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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카드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3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안전카드>엔 쇼트-쇼트보다 약간 긴 작품이 대부분이다. 뭔가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역시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저자의 코멘트를 보자. '이 책에 실은 작품은 쇼트 쇼트보다 약간 길이가 긴 작품이 많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의뢰받은 매수가 그랬기 때문이다. 특별히 원고료를 더 받으려고 한 것이 아니다. (중략) 쇼트 쇼트와 그보다 조금 긴 글은, 개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아도 생각의 질이나 이야기 구성이 미묘하게 다르다. 또 하나의 수업이 된 것은 분명하다.' 솔직하다. 쇼트 쇼트보다 긴 작품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게 아니라 의뢰받은 매수가 그랬기 때문이라니. 심오한 뭔가를 기대했는가? 호시 신이치의 솔직함에 더 정감이 간다.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은 [운 좋은 점쟁이](p.114), 그 외 [과거](p.36), [안전카드](p.140)가 괜찮았다. 음침한 여자가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 괴로워하는 직장동료의 이야기인 [그 여자](p.157), 여자유령이 출몰하는 호텔을 소재로 한 [문제의 방](p.195)도 재미있으나, 깜짝 놀랄만한 결말이 아니어서 베스트로 꼽진 않았다.
[운 좋은 점쟁이] 점쟁이 노파에게 여자 연예인(미도리 레이코)이 찾아 온다. 젊고 예쁜 그녀지만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았고 외로움에 힘들어 하고 있었다. "전 사랑하고 싶어요"(p.115) 애인을 만들고 싶은데 어떤지 궁금하다며 묻는다. 수정구슬을 바라보며 주문을 외는 노파. "머지않아 한 청년이 당신 앞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깊은 사이가 되지요. 이 건물 옆에 찻집이 있어요. 당신은 거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그러면 오늘이나 내일쯤 그 청년이 나타날 거예요."(p.117) 이어 점쟁이 노파에게 강도, 젊은 청년, 중년신사(미도리 레이코의 남편), 정신병원 관계자, 경찰, 연예 주간지 기자등이 연이어 찾아 온다. 과연 노파는 어떤 점괘로 이들을 상대할지. 상당히 재미있다. 호시 신이치는 약간 과장되게 구성했지만, '실제 점쟁이도 저런 식으로 점을 보는 건 아닐까'란 생각까지 들 정도로 공감간다.
[과거] 평범하고 타성에 젖은 생활을 따분해 하던 남자가 있다. 그는 과거의 가치보단 현재를 중시한다. 남자의 사고방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는 한마디, "확실하게 있는 것은 현재뿐이에요. (중략) 어제의 나 같은 것은 이미 존재하지 않아요."(p.38) 자주가던 술집의 바텐더는 이상한 제안을 한다. 과거의 삶 일부를 자신에게 팔라는 것이다. 남자는 장난 비슷한 심정으로 승낙한다. 이상한 변화가 생긴다. 행복한 기분에 사로 잡히는 등, 삶의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그러자 남자는 자신의 과거를 바텐더에게 조금씩 계속 팔기로 하는데…. 이야기전개가 흥미진진하고 약간 오싹하기까지 했던 작품.
[안전카드] 중소기업에서 영업일을 하는 독신 청년에게 누군가 찾아온다. '명함 정도 크기의 금속으로 된 카드'를 팔러 온 사람이었다. "이 카드를 사시면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받으실 수 있습니다. 카드를 사신 분들, 충동적으로 사신 분도 많지만 모든 분이 안전한 상태입니다."(p.143) 같은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동질감이었을까, 청년은 카드를 사기로 결심한다. 몇 달이 지나고 지방도시에 출장을 간 청년, 운이 없게도 강도를 연이어 만난다. 그러나 청년에겐 안전카드가 있었다. 의심 반 호기심 반 산 카드가 놀라운 역할을 하며 강도를 퇴치한다. 청년은 아무 걱정 없이 생활에 열중하며 즐거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안전카드는 신의 선물이란 말인가, 이후 이야기를 기대하시길.
이번에도 역시 호시 신이치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안전카드>는 재미있고 통쾌한 작품이다. 정통 쇼트-쇼트가 아직은 낯선 분들은, 이 작품이나 <흰 옷의 남자>처럼 긴 호흡의 작품이 많은 것을 고르는 게 좋겠다. 호시 신이치가 평생에 걸쳐 쓴 수많은 이야기를 몇 일 만에 날름날름 읽어버리는 게 조금은 미안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재밌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