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1 예술가의 삶과 진실 1
조반니 파피니 지음, 정진국 옮김 / 글항아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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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를 읽으며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일방적인 미화와 과장이다. 특성상 일정 정도 호의적인 서술은 불가피하지만, 찬양수준까지 이르면 곤란하다. 조반니 파피니의 이 작품은 저런 비판에서 어느 정도 자유롭다. 균형 있는 시각을 견지하려는 노력이 여러 곳에서 눈에 띄기 때문이다. (자세한 건 후술) 뿐만 아니다. 기존 전기의 문제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각 장을 짧게 짧게 끊은 구성이다. 이는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는 전기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토대가 된다. 예를 들어, 일본이란 나라를 소개한다고 하자. 연대기대로 쭉 소개할 수도 있고, 인구ㆍ기후 등 관련항목으로 나누어 소개할 수도 있다. 작가는 관련항목별 소개를 기본으로 하되, 항목을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결국, 두가지 방법의 장점을 모두 손에 넣는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너무 지루하게 늘어지지 않고, 불필요한 군더더기나 현학을 피하고서, 또 확고한 역사적 기초 위에 근거하면서도 읽기 쉽고 가능하다면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을 쓰려고 했으며… (중략) 각 장은 짧게 끊었다. 가독성을 높이고 찾아보기도 쉽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연대적 순서라든가 서술은 서로 방해되지 않는다."(p.40)

초반부 100페이지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이름조차 생소한 많은 인물이 등장한데다, 이탈리아 역사도 한번 되짚어 봐야 했기에.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작품의 진가를 느낄 수 있었다. 등장인물간 대화가 없다는 점만 빼면, 소설이라 봐도 무방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장 미켈란젤로 역시 평범한 인간이었음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들, 레오나르도 다 빈치ㆍ라파엘로 와의 갈등이다.

1) 잘 알려지지 않은 미켈란젤로의 모습 (충격적 에피소드)

- 조각가 '피에트로 토리자노'에게 구타당해 코뼈가 주저 앉다.

미켈란젤로의 성격은 의외였다. 거장다운 진중하고 차분한 성격의 소유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공격적이며 독선적인 면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방향이 다를 경우, 엄청난 비난과 조롱을 퍼부어 댔다. 구타사건도 그의 이런 성격이 '유발'한 측면이 있다. 기존 미켈란젤로 전기는 피에트로를 불량배로 몰아대지만, 저자는 사건을 균형 있게 바라본다. 그리고 피에트로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

피에트로는 말한다. "어렸을 적에 미켈란젤로와 나는 그림 공부를 하러 카르미네 성당의 마사초 예배당을 찾아갔었다. (…) 그런데 부오나로티는 그림 그리는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조롱하는 버릇이 있었던 만큼, 어느 날 그는 평소보다 더 자극적인 말을 하기에 나 역시 극도로 화가 나 주먹을 한 방 날렸는데, 내 손에 뼈와 연골이 과자처럼 부서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이 상처를 평생 간직했다."(p.109) 정말 그랬다. 미켈란젤로는 이 상처를 평생 간직했다. 그의 초상의 코부위를 자세히 보면 코뼈가 비뚤어지고 내려앉은 걸 알 수 있다.

- 미켈란젤로가 사기를 쳤다???

사실이다. 비록 젊을때 꾐에 빠져서 한 행동이지만. 미켈란젤로가 만든 '어린 쿠피도 신상'은 너무나 우아하고 세련되어 고대작품으로 속일 수 있을 정도였다(p.161)고 한다. 그걸 본 로렌초는 그를 유혹한다. 훨신 돈을 많이 받을 수 있으니 속여팔자고 말이다. 미켈란젤로는 돈 욕심 때문이었는지 제안에 응하고 산 조르조 추기경에게 비싸게 판다.(p.162참조) 놀랍지 않은가?

미켈란젤로는 돈을 참 열심히 벌었다. 평생 그를 질리게 하며 돈을 요구한 가족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궁핍했던 유년에 대한 반동이었는지는 몰라도. 생각해보면, 돈을 버는 게 죄가 될수는 없는데도, 세속적인 면을 초월한 거장의 이미지가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이상하게 느껴지는 건 아닐까? 물론 사기사건은 예외다.

- 프란체스코 프란차와 벌인 언쟁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미켈란젤로는 자부심이 대단했고, 거친 비난과 조롱도 서슴치 않았다. 프란차 역시 미켈란젤로가 보기엔 예술가를 자칭하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프란차가 라파엘로를 좋아했다는 점도 거장의 심기를 건드렸다.(이 점은 2)로 후술함) 선제공격은 프란차였다. 미켈란젤로의 신작 '율리우스 2세의 좌상'을 보고 '주물과 재료가 아주 훌륭하다'(p.291)고 말한다. 주물과 재료가 훌륭하다니… 미켈란젤로는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분개한다. "이 재료가 훌륭하다면, 당신이 물감을 대주는 안료상에게 감사하듯이, 그것을 대준 교황님께 감사드려야겠지요." 그러자 프란차는 "난감하구먼, 자네와 코사는 예술에 관한 한 길마 얹은 당나귀일세."라고 한다.

더욱 웃긴 상황이 남아 있다. 얼마 뒤, 프란차의 잘생긴 어린 아들이 미켈란젤로를 찾아오자. "얘야, 네 아버지는 그림그릴 때보다 더 훌륭하고 잘생긴 인물을 만들었구나!"(p.292)하고 외쳤다고 한다ㅋㅋㅋ 아, 이 사람 참 대단하다.

- 미켈란젤로의 나약한 모습.

미켈란젤로는 위기가 닥쳐오면 맞서기보다 도망을 선택했다. 또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았지만, 정치격 격변기에는 그들의 적에 동조했으며, 안전을 위해 자신을 투옥시켜려던 '바초 발로리'에게 작품을 선물하기도 한다.(p.507,508) 작가는 이처럼 솔직하게 미켈란젤로의 아쉬운 면도 이야기한다. 독자는 객관적으로 그를 돌아볼 수 있다.

2) 앙숙 -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읽는내내 많이 놀랐던 부분이다. 거장의 자부심이 이렇게 충돌할지는 몰랐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를 아주 싫어했고,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미켈란젤로는 이 두 사람(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모두를 좋아하지 않았고 좋아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이들과 너무나 다르다고 느꼈다. (중략) 그의 거칠고 신랄하며, 영웅적이고 엄격한 예술은 레오나르도와 라파엘로의 작품을 찬란하게 만들었던 미묘하고 부드러우며 세련된 것과 너무 거리가 멀었다."(p.314)

- 미켈란젤로 vs 라파엘로

라마초가 전하는 이야기. "어느 날 라파엘로가 제자들과 함께 있던 자리에 미켈란제로가 지나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관리 나리들에 둘러싸여 어딜 가시나?' 그러자 라파엘로는 이렇게 응수했다. '그러는 당신은 망나니처럼 늘 혼자이시군요.'"(p.315) (좀 더 추가적인 이야기는 p.450 참조하시길)

- 미켈란젤로 vs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익명의 전기 내용. "레오나르도가 조반니 디 가비나와 스피니 궁전 앞 산타 트리니타 광장을 걷고 있었는데 단테의 글을 논하던 몇 사람이 그들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들의 의견을 물었다. 바로 그 순간에 우연히 미켈란젤로가 그곳을 지나치게 되면서 그들 중 한 사람이 그에게도 같은 질문을 청하자, 레오나르도는 '미켈란젤로가 잘 설명해줄 거네'라고 답했다. 미켈란젤로는 레오나르도가 자신을 조롱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에게 흥분한 어조로 이렇게 응수했다. '당신이 설명하지 그러십니까. 청동으로 주물을 뜨려고 말을 그리지 않으셨던가요. 주물에 실패해서 포기해버린 것이 창피한 줄 아시는지요?'라고. 그렇게 말하고는 훌쩍 가버렸다. 이 말을 들은 레오나르도는 황당해하면서 얼굴을 붉혔다."(p.209)

작품속에서 막연한 이미지의 미켈란젤로는 생생하게 부활했다. 작가는 미켈란젤로의 위대함을 납득시키지만, 동시에 날카로운 비판을 잊지 않는다. 균형있는 서술과 역사적 논증은 작품의 가치를 한차원 높혀 줬다. 또한 방대한 자료를 깔끔하게 정리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서술한 점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전기문학의 새 길을 제시한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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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zydevil 2009-03-26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라파엘로와 다 빈치, 미켈란젤로... 그들이 같은 시대, 같은 곳에 태어났다는 거 자체로 극적이네요. <다크나이트>의 배트맨, 조우커, 투페이스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쥬베이 2009-03-26 23:47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같은시대 사람인지 잘 몰랐습니다.
뭐낙 위대한 예술가라 그런지, 사이는 안 좋았어요
중간중간 소개된 일화보면 참 대단합니다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