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독종 - 세계 양궁 1등을 지킨 서거원의 승부 전략
서거원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따뜻한 독종>은 1988년부터 국가대표 양궁팀을 이끌며 수십 년간 세계정상에 군림했던 서거원 감독의 책이다. 리더쉽 지침서, 자기계발서를 지향하지만, 한국 양궁의 생생한 발전사로 읽을 수도 있다. 이는 다른 자기계발서와 차별되는 매력이다. 한국 양궁이란 매력적 소재, 생생한 지휘경험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가슴에 와 닿는 정도가 다르다. 추상적이거나, 외국사례를 소개하는데 그치는 일부 자기계발서와는 완전히 다른 레벨. 

25년간 세계정상으로 군림한 한국양궁의 비결은 무엇일까? 무엇이 한국양궁을 강하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쉽게 말한다. '우리 민족이 고주몽의 후예이기 때문이야. 활 잘 쏘기로 타고난 민족이기 때문이지'라고. 저자는 이것이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웃어넘긴다. 먼저 '활은 오랜 역사를 지닌 사냥도구로서 전 세계적으로 널리 쓰였던 것이고, 어느 나라에나 민족 고유의 활 유산이 있다'(p.99참조)고 한다. 또한, 양궁이 서양인 체격에 맞는 스포츠란 점을 상기시킨다. 한마디로 한국양궁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민족적, 선천적인 것과는 무관하고, 치밀한 전략, 엄청난 훈련의 양, 피나는 노력의 결과일 뿐이다.(p.100참조)

엄청난 훈련, 언론을 통해 약간 소개되긴 했지만 직접 지도하던 감독님의 글을 읽으니 훨신 생생했다. 한국양궁의 엄청난 훈련은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치러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부진한 성적을 거두고 절박한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p.55참조)이다. 이어 다양한 훈련방식이 소개(p.56이하)된다. 소음에 대비한 야구장, 경륜장 훈련, 내면의 공포를 이기고 실수를 최소화하기 위한 하이다이빙 훈련, 최전방 GOP 경계근무를 통한 훈련 등. 마지막에 대한 저자의 코멘트가 인상깊었다.

'긴장과 적막이 교차하는 곳이자 실제로 적과 대치된 상황에서 선수들은 정신을 바싹 차리고 밤을 새야 한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서 있다 보면 외부의 적이 아닌 자기 내부의 적과 대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돌아본다. 국가대표 선수로서의 사명감, 자기가 해야 할 도리, 올림픽을 앞둔 시점에서의 각오 등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다.'(p.59) GOP에서 군생활의 1년을 보냈기에 저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건 정말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아테네 코린토스 운하에서 실시된 번지점프 훈련이야기(p.109이하)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올림픽을 두어 달 앞둔 시점, 국가대표 양궁선수들은 120m에 달하는 코린토스 운하에서 번지점프 훈련을 받는다.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저자가 먼저 뛰어내리고, 이젠 선수차례. 제일 먼저 뛰어내린 선수는 여자선수 A였다. "감독님, 저요! 잠시 후에 뵙겠습니다." 당차지 않은가? 이어 여자선수들이 차례로 뛰고 남자선수만이 남았다. 두 달 후 올림픽이 열렸고 놀라운 결과가 나온다. 번지점프를 한 순서대로 개인전 메달순위가 나온 것이다. 가장 먼저 뛴 A선수가 금메달이었다. 저자는 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주어진 과제와 목표를 대할 때 적극적으로 능동적으로, 자발적으로 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3부부터는 '서칼(저자의 별명)표 리더쉽'이 본격적으로 제시된다. 이미 말했듯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다. 구체적인 경험을 토대로 생생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예를 들어, '기다림의 리더쉽'(p.154) 부분에선 고소공포증 때문에 번지점프를 못하던 선수를 끝까지 기다려 주는 지도자들의 이야기가 나오고, '선장 리더쉽'(p.180)에는 IMF때문에 실업팀이 해체되자 끝까지 동거동락을 함께 하던 뭉클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한 '치유의 리더쉽'(p.190)에는 선수간 갈등과 정신적 방황때문에 힘들어 하던 선수를 다독여 최고의 양궁선수로 거듭나게 이끌었던 사례가 나온다. 소개되는 에피소드는 자체만으로도 흥미롭다. '저런 일이 있었구나'하고 놀라기도 했다. 원론만 늘어놓고 책과 생생한 사례가 숨쉬는 책, 무엇이 도움이 되는지 말이 필요없지 않은가?

이야기 끝부분에 '서거원의 Winning Secret'이란 항목이 있다. 이는 저자가 책을 읽다 메모해 둔 인상깊은 구절을 독자에게 소개한 것이다. 뭐 분명 좋은 말이 실려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나만의 최고 수행 능력을 이끌어 내라'(p.114)뒤에 실린 것은 내용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 좋다. 하지만 대부분은 직접적인 관련성이 없다. 그냥 책의 구성을 풍성하게 했다는 정도.

양궁에 대한 관심이 커져 가는 상황에서 이 책을 만났건 행복한 일이다. 선수들과 감독, 코치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에 한국양궁은 수십년간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다. 그 중심에 서거원 감독님이 있었음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노력해 온 수많이 이의 노력 역시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자기계발서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그냥 에세이였어도 충분한 감동과 교훈을 선사했을 책이다. 혹시 자기계발서에 거부감을 가진 독자(사실 나역시 자기계발서는 싫어한다)라고, 이 책은 재미있고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