켈란젤로는 그야말로 악당 아닌가?

- "미켈란젤로는 귀족적 태도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독일 황제의 후손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이는 개인의 힘만을 존중했던 당시 그 나라에서는 우스운 처신이었다. 그는 요즘 말로 하자면, '콤플렉스'에 시달렸다. 은밀한 수치심이 그를 괴롭혔는데, 이는 최악의 수치였다. 그는 사랑 때문에 수치스러워했다. 동성애자이기 때문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거물을 공평하게 대하지 못했고, 그들을 경멸하면서도 그들 앞에서는 비굴했다."(p.358)

동성애? 미켈란젤로가 독일 황제의 후손이라 믿었다는 건 알고 있었고, 위 마지막 문장도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동성애라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무튼 프레드 베랑스의 신랄한 비판은 충격적이다.

이런 비판 다음에 미켈란젤로와 구별되는 라파엘로의 모습을 대조한다.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처럼 잘난 척을 하지 않았다', '미켈란젤로가 까다롭고 퉁명스러우며, 투덜대는 사람이었던 데 반해, 라파엘로는 우르비노 공작 귀도발도의 정신적 아들로서 젊은 왕자 같은 인상을 준다.', '라파엘로는 사람을 맺어주는, 사랑하는 지극한 천성을 타고났다. (…) 오직 모세의 조각가 미켈란젤로만 그를 신랄하고 극성맞게 압박했다.'(p.359이하)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 라파엘로를 고찰하려는 작가의 노력은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짧은 생애를 살았던 라파엘로는 그의 작품처럼 우아하게 다가왔다. 특히 주변 인물과 비교해가며 라파엘로를 형상화한 노력은, 사료의 절대부족이란 어려움을 극복하는 원동력이 됐다. <라파엘로, 정신의 힘>에서 거장의 위대한 힘을 느껴 보시길.

 

* 글항아리 예술가전기 시리즈의 또 다른 묘미는 앞부분에 실린 올컬러 작품사진이다. 거장의 작품을 삶과 함께 접할 수 있다는 것, 그것처럼 행복한 게 또 있을까? 전기를 읽고 나서 본 작품은 분명 뭔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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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4-07 1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라파엘로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에게 늘 밀려 넘버3 벗어나지 못하는 이미자라 늘 관심가는 화가임다. 읽어보고 싶지만 요즘 편식병이 심각하여~~ ㅠㅠ

쥬베이 2009-04-08 00:17   좋아요 0 | URL
그쵸? 넘버3ㅋㅋㅋ
이 책, 소장가치 있어요 나중에 관심가면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