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 헐리웃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2월
평점 :
품절


<헐리웃 헐리웃>은 31편의 단편이 실린 작품집이다. 작품수에서 알 수 있듯이 짧은 작품이 많다. [정의], [특효약], [귀가], [눈물의 상봉], [견학], [부부], [자동피아노]등은 한 장이 채 안 되는 소위 '쇼트-쇼트'작품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은, 쇼트-쇼트의 창시자 호시 신이치와의 관련성. 일단 호시 신이치, 츠츠이 야스타카 두 사람은 유사한 면이 많다. 풍부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작품세계, SF분야에서의 특별한 위치, 나이도 비슷한 연령대 등등. 그래서 그런 걸까? 여기에 작품을 슬쩍 다른 작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해도 알아채기 쉽지 않다.

두 사람의 작품세계, 일본 문학계에서의 위치,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일단 여기서는 이 정도만 하겠다. 한가지 알게 된 건, 쇼트-쇼트가 호시 신이치만의 전유물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호시 신이치의 창시이래 하나의 장르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많은 작가가 쓰고 있다. 이것을 새삼 알게 된 것은 <헐리웃 헐리웃>을 통해 얻은 뜻밖의 수확이다.

SF, 풍자, 유머, 공포, 미스터리등 다양한 느낌의 작품이 모여 있다. 장편에서 선보였던 광대한 상상력은 짧은 터치로 농축되어 색다른 재미를 준다. [타조](p.44)는 인간의 탐욕을 공포스럽게 그려낸 작품이다. 여행자는 길을 잃고 사막을 헤매고 있다. 신기하게도 잘 길든 타조가 그를 따른다. 함께 먹고 함께 자고, 절친한 친구 같은 타조. 하지만 남자는 그리 진실한 친구가 아니었다. 먹을 것이 부족하자 타조의 몫까지 전부 먹는다. 배가 고파진 타조는 남자의 회중시계를 삼키고, 남자는 이를 빌미로 타조의 살까지 먹기 시작한다. 과연 이들의 운명은? (구판인 <웃지마>의 뒷표지 그림은 바로 [타조]의 내용이다.)

[귀가](p.127)와 [부부](p.135)는 짧지만 인상적이다. [귀가] 집을 나갔다 20년 만에 무일푼으로 돌아온 남편. 날개 꺾인 패잔병 같은 남자지만 부인은 반갑게 맞아준다. "아아, 여보, 역시 돌아와주었군요."(p.127) 이에 남자 역시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여기까지는 부부의 변함없는 애정을 그린 감동의 드라마이다. 하지만 반전이 있다. 재미있다고 해야할지, 쓸씁하다고 해야할지. [부부] 백화점 인파속에서 4년전 집을 나간 남편을 발견한 아내, 아직까지 사랑이 남아 있던 것일까? 부지런히 뒤를 쫒는다. 이상하게도 남편은 도망치기 바쁘다. 역시 흥미로운 반전이 있다. 부부관계의 황폐화를 비판적으로 그린 작품.

[폐허](p.198)는 뛰어난 묘사와 서술트릭이 어우러진 작품이다. 배경은 핵전쟁 이후 황폐화 된 공간. '지상은 새까맸다. 건물도 주택도 초록의 잔디도 지금은 없고, 단지 요철 형태를 희미하게 남긴 채, 흑토의 평야 일부에 녹아들어가 버린 상태였다. 땅은 말라 있었다. 해가 나는 쪽에는 사막과 구릉이, 해가 지는 쪽에는 산이 있었다.'(p.199) 아직 생명은 숨쉬고 있었다. 동굴에 숨어, 치르와 미아 커플, 가르와 무우 커플이 각각 살고 있었다. 이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술트릭으로 완성된 충격적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천재성은 이 작품에서도 빛을 발한다. <파프리카>같은 장편에서 '상상력의 깊이, 광대함'을 선보였다면, 단편에선 '상상력의 다양함, 폭넓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소재를 다룬 짧은 터치의 작품이기에, 누구나 부담없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장편이 부담스럽다면, <헐리웃 헐리웃>을 통해 츠츠이 야스타카를 접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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