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 본격추리 1
에도가와 란포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8년 5월
평점 :
품절


일본 미스터리의 애독자로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읽어보리라 마음 먹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국내에 소개된 작품은 거의 없었다.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한 작가의 작품은 접할 수 있지만, 정작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접할 수 없는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저런 생각은 혼자만의 아쉬움이 아니었나 보다. 뒤에 실린 '에도가와 란포를 소개하며'(p.553이하)를 보자. '놀랍게도 지금까지 국내에 번역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원류인 그의 작품을 감상할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출간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남은 것은 그의 작품을 즐기는 것뿐.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에 실린 작품은 근 한 세기 전에 쓰인 것이다. 하지만 몇몇 소재(화승총 따위)와 화폐단위만 무시한다면 요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하다. 오랜 먼지냄새 풍기지 않는 거장의 품격이 느껴진다고나 할까? 한 가지 적응하기 어려웠던 것은 저자의 개입이다. '그런데 독자 여러분, 그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 이 이야기 전체와 크게 관련이 있었다.'(p.119) 마치 무성영화의 변사처럼 슬그머니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이런 개입은 꽤 여러 군데서 발견할 수 있는데, 요즘은 거의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수록된 22개의 작품 중 '아케치 코고로'가 등장하는 [D언덕의 살인사건], [심리실험], [흑수단]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아케치 코고로는 [D언덕의 살인사건]에 처음 등장한다. 묘사되는 그의 외양을 보자. '나이는 나와 동년배로, 스물다섯은 넘지 않았을 것이다. 약간 마른 체형이고 걸을 때 이상하게 어깨를 건들거리는 버릇이 있다. (중략) 소위 미남은 아니지만 은근히 애교가 있고 천재처럼 생긴 얼굴을 상상하면 된다. 다만, 아케치는 머리가 덥수룩하니 길고 까치집을 짓고 있으며 남과 대화를 하는 동안 그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더 덥수룩하게 하려는 듯이 손가락으로 마구 헝크는 버릇이 있었다. 옷차림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노상 무명옷에 다 해진 띠를 맨다.'(p.137) 뭔가 상당히 익숙하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교고쿠도 시리즈의 '추젠지 아키히코'. 위 묘사를 고서점에 앉아 있는 교고쿠도와 연결한다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아케치 코고로는 [심리실험]에서는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등장(p.59)하는데, 여기서 대활약하는 그의 모습은 요즘 일본 추리소설에 볼 수 있는 탐정역의 그것이다. 한마디로 일본 추리소설의 탐정캐릭터 중 상당수는 에도가와 란포가 창조한 아케치 코고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비단 캐릭터 뿐이겠는가 만은^^)

[D언덕의 살인사건](p.117) D언덕에 위치한 하쿠바이켄이란 찻집에서 빈둥거리던 '나', 비슷한 처지의 아케치 코고로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탐정소설이란 공통점을 발견한 이들은 아케치 코고로의 소꿉친구가 안주인으로 있다는 헌책방으로 향하고, 의문의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나'와 아케치 코고로의 숨막히는 추리대결, 탐정역이 의심을 받는 역逆설정의 묘미, 멋진 작품이다. (결말이 다소 거친 감도 있지만, 아케치 코고로가 등장하자마자 '나'에게 의심받는 설정은 놀라웠다.)

[심리실험](p.37) '후키야 세이치로'의 범죄행각과 음모, 진범 색출을 위한 수사당국의 심리실험이 핵심이다. 수록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들었다. 단어연상을 통한 심리실험과 중반이후 등장해 깔끔하게 사건을 해결하는 아케치 코고로 모습이 무척 인상적.

[흑수단](p.173) 갑자기 사라져 버린 사촌동생 후미코, 이어 잔악한 도적무리 흑수단을 자칭하는 협박편지가 날아온다. 두려움에 빠진 가족은 몸값을 내주지만 딸은 돌아오지 않는다. 과연 후미코는 어떻게 될 것인가? 솔직히 중반이후 어느 정도 결말을 예측할 수 있었지만, 다양한 트릭시도 하나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에도가와 란포는 이 작품을 이렇게 평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패였다. 단지 암호가 풀기 어려웠을 뿐이고 독특한 개성이 부족하다."라고^^  

이외에도 대화로만 구성된 [대화](p.247), 대화가 주가 되는 [낭떠러지](p.341)가 기억에 남았다. 다양한 구성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두 폐인](p.441)도 멋진 작품이다. 전쟁으로 얼굴의 큰 상처를 입은 사이토, 몽류병 때문에 큰 사건을 저지르고 인생을 망친 이하라, 두 사람의 이야기인데, 마지막에 밝혀지는 사실이 놀랍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들, 역시 대단했다. 요즘 소개되는 일본 추리소설의 모티브를 제공한 듯 한 설정, 소재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왜 그가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로 불리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했다고 할까. 일본 추리소설의 원류를 느끼고자 하는 이들에게 <에도가와 란포 전단편집 1>은 밝은 빛, 희망과도 같은 책이다. 희망을 꿈꾸고 싶은가? 더 이상 에도가와 란포는 전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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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리 2008-07-22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사실 유명한 작가라는것만 알고 있을뿐 읽어보진 못했는데 덕분에 유용한 정보 얻고 가네요. 감사^^ 요즘 비가 많이 내리는데 쥬베이님 서재에도 비가 맺혔네요. 우산 잘 챙겨들고 외출하세요^^

쥬베이 2008-07-22 07:53   좋아요 0 | URL
일본 추리소설 좋아하시면, 에도가와 란포 한번 읽어보세요^^
일본추리의 원형이라 할만해요