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코맥 매카시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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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를 읽고 그 어떤 글도 남기지 않으려 했다. 마음에 담아 두는 것, 그걸로 족하다고 믿었다. 그 어떤 감상도, 분석도 실례일 뿐이기에. 하지만, 마음 한 구석이 편하지 않았다. 아래는 마음의 짐을 덜기 위한 보고서 형식의 간략한 글이다.

1. 첫 느낌

초반부 혼란스러웠다. 뭔가 심각한 상황임은 분명한데,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인지, 아무런 설명도 없기 때문이다. '왜 저 지경이 되었을까? 핵전쟁이라도 났나?' 초반부 내내 저런 의문을 품었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의문은 사그라 진다. 저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란 걸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2. 문체 / 묘사력

1) 코맥 매카시의 문체는 간결하고 깔끔했다. 특히 주목한 것은 남자와 소년이 주고받는 단답형의 대화이다. 이들의 대화에서 약하지만 강렬한 생명의 숨결을 느꼈으며, 때론 비장함마저 느낄 수 있었다.

2) 코맥 매카시의 묘사는 탁월했다. 몇몇 부분을 예로 든다면, 재와 먼지로 뒤덮인 죽음의 도시 묘사(p.17), 지옥도를 연상시키는 널브러진 시체묘사(p.104), 숯이 되어버린 집의 잔해 묘사(p.149), 모든 것이 녹아버린 죽음의 도로(p.216)등. 이런 문체와 묘사력은 비단 <로드>뿐만이 아닌, 코맥 매카시 본래의 장기다. 건조하고 때론 음울하기까지 한 특유의 문체가 <로드>의 설정과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세기에 길이 빛날 명작이 탄생한 것이다.

3. 생각해 본 것

1) 주인공에겐 이름이 없다. 단지 남자, 소년으로 불릴 뿐이다. 이는 일종의 대표성을 부여한다. 저자는 특정개인이 아닌, 남자 혹은 소년으로 대표되는 인류의 대표자란 상징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2) 여성의 부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마지막까지 희망을 위해 분투하는 자는 남자와 소년이다. 그 어디에도 여성의 모습은 없다. "여자들은 다 죽었나 보지. 그러니까 안 나오는 거라고. 헛소리 집어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한 부분을 보자. 아내이자, 소년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여성은 "우린 생존자가 아니야. 우리는 공포영화에 나오는 좀비야"(p.65)라는 명대사(?)를 남기고 자살(로 추정)해 버린다. 아버지로 대표되는 남성성이 끝까지 소년을 보호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 데 비해, 어머니는 쉽게 좌절하고 절망을 택한다. 이제까지의 코맥 매카시 작품을 고려한다면 뭐 그리 놀랄 것도 아니지만. 이런 편향성은 생각해 봐야지 않을까?

3) 마지막 장면은 과연 새로운 희망인가? 아무도 장담 못한다. 홍보글에는 자꾸 '몇 페이지의 절망, 한 페이지의 희망' 어쩌구 하는데 뭐가 절망이고 뭐가 희망이란 말인가?

남자와 소년이 힘겹지만 아름답게 살아가던 그 몇 페이지가 도리어 희망이 가득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등장한 인간군群은 일련의 서술로 보면, 남자와 소년이 찾던 사람들로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소년이 저 무리에서 희망을 찾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아버지의 헌신적인 보살핌 아래서 겨우겨우 살아가던 소년이 저들에게서 마찬가지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4) 과연 저들은 인간인가? 지금은 많이 진정 되었지만, 처음 읽을 땐 자꾸 저런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인간이 아닐지 몰라. 배경이 꼭 지구란 법도 없지.' 독자의 상상도 최소한 작품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에선, 허무맹랑 그 자체일 것이다. 하지만, 한번 해보지 못할 상상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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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26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금 난해할 수도 있을듯 해요...굳이 장르분류를 하자면 어느 쪽인가요...

쥬베이 2008-07-26 18:59   좋아요 0 | URL
글쎄요...지옥도 같은 미래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SF적요소가 있고요
전체적으론 휴먼스토리 입니다^^
여성분들은 별로 마음에 안들어 하는 분도 계시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