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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없는 이야기 ㅣ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11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덧없는 이야기>엔 역사물과 '전설의 고향', '옛날 옛적에'같은 옛날 이야기가 많다. 이런 류를 좋아하는지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플라시보 시리즈 전체에서 특징적인 작품으로 꼽을만 하다. '~신화'로 이어지는 8편의 신화시리즈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기발하고 흥미로웠지만 비슷한 류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따분할 수밖에 없다. 8편을 작품 내에서 뒤섞어, 독자에게 연결고리와 의미를 찾게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12세기 후반, 미나모토 요시츠네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꽃도 바람도](p.36)는 재미있는 동시에 위험한 작품이다. 일세를 풍미하던 오세츠네는 형 요시토모와 대립하게 되고 결국 도망다니는 신세로 전락한다. 배를 타고 떠돌며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 해협근처에 상륙한 요시츠네. 그 곳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주변 지역을 점령해 나가기 시작한다.
아즈테카 문명의 번성이 일본인에 의한 것이란 다소 민감한 이야기라, 거품을 물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이어지는 [여정](p.45) 역시 당구나 게이트볼의 선구가 일본인이란 내용이라서 더더욱. 하지만 민감한 반응보단 호시 신이치의 상상력 차원으로 이해하면 족하겠다. 이건 소설이지 않은가?
기묘한 옛날이야기 같은 작품 중, [만월](p.77), [문 앞의 시가지](p.83), [바다](p.146)가 인상적이다. [만월] 이상한 물고기를 잡은 두 남자의 이야기다. 인어 같은 물고기를 잡게 되자 영주에게 바친다. 절의 주지는 그 물고기를 먹으면 오래 살 수 있다고 말해 주지만 이미 고기는 놓아준 상태. 운명인지 두 남자는 비슷한 물고기를 잡고 요리해서 먹어 버린다. 두 남자에겐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문 앞의 시가지]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과자가게 부부와 오른발에 장애를 가진 아이의 운명을 풀어가는 이야기이며, [바다]는 어부와 신비한 문어의 기묘한 동거기(?)이다.
괴담을 연상시키는 오싹한 이야기도 있다. 특히 [밤의 흐름](p.171)이 마음에 들었다. 사진작가인 청년은 지평선을 떠오르는 태양을 찍으려고 부지런히 고개를 넘는다. 흐느껴 우는 여자울음소리에 걸음을 멈춘 청년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여자를 구하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청년은 마침 발견한 인가로 뛰어가 도움을 청하는데…일반적인 예상을 한 단계 뛰어넘는 반전이 강렬하다. [금기](p.187)는 괴담의 고전, 택시와 여자이야기와 유사하다.
'전설의 고향', '옛날 옛적에'같은 옛날 이야기를 좋아한다면 결코 실망하지 않을 작품이다. 고풍스런 배경을 바탕으로 한, 일본 특유의 기묘한 분위기를 느끼고 싶다면 읽어 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