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의 숨바꼭질 호시 신이치의 플라시보 시리즈 3
호시 신이치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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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시 신이치를 모르는 사람도, <미래의 이솝우화>, <여러 갈래의 미로>에 충격을 받지 못한 사람도, <한밤의 숨바꼭질>앞에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의도적인 구성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권을 달리할수록 충격의 강도가 깊어진다. 이 작품에 실린 24편의 이야기는 SF, 공포, 풍자, 블랙유머 등으로 버무려져, 결국 "역시 호시 신이치"라는 한 문장으로 정리된다. 읽는 내내 감탄하며, 즐겁게 읽었다.

<한밤의 숨바꼭질>의 24가지 이야기는 분명 짧지만, 아이디어와 상상력은 다른 이의 24편 장편보다도 뛰어나다. 유사한 아이디어와 소재라면 '늘어지는 것'보다 '임팩트한 것'이 좋지 않은가? 특히, [어느 귀향], [금가루]는 대단했다. 저 정도 아이디어라면 원고지 5000매급 장편도 가뿐할 테지만, 호시 신이치가 누구던가? 쇼트-쇼트! 군더더기는 누르고 밟고, 핵심만 짜낸다. 저런데 명작이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게 바로 호시 신이치의 진가다.

[어느 귀향](p.11) 부모는 모두 죽고, 홀로 남겨진 고아가 있다. 비참한 모습이 떠오르지만, 그렇지 않다. 집안대대로 내려오는 땅과 금은보화 덕에 여유롭고 풍족하게 살아간다. 그는 어느 순간 마을사람들이 자신을 이상하게 보고 있다고 느낀다. 결국 진상을 알게 된 사내. 마흔 살까지 사는 것이 그의 숙명이며, 손 쓸 도리가 없다는 것. 좌절한다. 40년이란 시한부 삶을 살게 된 그에게 경제적 풍요는 무의미할 뿐이다. 사내의 운명은?

이렇게 살을 붙일 수 있다. 마을의 배경과 등장인물 묘사를 추가하고, 사내 조상이 기원했다는 전국시대 내용을 극적으로 부각한다. 또한 사내의 갈등을 곁에서 함께할 연인을 추가하는 것이다. 나아가 마을 내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세 남녀의 삼각관계까지 맞물리게 한다면 등장인물간 미묘한 갈등도 표현할 수 있다. 그리고, 방황하는 사내의 이야기도 구체적으로^^ 결말을 밝히지 못해 조금 그렇지만, 어릴 적 이와 유사한 드라마(?)를 본 듯한 기억이 있다. 아마도 호시 신이치의 이 작품을 차용한 게 아닐까 싶다.

[금가루](p.135) 삶의 의욕조차 잃어버린 지극히 평범한 얼굴의 남자, 삶의 줄마저 놓으려는 절망의 순간에 뜻밖의 일이 벌어진다. 돈을 줍고, 경마와 주식으로 돈을 벌고 승승장구하는 것. 한편 중간중간 마법과 같은 주문이 이어진다. 정체불명의 여성은 "부디 이 남자가 돈을 벌 수 있도록…." 이란 주문과 함께 금가루를 뿌리고 있다. 남자의 행운은 이 여자 덕분인 걸까? 이 여자의 정체는? 이런 의문은 결말에 이르러 해소되는데 충격이다. 살을 붙여 하나의 공포 미스터리 작품으로 선보여도 손색이 없을 정말 대단한 작품.

이외에는 컴퓨터가 세상을 지배하는 오싹함을 느낄 수 있는 [승부](p.128), 폐품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과 미래인이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 [미래인의 집](p.42), 초현실적인 플롯의 무한폭주를 맛볼 수 있는 [노란 잎](p.83)이 마음에 들었다. <한밤의 숨바꼭질>, 이 여름밤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다. 호시 신이치의 무한 상상력 앞에서, 당신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했던 충격을 접하게 될 것이다. 즐거움과 공포를 넘나드는 감정의 롤러코스터, 시공을 초월하는 시간의 타임머신, 느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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