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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의 가장 큰 특징은 기발하다 못해 괴상하기까지 한 문체이다. 이를 즐길 수 있다면 모리미 도미히코에 빠져들 것이고, 아니라면 실망할 것이다. 사실, 초반부는 '실망'쪽에 가까웠다. '이건 뭐야? 이따위 문체는 도대체 뭥미?ㅋㅋㅋ'이랬다. 그러나 2장, 3장을 읽으며 어느새 적응이 됐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진가를 알게 된 것이다.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는 괴상함.
등장인물을 보자. 화자인 '나'와 친구 '오즈'가 역시 중심인물. [나] '시모가모 유스이 장'에서 하숙하고 있다. 대학을 다니며 공부, 연애, 아르바이트 같은 변변한 일은 하지 않고, 오즈와 함께 괴상망측한 일을 벌인다. [오즈] '나'와 같은 학년이며 공부나 성적 따위는 관심조차 없다. 오즈를 어떻게 묘사하는지 보자. '야채를 싫어하고 즉석 식품만 먹기 때문에 안색이 어쩐지 달의 이면에서 온 사람 같아 심히 소름끼친다. 밤길에 마주치면 열 중 여덞이 요괴로 착각한다. 나머지 둘은 요괴다. 약자에게 채찍을 휘두르고, 강자에게 알랑거리고, 제멋대로고, 오만하고, 태만하고, 청개구리 같고, 공부도 하지 않고, 자존심은 터럭만큼도 없고, 타인의 불행을 반찬으로 밥을 세 공기 먹을 수 있다.'(p.13) 왠지 만화캐릭터 같지 않은가?
[아카시] '나'와 오즈보다 한 학년 후배이다. 냉랭하고 이지적인 미모의 소유자지만, 말도 거침없이 하고 선배에게도 대드는 당찬 면이 있다.(p.61참조) 유일하게 무서워 하는 건 나방뿐. [조가사키 선배] 1장에선 영화동아리 '계'에서의 지위를 이용, 후배 여학생을 농락하는 재수없는 인물로, 2,3장에선 히구치 스승과 대결을 벌이는 맞수로 그려진다. 한마디로 '나', 오즈와 대척점에 있는 인물. [히구치 스승] '시모가모 유스이 장'에 살고 있다. 그것도 바로 '나'의 위층에. 오즈와 '나'의 괴상한 삶의 정신적 지주이자 스승이다. 영화 '색즉시공'의 최성국씨와 비슷한 캐릭터.
각 장의 관계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등장인물과 기본설정은 유사하지만, 이야기전개가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히구치 스승의 2층 방에서 물이 샌 시점에, 화자는 1장에선 제자가 아니었지만 2장에선 이미 제자다. 2장에서 미수에 그쳤던 '조가사키의 그녀(?) 가오리씨 납치'가 3장에선 성공해 있다. 또한 '나'와 오즈가 속했던 동아리가, 1장에선 '계'란 영화 동아리지만, 3장에선 소프트볼 동아리 '포그니' 이다. 이런 미묘한 차이는 등장인물의 개성을 한층 뚜렷하게 부각시키며, 독특한 구성의 묘까지 만끽할 수 있다. (줄거리를 소개하기 보다, 등장인물 위주로 살펴본 것은 이런 구성상의 독특함 때문이다)
<다다미 넉장반 세계일주>는 소장가치 있는 작품이다. 뭐니뭐니해도 재미있고, 독특한 문체와 구성력은 충격적이다. 리뷰를 쓰려고 다시 읽으며, 이 작품의 가치를 확실히 이해했다. 왜 일본의 독자들과 평론가들이 모리미 도미히코에 열광하는가? 그 해답이 여기 있다.
* 후기를 읽으며 '권영주님이 이런 분이 아닌데…뭘 잘못 드셨나'했다. (항상 후기를 먼저 읽는다.) 시건방진 말투, 정체를 알 수 없는 자신감, 역겨웠다. 특히 "독자 제씨가 알고 있는 표현과 명백히 다르게 쓰인 표현이 있을 수 있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그렇게 썼기 때문이고 역자가 무식하거나 부주의해서 그런 것이 아님을 주지하기 바란다."(p.406) 이 부분에선 정말 책 싸들고 찾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반전이 있다ㅋㅋㅋ반전이 있는 후기라니^^ 권영주님 잠시나마 오해해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