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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상은행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9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망상은행>은 중량감이 떨어진다. 그리 눈에 띄는 작품이 없다. 호시 신이치는 1000여편 이상의 작품을 썼으니, 모든 작품이 완벽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때론 이런 작품도 있어야 인간적이지.
가장 아쉬운 것은, 결말이 힘이 없는데다 황당하다는 점이다. [새로운 인생](p.149)을 통해 이야기해보자. 저자는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하는 남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어 왜 남자가 정신병원에 들어왔고 나가게 되었는지 이야기한다. 직장과 집으로 돌아왔지만, 직장에선 해고당했고, 아내는 이혼수속을 하고 다른 남자와 살고 있다. 아내의 음모를 떠올리게 되는데, 저자는 이해할 수 없는 결말을 내린다. '남자가 발명한 특허, 특허절차를 밟아준 원장, 행복한 삶, 그는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로 이어지는데,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남자가 특허까지 받을 장치를 계발했다는 점, 때마침 원장에서 건네 줬다는 점, 원장이 착하게 특허신청을 해서 남자의 권리를 확보했다는 점, 모두 탐탁지 않다. 그리고 남자의 정신상태는 정상인가? 아닌가? 아무리 아내를 사랑했다지만, 아내 한마디에 정신병원에 순순히 들어간다는 것도 이해할 수 없다.
괜찮았던 작품은 [맛의 비밀](p.63), [고풍스런 사랑](p.161), [조난](p.172)이다. [맛의 비밀] 미식가인 사장은 맛있는 집이 있다는 직원의 말을 듣고 바로 찾아간다. '마스코트'란 이름의 가게는 작고 볼품없었지만, 음식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놀란 사장은 주인에게 조리법을 묻고, 주인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한다. 아는 사람에게 산 마스코트에 요리의 요정이 붙어 있어 일반 조리법으로 요리해도 최고의 요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것. 사장은 요리의 요정이 붙어 있다는 마스코트를 사기로 하는데…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
[고풍스런 사랑]의 경우, 굉장히 흥미진진한데 설정이 우리의 정서와는 어긋난다는 것이 아쉽다. (츠즈키 미치오는 이 작품을 최고라고 꼽았다.) 젊고 아름다운 아키코, 연극배우인 남자, 둘은 사랑에 빠진다. 결혼까지 약속하지만 아키코의 아버지는 결사반대한다. 사랑의 도피를 하고자 하나 이상하게 남자는 이를 꺼린다. 결국 정사情死하기로 하는 두 사람. 마지막에 뜻밖의 반전이 있다. (좀 더 말하자면, 이 반전도 그리 공감할 수 없다. 아키코는 자신의 몸 상태를 몰랐을까? 아버지의 논리대로 저것이 딸에 대한 사랑일까? 생각해 볼 문제.)
[조난] 우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우주를 비행하다 조난당한 남자는 급히 근처 행성에 착륙한다. 구조대가 올 때까지 지루한 일상이 계속되고 남자는 점점 지쳐간다. 어찌나 지루했던지 연료에서 알코올을 추출해 술로 마시기까지 한 남자. 결국 우주선을 나와 행성을 산책하기로 한다. 놀라운 것을 발견한다. 3미터 정도 높이의 노란색의 건조물, 과연 저것의 정체는 무엇인지. 이제 막 호시 신이치를 접한 사람이라면, <망상은행>은 뒤로 밀어 두시길. 매력적인 다른 작품을 접한 다음, 천천히 읽어도 충분할 것이다.
* 뒤에 실린 츠즈키 미치오의 해설은 기묘하다. 곳곳에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습니다. 하지만 '이게 소설인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작품에서도 구체성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소설은 묘사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다 그렇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만 이렇게 묘사가 부족하면 역시 의심이 생깁니다. 한 문장 한 문장 그 자체가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단맛을 자제한 마시멜로처럼 입에 맞게, 위장에 들어가서 순식간에 소화되어 버린다면 아무리 쇼트 쇼트라도 이래서는 너무 가볍지 않을까요." 작품에 실리는 해설치고는 파격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