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회사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5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도둑회사>는 호시 신이치의 다양한 매력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회사원이 주인공인 회사중심의 이야기,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적 이야기, 전래동화를 패러디한 이야기등등 한가지 특징을 꼽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다. 플라시보 시리즈의 이전 작품이 보통 20~25편 가량의 작품이 수록되었던데 반해, 이 작품은 무려 41편이나 실려 있다. 이는 다양성을 만끽할 수 있게한 또하나의 요인인 것이다.

[도둑회사](p.42) 100여명의 사원들이 각자 업무에 열중하고 있다. 회의중인 사람들, 자료를 분석하는 사람들 모두 열심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보석상을 습격하는 것은 어떨까요?', '롤스로이드를 훔쳐 타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p.43) 이들은 도둑질을 업으로 하는 도둑 주식회사의 직원이었던 것이다. 100여명의 직원이 총동원 돼 벌이는 범죄행각, 읽어 보시길. 이건 이미 현실화 된 이야기 아닌가? 집단 자해공갈단. 호시 신이치의 상상력이 새삼 놀랍다.

[살인청부업자](p.47) 공개석상에서 N씨에게 폭언을 퍼붓는 '나', 결국 N씨는 참지 못하고 '나'를 죽여 버리겠다고 외친다. '나'가 저런 행동을 한 이유는? N씨는 과연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이 이야기는 형법교과서에 나오는 '도발된 정당방위의 제한'사례와 유사하다. '나'의 행위는 N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위였고, N은 미끼를 물어 버린 것이다.

전래동화를 패러디한 [시간의 사람](p.122), [요술 방망이](p.149)도 인상적이다. [시간의 사람]에 등장하는 '우라시마 타로', 이름마저 일본 전래동화의 그것을 그대로 가져왔다. 용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인간세상으로 돌아온 그를 기다리고 있는 건 무엇인가? 젊음을 가져간 선물상자 속 연기보다 충격적인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다. [요술 방망이]는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도깨비 방망이 이야기다. 깊은 산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요술 방망이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다. 읽어 보시길.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적 상상력이 넘치는 이야기도 상당히 많다. 특이한 것은 기본 설정이 거의 같은 이야기가 나란히 수록되어 있다는 것이다. [재고처리](p.27)와 [번영의 꽃](p.202)이 바로 그것이다. 두 작품의 기본설정은 이렇다. 한 행성에서 다른 행성에 유해한 뭔가를 유포한다. 그런 다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결책을 비싸게 팔아치운다. 소설적 설정으론 무척 흥미롭지만 뭔가 찝찝하다.

심각한 얘기를 해야겠다. 호시 신이치의 사상에 대한 것이다. 한 부분을 보자. "그쪽에서 먼저 공격해올 리도 없고, 나중엔 이쪽이 먼저 쳐들어가 점령할 수도 있고, 안심하고 교류할 수 있는 상대는 바로 그런 별이다."(p.202) '먼저 쳐들어가 점령한다'라…저건 단지 한 단편의 한 부분이 아니다. 호시 신이치의 SF적인 작품 대다수가 기본적으로 저런 사상을 깔고 있다. 상대방 행성을 식민지 삼고, 노예로 부린다는 설정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호시 신이치의 작품에 무조건적인 찬사를 보냈지만, 그의 사상은 재검토가 필요할 듯 하다. 소설은 소설로만 보라고 말할 것인가? 지나치게 오버하는 것인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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