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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염 조선 - 전통 비밀병기의 과학적 재발견
박재광 지음 / 글항아리 / 2009년 2월
평점 :
오래전 임진왜란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봤다. 요즘엔 '한국사 전'이나 '역사추적'같이 흥미진진한 역사 다큐가 많지만, 당시엔 거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인상 깊었다. 나레이션을 맡으신 고원정 작가님이 재연화면 중간중간 등장하시는 것도 나름 파격적인 구성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보며 특히 놀란 게 있다. 바로 조선의 무기. 활과 창뿐이라고 생각했던 조선에는 천자총통, 지자총통같은 대포도 있었고, 비격진천뢰라는 신무기도 있었다. (비격진천뢰가 얼마나 인상 깊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명칭을 기억하고 있었음^^ 이름만.)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발명자는 누구이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제원, 발전모습 등은 관심을 두지 못했다. 너무 어렸으며(초등학생^^), 차마 조사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을, 이 책으로 속시원하게 한풀이했다.
<화염조선>은 '우리의 전통무기를 살펴보고, 이들에 담긴 선현들의 지혜를 되세겨 보고자 하는 책'(p.5참조)이다. 한민족의 장기이자 전통무기인 활부터 비거, 삼안총, 불랑기 같은 생소한 무기까지, 우리의 전통무기는 이 책을 통해 생생하게 다가온다. 저자는 사진자료뿐만 아니라, 그림, 도표까지 활용해 입체적인 설명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화약병기의 경우, '부리, 격목, 약통'등 생소한 용어가 많아 이해하기가 싶지 않다. 그런데 저자는 p.22에서 각 총통의 구조를 그림으로 설명한다. 마치 설계도를 보는 듯한. 그림을 보니 생소한 용어도 싶게 이해할 수 있었다. (또한 그림자료가 빛을 발하는 부분은, 거북선의 구조를 설명한 p.239이하^^)
처음부터 p.88까지는 조선의 주력 무기인 화약병기의 발전사이다. 주목해야 할 인물은 최무선. 최무선은 화약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인식하고, 중국의 원명 교체기를 틈타 화약제조법을 배운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그는 화약병기를 실전에 배치해 왜구소탕에 혁혁한 공로를 세운다. 권근이 왜구를 격파한 최무선을 축하하며 쓴 시를 보자. '님의 재략이 때맞춰 내어나니/30년 왜란이 하루 안에 평정되도다/ (중략) /주유가 갈대숲에 불 놓은 것이야 우스갯거리일 뿐이고/한신이 배다리 만들어 건넜다는 이야기야 자랑거리나 될까보냐. (후략)'(p.27) 최무선의 공이 얼마나 컸으면 저리 격찬했을까. 아무튼, 훗날 조선의 자랑이 된 화약병기는 바로 최무선의 노고가 씨앗이 된 것이다.
p.89부터는 색다른 무기가 속속 소개된다. 가장 먼저 이야기하고 싶은 건, 15년간 이름만 알고 있던 꿈의 무기 '비격진천뢰'(p.122이하). 비격진천뢰는 간단히 말해 조선시대 수류탄 유사한 무기다.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비격진천뢰란 발사하면 날아가서 폭발과 동시에 천둥 번개와 같은 굉음과 섬광, 수많은 파편을 쏟아내는 무기로 일종의 작열탄이다.'(p.123참조)라고. p.129에선 비격진천뢰로 왜적을 격파한 기사가, p.139이하에선 사용법이 소개된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가장 무서워 했다는데, 일본 측 기록을 보자. '적진에서 괴물체가 날아와 땅에 떨어져 우리 군사들이 구경하고 있는데, 이것이 갑자기 폭발해 그 소리가 천지를 흔들고 철편이 별가루 같이 흩어져 맞은 자는 즉사하고 맞지 않은 자는 넘어졌다.'(p.133)
거북선과 조선의 주력 전함 판옥선은 p.220부터 50페이지가량 서술된다. 이 부분에서 특히 주목한 것은 두가지인데, 하나는 조선수군이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압도한 이유. 다른 하나는 거북선의 구조논쟁, 즉 2층설과 3층설의 대립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이 왜군을 완벽히 제압한 건 누구나 알지만, 이유를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진다. 아마 '이순신 장군의 대단한 지휘력, 거북선의 존재'라고 답하지 않을까. 저자는 좀 더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저자가 드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주력전함 판옥선의 구조적 우수성. 둘째, 대형 화포의 효율적 활용. '판옥선은 바닥이 평평했기에 파도를 헤쳐가는 능력은 떨어졌지만, 안정성이 좋았고 좌우선회력이 뛰어났다. 이는 조수간만의 차가 심하고 섬과 암초가 많은 우리나라 바다에 적합한 구조였다.'(p.269참조) 또한 목재의 질도 상대적으로 우수했으며, 판옥선은 높았고 거북선은 판자를 덮었기에 왜군의 전술운용이 어렸다고 지적한다. 대형화포의 경우 운용시 가장 어려운 것은 이동성이다. 그런데 이를 배에 장착하면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거북선 구조논쟁은 자세히 소개하지 않겠다. p.252이하 참조하시길.)
조선의 무기하면 으레 활과 창을 떠올렸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조선은 무기 개량과 신무기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한 과학선진국이요, 군사강국이었다. 때론 무기체계를 과신하고 신기술 도입이 늦어진 적도 있었지만, 조선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이런 위대한 문화유산이 널리 알려지지 않고, 국사교과서에조차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화염조선>은 우리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조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오래동안 조선의 전술, 무기를 연구한 저자의 노고가 없었다면, 전통무기에 담긴 선조들의 애국정신,지혜를 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저자의 노고에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